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2화
후일담- 메세지
척준경의 코로 혈향이 가득 느껴진다.
한발 늦게 도착한 준경과 일행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하데스의 사체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결국 타겟은 형님이었나….”
헤라클레스는 허탈해하며 척준경의 눈치를 보았다.
“이제 어쩌지?”
“…….”
준경은 품 안에서 가만히 데몬소드를 꺼내들었다.
끼이이이익-!
데몬소드는 죽은 생물체를 포식하며 진화하는 악마의 검.
데몬소드가 하데스의 토막난 시체를 보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다.
‘주군이 내게 이걸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있었는데….’
선한 자들을 지켜내고 자신이 돌아올 동안 망자의 군단들을 부탁한다는 말.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주군의 안위는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낙심했다.
“하데스까지 죽였다니. 그러면 이제 그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란 말이야?”
메두사가 슬퍼했다.
헤라클레스는 천을 꺼내들어 하데스의 시체를 덮어주고 고개를 떨구었다.
데스나이트는 과거 자신의 군주였던 하데스가 쓸쓸히 죽어있는 모습에 여러 감정을 느끼는 듯 말을 잇지 않았다.
“주군….”
그를 부르는 척준경의 육성은 무거웠다.
아레스라는 군신이 주군이 사는 세상으로 넘어갔다.
하데스와 마왕을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라면 주군의 안위는 분명 위험하다.
“게다가 주군은 주군이 사시는 세상에서 완벽한 힘을 사용하지 못하신다.”
“사자머리! 빨리 방법을 생각해봐. 하데스 말고 또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신은 없는거야?”
메두사가 간절하게 물었다. 헤라클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냐고! 항상 말만 많던 자식이 이럴 때는 왜 닥치고 있는건데?”
“알잖아. 내가 왜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씨이발!”
준경은 들고 있던 데몬소드를 바라봤다. 세상을 구해낸 주군과 함께하던 요물같은 검.
그 검의 검신이 순간 기괴하게 뒤틀리며 하데스의 사체를 향해 울부짖었다.
먹고 싶단 뜻이었다.
손으로 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단장. 다시 말해봐.”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다.”
준경은 하데스의 사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거대한 사체를 뒤덮은 천을 내리걷자 데몬소드가 더욱 괴음을 흘려냈다.
그 광경을 셋은 가만히 지켜봤다.
쏴아아악-!
데몬소드의 칼날이 뱀처럼 휘어지며 하데스의 사체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준경은 데몬소드가 하데스의 뜯겨진 살점들을 포식하는 것을 지켜봤다.
점점 데몬소드의 외형이 변해갔다.
“단장. 설마… 그 검으로 하데스를 흡수해서 하데스의 능력을….”
“그렇다.”
끼에에에에에-!
포식을 끝낸 데몬소드는 기쁘다는 듯 괴성을 내질렀다.
하데스를 포식한 데몬소드의 검신은 더욱 길어진 채였고, 마물의 가죽으로 뒤덮여있던 칼자루에 하데스의 푸른 오러색이 덧칠돼 파랗게 변해있다.
검에서 감당할 수 없는 혈향이 강하게 뿜어졌다.
데몬소드가 지금까지 포식한 마물들의 피를 한 번에 배출하듯이.
칼자루로 쥐어진 그립감이 방금과 달랐다.
이 검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음산한 기운이 뇌를 뒤흔들 정도였다.
“당신만 믿을게.”
메두사는 척준경을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칼자루를 붙들어 잡고 있는 준경의 손이 떨렸다.
데몬소드는 마치 준경을 잡아먹을 듯이 방금과는 다른 기운과 소리를 내뿜었다.
준경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그 기운을 받아내며 검신을 쳐다봤다.
마치 기싸움을 하듯이.
*
한국대 신경외과 병동.
“다들 고생했어요.”
사복으로 갈아입은 시운은 이제 퇴근할 준비를 하며 인사를 해왔다.
“교수님! 지금 뉴스 보셨어요?”
“아니요. 또 뭔 일이라도 터졌대요?”
“뉴스 꼭... 보세요. 지금 서울 난리가 났어요.”
“바이러스라도 퍼졌답니까?”
“보시면 알아요.”
새파랗게 질린 채 떠는 간호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병동 밖으로 나와 차에 탔다.
‘무슨 일이길래 김수민 간호사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김수민은 평소에 말이 없는 성격이다. 딱딱한 사무적인 말 외에는 잘 하지 않는 성격인 그녀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차의 시동을 켜고 운전을 하면서 디엠비를 켰다.
-속보입니다! 서울 송파구에서 시민 두 명이 길에서 돌연사했다는 소식입니다. 근데 두 구의 사체에서 의아한 점은 흉기에 의해 살해된 점이 발견되었는데요. 시시티비를 확인한 결과…….
“뭐라고? 그게 말이 돼?”
운전을 하던 시운이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 박을 뻔 했다.
뉴스의 내용이 너무나 터무니가 없기 떄문이었다.
길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흉기에 찔려 죽었단다.
근데 시시티비에는 살해한 용의자의 모습은 찍히지 않고 죽은 시민의 모습만 찍혔다는 것.
급하게 차를 정차시키고 디엠비에 눈을 두었다.
모자이크 된 시시티비 영상이 디엠비 속에서 흘러나온다.
가만히 길을 가던 남성이 툭 쓰러진다. 근처에는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목이 아스팔트 도로로 날아간다.
분명 모자이크 된 장면이었지만 시운의 눈으로는 캐치할 수 있었다.
‘대체 뭐지?’
이럴 수가 있나.
시시티비가 조작된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저럴 수가 없잖아.
핸드폰으로 기사들을 찾아봤다.
시시티비는 조작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란다.
댓글창은 완전 난리가 나있었다.
그런데.
강동구의 편의점에서 세 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단다.
목이 잘려나간 20대 알바생.
그리고 과다출혈로 죽은 40대 아줌마.
검상을 남긴 채 죽은 두 손님.
수사기관이 시시티비를 분석했는데 마치 귀신이 사람을 죽인 듯 용의자의 모습은 시시티비에 나와있지 않았다는 소리다.
‘뭐야?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데.’
용의자가 시시티비라도 조작했나?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요즘 세상은 길에 세워진 차마다 블랙박스가 설치된 세상이다.
주변 차들의 블랙박스를 수색해본 결과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투명인간이 죽였나?
-이거 북한이 뒤집어쓰면 투명해지는 옷 같은 거 씌워서 사람들 죽인 거 아닐까?
-위에 미친놈아 그게 말이 됨?
-와.. 소름 돋는다...ㄹㅇ
시운은 급하게 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오고 있는 중이야?
“세정아. 당분간 밖에 절대 나가지 마.”
-왜?
“뉴스 봤지? 일단 문 걸어 잠구고 절대 나가지 마. 애 학교도 보내지 말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급하게 집으로 액셀을 거칠게 밟았다.
*
베란다로 아파트 밖 광경을 내다보면서 시운은 사색에 잠겨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수사기관은 이 사건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말 귀신이 나타나 죽이기라도 한 것이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이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와 내용들만 가득했다.
‘설마... 십 년 전에 차원의 문이 열릴 때 무언가가 들어온 것인가?’
메두사 일행이 자신을 만나러 오겠다고 문을 개방했을 그 찰나에 이계에서 미지의 생물이 그 문으로 넘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현계의 세상에는 저런 존재란 있을 수도 없고.
인간의 외형을 은신시킬 정도로 과학이 발달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게 넘어왔다면 내가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크진 않다.
만약 그 생물이 그때 넘어왔다면 왜 십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살인을 한단 말일까?
거실로 나오자 세정이 쇼파에 다소곳이 앉은 채 티비에 시선을 두고 있다.
“엄마! 뉴스 봐?”
“어, 어. 시형아. 잠시 방안에 들어가 있어.”
“왜?”
“일단 들어가 있어. 엄마 말 듣자.”
세정은 아들 시형이를 방안에 들여보낸 뒤 계속해서 티비를 보았다.
티비에는 이번 사건을 두고 탐사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세정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저런 연쇄살인마가 서울 한복판을 지금도 누리고 있다면 아들 시형이부터 걱정이 되는 그녀였다.
“서울 시민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어….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시운은 걱정하는 세정을 안아주려던 그때.
티비 속 화면 맨 밑으로 자막이 떠올랐다.
-속보! 인천에서 30대 자영업자가 양 팔이 잘린 채 사망.
“뭐야?”
그리고.
방영되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지되고 긴급 뉴스속보를 전달하는 아나운서가 말을 전하는 모습으로 영상이 전환됐다.
“긴급 속보입니다. 강동구와 송파구의 살인사건과 동일한 형태의 사망자가 속출하였다고 합니다. 인천의 자영업자 김 모 씨.”
아나운서는 말을 하려던 도중 뭔가를 전달받고 눈이 커졌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아나운서의 눈동자는 한 없이 흔들렸다.
“소, 속보를 연달아 전해드립니다. 인천 부평구에서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어? 아. 방금 들어온 소식으로 또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로서 오늘만 인천의 사망자 수는…….”
세정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놀랐다.
아니. 그럼 지금 인천에서 그 놈이 실시간으로 살인을 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뒤이어 속보가 또 전해졌다.
“아... 놀랍게도 또 들려온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차를 주차하고 있던 박 모씨가….”
뭐야? 한 놈이 아닌가?
“어, 어떡해…. 여보. 나 무서워.”
세정이 시운에게 안겼다.
그녀의 머리칼을 찬찬히 쓰다듬어준다.
“당분간 그 어디도 나가지마. 나 지금 어디 좀 다녀올게.”
“뭐? 나가지 말라면서 당신은 왜 나가는데? 지금 어딜 가려구!”
“아. 지금 꼭 들려야 할 곳이 있어.”
“나가지마! 지금 뉴스에서 속보 계속 뜨는 거 안 보여?”
“알았어.”
세정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절대로 허락해줄 리 없다.
그리고 지금 나간다고 해서 그 놈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운은 눈과 어깨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시스템의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니까.
그때 들려온 또 하나의 속보에 시운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소, 속보를 또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인천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채 발견됐다고 합니다.
시운은 분명하게 느꼈다.
저건 분명 놈이 남기는 메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