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65화 (265/278)

제 265화

후일담- 작별

신체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고, 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대하게 변한 시운의 신체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카인과 최후의 혈투를 벌일 때의 그 모습이었다.

‘오랜만이군...’

시운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아귀를 내려다봤다. 육체는 천명의 신들 공격에도 버틸 수 있다는 군왕의 갑주가 덮여있다.

두려움도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초 바람의 군왕 그 신형으로 변모한 지금 이 순간말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조차 없는 속도로 아레스의 검격이 시운의 몸을 미친듯이 베어냈다.

악신화(惡神化) 한 아레스의 검은 세상 그 어떤 만물도 단번에 베어낼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 검이 시운의 갑주에 광폭적으로 쏟아지고 또 쏟아졌다.

아레스는 검으로 베어내도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 시운의 육체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검질을 이어갔다.

콰아앙!

그리고 그때 시운의 주먹이 아레스의 몸통을 두드렸다.

쾅쾅쾅쾅쾅!

악귀의 형상을 한 아레스의 몸이 우그러진다. 시운의 손이 아레스의 목을 움켜쥔다.

허공에 들린 아레스는 두 검으로 시운의 팔뚝을 내리긋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시운은 아레스의 목을 잡고 팔을 휘둘러 그를 설원에 처박았다.

그리고 설원에 고꾸라진 아레스를 육중한 발로 밟고 짓이겼다.

콰지지직!

그 여파로 설원의 눈이 허공에 튀어오른다. 아레스는 광폭적으로 휘두르는 검을 멈추고 역수로 쥔 검을 땅에 꽂고 그 힘으로 일어나 회전하며 시운의 옆구리에 수십 합의 검격을 집어넣는다.

시운의 마갑을 긁어내는 그의 검날에서 흑뇌(黑雪)가 터져나와 이시운의 육체를 두들겼다.

악마의 힘과 제우스의 힘이 곁들여진 흑뇌의 공력에 시운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쿠아앙!

그럼에도 시운의 정권이 아레스의 배를 내리쳐 아레스는 튕겨져 다시 설원에 처박혔다.

그럼에도 아레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쾅! 쾅! 쾅! 쾅!

시운의 한방 한방이 정확하게 아레스의 육체를 두드렸고.

그보다 몇십 배로 빠른 아레스의 검격 또한 시운의 마갑을 연이어 그어냈다.

그때 천명의 신들을 막아냈던 군왕의 갑주 곳곳에 붉은 선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던 시운에게 처음으로 고통이 느껴졌다.

촤아악!

순간적으로 아레스는 검은 날개를 휘저으며 시운과 거리를 벌리고 시운을 두고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지켜보던 준경은 태어나서 가장 강력한 섬뜩함을 느꼈다.

저것이 군주 이시운의 완전한 모습인가.

그의 전투방식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괴력적이었다.

‘주군은 원래 신이셨던가...’

빠르게 시운의 주위를 돌고 있는 아레스의 육신에서 털이 솟아나왔고 그의 등뼈에서 괴랄한 꼬리가 튀어나왔다.

콰콰콰콰콰콰!

그리고 무신 준경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아레스의 검격이 시운의 몸에 거침없이 쏟아진다.

‘나의 눈으로도 볼 수도 없다. 그저 소리만 들릴 뿐….’

준경은 적이지만 아레스를 보며 경의로움을 느꼈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운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분명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동자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주군.. 부디 이겨내시옵소서.’

수천, 수만. 아니 수십 만의 검격을 받고 균열을 일으키던 시운의 갑주가 터져 사방에 파편으로 흩날렸다.

군왕의 갑주가 벗겨진 시운의 육신은 선의의 기운이 담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카아앙!

두 눈에서 피를 흘리던 아레스의 검이 시운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그어냈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 검상이 생겨나며 살틈이 벌어졌고 흑뇌가 그 살틈을 비집고 시운의 내장 속까지 뒤틀었다.

‘아주 단단한 갑옷이었으나 내 검은 뭐든지 베고, 쳐부술 수 있다.’

승기를 잡은 아레스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냈다.

이시운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리는 것을 본 아레스는 쌍검을 든 두 팔을 완전히 뒤로 젖혔다.

‘아테네를 단숨에 찢어버렸던 이 일격에 넌 끝이다. 나와 호각을 벌였던 네 놈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레스의 두 검이 시운에게로 쇄도했다.

시운은 가슴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피가 설원 일대의 눈을 뒤적시고 있다.

인간이었으면 벌써 죽었을 정도로 과한 출혈.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고 정신이 점점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거신화를 유지하는 시간도 이제 끝나간다.’

아레스의 양 검이 자신의 목덜미와 가슴으로 날아오는 장면이 느릿하게 보인다.

시운은 팔을 들기도 힘들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양팔에 감각을 집중했다.

바람의 군왕.

그리고 검신 레딘.

그들은 죽음에 가까워진 역경의 순간 어떤 마음으로 무장하고 싸웠을까.

그들의 두 어깨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순간 세상을 지켜냈던 바람의 군왕이 눈빛이 시운의 눈동자에서 비춰졌다.

그리고.

아레스의 신형의 형태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들어왔다.

아레스의 두 검에서 붉은 선으로 줄기가 휘어져 엉켜있는 것이 보였다.

저 붉은 선이 그의 이어질 공격들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격이 쏟아졌다.

군왕의 눈을 개안한 시운은 육중한 몸으로도 그 검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파파파파파!

표적을 잃은 검격은 설원의 땅을 두드렸다.

처음으로 당황한 아레스의 표정이 보였다.

시운은 오른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러나 아레스는 그 빈틈이 분명 보였다.

‘너의 정권보다 빠른 것은 내 검이다.’

고요하던 일대에서 바람이 일더니 그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는 폭풍이 되었다.

그 폭풍들이 시운의 오른 주먹에 모여들고 있었다.

“주군!!!”

준경은 폭풍에 몸을 마구 휘청이며 아레스의 검이 시운의 심장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경직된 자세로 갑주조차 잃은 시운의 빈 몸에 저 검이 떨어진다면 시운은 분명 죽을 터다.

‘주군이.. 위험하다!’

준경은 죽을 힘을 다하여 몸을 움직이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때.

시운의 등뒤에 찬란히 빛나던 여섯 개의 날개가 시운의 몸을 뒤덮어 아레스의 검을 막아냈다.

아레스의 양 검날에서 마치 공포감에 비명지르는 귀신같은 소리가 들렸을 때 아레스의 낯빛에 패색이 짙어졌다.

파파파파파!

그리고 설원의 폭풍을 흡수한 시운의 오른 주먹이 아레스의 복부를 두드렸다.

콰아아앙!

마치 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복부를 얻어맞은 아레스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섰고.

폭풍은 그의 등가죽을 찢고 관통해냈다.

허공에서 몸이 뒤꺽여 차디찬 설원 바닥으로 추락하는 아레스의 힘 없는 신음이 들렸다.

*

눈 속에 틀어박힌 아레스의 눈빛에는 힘이 없었다.

시운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를 내려다봤다.

아레스의 낯빛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 하다.

공포와 절망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패배감.

아레스는 주변으로 흐르는 자신의 내장줄기를 바라보며.

“너의 존재는 대체 뭐냐.”

신과 악마의 힘을 손에 넣고 십 년간 페관수련을 해왔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니.

이시운. 저건 분명 인간이 아닐 것이다.

“너는 대체 뭐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의 중년 아저씨.”

“…뭐?”

“너는 이제 죽지도 살지도 못한다.”

“그게 무슨 말이지? 빨리 죽여라.”

“너의 힘은 좋은 데다가 쓰겠다.”

그 말과 함께 아레스는 기묘한 느낌을 느꼈다.

그 느낌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더 큰 공포였다.

*

-마포대교 둔치 앞에서 알 수 없이 들려온 굉음!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그 속보를 내며 그게 연쇄살인마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단정을 짓고 있다.

수사기관들은 그곳을 전면 폐쇄하며 조사했다.

아직 연쇄살인마가 검거되지 않아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 며칠이란 시간동안 시운은 준경을 자신의 집에 재우고 맛있는 음식들을 직접 선사했다.

두 사람은 빈 공터의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주군께서는 또 한 번 세상을 지켜내셨습니다.”

“스승님.”

진지하게 자신을 부르는 시운의 육성에 준경은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도 다음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를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난 이제 이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시운은 준경에게 데몬소드를 슬며시 내밀었다.

“제가 스승님께 드린 검이잖아요. 간직해줘요.”

이것이 마지막 작별임을 준경도 이미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차원을 개방할 수 있었던 하데스는 죽고 말았고, 주군은 군신 아레스와의 혈투로 모든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다시는…… 뵙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준경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이가 좀 드니까 알 것 같더군요. 세상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임을.”

그 말에 준경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의 눈으로 보이는 이시운은 세상을 깨닫고 해탈한 듯한 낯빛이다.

“주군과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제 가슴속에 언제나 묻고 살겠습니다.”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마요.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는 그냥 하늘을 바라봐요. 그리고 생각하세요. 이 같은 하늘 아래 그 사람과 숨을 쉬고 같은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고.”

주군의 말에서 깊은 뜻을 느낀 준경은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그리운 마음이 좀 풀리지 않겠어요?”

그 태연한 물음에 준경은 오열했다.

고려를 풍미했던 그가 나라를 지켜내고 부모님을 잃었을 때 오열했던 그때보다 더욱 크게 울었다.

시운은 가만히 그를 안아주었다.

빈 공터에 준경의 오열 소리만이 퍼져나왔다.

세월을 초월한, 다른 역사 속 두 인물은 그렇게 서로와 공감하고 교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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