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3화
후일담- 마물
대한민국은 지금 연쇄살인마에 의해 떨고 있었다.
현재 발견된 시신은 134구.
134명이라는 사망자가 발발했음에도 용의자의 인상착의조차 추론하지 못하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연쇄적인 살인.
이 사태에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정부는 최대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살인마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사람들은 날카로운 흉기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신의 중지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갔다고 한다.
수사기관 전문가들은 이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군견과 군인들을 대거 투입시켰으나 성과는 없었다.
-눈 앞에서 사람의 목이 날아갔어요……… 근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현장에 있던 한 군인의 인터뷰다.
적외선으로도 감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부는 임시적으로 각종 공공기관 및 음식점 등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들을 전면 폐쇄했다.
항간에는 이것이 외계인의 소행이라는 설까지 나돌 정도였다.
달이 허공에 차오르는 자정의 시간에 투입된 군인 외에는 길거리에는 오가는 차는커녕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지금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얼른 귀가하세요!”
군인이 거리를 배회하던 시운을 보며 소리쳤으나 군인의 시야에서 시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뛰고 또 뛰었다.
마흔네 살의 나이에도 지침이 없다.
이세계 시스템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신체능력과 눈이 남아있다.
군인들의 눈을 따돌려가며 움직이는 것은 시운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해간다.
놈은 시체들의 손가락을 자르며 시운에게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다.
녀석은 인천 경기도 그리고 서울을 돌아가며 살인을 했고.
살인한 위치의 거리는 점점 좁아져 갔다. 놈의 살인방식은 패턴이 아니었다.
메세지로 인한 유인.
녀석은 사람을 죽이는 곳으로 메세지를 보내며 점점 반경을 줄여갔고.
놈는 이제 다음 살인이 일어날 장소를 알리고 있다. 그곳으로 뛰어가고 있다.
‘그 위치는 한강이다.’
분명 놈은 분석한 대로 이제 한강에 나타날 것이다.
품안에 테이핑을 한 사시미를 넣은 채로 뛰었다.
-속보가 도착했습니다! 마포대교를 건너가고 있는 한 차량이 갑자기 전복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시운의 귀에 착용한 이어링으로 속보가 들려온다.
마포대교구나.
시운은 운동화의 밑창이 닳을만큼 뛰고 또 뛰었다.
“뭐, 뭐야? 저거?”
“저 사람 추적해!”
경찰들이 시운을 발견하고 무전을 때리며 소리친다.
그들에게 용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감안했다.
이대로 사람들이 죽게 놔둘 수는 없다.
‘어쩌면 내 이어진 인생은 이걸 위해서 였는지도 모르지.’
세상을 구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타탓!
경찰들을 따돌리고 마포대교 밑 둔치에 도착한 시운은 고요히 물결치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품안에서 사시미를 꺼내들고 꽉 쥐었다.
어둑한 밤하늘 밑으로 한강 일대의 광경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다.
번뜩!
시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시신경이 최고조로 발달된 시운의 눈으로 주변 일대의 모든 것들이 세세하게 뇌리에 박힌다.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내 눈에는 네가 보일테지.
어딨느냐.
고개를 돌리며 관찰하던 시운의 고개가 마포대교에 박힌채 고정됐다.
찾았다.
그 순간 검 두 자루를 쥔 채 난간 위를 밟고 서서 시운을 바라보고 있는 검수의 인영이 보였다.
마치 그 모습은 원혼귀 같았다.
“너냐.”
터벅. 터벅.
시운이 둔치 밑을 걸어가며 난간으로 향했다.
시운이 다가오자 놈도 본능적으로 시운을 알아본 듯 기괴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시운은 오른팔에 사시미를 쥐고 최대 속력으로 돌진했다.
놈도 난간에서 뛰어내려 시운에게 마주 달려왔다.
*
“하데스의 힘을 보이거라.”
기에엑-!
“보이거라.”
기에에에-!
“보이라고 했다.”
기긱! 기기긱!
준경은 며칠째 데몬소드를 쥐고 움직이지도 않고 그 말만을 되뇌였다.
데몬소드는 준경의 말을 거부하듯 아니. 약을 올리듯이 이상한 흉음을 낸다.
“주군을 뵈러 가야한다!”
기에엑-.
“힘을 다오.”
기에에에-.
“힘을 내보이지 않는다면 당장 부숴버리겠다.”
기긱. 기기기긱.
준경의 말에 비웃듯이 데몬소드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검명으로 나타냈다.
‘방법이 없는 것인가.’
아니다.
이 데몬소드는 생물의 영혼을 흡수하고 강해진다. 분명 강해지면서 그 영혼의 힘까지 소유하게 된다.
주군께서 그 힘을 다루는 것을 분명 보았으니까.
뒤에서 졸고 있던 아콘이 흠짓 하며 깬다.
“이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준경은 대답하지 않고 집중을 유지한 채 데몬소드를 노려봤다.
“하아. 언제까지 그 검이랑 기싸움이나 하고 있을 거냐고. 차라리 지금 우리가 제우스를 족치러 가는 것이 빠를텐데.”
아콘의 그 말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제우스에게는 차원의 문을 해방하는 힘이 없을 것이다.
그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 권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죽인다고 하더라도.
“너도 보고 싶지 않느냐?”
데몬소드를 내려보며 준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반응이 없었다.
“보고 싶지 않느냐 이 말이다. 네 검의 주인을.”
준경의 말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조롱하듯 했던 데몬소드가 처음으로 반응이 없었다.
준경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날 거부하고 있는 것이군.’
이 검의 주인은 주군 이시운.
그의 명만을 따르는 것 같았다.
“주군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그 말에도 데몬소드는 반응이 없었다.
분명 뭔가 반응을 보여야 하거늘.
검에 통달한 경지에 오른 준경은 검이 느끼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주군 이시운의 품으로 너를 보내주겠다.”
잠시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아콘도 뭔가 검이 반응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숨 죽이며 지켜봤다.
그때 데몬소드가 처음으로 오러를 뿜어냈다.
칼자루를 통해 팔목에서 팔로 느껴지는 이 기운은 분명 명계의 주인 하데스의 힘이다.
“아콘. 준비하게.”
준경은 곧 차원의 문이 열릴 것을 예측했다.
아콘은 준경의 바로 뒤로 다가와 데몬소드를 바라봤다.
그 순간.
공간이 심하게 요동치면서 데몬소드가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빨려가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콘이 잠시 눈을 감았을 때.
“뭐, 뭐야?”
척준경은 사라지고 없었다.
*
천계의 올림푸스 신전에서는 헤라가 그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레스가 반드시 해내고 올 거예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신들이 인간에게 기를 피고 살 수 있는 순간이 올 거고.”
그러나 제우스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여보! 어깨 좀 펴요.”
“그 인간은 쉽게 당할 인간이 아니야.”
제우스는 힘 없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다섯 개여야 하는 손가락이 네 개 뿐인 손을 바라보며 그날을 떠올렸다.
그 인간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아레스가 왜 군신이라고 불리우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그러나 헤라는 확신에 찬 듯 하다.
아레스는 제우스의 무궁한 힘과 헤라의 두뇌와 근성이란 최고의 유전자 조합으로 탄생한 신.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아테네조차 단숨에 살육한 그 힘은 신들 중 역대급임이 분명했다.
“아레스는 당신의 복수를 위해 십 년이라는 세월동안 칼을 갈았어요.”
그 십 년.
그 긴 세월동안 아레스는 강하다고 소문난 종족들은 모두 찾아가 살육했다.
“아레스는 내 아들이지만 위험해. 그것은 어쩌면 날 위한 복수가 아닐지도 몰라.”
“그게 무슨 괴상한 말이에요!”
제우스는 신전에서 아득히 먼 지상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때를 떠올렸다.
아레스가 태어나던 날.
그는 울음보조차 터뜨리지 않고 제우스를 똑바로 노려봤다.
그 눈빛을 보고 느꼈던 그 감정은 제우스조차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레스는 소년이 되었다.
말수도 없고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화도 내지 않는 것이 녀석의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 어린 소년 아레스가 키메라라는 괴물을 칼로 찔러 죽일 때 처음으로 웃었다.
그때 그 웃음은 아직도 제우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제우스!”
그때 뒤에서 포세이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숨겨왔던 말을 하러 왔네.”
포세이돈은 헤라를 흘깃 쳐다봤다.
“왜요?”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오.”
“싫은데요?”
그때 포세이돈의 눈에 살기가 비췄다.
헤라는 움찔하며 헛기침을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지금껏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뭔가?”
포세이돈은 심호흡을 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제우스는 뒤를 돌아봤다.
“자네가 하기 힘든 말이라면 중요한 말인가 보군.”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눈을 피하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레스에 관한 이야기일세.”
“얘기해봐.”
“아레스는 사실 자네의 아이가 아니야.”
그 말에 제우스에게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제 이야기해서 미안하네. 그동안 그 사실을 숨겨올 수 밖에 없었네.”
포세이돈은 마해의 광대한 바다 위에 놓여있던 나룻배를 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족의 바다라 불리우는 마해는 신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그 나룻배에서 헤라가 그 존재를 껴안고 거친 숨결을 내뱉었었던 그 기억을 제우스에게 말해주었다.
제우스의 차갑게 식은 눈을 마주치기가 힘든 포세이돈은 눈을 깔고 이야기를 마쳤다.
“그 아비가 누구냐.”
“아레스는 악마의 씨로 만들어진 존재네.”
그 말은 너무나 소름돋는 이야기였다.
악마와 신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는 인간도 신도 아니었다.
“마물. 아레스는 마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