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67화 (267/278)

제 267화

후일담- 갑질하는 영주님

세상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

악이 세상을 지배하면 그 속에서도 선은 악을 멸하기 위해 등장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언제나 구애받지 않고 흘러간다.

그리고 발카스 아콘성의 전략상황실에서 척준경이 책자를 펼친 채 고심에 빠져있다.

‘공력이 문제다.’

죽은 자라 일컬어지는 망자들을 소환하고 유지하는데는 공력이 점점 소모된다.

준경은 검술만큼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검수의 몸으로서 그 공력은 한계가 있는 법.

“마인들의 수는 대략 얼마인가?”

“가늠하기 힘들다. 추정 수로는 수천만 단위에 가깝다는 것.”

아콘이 심각하게 말했다.

이계에 마인들이 등장했다.

마인들이란 악의 차크라를 지니고 가공된 종족들을 뜻한다.

마왕 레이논이 죽고 마계는 변했다. 주인을 잃은 마물들은 통제되지 못했고, 그들은 제한을 두지 않는 본능으로 인간과 무한한 번식을 나눴다.

그 여파로 마물의 육체와 인간의 두뇌가 뒤섞인 마인이란 종족들이 탄생해 이계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곳의 성주 아콘은 책사 아레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레스는 고요한 눈빛으로 일절 말이 없다.

그는 질문을 해야 답을 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아레스. 자네에게 방안이 있는가?”

준경의 물음에 아레스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방안은 있습니다.”

“이봐. 방법이 있다고? 마물의 수는 억에 치닫고 있고 우리 병력의 수는 백만이다.”

“알고 있습니다. 성주님.”

“거기다가 발카스의 지원 병력은 쓸모도 없다. 발카스의 정예 군대는…….”

아콘은 말하기도 껄끄럽다는 듯 말을 멈췄다.

발카스의 병력은 망자군단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약했다.

발카스 국군 천 명의 힘이 망자 하나의 힘과 비례한다고 표현해줘도 잘 쳐준 것이다.

“일단 전략은 들어보지.”

준경의 말에 아레스는 자신이 구현한 방안을 설명했다.

“음….”

척준경은 조용히 침음을 흘렸고, 아콘은 아레스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다.

“자살분신 부대라도 만들잔 말이냐! 저 미친 놈이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단장. 절대 저 전략은 사용하면 안 되네.”

“그러나 그 방법 말고는 방법이 없겠는데.”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우리 군대들을 모조리 불에 태워 죽일 생각인가? 배수진도 적당히 쳐야 배수진인 거지. 완전히 자살군단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아콘은 아레스가 처음부터 싫었다.

아레스는 재림하기 전 하데스와 레이논을 살육한 미치광이 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레스 때문에 다시는 주군을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언제든 그를 힐난할 준비가 되어있던 그였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 방법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아레스는 아콘의 신경질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준경은 그곳에 베른을 불러왔다.

“자네 불의 성질도 사용할 줄 아는가?”

그 물음에 베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치유계열뿐만 아니라 화속성 마법까지 다룰 줄 안다는 거군.”

그렇다면 전략은 실행이 가능할 터다.

준경이 아는 베른은 아주 매력적인 특질 [마나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마력을 소모하면 치유마법을 연계하여 다시 마력을 재생시키는 것.

“그렇다면 한 번 해보지!”

준경이 결단을 내렸다.

결단을 내리면서도 준경은 한편으로는 이시운 그가 그리웠다.

그였다면 이런 절망적인 상황조차 그만의 방식대로 타파했을 테니까.

*

갈리오 협곡 위에 올라선 망자들의 군단들이 늠름하게 전방을 내려다 본다.

전방에서는 흑개미떼처럼 마인들이 지독하게 몰려서 진격해오고 있다.

마물들의 수는 대지를 완전히 뒤덮을 정도였지만 망자 군단들은 그들을 보면서도 전혀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협곡 밑으로 말을 탄 타이탄들이 내려질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장!! 나의 타이탄들에게까지 그 짓거리를 한다면 결코 자네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협곡 위에서 마인들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척준경은 바람의 신호를 통해 지시를 내릴 준비를 했다.

한편 머리가 압박될 정도로 조이는 투구를 쓴 헤이든은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이건 미친 짓이 분명해...’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 곧 실행된다.

헤이든은 준경에게 다가가 당장이라도 이 전략을 수정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의 굳은 의지는 결코 꺽이지 않을 것임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헤이든이 바라본 마인들은 공포를 넘어서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준경의 군단들이 강하다 해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개체인 마인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도 억 단위에 가까운 마인들을 말이다.

“주군. 실행하실 때가 됐습니다.”

아레스는 마인들이 적정 위치까지 도달한 것을 보고 말했다.

준경은 잠시 눈을 감았다.

‘주군께서 선사하신 군왕의 힘으로 반드시 막아내겠다.’

마인들은 함성조차 지르지 않고 감정이 없는 병기들처럼 거리를 좁히며 진격해왔다.

“베른! 이제 시작하라!”

준경은 결국 바람의 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받은 베른은 순간 눈빛을 빛내며 오른손에 든 완드를 허공으로 올려들었다.

그의 왼손에 들린 방패와 완드가 서로 연계되며 주위의 온도가 급상승했다.

“아...아.. 이러다 타죽는 거 아니냐고...”

헤이든은 허공 위에서 빗발치는 화염구를 보며 절망에 떨었다.

그리고.

그 화염구들은 타이탄들과 인간용병들을 제외하고 망자들의 어깨에 떨어졌다.

활활활활-!

망자들의 어깨에 붙은 불은 곧 망자들 전신을 뒤덮었다.

그럼에도 망자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불이 타는 육신으로 무기를 빼들었다.

“진격하라!!!”

기다렸던 준경의 지시가 떨어지자 망자들은 협곡에서 뛰어내리며 마인들에게 질주했다.

그들은 등에 불길이 타오르는 채로 마인 군단들을 향해 내달렸다.

“이건 존나 미친 짓이라고….”

아콘도 랜서를 빼들어 지시를 내리며 타이탄들에게 진격하란 지시를 내렸다.

*

망자 군단들은 불길로 죽지 않았다. 심각한 치명상을 입거나 준경의 기력이 다했을 때 소멸되는 것이다.

그들은 불에 타들어가는 육신으로 마인들을 가차없이 베어냈다.

그러나 마인들은 수가 너무 많았다.

그때 타이탄들은 우측으로 우회하여 마인들의 진영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마인들과 망자들이 가까워진 상태로 공방을 벌이던 그때.

준경은 발끝에 집중하고 있던 마나를 모조리 터뜨리면서 대지로 쇄도했다.

[스킬 윈드니스를 시전합니다.]

[강도는 최고조 10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가 발휘한 바람은 하늘을 찢을 듯이 불어와 마인들에게 쏟아졌다.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수많은 마인들의 진열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인들은 제각기 자신의 몸에 붙은 불길에 발작을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타이탄들의 랜서가 그들을 끊임없이 관통했다.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던 마인들의 검은 개미떼 같던 광경은 어느새 불길에 뒤집혀 불개미떼와 같이 변해있었다.

-크아아아악!

-물의 마법으로 불을 꺼라!

-괴로워!

-저 놈들은 악마들이다!

마인들이 처절한 곡소리를 내며 죽어갔다.

준경은 최전방에서 그들을 가차없이 베어갔다.

쉼 없이.

그의 검신은 마인들을 인간 믹서기처럼 토막낸다.

그 잔인한 광경을 지켜보며 싸우던 헤이든은 경악했다.

‘...망자들에게 불을 지르고 그 망자들을 마인들과 가깝게 붙게 한 뒤에 바람을 사용해 그 불길을 마인들에게 옮기게 했다니….’

헤이든은 전방에서 힘차게 싸우고 있는 준경의 뒷모습을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쩌면 이거 이길 수도 있겠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줄 알고 가족들과 눈물의 작별을 하고 이곳에 왔는데 이거 어쩌면 판이 뒤집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헤이든의 뒤에서 서늘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레스였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다가온 아레스는 헤이든의 등을 세게 두드렸다.

“주군과 망자들이 있는 한 우리는 어떠한 싸움에서도 지지 않는다. 인간이여. 겁을 버리거라.”

“아, 알겠습니다. 교관님!”

“자네는 위대한 용병이다.”

“그렇고 말고요!”

아레스의 복돋움에 헤이든은 각오를 하고 앞으로 매섭게 튀어나갔다.

어느새 갈리오 협곡은 마인들의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로 만연했다.

*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들은 발카스의 국왕은 대신 몇 명을 이끌고 준경이 있는 아콘성으로 찾아갔다.

그가 준경을 보았을 때.

준경은 불에 그을린 얼굴로 가만히 국왕을 바라봤다.

그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전투를 치루고도 굳건한 듯 했다.

“고... 고맙소. 아니 감사합니다!”

국왕은 당장에라도 절이라도 할 듯이 말하며 준경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대신들이 그런 국왕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그 행위를 만류했다.

“이것들 놔라! 그 마인들을 막아낸 것은…… 우리 발카스를 구한 것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한 것이야. 이건 이계 역사에 대대로 내려올 신화급 일이라고.”

어찌 감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척준경이 아니었더라면 그 마인들을 대체 누가 막아낼 수 있었을까.

“국왕이여.”

“말씀만 하십쇼!”

국왕은 왕의 품위도 뭐고 다 져버리고 척준경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무슨 말이든, 어느 부탁이든 다 들어줄 용의가 있다.

여기서 그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라고 한다면 체면 그 따위 것 개나 줘버리고 기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부탁이 있네.”

“무슨 부탁이든 짐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장군님의 말을 이행하겠소!”

한편 대신들은 기겁을 했다.

발카스 최고 권위인 일국의 총수란 왕이 귀족도 아니고 족보도 없는 한 인간에게 저리 굽신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도 준경의 소문을 익히 들어서 일침을 날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그 광경을 수치스럽게 바라봤다.

입술을 비집어 깨문 그들의 작은 입술에서 피만 흐를 뿐.

그게 다였다.

“마인들에 의해 이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네.”

“알고 있소!”

“세금을 내리고, 자네가 비축한 예산을 풀어 발카스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지원하게!”

“알겠습니다!”

그때 아콘이 가만히 턱을 쓰다듬더니 끼어들었다.

“국왕이여. 내게 성을 몇 개만 더 내줘라.”

“서, 성을 말입니까?”

성 몇 개를 선사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음에 국왕이 질겁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공은 우리 타이탄들에게도 당연히 있네! 우리 타이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성 세 개만 내게 다오.”

“하아…. 그건…….”

그 말을 들은 국왕은 난처했다.

뒤에 있던 대신들은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며 속으로 아콘을 욕했다.

성을 몇 개나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한 세력이 된다.

그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발카스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발카스 일대에 내려온 전통에 의하면 그런 일례는 없었다.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준다며?”

“고심은 해보겠소…….”

“고심이 아니고 그렇게 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제 우리는 발카스를 수호하는 데서 손을 뗄거야.”

“……예?”

국왕의 눈이 개구리처럼 커졌다.

그때 준경이 아콘의 옆구리를 찔렀다.

“왜? 우리도 받아먹을 건 받아먹자고.”

준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성은 필요없네. 그냥 가난에 빠진 백성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고. 귀족들만이 다 해먹는 세상이 아닌 신분을 논하지 말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어 주게.”

“알겠소! 내 반드시 약속합니다.”

그 말에 국왕은 준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그의 인품에 감탄하며 그를 존경했다.

세상을 구한 저 검수의 부탁이라면 대신들이 발작을 하며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저 자의 부탁을 반드시 들어줄 각오를 다지는 순간이다.

국왕을 수호하는 정예기사들도 준경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준경에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잠깐!”

그때 등을 내보이며 마차로 걸어가는 국왕이 준경의 말에 멈춰섰다.

“…왜요?”

“하나 더 부탁할 것이 있네. 발카스 수도 한복판에 동상을 만들어 주게.”

“당신의 동상을 말입니까?”

꽤나 어려운 부탁이다.

발카스 수도의 한복판에는 국왕의 석상을 세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국민들은 신을 숭배하는 사상을 지녔으니까 왕이라도 함부로 발카스 수도 한 가운데에는 동상을 세우지 못한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나의 주군의 동상. 그 동상 밑에 기념비로 적을 글들은 내가 따로 전달하겠네.”

“아…. 그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왕은 준경의 뒷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상체를 꽂꽂히 세우고 차렷을 하며.

“그, 그렇게 해보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소!”

국왕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준경은 그제야 옅은 미소를 내지었다.

지금 이 순간은 한 나라의 왕과 족보도 없는 일개 영주가 권력을 뛰어넘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자아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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