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76화 (276/278)

제 276화

후일담- 왕년의 힘

레벨업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참으로 희한하게 들렸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아니.

낯설게 느껴지던 그 말과 내가 출연했던 드라마의 내용들이 오버랩 되어 뇌리에 스쳐갔다.

묘했다.

“아버지도 혹시 커뮤니티 같은 거 보셨어요?”

“굳이 보지 않아도 알아.”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럼 어떻게 아시는데요?”

“네가 출연했던 그 드라마 말이다. 현실로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그걸 아버지가 어떻게 아시는데요?”

물어보고 나서 내 생각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의학계에서 획을 그은 저명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각종 정재계 인사들과도 아는 사이다.

혹시 그들에게서 기밀 정보 같은 것이라도 들은걸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설마.”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난단다. 다만 그게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지.”

그리고 아버지의 낯이 심각해졌다.

“곧 헌터라는 직업이 생길거다.”

“에이.”

“그리고 현대 무기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들도 나타날 것이야.”

아버지의 진중한 말을 듣고 난 입을 닫았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헛소리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게다가 술에 취해서 이상한 말을 늘어놓은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리고 그 별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냐는 내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들 이시형에게 했던 말 그대로 세계 곳곳에 게이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군인들은 그 게이트에서 열린 마물들을 상대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경제는 코로나 사태 때보다도 더욱 공황상태에 빠졌다.

각국의 총수들은 고심에 빠졌다.

나는 아주 오래된 낡은 기억을 더듬으면서 강춘식 작가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의 소설은 외전이 없었다.

난 그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질 않았다.

수소문해서 그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는 행방불명이라도 된 것마냥 찾을 수가 없었다.

‘강춘식. 당신은 왜 다시 이런 시련을 준 것이지?’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어느 세상 속을 내가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럼 그 세상 속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숨 쉬고 살아가면서 움직이고, 그게 결국 이야기기가 되는 거예요.

난 분명 카인을 절명시켰었다.

그리고 세상의 시간은 태엽 시계를 되감듯이 돌아왔고 헌터란 직업은 웹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되었었다.

그런데 왜일까?

이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카인이 그때 죽지 않았던 걸까.

의문을 곱씹으면서 시간 낭비를 할 틈이 없다.

이 나이 먹고 난 움직여야 했다.

“부탁이 있어서 오셨다고 했는데 뭐든 말씀하십시오.”

내 앞에 국민을 대표하는 뱃지를 달고 있는 김 대통령이 말했다.

대통령들이 눈짓을 하자 그 옆에 보좌관들이 룸에서 나갔다.

“이 교수님 부탁이라면 뭐든 고민해보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는 위원장 시절 내게 큰 수술을 받고 죽다 살아났다.

그때 그는 어떤 부탁이든 말만 하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제 그 부탁을 말씀드릴 때가 온 것 같군요.”

“편하게 얘기하세요.”

“지금 당장 각성자 협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각성자 협회요?”

“인류의 군무기로는 그 괴물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협회 인사들을 배정하고, 각성자들을 모아서 대응해야 합니다.”

“각성자들이라면 점점 강해진다는 그들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내 부탁이 꽤나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한 시라도 빨리 협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도 구할 수 있고 우리가 헌터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괴물들은 미사일도 통하질 않는데 각성자들이라고 별 수 있으려나요?”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보좌관이 튀어와 대통령에 귓속말을 했다.

“..뭐?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현재 여의도에서 게이트가 열린 상황입니다.”

“하아…….”

둘은 내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일반인이 아닌 내 귀로는 그 내용이 다 들렸다.

“그렇다면 몸소 보여드리겠습니다.”

“뭘 말입니까?”

“각성자들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요.”

“설마 교수님도 각성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여의도로 향해서 상대해보겠습니다.”

“잠깐만요!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나의 은인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가시게 할 수는 없어요.”

“대신 제가 입증하면 제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곧장 여의도로 향했다.

아주 오랜만에 왕년의 힘을 보여줘야겠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시운이 여의도에 도착한 지는 한 시간 뒤였다.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수종인가..’

열린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것이 순식간에 대교를 부수고 한강물을 유영했다.

대교가 마물이 휘두르는 갈퀴에 단 번에 두동강이 났다.

사방 저 너머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상공에는 전투기들이 미사일을 요격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젠장.’

저 미사일에 맞으면 시운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현재 온전히 바람의 군왕의 힘을 사용할 수가 없는데.’

망령들의 군대를 소환할 수도 없고, 여러모로 패널티가 많았다.

옆에 쥔 일본도를 들고 시운은 기울어진 대교 위를 뛰어갔다.

[빨리 대피하십시오! 대피하십시오!]

상공에서 확성기로 시운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타탁!

시운은 일본도를 양손으로 쥐고 부서져 내려가는 대교를 밟고 뛰어 올라갔다.

자칫하면 쏟아지는 한강물에 이끌려 물속에 빠질 듯 했다.

콰아아아아-!

그때 물살이 거세지면서 마물이 거대한 대가리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저런 걸 보니 진짜 떨리네.’

크기도 크기인 데다가 흉악스러운 마물은 수룡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나 마물의 입에 달린 어린아이 크기만한 이빨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놈 찾지 말고 덤벼라.”

공중에 떠오른 시운은 수룡과 시선을 마주보며 눈싸움을 벌였다.

시운의 기감을 느꼈는지 수룡은 다른 곳에서 시선을 거두고 시운에게 돌진했다.

일본도를 치켜든 시운도 그대로 수룡에게 쇄도했다.

그때 미사일이 그들에게 떨어졌다.

‘군왕의 방패.’

순간 시운의 주위로 튀어나온 베리어가 사방을 투명하게 덮었을 때 미사일이 터지는 굉음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폐허가 된 여의도 대교에서 인간과 괴물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그림은 고스란히 상공에 떠오른 헬기에 의해 촬영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김재환 대통령은 입이 벌어졌다.

“이럴 수가….”

놀라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미사일 요격에도 살아남은 괴물과 인간이 서로 대적하고 있었다.

아니. 미칠듯이 서로를 향해 자신이 쥔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으헉!”

그것을 지켜보던 장관은 신음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광대한 마물의 꼬리가 인간에게 떨어지면서 한강물이 튀어오르는 것을 보고 말이다.

“……저거 이 교수 아닙니까?”

“맞아요.”

“대체 저 분이 왜 저기서….”

드드드드!

상공에 떠올라 그 모습을 담고 있던 헬기가 그 장면을 확대하자 이시운의 인영이 보였다.

마물의 공격에 튕겨나가 날아간 시운은 곧바로 회전해 대교에 오른발을 딛고 다시 쇄도해 마물의 육신에 미친듯이 일본도를 휘젓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장관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정치인들도 혀를 내둘렀다.

“이…… 이 교수!!!”

그때 대통령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화면은 마치 노이즈처럼 지지직 거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할!”

대통령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의학계를 빛낸, 그리고 자신의 은인인 이시운이 생사를 달리한 것을 보고 숨이 막혀왔다.

“사, 살아있습니다! 저길 보십쇼!”

경호실장의 외침에 대통령의 고개가 번뜩 들렸다.

거대한 스크린에 흘러나오던 노이즈는 걷어지고, 살아있는 이시운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수룡의 몸이 몇십 개의 파편으로 나눠지며 한강물에 떨어졌다.

“...헤치운 건가?”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던 대통령은 턱을 떨었다.

일본도를 쥐며 숨을 몰아쉬는 이시운은 마물이 죽은 것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영화 속에나 나오는 히어로 같았다.

대통령은 아까 이시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운은 몸소 자기가 뱉은 말을 저렇게 증명한 셈이었다.

군무기로도 대적이 불가능한 괴물을 단 몇 시간만에 말이다.

‘정말…… 각성자라는 사람들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건인가.’

세상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사실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져있던 이 때.

유일하게 인류를 구원할 존재를 찾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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