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8화
후일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내 아들
-주군 이시운을 기리는 동상을 발카스의 수도에 세워달라.
척준경의 제안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왕을 따르고 신을 숭배하는 발카스의 국민들은 ‘신의 손가락을 자른 사나이’ 이시운을 신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하늘을 지배하고 땅을 관장하는 천계로부터 세상을 구원했기에 국민들은 수도에 동상을 세우는 것을 옹호했다.
수많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국왕은 민심을 고려해 척준경과의 약속을 지켰다.
발카스의 수도 한복판에 세워진 이시운 동상의 모습은 웅장했다.
그 동상 앞에 서서 기념비에 적힌 활자들을 읽어가던 척준경의 눈빛은 그 어떤 때보다 깊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주군께서 명하신 대로 나라를 지키고 주군의 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로서 척준경은 주군 이시운의 뜻을 모두 이행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용히 그의 동상 앞에서 묵념하는 준경 뒤로 발카스 국민들이 시운의 동상을 바라봤다.
누군가는 그 동상을 보며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 세상을 구원한 그의 마음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묵념하고.
또 누군가는 존경했다.
이시운이라는 존재는 이제 이계의 신과 동일했다.
뒤에 서있던 베른과, 검은매, 아레스와 아콘도 동상을 보며 묵념했다.
‘제 평생이 끝나는 날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빨리 돌아와요. 많이 보고 싶으니까.’
‘당신은 이제 신적인 존재가 되셨군요. 근데 우리에게 있어서 당신은 신 그 이상입니다.’
그들은 사람냄새 나는 미소로 만연하게 웃던 이시운의 동상을 보며 그를 기렸다.
*
천계의 올림푸스 신전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건설되었다.
그리스인들의 지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건설된 그 신전은 웅장하고 화려했다.
헤라클레스는 원대하게 지어진 자신의 신전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천계는 제가 지킬테니 형님께서는 얼른 돌아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멋진 신전도 뚝딱 만들었는데 형님만 오신다면 이 신전에서 형님을 극진 대우 할게요.’
‘그러니까 얼른 돌아만 오세요. 형님…….’
헤라클레스는 그와의 아득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기도했다.
그에게 전해지지 않을 기도였지만 말이다.
*
흑사 아마데미는 흑마법을 연구하는 원생들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 아카데미의 원장은 무리하게 흑마법을 시도하다가 결국 석화되어 석상으로 변해졌다고 한다.
흑마법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인간이 부릴 수 있는 독이 든 성배와 같은 저주받은 마법.
그 댓가는 석화되어 영원히 멈춰버린 석상이었다.
흑사 아카데미는 문을 닫았고 가끔 그녀를 보고 싶어서 오는 이들만 그곳을 방문했다.
차원의 문을 해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사라졌던 데스나이트가 그 석상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석상을 바라봤다.
그의 두 눈빛이 슬프게 떨렸다.
그런 그의 마음을 석상도 안 것일까.
석상의 눈가에서 검은 눈물이 피어나와 조용히 흘러내린다.
그 석상에는 많은 남자들이 다녀갔다.
그녀의 미모에 반해 사모하던 남자들이 꽃을 두고 가기도 했고,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이 평소에 그녀가 좋아했던 꽃들을 놓고 가기도 했다.
데스나이트는 그 석상의 볼가를 어루만졌다.
석상에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닦고 또 닦아주어도 눈물은 계속해서 흐르는 것을 보니 메두사는 지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가 보다.
석상을 애석하게 바라보던 데스나이트는 가슴에서 올라오는 감정에 목을 떨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무리를 한 거야…….”
그 마음은 자신도 이해가 갔다.
데스나이트. 그도 영원한 주인 이시운이 그만큼 보고 싶어서 방법을 찾아 헤맸었으니까.
척준경에게 석상이 된 메두사를 살려서 재림시켜달라고 부탁도 했던 그다.
그러나 저주의 힘이 깃든 흑마법으로 봉인된 석상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투투투툭-.
하늘에서는 눈이 내려와 땅을 뒤덮었다.
겨울의 한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 계절은 겨울.
데스나이트는 챙겨온 따뜻한 목도리를 석상의 목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겼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나는 너를 좋아했었다. 동료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말이다.”
데스나이트는 그 말을 하고 고개를 떨궜다.
“고백할 기회도 주지 않고 너는 이렇게 돼버렸구나…….”
메두사. 네가 밉다.
그의 쓸쓸한 혼잣말은 눈보라가 내려치는 자연의 소리에 조용히 묻혔다.
*
현계에서 이시운은 이제 50대의 대한민국 아저씨가 돼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그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정도였다.
그의 아성이 꽤나 대한민국에 알려졌던 그 시점에 그의 아들 이시형은 군대를 다녀오고 연극영화과에 복학했다.
천세정과 이시운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그의 얼굴은 단연 캠퍼스 안에서도 동급생들의 여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똑 부러지게 할말 하는 천세정의 성격과 다정한 이시운의 성향이 그에게서 엿보였다.
카페에서 시형과 커피 한잔을 하는 시운은 시형을 바라봤다.
자랑스럽게 장성한 아들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보일까.
“캠퍼스 생활은 어때?”
“뭐……. 귀찮게도 여자 애들이 너무 집적거려.”
“그럼 좋은거 아니야?”
“아빠. 잘생긴 건 피곤한 거야.”
그 말에 시운은 빵 터져버렸다.
덩달아 시형도 킥킥거리며 웃엇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지만 언제나 친구처럼 지냈다.
“바람은 절대 피지 말고. 환승도 하지 말고 여러 여자들을 만나봐. 그게 좋아.”
“와... 아빠 환승이 뭔지도 알아?”
“당연히 알지. 아빠가 바본 줄 알아?”
부자지간인 그들이 웃는 모습은 서로 닮아있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천세정이 아들 이시형의 어깨를 탁 두드렸다.
“엄마는 항상 아아만 먹는 거 알고 또 이렇게 시켜놨네? 우리 아들 왜 이렇게 예쁘게 굴어?”
“기특하면 용돈 좀.”
“응. 그건 안 돼. 네가 알바해서 직접 벌어서 써.”
세정은 웃으면서도 똑 부러지게 말하자 시형은 뒷목을 벅벅 긁으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시운의 눈으로 천세정은 지금도 아름다웠다.
50대인 천세정의 얼굴은 정말 예쁘기도 예뻤지만 누가 보면 30대 초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기도 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20대 중반까지도 볼 수도 있는 느낌?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고 같이 살아가며 늙는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이제는 아는 시운이다.
카페에서 티타임을 여유롭게 즐긴 그들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시운이 힐끗 시형을 바라봤다.
녀석은 턱을 괴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너 배우가 꿈이지?”
“당연한 걸 왜 물어?”
“이번에 아빠가 너 드라마에 꽂아줄 수 있을 것 같거든?”
시운의 말에 뒤에서 졸고 있던 세정이 눈을 번쩍 뜨며 웃었다.
“뭐? 여보! 그게 진짜야?”
시운은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드라마는 시운에게는 아주 의미가 있는 드라마였다.
바로 그 드라마는 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단계에 돌입한.
나 혼자만 3회차.
강춘식이 집필한 그 소설이 웹소설 시장에서 꽤나 인기를 얻으며 웹툰으로 제작되었고 이제 드라마까지 준비한단다.
웹소설이 웹툰이 되는 경우는 꽤나 흔하지만 드라마가 되는 경우는 희박하다.
그 소설이 인기를 끈 것은 많지만 드라마까지 갈 정도로 폭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발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강춘식의 역량 덕분이었다.
강춘식은 이번 생에서는 다른 필명으로 웹소설들을 집필했지만 그는 신선하고 기가 막히게 대화체를 필력으로 엮어내서 매 작품마다 밀리언 그 이상의 성적을 냈다.
근데 그가 다른 작품들은 모두 드라마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오직 단 하나의 작품만은 꼭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신이 수억을 투자해서라도.
그렇게 그 소설은 이제 드라마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
“할 거지?”
“하고는 싶은데 난 아빠의 빽으로 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지는 않아.”
“음….”
꽤나 어른스러운 모습이 보이는 녀석의 대답이었다.
“근데 그 소설의 원작자가 무조건 너를 쓰고 싶다는데?”
“왜? 난 그 사람 알지도 못하고 난 평범한 연극학과 학생일 뿐인데.”
“아빠는 그 사람을 아주 잘 알거든….”
그러면서 룸미러로 세정을 바라봤다.
세정이와도 그분덕분에 이렇게 결실을 맺을 수 있었고.
“난 누군가의 빽으로 꽂혔다는 꼬리표를 달고 배우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아.”
“너의 의견을 존중해. 근데 기회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 법이야. 거기다가 그 드라마는 네가 꼭 출연했으면 좋겠다.”
“이유가 뭔데?”
“나한테는 아주 의미가 있는 드라마거든.”
흠.
시형은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스마트폰으로 그 소설을 검색해본다.
그리고 시형은 대충 시놉시스를 읽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와……. 이거 주인공이 완전 개 찌질이라는데?”
“……….”
그 말에 시운은 낯이 벌개져 말을 잇지 않고 운전만 했다.
어느새 기뻐하던 세정은 어디간건지 세정은 눈을 감고 잠에 빠져있다. 그 모습이 시운에게는 숲속의 공주 같다.
아무튼.
“요즘 웹소설은 사이다에 모든지 다 해먹는 킹사이다 주인공이 대세인데 어떻게 이런 사람같지도 않은 주인공으로 그 정도 히트를 친거래? 신기하네.”
“크, 크흠!”
괜히 시운은 찔려서 헛기침을 한다.
“왜? 내 말이 맞잖아?”
“마… 맞지.”
“헌터물이네? 다른 세상의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없애고 승승장구 한다라? 아 개뻔해.”
줄거리를 읽은 시형이 별로란 반응을 보인다.
그 말에 시운은 티 나지 않게 진땀을 뺀다.
이시운.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밖에 없는 이시형이 연기해주면 아주 뜻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던 시운은 또 한 편으로는 고민했다.
‘아들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권유에 그칠 것이다.’
나 좋자고 아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들도 아들의 삶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안 해볼거야? 아빠는 네게 강요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할게.”
“…한다고?”
“내가 방금 슥슥 몇 편 읽어봤는데 이거 주인공이 아빠랑 좀 닮았는데?”
“그게 이유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흥미가 생겼어. 뻔하고 잘난 주인공보다 이런 주인공 한 번 연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원래부터 해오긴 했어.”
“그래?”
시운은 기특하단 듯 시형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아파트의 주차장에 도착하자 시운은 안전벨트를 풀었다.
“공주님? 다 왔습니다!”
그 소리에 세정이 입을 오물거리며 슬며시 눈을 뜬다.
“벌써 다 왔어? 근데 내 나이가 몇인데 나보고 공주님이래.”
“나한테 당신은 공주 그 이상으로 예뻐.”
“웃기고 있네. 나이 먹고 주책은….”
천세정은 그 뻔한 멘트에도 웃어준다. 그 웃음이 꽤나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아무튼 좀 생각해보고 아빠한테 말해줘.”
“오케이!”
시형은 오케이 사인을 보고 차에서 내려서 아파트를 향해 뛰어간다.
어른스러우면서도 애 같은 면이 있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시운이의 아들이 분명하다.
차에서 내린 세정은 시운의 팔짱을 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소갈비찜 해줄게.”
“오오…. 진짜?”
시운은 아이처럼 신나했다. 그리고 방금 멘트를 던진 일을 아주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가장은 와이프에게 잘 보여야 행복한 법이다.
그게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