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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3회차-260화 (260/278)

제 260화

후일담- 악귀

메두사와 데스나이트가 나란히 산길을 걷던 와중 머리 위로 뭔가가 흩날려 내린다.

데스나이트의 표정이 구겨진다.

“닭털이 뭐 이렇게 날려? 어디서 닭이라도 잡았나.”

그 말에 메두사가 폭소한다.

“저건 벚꽃이라는 거야. 닭털이라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이게 꽃잎인가?”

“생긴대로 진짜 무식한 놈이네...”

데스나이트가 머리 위에 떨어진 벚꽃잎을 보며 감상한다.

메두사는 데스나이트의 큰 덩치를 한심하단 눈빛으로 보고 배를 잡고 웃는다.

산길을 내려오던 중 데스나이트의 표정이 잠시 굳는다.

“근데 아까 단장 표정 봤나?”

“왜?”

“표정이 되게 안 좋더군. 이유를 물어도 대답도 없고….”

용병과 대련을 펼치고 난 후 척준경의 안색이 심하게 구겨지던 것이 데스나이트의 맘에 걸렸다.

“걔는 원래 표정도 별로 없고 은근 자기도취에 빠진 놈이잖아. 원래 그런 스타일 아니야?”

“아니. 그에게서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급똥이라도 마려웠나 보지.”

“장난하는게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메두사에 비해 데스나이트는 그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근데 그 양반 세긴 세더라.”

“현계의 어느 시대를 풍미했던 자다. 단기의 필마로 뛰어 들어가서 적 진영을 초토화 시킬 정도였으니까.”

“그래? 그렇게 대단하던 양반이었어?”

현계에서는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순전한 힘만으로 전쟁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메두사는 공감이 갔다.

그때 뒤에서 사부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다가왔다.

“단장이 부른다.”

“뭐? 왜 또?”

일미호는 꼬리 두 개를 훌렁거리면서 두 팔을 들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르지.”

“아 다시 저 산길을 올라가야 하잖아. 귀찮게.”

데스나이트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들은 다시 내려온 산길을 올라 아카데미로 향한다.

*

천계의 신전.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힘없이 침실로 향하는 제우스의 뒷모습을 본 헤라는 이를 아득 물었다.

근 십 년간 제우스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인간에게 손가락 하나를 잘리고 나서 스틱스강에 인간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단다.

스틱스강의 맹세 덕분에 최고의 신이 인간에게 그런 모독을 느끼고도 복수할 길이 없었다.

침실을 조심스레 들어가니 제우스는 어두운 기색으로 그녀에게 나가라고 말한다.

예전 위대하고 힘이 넘쳤던 제우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레스가 그 인간놈을 반드시 죽여야 우리 신들의 명예가 산다.’

아레스는 헤라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다.

피와 살육을 즐기고 야만이 가득한 잔혹한 신이지만 무위는 군신이라 불릴 정도로 강했다.

그가 탄 마차가 지나가는 길마다 시체들이 쌓인다고 해서 그를 끄는 마차만 보면 신들조차 두려워했다.

그가 휘두르는 검에서 나는 바람소리는 귀신의 곡소리와 같다고 해서 인간들 사이에서는 검귀라고 불리기도 했다.

신전의 호수로 나온 헤라 앞으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어머니.”

“준비는 잘 되었느냐?”

“십 년의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십년의 준비.

그것은 군신 아레스가 한 목표를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으며 강해진 인고의 시간이다.

헤라는 남자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의 허리춤에 찬 칼 두 자루에서 진한 피냄새가 느껴졌다.

“마계는?”

“지금 다 쓸어버리고 오는 길입니다.”

“잘했다.”

“잘한 것도 뭐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처부술 생각이었는데.”

헤라는 놀라 속으로 침을 삼켰다.

천계의 신들조차 꺼려한다는 그 마계를 단신으로 멸망시키다니.

푸드드득!

신전에만 서식한다고 알려진 천공새들이 아레스에게서 나는 피냄새를 맡고 모두 날아가버린다.

“…….”

헤라는 아레스의 두 눈을 보며 아들이지만 섬뜩함을 느꼈다.

그의 두 눈에서 악귀가 보였다.

헤라는 그 날을 떠올렸다.

전쟁의 여신 아테네의 목을 자르고 그녀의 두 눈을 뽑아 씹어먹던 아레스의 그때의 그 표정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복수의 칼을 뽑아라.”

헤라의 지시에 표정이 없던 아레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생기가 확 돌았다.

*

검은매를 타고 마계의 요새 라카스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요새의 성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마족들이 바닥에 배를 깔고 죽어있었다.

마족 시체 하나를 뒤집어보니 왼쪽 가슴 한 부분만 완벽하게 도려내져 있었다.

심장만 꺼내간 것이다.

“누가 이런 짓을...”

헤라클레스는 창대를 쥐고 성안으로 돌진했다.

길목마다 쌓여있는 마족들의 시체에서 식지 않은 피냄새가 가득하다.

견고하다고 소문난 라카스의 성문은 박살나 있었다.

‘누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떤 군단이 마왕의 군단을 이토록 잔혹하게 전멸시켰단 말인지? 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마족들을.

마족의 최정예병인 드래곤나이트들 조차 가슴살이 정교하게 절삭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단숨에 성안으로 진입하여 레드카펫을 빠르게 밟아가며 성안의 내부 마왕실로 향하자 레이논의 얕은 신음이 들려왔다.

“마왕! 괜찮아?”

“……보면 모르냐. 안 괜찮다.”

“누가 이런 짓을 한거야!”

헤라클레스는 마왕 레이논이 두 팔이 잘려나간 채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기겁했다.

“마차... 그 놈이다.”

“마차라니? 잠시만말하지마. 당장 지혈해야 한다.”

헤라클레스는 힘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질긴 가죽옷을 뜯어 레이논의 출혈 부위를 감쌌다.

“이미 틀렸다... 그냥 가라. 존나 수치스럽군.”

“군단의 전력은 얼마나 되었어?”

“군단이 아니다.”

“군단이 아니라니?”

“한 놈이었다.”

“…뭐?”

마왕과 마족들이 단신으로 이렇게 처참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존재란 이 세상에 없다. 전성기 제우스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가자!”

헤라클레스는 레이논을 들춰 업으려고 했다. 빨리 베른에게 데려가지 않으면 마왕은 죽고 만다.

그러나 레이논은 발로 헤라클레스를 밀쳐낸다.

“난 이미 틀렸다. 말을 전해다오.”

“포기하지 말라고!”

지켜보던 검은매도 날개를 파르르 떨며 마왕에게 빨리 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이 말은 가면기사에게 전해라. 마차를 끈 그 놈은 너조차도 힘들 거라고.”

“그 마차가 설마 아레스를 말하는 거야?”

“그 새끼 이름은 난 모른다.”

헤라클레스는 형제 아레스를 어릴 때 보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나 들려오는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신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주군께 전해다오. 재회할 순간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먼저 가서 죄송하다고.”

“이봐!!”

그 이후로 마왕 레이논은 말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가만히 그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고 그의 식어버린 시체를 살폈다.

너무나도 정교하게 잘려나간 두 팔.

절삭된 부위를 보니 이것은 단 한 번의 일합인 것이 분명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레이논의 사체를 들춰업었다.

“가자.”

퀴이익!

검은매는 헤라클레스를 태우고 빠르게 마왕성을 빠져나왔다.

*

척준경은 레이논의 사체를 허탈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도전적이었지만 소중한 전우였다.

“마차를 끄는 놈이라고 했나?”

준경의 물음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두사와 데스나이트도 침울한 얼굴로 그의 사체를 바라봤다.

“단장. 당신이 보기에도 이건 일격에 당한거지?”

헤라클레스의 물음에 척준경은 레이논의 잘려나간 어깨 단면을 살피고는 끄덕였다.

“분명 이건 한 번의 일격으로 당한 것이다.”

검술의 달인인 척준경조차 놀랐다. 마왕을 일격에 이렇게 정교하게 두 팔을 잘라내다니.

“분명 검 두 자루를 사용하는 자다.”

준경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아콘은 레이논의 시체를 처절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이런 개짓거리를 한 거냐? 당장 내가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금강투구를 벗은 아콘의 두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놈은 내가 몸소 찾는다. 일단 묵념하고 이 친구가 가는 길부터 위로해주자.”

척준경의 말에 그들은 입을 다물고 묵념했다.

천신전쟁을 함께해온 전우를 묻어주며 장례식을 치뤄준 후 척준경은 망령의 군단들에게 명했다.

“마차를 끌고 다니고 쌍검을 사용하는 놈을 찾아라.”

한 마디의 지시에 수만의 망자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그놈과 같은 놈이겠지? 발카스 성 몇 개를 박살냈던 놈.”

아콘이 이를 갈며 말했다.

전에 견고한 요새라고 알려진 발카스의 성 몇 개가 함락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성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심장만 도려내진 채 죽어있었단 것.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확인해 봐야지. 금방 찾을 것이다.”

준경은 확신했다.

망자들의 오감은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은 자들이다.

“나의 타이탄들에게도 말해놓겠다. 찾게 되면 그놈을 알아볼 수도 없는 시체로 만들 것이다.”

아콘은 각오를 다지고 망토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사라졌다.

‘단순히 살육에 미친 자인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그때 척준경의 검집에 꽂혀있던 도검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검명을 뿜어냈다.

그 검명의 울림은 천신전쟁 때보다 더욱 크고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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