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1화
번외편- 강춘식 작가와의 재회 (2)
왜 의사의 길을 택했냐는 질문에 난 단숨에 대답할 수 있었다.
“인생의 거듭된 회차를 경험하면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입니다. 그 소중한 인생 속에서 각자 주인공인 사람들이 더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가운을 입기로 했죠.”
“푸흐흐흐.”
춘식이 웃었다. 그 웃음은 조소가 아니었다.
“역시 독자님답네요. 그 어떤 소설 속 누구보다 찌질했지만 누구보다 사람 좋은 독자님.”
머쓱했다. 취기가 달아올라 시야가 뭉개져도 그의 말은 또렷히 들렸다.
삼겹살을 씹는데 바삭바삭한 고무맛이 나는걸 보니 많이 취한듯 싶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취하고 싶은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것 같네요.”
말을 마친 난 소주를 들이켰다.
이제 소주맛이 물인지 소금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핸드폰에서 진동이 계속 울려댄다.
천세정이다.
전화를 받아서 오늘은 좀 늦게 들어간다고 얘기했다.
혀가 좀 꼬인 내 목소리를 듣던 세정은 날 걱정해주더니 알겠다고 답했다.
“독자님은 고민 같은거 뭐 없어요?”
“고민이라…. 이번에 논문 하나 발표할 생각인데 잘 될지 의문이네요.”
굳이 고민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사람의 뇌는 불안, 우울, 환희 등으로 뇌가 바뀌고 각 뇌 부위마다 흐르는 뇌파도 바뀐다.
뇌파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뇌파를 이용한 치료로 조울증,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논문을 준비 중이다.
물론 이 뇌파를 통한 치료는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내가 이번에 논문으로 발표하는 자료는 뇌파와 특정 빛을 이용한 치료로 뇌를 절개하지 않고 각종 뇌질환을 치료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다.
그 이야기를 강춘식에게 들려주었다.
“독자님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두 가지의 능력이 있죠. 그 두 능력이 어쩌면 현대 의학을 몇 세기는 진보시킬 결과를 불러오겠네요.”
“뭐.. 잘 되면 좋겠지만 아직 모르겠습니다.”
“푸하하하하!”
“왜 웃으세요?”
“재밌어서요. 한때는 누구보다 찌질했던 독자님이 이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게 신기하고 흥미로워서요.”
“놀리시는 겁니까?”
“놀리는 것이 아니고 감탄이라고 해둬요. 그보다 아드님을 한 번 보고 싶은데. 이번에 그 작품을 드라마화 하는 데에 있어서 제가 PD보다도 작품에 많이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작가님. ‘나 혼자만 3회차’ 라는 작품은 왜 웹툰화하지 않았어요?”
“웹툰보다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랬죠.”
“웹소설이 웹툰화하면 수익은 많이 나나요?”
“판권이란 것도 있고 케바케죠. 근데 웹소설을 웹툰화하는 이유는 웹툰화는 매주마다 몇 편 안 나오잖아요? 그래서 다음화가 궁금한 독자들을 웹소설로 유입시키기 위해서 웹툰화를 시키는 거예요.”
“아….”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정보를 들은 것에 뇌가 열리는 느낌이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서, 나는 마음에 담아뒀던 그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저기… 작가님.”
“뜸을 들이는 것을 보니까 어려운 말을 하려나 보네요. 해봐요.”
“작가님이 제 삶의 창조주라면 그 아이들을 다시 보게 해줄 수는 없습니까?”
내 물음에 춘식은 들고 있던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고 고심에 빠진 낯을 비췄다.
그 아이들이라고 표현해도 강춘식은 알 것이다.
이계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그 녀석들을 뜻하는 것임을.
“꼭 보고 싶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어요. 잘 지내는지 밥은 챙겨먹고 다니는지 쌈박질은 안하고 다니는지.”
“독자님.”
말의 끝톤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고 난 그의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난 더 이상 손을 대지도 않을 것이고, 손을 댈 생각도 없습니다. 소설로 예를 들어보죠. 소설 속에 구상한 캐릭터들은 각자 자신들의 성격이 부여되고, 사고방식이 부여 돼요. 그들은 그 세상에서 살아 숨쉬는 겁니다. 작가는 그들을 구상한 뒤로 그들에게 맡기는 거예요. 적어도 난 그래요.”
“그러기엔 제게는 너무나 깊은 추억이라서요.”
“추억은 다시는 겪지 못할 기억이라서 더 소중한 법이에요. 세상은 말이죠! 자기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을 수용하고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독자님도 알잖아요?”
“압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요?”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모두는 아니겠지만….”
아쉽지만 단념해야 했다. 그리고 난 잠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그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던 그때 내 귓가로 춘식의 웃음 섞인 육성이 들려왔다.
“근데 독자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옛날보다 더 재미없는 진지충이 됐네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내 아들 이시형을 강춘식에게 소개시켜줬다.
“반가워요.”
“와! 작가님 저 작가님 소설 본 독자였어요! 근데 작가님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요.”
춘식을 보자마자 인사를 하는 시형은 곧바로 질문을 내던졌다.
“요즘 웹소설 주인공은 답답하지 않고 사이다를 마신듯이 시원시원 해야 하는데 왜 하필이면 주인공을 그렇게 찌질하게 구상하셨나요?”
그 말에 난 머쓱해서 조용히 카페 안 테이블로 시선을 내리깔았고 춘식은 빙그레 웃었다.
“그것도 누군가의 이야기 일 수 있으니까요?”
“엥? 그렇다면 그 소설의 주인공이 막 누군가를 모티브로 한 것이란 말씀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그보다 난 사람 냄새가 나는 주인공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내 역량이 부족해서 너무 찌질한 주인공으로 전개가 되고, 독자님들의 화가 폭발하기도 했지만 말이죠….”
춘식은 내 아들 이시형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아빠보다 엄마를 더 빼닮은 것 같은데요? 진짜 예쁘게 잘생겼네요.”
“우리 엄마를 아세요?”
“어쩌면요?”
춘식은 시형에게 드라마 속 주연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시형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시형 씨 연기를 내가 보지를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감독에게 많이 혼날 수도 있고 나한테 혼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나?”
“원래 혼나면서 성장하는 법이죠! 작가님의 소설 속 주인공도 그렇게 성장하잖아요. 내면도, 능력도.”
춘식은 기특하게 시형을 바라보며 슬쩍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이런 면은 또 아빠를 닮았네.”
난 시형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정말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작가님! 제 모토가 완벽보다는 최선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빠가 항상 그랬거든요.”
“오케이. 좋아요. 그럼 한 번 해봅시다!”
춘식이 손바닥을 펴자 시형이 해맑게 웃으며 그와 손바닥을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리 시형이 잘 부탁드릴게요.”
“별 말씀을.”
춘식의 대답은 당연히 그럴 것이란 것이었다.
그 이후로 반 년이란 시간은 드라마를 준비하는 기간이 되었다.
내 아들 이시형은 누구보다 그 소설 속 주인공에 몰입하여 연기 연습을 했고 첫화부터 연기를 너무 빼어나게 해서 감독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촬영장에서 지켜보던 강춘식이 누구보다 흐뭇해 했다고 전해진다.
소설 속 묘사되었던 주인공인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는 시형이는 회귀하고 시작되는 주인공의 연기를 일품으로 해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드라마의 시청률은 32.2%를 기록할 정도로 아주 인기가 좋았다.
이세계로 가서 괴물을 무찌른다는 내용은 내면 연기뿐만 아니라 고도의 액션까지도 필요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시형이는 스턴트 대신 자기가 파트 대부분을 하겠다고 자처했고, 드라마를 빛냈다.
그 드라마는 25부작으로 끝맺었다.
가끔 내가 시형이에게 팁을 주었다. 난 그 경험을 겪은 사람이니까.
안방에서 ‘나 혼자만 3회차’의 마지막화를 보던 세정은 눈물을 흘리며 시형이를 안아주었다.
“너무 기특해. 엄마가 진짜 감동 받았어. 우리 아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내가 이렇게 재밌게 볼 줄은 몰랐어. 고생했어. 내 아들!”
시형은 세정의 품에 안겨 히히덕 거리며 웃었다.
연기 할 때만큼은 성숙미를 뿜어내던 녀석이 엄마 앞에서는 이렇게 애다.
그리고 천세정이 내게 물었다.
“근데 여보.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너무 나랑 비슷한거 아니야?”
그 말에 난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천세정은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설정이 천세정과 완전 빼박이였기에 당연히 그렇게 느낄만 했다.
“그리고 주인공도 당신하고 너무 닮았고.”
“어떤 면이?”
“바보같고 답답하지만 착한 면?”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
“결국엔 칭찬이지?”
가슴 한쪽이 아팠지만, 그래도 허허 웃었다.
그 드라마에 누구보다 광팬이었던 천세정에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여주인공 박설화와 내 아들 이시형의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시형아! 시형아. 나한테는 말해주라. 사실이야?”
“아, 몰라….”
“너 엄마한테까지 속이기 있냐!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 저거 사실이야?”
“사실이면 뭐라 하게?”
“너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니? 엄마는 네가 그렇다면 누구보다 응원할거야. 나중에 집으로 한 번 데려와. 그래서 사실이란 소리지?”
“어….”
결국 세정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시형.
“근데 걱정이야. 회사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한다고는 했는데….”
“연예인들은 사랑을 하면 연기의 앞길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 근데 난 이렇게 생각해.”
“어떻게?”
“네가 고민해보고 정말 그 사랑이 하고 싶으면 그냥 시원하게 공개연애 해버려! 대신에….”
세정은 시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바람은 절대로 안 돼. 사랑이란게 뭔 줄 알아? 사랑할 때만큼은 자신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는 게 사랑인 것이야.”
“당연한 꼰대같은 소리를….”
“어머. 당연한 건데도 당연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너 엄마한테 꼰대같다는 말을 하는게 맞아?”
“예, 예…. 죄송해요.”
“응원해. 엄마는 누구보다 널 존중하고 응원한다.”
난 모자지간이 대화하는 것을 보며 흐뭇해했다.
세정은 시형이를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진 않았지만, 아들이 자립심을 갖게 해주었고 아닌 건 아니다. 맞는 건 맞다 라고 얘기해줬지만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키웠다.
현명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난 이시형의 아버지란 삶을 살면서 의사 생활에 매진했다.
내가 발표한 논문은 세상에 이슈를 불러왔지만, 한편으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들도 많았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린 나지만, 내 목표는 젊은이들이 꿈꾸는 열망처럼 절실했다.
난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응원하면서 내 삶에 집중했다.
그리고 내가 60대가 되었을 때.
세상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들이 주목할 만큼 놀라운 뇌 의학 연구결과를 내놓게 되었다.
이로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삶을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어느정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때 외국 기자 한명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은 생명(Life)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변 기자들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을 질문이었지만 난 그 질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자에게, 세상에게 이렇게 답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나갈 수 있는 소중한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난 좀 서툴지만 확실한 태도로 영어로 답했다. 곧 기자의 푸른 눈이 스르르 커졌다.
그리고 훗날 기사에 실린 그 멘트에 누군가는 감성적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과잉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며, 또 누군가는 다른 의견을 내비추기도 했다.
그들의 의견을 모두 존중한다.
그뿐이다.
난 의사 가운을 입은 채로 잠시 눈꺼풀을 닫았다.
나 또한 그 이야기 속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내 남은 삶이란 이야기를 그려나가볼까 한다.
아직 삶의 목표가 남은 내 심장은 젊게 뛰고 있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삶이란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