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72화 (272/278)

제 272화

번외편 이계

이계 이카루스 대륙.

발카스를 포함하여 이계의 전 대륙의 운명을 비운으로 결정할 일이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이계인들의 행방불명.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누군가는 죽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괴물에 의해 잡아 먹혔다고 하며.

악에 바친 귀신이 그들을 데려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카스의 나라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생겨난 탑.

그 탑은 하늘을 뚫을듯이 높게 솟은 채 그 어떤 공격에도 통하질 않았다.

그리고 이계의 모든 생물에게 무언가의 경고가 내려졌다.

[탑을 정복해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종말할 것이다.]

발카스 국왕은 급히 발카스의 영웅인 척준경을 불렀다.

“이번에도 도와주시오.”

“알고 있다. 그러려던 참이다.”

준경은 국왕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생명들을 앗아가는 근원을 파악하는 것과 그 탑을 정복하는 것.

“당신은 모든 국민들을 안심하고 지키고, 지원하는 것에 힘 써라.”

“알겠소. 염치없지만 이번에도 부탁드리오.”

국왕은 떠나가는 척준경의 뒷모습을 보며 한 인간을 떠올렸다.

‘이시운이라고 했나. 그 인간이 참 부럽군.’

대륙제일검 척준경의 무한한 신뢰를 받는다는 현계의 인간을 뜻한다.

이계의 종말을 막았다는 인간으로 기록 되며 척준경은 오직 그만 섬기며, 그 외에는 모두에게 경어를 사용한다.

신하들은 국왕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척준경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그가 없으면 발카스는 물론이고 이카루스 대륙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국왕은 성문을 나서려는 척준경의 뒤까지 쫓아갔다.

“잠깐만!”

준경은 국왕의 부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멈췄다.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이오?”

“무슨 생각?”

“당신같은 굳건한 인물을 내 신하로 들이고 싶소.”

준경은 그 말을 듣고 대답도 안하고 그냥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준경의 뒷모습을 보며 국왕은 왕의 체면도 버리고 다시 쫓아가 거리를 좁혔다.

“당신을 진심으로 대하겠소.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돕고, 왕에 대적할 지위도 주겠소.”

그때 뒤돌아 본 척준경의 눈빛을 보고 왕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스릉.

그의 검집에서 백색의 칼날이 슬쩍 보일 정도로 뽑히자 국왕은 그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더 제안하면 저 검으로 날 벨 것이다.’

준경은 대답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고 사라졌다.

‘이시운이라는 인간이 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저런 강한 무인이 저렇게 충성을 다한단 말인가.’

준경의 시선이 위로 올라가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찢을듯 솟아있는 탑이 보인다.

면적도 높이도 그의 눈으로 가늠할 수도 없다.

다만 저 탑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굉장히 묘하고 악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뒤로 백만의 망자 군대들이 솟아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주군 척준경이 상념에 잠겨있음을 직감하고 집중을 흐트리려 하지 않으려고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척준경의 고개가 더 올라가 더 높은 하늘로 향했다.

“헤라클레스. 자네의 힘이 필요하네.”

콰아앙!

그의 말에 벼락이 하늘을 가르듯 굉음을 내더니 번쩍이며 그의 옆으로 헤라클레스가 인영을 드러냈다.

“이 탑을 정복해야 하네.”

그 말에 헤라클레스는 정정하게 뻗어있는 탑을 노려봤다.

“쉽진 않겠는데. 자네나 나의 힘으로도.”

헤라클레스는 이제 천계에서 가장 막강한 신으로 군림한 상태다.

그런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다.

“저 탑을 쳐부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주군이 말씀하신걸 잊었나? 세상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말.”

“알아.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

그리고 준경의 뒤로 아레스와 아콘, 검은매, 데스나이트, 카이칸, 베른이 각자 인영을 드러냈다.

모두의 눈이 그 탑으로 향했다.

탑은 마치 그들을 환영하듯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는 듯 했다.

“망자들이여.”

준경의 한 마디에 수많은 망자들이 자세를바로 잡고 상체를 꽂꽂하게 폈다.

“저 탑을 부순다.”

그의 말에 함성을 내지르며 모두가 먼지가 일도록 지면을 밟으며 탑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 탑 안에서 사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허공에 핏물이 난자하면서 사방으로 처참히 떨어졌다.

듣도 보도 못한 괴수들에게 타격을 입을 때마다 준경은 생각했다.

‘주군...’

주군 이시운의 모습을 말이다.

조금은 부족해 보여도, 때론 근엄하고 사람냄새나게 웃던 그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 웃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난 여기까지인가 보다. 미안하다.”

눈빛이 흐려진 아콘이 어깨에 두 창이 박힌채 주저 앉았다.

“포기하지 마라. 자네는 누구보다 강한 타이탄이 아닌가.”

99층 탑은 이들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맹공을 연이어 퍼부었다.

아콘이 피를 토하자 타이탄들이 찌그러진 방패를 들고 자신만의 주군 아콘을 에워쌓으며 온 몸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을 계속 이끌어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무슨 나약한 모습입니까! 일어나십시오!”

타이탄들이 아콘을 나무라자 아콘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억지로 일어섰다.

전방에서 카이칸의 등에 탄 헤라클레스가 코어를 향해 벼락을 마구 날려댔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점점 망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고.

전력을 다하던 검은매가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에 날개 두 쪽이 찢겨져 땅에 처박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척준경은 숨을 잠시 멈추고 모든 것을 시각에 집중했다.

주군 이시운이 물려준 데몬 소드를 으그려 쥔 채 말이다.

그의 눈으로 방대한 99층의 탑에 숨겨진 모든 것들이 세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보인다...!’

제 3대 바람의 군왕으로서 새로운 눈을 개안한 순간.

모습을 감추고 있던 99층의 괴물이 보였다.

준경은 데몬 소드를 쥔 채 모든 공격들을 피해내며 그 괴물에게 달려갔다.

인간이 쳐다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흉악한 형상을 한 괴물은 준경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직감하자 묘한 소름을 느꼈다.

‘인간의 눈으로 날 볼 수 있다니...’

괴물은 그 어떤 것도 베어낼 수 있는 묘귀도(猫鬼刀)를 꺼내들었다.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칭찬해주마.”

괴물은 저 인간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저 인간은 이 묘귀도에 의해 단숨에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묘귀도는 세상 그 어떤 만물도 무(無)로 만들어 버리는 검.

검이라고 칭하는 것조차 과소할 정도니까 말이다.

괴물의 눈으로 그 인간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 또한 검을 들고 자신을 향해 파고 들었다.

“검 대 검이라. 질 자신은 없다.”

용케도 인간이 그렇게 말했다. 괴물은 가소로우면서도 저런 자신감이 나오는 근원이 궁금했다.

순간 괴물의 품속으로 번개같이 파고든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단 몇 초만에 일 억 번은 찌른 것 같다.

그러나 괴물은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묘귀도의 휘두르는 것에 필요한 공력을 응축했다.

“정말 음속같은 칼 솜씨군. 그것만은 칭찬해주마.”

“너 따위에게 들을 칭찬은 없다.”

인간이 말하며 괴물의 머리까지 떠올라 눈높이를 맞췄다.

순간 사방이 노이즈가 낀 것처럼 일그러지며 묘귀도가 그 인간을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이 죽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분해되며 사라져갔다.

분해되는 순간 인간에게서 나눠진 빛무리들이 공중으로 퍼졌다.

그렇게 그것은 곧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때였다.

‘뭐지?’

괴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흩어지던 빛무리들이 다시 하나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합쳐져 남자의 인영으로 재생되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었다.

묘귀도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것 정도가 아니라 무의 형태로 돌린다.

그런데 어째서 저 인간은 그걸 받아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인가!

“환영 따위는 내게는 먹히지도 않을텐데.”

“환영이 아니다. 신념이다.”

“신념?”

그 순간에 괴물은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는 그 인간의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은 그 어떤 생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형용할 수 없지만.

단단하고.

강인하며.

날카롭고.

절대로 꺾이지 않는 마음. 그런 것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마치 종이를 가르듯 자그마한 소리가 흘렀다.

인간이 휘두른 방향대로 괴물의 목줄기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괴물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제 목을 움켜쥐며 묘귀도를 한 번 더 움켜잡았다.

그러나 괴물의 몸은 그대로 부서졌다.

괴물은 인간에게 경이롭다는 말을 남기고서 수만 개의 파편이 되어 사방에 흩뿌려졌다.

“나보다 경이로운 분이 계시다. 그게 내 주군이다.”

이미 형체를 잃어가는 괴물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빛 한 줄기 새어나오지 않던 탑 안에서 환한 섬광이 일었다.

“얼마나 걸렸지? 우리가.”

힘이 빠진 데스나이트가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며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사십 년 정도.”

“참 오래도 걸렸구만.”

“그래도 우린 주군과의 약속을 지킨 것 아닌가.”

“맞다. 그래서 후회란 없다. 다만 좀 늙은 것이 짜증날 뿐이지.”

데스나이트는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뒤편에 서있던 베른은 부서져 파편이 떨어지는 탑속에서 마지막 힘을 발휘해 동료들에게 ‘신성의 베리어’를 펼쳤다.

그 베리어 속에 쌓인 동료들은 잃어가던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략이 불가할 것 같은 탑이 수만 파편으로 쏟아지며 바깥 세상의 빛이 눈부시게 들어왔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굳어가는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로서.

이카루스 대륙을 경악케 했던 시련의 탑이 붕괴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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