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1화
후일담- 악귀 (2)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집무실에서 준경은 생각했다.
레이논의 사체를 떠올렸다.
칼이 몸을 베어간 자리.
완벽하게 절삭된 부위의 단면.
그 외에는 그 어떤 검상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이건 이미 경지를 넘어선 검법이다.’
그놈은 단 일합에 레이논을 절명시켰다.
양 검을 내리쳐 그렇게나 깔끔하게 팔을 잘라낸다.
준경의 머릿속으로 그의 검 궤도가 그려진다.
‘목이나 심장을 노렸다면 더 빠르게 죽일 수 있었을텐데 왜 하필 양 팔을 잘라간 걸까.’
그게 의문이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계에서 손 꼽히는 마왕을 유린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것이다.
“헤라클레스. 그가 너와 피를 나눈 형제라고 했나? 어떤 자인가.”
준경의 물음에 숨 죽이고 있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 보고 보지 못했어. 내가 아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좋은 유전자를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고 알아.”
아레스의 어머니 헤라는 명석한 두뇌에 독기가 강한 여자고 제우스는 한 번의 힘으로 이계 전체를 흔들어버릴 공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거 난처하겠군.”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단순히 광기에 미쳐서 살육을 하는 것은 아닌듯 하다.”
척준경이 그렇게 말했다.
검으로 살아왔고, 검으로 나라를 지켜본 경지에 이른 그는 칼날이 베어진 부위를 보면 그 칼에 어떤 마음을 담아냈는지 알 정도였다.
그때 집무실을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망자가 준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명계 근처에서 인상착의가 비슷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명계라면 하데스가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저희 수백의 병력이 모조리 그 자리에서 전멸했습니다.”
그 말에 헤라클레스가 놀랐지만 더 경악한 것은 척준경이었다.
“수백이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소멸 되었는가.”
“송구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아아..”
준경은 이 일이 단순한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천신전쟁 후 시간이 역행한 시점에서 레이논은 이시운의 권속 군단이지만 망자의 [불로장생]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죽고도 살지 못햇다.
허나 이시운이 죽지 않은 이상 부활하는 [불로장생] 의 능력을 가진 군단들이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고 한다.
“원래 망자들은 죽어도 살아나잖아? 어떻게 소멸했다는 거지?”
헤라클레스도 이상함을 느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당신이라면 지금 명계로 가서 그를 상대할 수 있지?”
“모르겠다. 일단 빨리 그쪽으로 출발한다.”
말을 끝낸 척준경이 명계로 향하려고 도복과 도검을 챙기려던 그때 그의 눈이 번뜩 뜨였다.
“아……. 이런. 주군이 위험하다!”
척준경이 떨리는 육성으로 소리쳤다.
*
사내는 이제 명계 깊숙한 곳까지 도달했다.
두 마리의 광마들은 사내가 태운 마차를 끌고 명계의 최중심부에 도착했다.
주위로 푸른 구력의 영들이 휘날리면서 하데스의 인영이 드러났다.
“누구냐!”
“나다. 하데스.”
마차에서 내린 사내를 보자 하데스는 경계를 풀었다.
“아. 헤라클레스 자네였나.”
지옥의 신이라면서 생각보다 단순한 놈이군.
사내는 안면왜곡으로 위장한 헤라클레스의 얼굴로 비릿하게 웃는다.
“차원의 문을 개방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아버지께서 허락하셨다.”
“그게 정말인가?”
하데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주군에게 그런 모독을 당하고도 차원의 문을 개방하라는 허락을 했다니?
“자네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
하데스는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래도 절차대로 확인은 해봐야 할 노릇이다.
“내가 확인을 해보고 문을 개방하겠다.”
십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차원을 뒤틀고 문을 해방할 힘은 갖춰진 상태였다.
“그럴 필요 없다. 하데스여. 이걸 봐라.”
자주색 원단으로 뒤덮인 상자를 사내가 내밀었다.
그 상자를 받아 조심스레 열어본 하데스의 눈이 확 커졌다.
“이건 제우스의 손가락.....”
“아버지가 이걸 네게 보여주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확인을 해 볼 필요는 없겠군. 이건 제우스의 뜻임이 분명하니까.”
“어서 열어라.”
“근데 자네 예전보다 몸이 많이 왜소해졌군?”
“근육이 너무 커서 둔한감이 없지 않아 있더라고. 그래서 속도를 살리기 위해 최적화된 몸을 만들었다.”
“그렇군….”
하데스는 잠시 기다리란 눈빛을 보냈다.
옳지. 얼른 열어라. 지옥의 왕이여.
하데스의 몸에서 지옥의 기운이 담긴 오러가 피어난다. 그리고 하데스의 눈과 귀 코에서 푸른 연기가 솟아오른다.
콰아아앙-!
하데스가 단전에 모든 힘을 끌어올려서 앞으로 손아귀를 뻗자 명계가 뒤흔들리면서 공간이 생겨났다.
“…다 되었다.”
하데스는 차원의 문을 여는데 힘을 많이 쏟았는지 호흡을 헐떡이며 한 번 휘청였다.
“수고했다. 멍청한 지옥의 왕이여.”
하데스는 순간 헤라클레스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으나 귀신이 절규하는 검명이 들린 후.
하데스의 머리는 폭발했다. 피분수가 비산한다.
몸뚱이만 남은 거대한 하데스의 육체는 아직 한이 남았는지 꿈틀거리며 죽음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듯 쓰러지지 않고 올곧이 서 있었다.
사내는 양손에 쥔 두 검으로 하데스의 육신을 난자하고 공간으로 이동했다.
주르르-.
토막난 살점과 난자된 내장이 피와 범벅이 되어 땅에 조용히 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전자 하데스의 죽음으로 인해 차원의 문은 닫혀버렸다.
*
현계의 도시 한복판.
이곳으로 이동한 사내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은 똑같고. 건물들이 신기하게 생겼군.
이계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복장 차림으로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찾는다..’
이시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을 찾는다.
그것만이 뇌에 박혀 움직이고 있을 뿐.
“어머!”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내의 몸에 여성이 부딪혀 넘어졌다.
“뭐야?”
여성은 어디에 부딪혔는지도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몸을 일으킨다.
사내는 지나가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봐. 물을 것이 있다.”
“......?”
남성은 눈을 둥그렇게 휘말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봐. 물을 것이 있다고.”
“어디서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남성은 사내의 말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겠다는 듯 했다.
설마?
이거. 이거. 이 인간들 눈에는 내가 안 보이는 건가?
사내는 한 가지를 시험해보려 검을 조용히 뽑았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던 남자의 등을 베었다.
남자의 찢겨진 옷에서 피분수가 터졌고 남자는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남자의 사체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이내 비명을 내질렀다.
“으허.. 으아아악!”
“사, 사람이 다쳤어요! 119. 119 불러요!”
등에 정확히 사선으로 베여 죽은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이는 건 되네?’
어쩌면 일이 더 수월해질 듯 하다.
문제는.
이시운이라는 인간을 찾는 건데.
‘찾는다.’
주르륵. 피가 흘러내리는 칼을 조용히 쥔채 눈을 감고 기감에 집중했다.
도중에 달려오던 시민이 사내의 몸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방해의 댓가로 가차없이 목을 베어버렸다.
덩겅!
날아간 머리가 차들이 오가는 도로까지 날아가 떨어지자 달려오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뒤로 달려오던 차는 그 차를 박으며 연쇄충돌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서울의 한복판.
공포감에 내질린 시민들은 영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현계의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죽는다. 그들의 살을 썰때 느껴졌던 손맛이 썩 괜찮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이렌을 요란히 울리며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시민들에게 물어보며 사체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이 분이 쓰러지시더니... 그리고 저기 앞에 오시던 분도..”
인간들은 혼란에 빠진 듯 했다.
‘여긴 너무 시끄럽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야겠군.’
*
“라이터 하나도 주세요.”
“네. 봉투는 필요하세요?”
“다 담아주세요.”
편의점에서 알바생이 손님의 카드를 건네 받아 계산을 하고 봉투에 물건을 담고 있었다.
그때 고개를 숙이고 봉투에 물건을 하나하나 담아내던 알바생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알바생의 눈에는 손님의 잘려나간 목 근육단면이 들어왔다.
“……어?”
머리를 잃어버린 손님의 육체가 계산대에 엎어진다.
그때서야 알바생은 경악을 하며 눈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뒤이어 물건을 고르던 손님 하나도 비명조차 내지 않고 풀썩 쓰러진다.
알바생은 귀를 막고 눈조차 가린 채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었다.
“인간아.”
그때 들려온 섬뜩한 목소리.
분명 이 목소리의 주인이 사람들을 그렇게 죽인 것이겠지.
알바생은 눈을 뜰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 년아. 대답해라.”
“.....네, 네?”
“너 이시운이라는 남자를 알고 있나?”
“모...몰라요.”
“여기선 생각보다 유명하지는 않나보군.”
“살려주세요 절대 신고하지 않을게요.”
여성은 눈조차 뜨지 않고 빌듯이 말했다. 그녀의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하의가 축축 젖어 있었다.
사내의 칼이 여성의 머리를 콕 찌르자 마치 풍선에 칼을 톡 찌르듯이 터져버렸다.
사방에 터져나간 뇌수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무감정하게 바라보던 남자는 잠시 생각했다.
내 기감으로도 느껴지질 않는다.
놈은 나의 아버지를 그런 꼴로 만들고도 멀쩡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감조차 숨기는 능력이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그럼네가 내 앞에 직접 걸어오도록 만들어줘야지.”
조용히 읊조리던 사내의 눈에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줌마가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보였다.
칼을 질질 끌며 그 아줌마에게 걸어갔다.
“여, 여기!!!”
푸욱.
아줌마는 주변에다가 대고 소리지르다가 입으로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몇 명을 죽여야 그 놈이 내게 관심을 가질까나.”
사내의 눈으로 사람들이 경악에 물든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는 광경이 꽤나 아름답게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