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66화 (266/278)

제 266화

후일담- 총장

척준경은 이계로 홀로 돌아왔다.

“주군은 안 오셨는가?”

“형님은?”

“정말 혼자 온 거야?”

그들은 척준경의 입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길 바랐다.

준경은 굳은 얼굴로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십 년의 기다림에도 주군을 재회하지 못한 이들은 허탈함을 느꼈다.

준경의 허리춤에 찬 데몬소드를 본 아콘은 침울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자네가 그 검을 들고 온 것을 보니 정말 혼자 온 것이군.”

준경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었다.

“주군이 자네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네.”

편지였다.

이시운은 그들 한명 한명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준경에게 전달하라고 한 것이었다.

그들은 봉투에 담긴 편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데스나이트의 눈빛은 깊어졌고.

아콘은 우울하게 얼굴을 구겼다.

헤라클레스는 입을 틀어막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으며.

메두사는 눈물이 고인 멍한 눈으로 편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 양반 진짜………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메두사는 결국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주군 이시운이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정이 많고 사람냄새가 가득한 그가 쓴 편지다웠다.

“…….”

그때 베른이 귀신처럼 음산하게 다가와 척준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 자네 것도 있네.”

그러자 베른의 얼굴이 밝아지며 그는 편지를 조용히 읽어갔다.

그의 낯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비췄다.

“다들 슬퍼하지 마라.”

척준경은 우울감에 빠진 그들을 바라보며.

“주군께서 남기신 말씀이 있다.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는 하늘을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 동시에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하셨어.”

그 말은 꽤나 감성적인 말이었다.

“니미. 그런 말이 어딨어!”

메두사는 콧물까지 흘리며 아름다운 얼굴이 눈물에 만연한 채로 신경질을 낸다.

그들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준경은 그들의 슬픔이 가실 때까지 기다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내게 바람의 군왕의 권한을 위임하셨다.”

그 뜻은 이제 척준경이 4대 바람의 군왕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약자를 지키고, 악에게서 세상을 지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와 함께 준경은 입술로 조용히 무언가를 되뇌이자.

그의 뒤편에서 검은 물체가 솟아나더니 외형을 이루었다.

“주군을 뵈옵니다.”

등에 두 검을 맨 붉은 머리의 남성은 근엄한 얼굴로 준경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아레스다. 그렇게 부를테니….”

“잠깐. 저 새끼가 아레스라고? 너 일로 와봐.”

아콘이 급발진하며 아레스의 멱살을 잡자 준경이 말렸다.

“그 아레스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주군의 힘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친구다. 같은 동료 개념이니까 너무 그렇게 열 올리지 말게.”

“씨발. 저 새끼 생긴 게 뭔가 맘에 안 들어.”

아콘이 씩씩거림에도 아레스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아콘을 바라봤다.

“이제 나는 주군의 뜻을 받들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이어나가겠네. 자네들도 날 따라주겠는가?”

*

발카스의 무신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그 자체의 개념을 넘어설 정도로 이카루스 대륙에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검신의 그림자들.

신들을 막아낸 군단.

무적의 망자들.

지옥에서 재림한 뭐 어쩌구.

등등 이계의 사람들은 그들을 그런 형태로 불렀다.

45일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메두사는 그 45일이란 시간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울었다.

매일 그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울어서 눈꼬리가 밑으로 축 쳐질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언젠가 다시 주군을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카데미의 원생들을 교육시켰다.

원장 척준경은 특히나 아레스를 눈여겨봤다.

그의 쌍검술은 지금까지의 검법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획기적이고 강력한 검술이었다.

헤이든은 묵묵히 원생들과 검으로 대련해주는 아레스를 보며 준경에게 물었다.

“아레스 교관님은 다른 교관님들과 대련을 하실 때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셨어요. 그렇다면 교관님들 중에 가장 강한거죠?”

묻고 있는 헤이든의 순수한 눈빛이 준경에게는 꽤나 귀엽게 느껴졌다.

“교관들 중에 무기술만큼은 최고지.”

“그럼 원장님보다도 더 강한 분인가요?”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준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때 아레스는 갑자기 쌍검을 뽑더니 현란하게 검무를 뽐냈다.

아마 멀리서도 이들의 대화를 듣고 나름 뿌듯했던 모양이다.

캬아아아아-!

그때 아카데미 건물 옥상에서 거칠게 포효하는 보이쉬의 육성에 원생들이 깜짝 놀랐다.

“아, 깜짝이야!”

그들의 눈에는 고대종 중 최강의 종족인 보이쉬가 낯설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보이쉬는 옥상에 발톱을 걸치고 날개를 펄럭이며 어딘가를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 울부짖음은 구슬프게 들려왔다.

발카스는 물론이고, 이계에서 내로라 하는 집단이나, 용병단들도 이곳 무신 아카데미를 침범할 생각은 꿈도 못 꿨다.

이 아카데미 교관들의 전력 또한 넘사지만 무엇보다 보이쉬란 최강의 종족이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 용의 목소리가 뭔가 슬퍼보여요.”

헤이든이 날개를 원대하게 편 채로 턱을 들고 마치 하울링을 하듯이 포효하는 보이쉬를 보며 준경에게 말한다.

“주군을 부르는 것이야.”

“주군이요?”

헤이든은 문득 궁금해졌다.

아카데미에서 듣기만 했던 그 현계의 이시운이라는 남자가 대체 얼마나 강할지를.

교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말하기를 그는 현계와 이계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인간이라 했다.

“원장님. 그 주군이라는 분은 얼마나 강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통틀어 가장 강하실 거다.”

“그렇다면 원장님보다도 더 강해요?”

“누가 더 강한지가 그렇게 궁금한 모양이구나. 물론이지. 그러나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리신 분이었다.”

“으음….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그 분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계신다. 그래서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헤이든은 그 남자를 말할 때마다 준경의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제우스의 손가락을 자른 인간.

그리고 이런 막강한 교관님들을 말 한마디로 통솔하는 남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무신 아카데미에서 양성된 용병들은 다시 용병단에 들어가거나, 의용군이 되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소집되어 전장에 참여했다.

척준경이 이끄는 군대는 발카스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나서서 발카스를 구했다.

이제 그의 존재는 타국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계에 서식하는 수많은 종족들이 인간들을 지배하기 위해 타협하고 이카루스 대륙을 침범했을 때 척준경은 자신의 군단들을 이끌고 그들을 막아냈다.

이계 종족들이 모인 수천만의 수를 단 하루만에 타파했다고 전해진다.

척준경이 검을 뽑는 순간 태풍이 불어닥친다고 했고.

그가 이끄는 군단이 재림하는 순간 적들은 일순간에 죽고 성불조차 하지 못한 원귀가 된다는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발카스의 국왕은 척준경에게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수많은 토지를 선사했고.

준경은 영주가 되어 무신 아카데미의 규모를 크게 늘려갔다.

발카스의 대신들은 척준경을 조금은 아니꼽게 바라봤다.

나라의 국왕에게도 존칭을 쓰지 않는 그가 괘씸하게 느껴졌으나 발카스 국왕은 개의치 않았다.

척준경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단 한 분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나를 낮추지 않는다.”

국왕은 그의 충성심과 무력이 탐나 그를 자신의 수하로 두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척준경은 흔들리지 않았다.

권력. 재물. 수많은 미녀들까지 보장한다는 말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던 그였다.

그의 굽히지 않는 신념에 발카스의 국왕은 감탄을 너머 그를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는 천계로 돌아갔다고 한다.

천계의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가 되어 이계를 침범하자는 의견을 내뱉는 신이 나올 때마다 가차없이 두들겨 팼다. 그로 인해 신들은 이계의 사람들을 괴롭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천계의 신들 중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가지게 됐다는 헤라클레스는 그의 머리에 쓴 사자탈을 비유하여 사자왕 헤라클레스라는 이명을 갖게 되었단다.

“자네에게도 땅의 일부를 주도록 하지. 자네의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게.”

준경이 아콘에게 그렇게 말하고 아콘에게 소유한 토지의 일부를 건네주었다.

그곳에서 아콘은 타이탄들과 함께 성 하나를 짓고 성주가 되어 살게 되었다.

항상 약국(弱國)이라 취급받던 발카스가 척준경의 군단들로 인해 이카루스 대륙 최강의 강국(强國)이 되었다고 한다.

검은매와 카이칸은 야수족들의 왕이 되어 인간에게 재앙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예고해서 인간들이 대비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주군이 살고 계시는 세상으로 가는 방법을 찾으러 난 떠나겠네.”

그 말을 끝으로 데스나이트는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메두사는 고대 대도서관의 모든 책들을 일독하며 현계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그 덕택에 단순하던 그녀는 박학다식한 지성을 갖추게 됐다.

이계의 내로라 하는 강인한 남성들이 메두사의 묘령의 미모에 반해 끊임없이 구애했지만 거친 욕이 섞인 대답을 듣고 꽁무늬를 뺐다고 한다.

메두사는 준경에게 한마디 말을 하고 떠났다고 한다.

“흑마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하면 현계로 향하는 차원의 문을 소환할 수 있대. 그래서 난 흑마법 아카데미를 만들고 마법사들을 키워낼 거야.”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시운이라는 남자 하나만이 자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와 재회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간절하고 또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그녀는 그 말을 신념으로 삼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계와 현계는 저마다 품은 신념과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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