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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3회차-274화 (274/278)

제 274화

후일담- 중년 배우의 각성

뒤뜰에서 준경이 검술을 연습하고 있는 중 바람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왜 늙지 않으시는 거죠?”

준경의 아들 척소한이 물었다.

준경은 다시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소한이 보기에도 의아했을 것이다.

척소한이 스무 살이 되던 이 시점에도 척준경의 얼굴은 여섯 살 때 그가 보던 얼굴과 똑같았으니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말씀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무얼 말이냐?”

“그렇게 매일 검을 잡는 이유와 아버지의 출생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말에 준경의 검날이 허공에 멈췄다.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것이다.”

“그 말만 수백 번은 하셨습니다. 저도 이제 성인입니다. 아버지에 대해 궁금한 건 아들로서 당연한 거 아닙니까?”

준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혹시 너 바람의 성질에 대해 다룰 줄 아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소한은 검술에 대해서는 자신을 닮아 굉장한 재능이 있지만, 원소 성질을 다루는 마법의 이론도 모르는 녀석이다.

그때 테레사가 뒤에서 소한의 팔을 이끌었다.

“아버지 검술 연습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이리와.”

“방해하는게 아닙니다!”

“알겠으니까 이따 얘기하래도.”

소한은 어머니 테레사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준경에게 서운한 눈빛을 보냈다.

준경은 그 눈빛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 순간 준경의 머리칼이 갈대처럼 휘날리는 것에 살기를 뿜어냈다.

‘이건..?’

이 마을은 바람이 불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느껴지는 기이한 바람.

그리고 이 바람의 기운은 분명 군왕의 바람이다.

준경은 칼을 검집에 밀어넣고 창고로 향했다.

우우우웅!

창고 안에서 검명이 들려왔다.

준경은 잽싸게 창고의 금고 속에 고히 모셔둔 검을 꺼내들었다.

데몬 소드.

주군이 생전에 다뤘던 검이며, 주군의 기운이 잔뜩 깃들어 있는 검이다.

근데 이 검이 울고 있었다.

칼자루를 쥔 손으로 그 검명의 떨림이 진하게 전해졌다.

우우우웅!

“이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 검이 이런 소리를 낼 리는 없다.

지난 백사십 년간 주군의 유품인 이 데몬 소드는 한 번도 검명을 흘리지 않았다.

“일어나라... 마계공이여.”

스스스스.

준경의 말에 그의 뒤로 거대한 인영이 솟아올랐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이 검이 왜 우는지 읽어보아라.”

준경은 마계공에게 데몬 소드를 건넸다.

마계공은 그 어떤 마법도 감지해내고 읽어낼 수 있었던 시련의 탑 최상층 괴물을 재림시킨 소환수다.

마계공은 자신의 손에 들린 데몬 소드를 보더니 움찔했다.

“검이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하는 것이냐?”

마계공은 검명의 기운을 청각으로 해석했다.

살면서 그 어떤 흉측한 기운도 다 느껴보았지만, 이런 기운은 처음이었다.

마계공의 육신에 닭살이 돋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우웅-!

“주군...”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은 이례가 없던 마계공의 육성이 떨리는 것을 보고 준경의 눈이 커졌다.

“경고인가?”

“경고 정도가 아닙니다. 검이 말하기를 이곳과 다른 세계가 위험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다른 세계라면….”

준경의 심장이 뛰었다.

“뿐만 아니라 그 세계와 이 세계의 시간의 흐름이 어느 순간부터 뒤틀렸다고 합니다.”

“뒤틀렸다고?”

“시간의 흐름이 다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검이여. 주군이 살고 계신 현계와 내가 사는 세계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단 말인가?”

그 물음에 검은 한 번 조용한 검명을 뿜어냈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주군이 아직 살아 계실 수도 있다.”

준경의 심장이 벅차올랐다.

그때.

검명이 귀를 긁어대는 날카로운 검명을 뿜어냈다.

그 검명을 들은 마계공은 순간 얼어붙었다.

“뭐라고 하더냐?”

“....그의 핏줄이 그 힘을 다시 사용할 거라고 합니다.”

발카스의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게이트.

“뭐, 뭐야?”

“저 구멍은 대체 뭐지?”

“마법인가...”

발카스의 시민들은 허공에 떠오른 구멍을 보며 수근거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아간 척준경은 고개를 들어 상공을 바라봤다.

‘저 게이트는 현계와 이어지는 것이다.’

분명 그랬다.

하늘을 뒤덮을 듯 열린 채 물결치고 있는 저 게이트는 천신 전쟁 때 보았던 그 게이트와 다름없었다.

우우우웅-!

그때 데몬 소드의 검명이 공명했다.

준경은 데몬 소드를 품에서 꺼냈다.

검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검신이 게이트에 솟은 채 끌려가듯 했다.

“다들 물러나시오!!!”

준경의 벽력같은 함성에 발카스의 국민들이 뒤로 물러났다.

대륙제일검인 그의 고함에 지금의 사태가 심상찮음을 느끼고 모두가 차츰차츰 뒤걸음질 쳤다.

“나와라...”

준경의 한마디에 그의 뒤로 수만의 망령 부대들이 지면을 뚫고 일어섰다.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처처처척-!

수만 망령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정렬을 가다듬자 발카스 국민들은 커진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저기에서 괴수들이 떨어질 것이다! 이 자리에서 목이 떨어질 각오가 돼있는 자가 아니라면 다들 돌아가라!”

준경의 함성에 국민들은 귀신과 맞닥뜨린 것마냥 뜨악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저 구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무엇이 나타나든 모조리 죽여라.”

“명 받듭니다!”

“명 받듭니다!”

“명 받듭니다!”

준경의 망령 부대는 약 5만이었다.

수는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있었다. 그 이유는 3대 바람의 군왕인 준경의 힘이 노쇄하였기 때문이다.

허나 이 망령들은 정예 중의 정예만 선발된 최강의 망령들이었다.

그 순간.

준경은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지는 수십만의 괴수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어떤 때보다 위기임을 직감한 것이다.

메두사의 석상을 가만히 바라보던 데스나이트는 상공에서 터진 굉음에 대검부터 뽑아 들었다.

“뭐지?”

거검을 뽑아든 그의 우람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상공에서 유성처럼 떨어지는 수십만의 마수들을 보고 말이다.

데스나이트는 거검을 든 채로 뛰었다.

그리고 지상에 안착한 마물을 베어내며 속력을 높여 질주했다.

‘척준경에게로 가야 한다.’

데스나이트의 거검이 번쩍일 때마다 마물의 육신이 반듯하게 쪼개졌다.

그러나.

자신으로서는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거구의 데스나이트가 지면을 박차고 달리는 소리에 마물들의 시선이 꽂혔다.

‘분명 이건 그것과 관계가 있다.’

데스나이트는 며칠 전 주군 이시운의 동상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 현상을 보며 곧 기괴한 일이 일어날 거라 직감했던 터였다.

어느새 데스나이트의 거검의 날에는 마물들의 피가 흥건했다.

차캉!

그러나.

예전같지 않은 몸으로 이 마물들을 상대하기는 벅찼다.

힘이 풀려 거검을 떨어뜨린 그에게 늑대의 형상을 한 마물들이 달려들었다.

“치잇.”

손을 뻗어 검을 잡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음을 알고 데스나이트는 메두사를 떠올렸다.

곧 자신의 육체가 저 마물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그때.

수십 개의 창이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쏟아져 마물들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타타타탁!

허공에 마물들의 핏물이 터져나갔다.

잇따라 뇌수가 터진 마물들이 혀를 길게 내뻗고 마른 바닥에 넘어갔다.

“아콘! 살아있었나.”

데스나이트는 수백의 타이탄 병사들 속에선 그에게 외쳤다.

“괜찮나?”

“덕분에 살았다.”

아콘은 창을 쥔 채 쇠갑옷이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데스나이트에게 걸어와 그를 일으켰다.

“자네도 많이 늙었구만. 이딴 조잡한 늑대들에게 그런 꼴도 당하고.”

“척 공에게 가야 한다.”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인가?”

아콘이 목을 뒤로 젖혀 위를 바라봤다.

그의 눈으로 상공에 떠올라 마물들을 뱉고 있는 게이트는 마치 지옥에서 아가리를 벌린 대형 괴물 같이 느껴졌다.

아콘은 숨이 붙어있던 마물의 목덜미에 꽂아넣은 창을 거칠게 빼내며 데스나이트와 함께 발카스의 수도로 향했다.

이시형은 여배우를 껴안고 울었다.

“컷트!”

그 소리와 함께 촬영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왔다.

“휴. 드디어 끝냈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80편에 달하는 장편 사극의 마지막 편 촬영을 마친 시형은 눈물을 닦고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시형 씨 힘들지 않아?”

“감독님. 내 나이 아직 마흔한 살 밖에 안 됐는데요?”

“그러니까 묻는거야. 안 힘드냐고.”

“아직 한창인데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릴.”

턱수염 분장을 한 이시형은 소품용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이며 건제함을 과시했다.

“참. 후련하면서도 씁쓸하네.”

그의 말에 따라 모두가 그런 느낌이었다.

스탭들 중에서 코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배우들은 웃고 있었고, 어떤 배우는 주저앉아 눈시울을 붉히며 종영의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다들 오늘은 종영 파티 제대로 해보자고요!”

시형이 외쳤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면을 밟은 두 다리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드드드드!

그와 함께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진인가.”

“땅이 흔들려.”

“갑자기 뭐죠? 뉴스에 이런 소식 없었잖아요.”

그리고 지진은 더욱 거세졌고.

시형은 휘청일 정도로 흔들리는 땅을 내려다봤다.

“뭐야? 이거 심각한 것 같은데.”

그런 그가 독백하던 그때 여성 스탭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저, 저기를 좀 보세요...!”

비명을 내질렀던 스탭이 하늘을 가리켰고, 시형을 비롯한 모두의 고개가 그곳으로 향했다.

이시형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구름을 찢고 생겨난 거대한 구멍이 하늘에 블랙홀처럼 떠있는 것이었다.

“뭐, 뭐야...?”

믿을 수가 없었다.

촬영하느라 너무 무리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인가.

그때 이시형의 귓가로 또 하나의 아주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각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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