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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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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적 기준은 남녀 불문하고 모두 한곳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잘생긴 남자가 여장하면 엄청 예쁘듯이, 예쁜 여자가 남장하면 엄청 잘생겼다.
그로 인해서 미모의 정점에 올라서면 성별이라는 구분이 의미가 없어졌다.
그 예로. 내 여자친구가 그랬다.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사랑일 게 분명한 내 여자친구는 남자에게도 인기가 많은데 그와 동시에 여자에게도 비슷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처음에는 메신저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데 철벽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공개 고백을 하지만 역시나. 아주 조금의 고민도 없이 거절을 해 버린다.
그래서 수많은 별명 중에 철벽의 여신이라는 별명이 추가로 붙었을 정도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겠지. 아까 말했듯이 남자든, 여자든 고백이 들어오면 바로 거절하는 그녀가 왜 내 여자친구가 된 것일까.
여기에는 조금 황당한 이유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순히 그녀의 의문 때문.
나는 그녀를 중학교 때 보았고 곧장 장기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성적, 평범한 집안, 평범한 인간관계. 뭐 하나 잘난 것 하나 없는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그녀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데 이 마음을 용기내어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차일 거고, 누가 봤다면 비웃음을 살 테니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주위의 여자들이나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연예인들을 보아도 마음은 변칠 않았다.
그야 그녀보다 예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오늘도 여김없이 그녀에게 고백을 하다 차인 남자들을 보며 속으로 낄낄. 웃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용기를 가진 그들이 부러워 미칠 노릇이었다.
학교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야자를 시작하기 전,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녀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도 좋아하는데. 고백하고 싶은데. 근데 차이겠지 라고 찌질한 말을 내뱉으면서.
근데 하필이면 남들의 시선을 피해 그녀가 도망쳐 왔고 도망을 온 곳이 바로 내가 있는 곳이라는 거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술술 털어놓는 내 모습을 다 보게 된 것이고.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혐오스러울 법한데도 그녀는 예상과는 달리 내가 어디가 어떻게 좋냐고. 그럼 나랑 사귈래 라고 말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자기 친구들은 매일 마다 남자친구랑 어딜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그래서 행복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털어놓으니 애인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정말로 친구들의 말처럼 그런 감정과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믿기지가 않았다.
순간 꿈인가. 아니면 나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건가 하고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이없게도 나는 세계 제일의 미인과 교제를 하게 되었다.
교제를 시작한 다음 날, 그녀는 어제와 달라지지 않게 고백을 받았다.
이번에는 다른 학교의 킹카라고 불리는 잘생긴 운동부 남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제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남자친구가 있다며 매몰차게 거절했고, 평범한 친구들과 평범한 생활을 보내던 나는 한순간에 유명인으로 탄생하였다.
장난이겠지. 그녀가 이런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남자와 사귀겠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부러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애인 사이라면 할 만한 데이트, 스킨쉽 등을 그녀와 해보고 나니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남자친구를 사귀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확인해보고 있었다.
장난이나 괴롭힘이 아니라는 게 다행으로 받아드려야 겠지.
빠르게 깨어질 것만 같던 나와 그녀와의 교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일주일 만에 손을 잡고, 이주일 만에 키스를 하고, 한 달 만에 몸을 섞었다.
진도가 조금 빠른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운 좋게도 그녀의 친구가 섹스를 해보니 너무 황홀해 하다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처음을 증명하듯 안에서 피가 흘러나왔을 때는 마음이 철렁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여자를 내 물건으로 더럽혔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처음을 빼앗아서 섹스를 하고 나니 그녀를 향한 욕심이 생겨났다.
원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녀와 나는 알맞은 점이 많았고, 그 무엇보다 처음 했던 섹스는 하늘을 붕 떠서 날아갈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았다.
이 뒤로 나와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으음... 바람?“
다시 시간이 흘러, 나와 그녀와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이 쉬는 시간에 날 불러내 협박했다.
너 같은 쓰레기한테 내 사랑을 빼앗길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장면을 그녀가 우연히 보았고, 밀회를 하는 거라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아니야! 절대 바람 아니라고!“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소리를 쳤는데 그녀의 친구는 이걸 기회삼아 내게 안겨들며 바람이 맞다며 긍정했다.
이러면 상황이 심각해지는데. 가슴을 조리던 나는 의미를 알기 힘든 말을 들었다.
"꽤... 나쁘지 않은 감각인 걸?“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풍만한 가슴 위로 손을 가져가며 그녀는 말했다.
"에...? 나쁘지 않은 감각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녀의 친구는 당황했고.
"둘이 섹스 해봐.“
폭탄과도 같은 말이 떨어졌다.
"무, 무슨 소리야? 아니야. 밀회 아니야! 난 정말 너만을 사랑한다고. 이미 아들과 딸아이의 이름까지 생각했는데!“
"알아. 바람은 한번 해본 소리야. 둘이 그렇게 싸워대는데 어찌 착각할까? 아무튼, 둘이 섹스해 봐.“
사귀고 나니. 그녀는 궁금증이 생기면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세, 섹스라니. 나 애랑 오늘 처음 얘기하는데?“
여친이 허락한 바람이라니. 남자를 떠나 사람이라면 흥분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나한테 딱 달라붙어 있는 이 애는 나의 여자친구님보다는 아니지만 무척 예쁜 외모로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여러 소속사에서 연예인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남자친구가 있냐고 끊임없이 물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애랑 무턱대고 섹스를 하라니. 허가가 떨어지면 좋긴 하다만.
"시, 싫어!“
여친의 친구님은 예상과 다르짖 않게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거절했다.
"왜?“
"왜라니! 말도 안 되잖아! 일단 네 남친이고!“
"괜찮아.“
"아니 안 괜찮다니까?!“
"왜?“
"왜가 아니라고!“
"왜. 얘는 어차피 내 건데. 내가 너한테 빌려주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여친님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가져오자 나는 미묘한 감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내 모든 게 그녀의 것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가 바라는 모든 걸 해줄 의향이 있었다.
자신의 친구와 학교 옥상에서 갑작스럽게 섹스하라는 말에도.
"너... 이상해.“
친구는 내 친구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며 현실을 부정했다.
"싫어?“
"으응... 싫어. 아니, 절대 못 해.“
남자가 처음을 아끼려고 하지 않듯, 여자도 마찬가지로 굳이 처음을 아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절하는 이유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쓰레기한테 자신이 봐도 아름다운 육체를 바쳐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기 때문.
"그럼 우리 끝내자.“
"어...? 끄, 끝?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나 좋아하지 않아?“
흠칫.
숨겼던 것일까. 친구는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다른 애들도 너랑 비슷하긴 한데 너는 너무 노골적이었어. 마음에 안 들어.“
나라도 친구 한 명이 동성애를 하는 것으로 모자라 나를 몰래 좋아하고 있다면 마음에 안 든다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 아아.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곁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날이었는데 지금부터 친구는커녕 말조차 섞지 않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몸을 증오하는 대상에게 바치더라도.
"하, 할게. 섹스 할게.“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퍼졌다.
나의 여친님의 친구는 오돌오돌 떨면서도 종소리를 리듬 삼아 천천히 교복을 벗기 시작했다.
"꼭 해야 해?“
"왜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조금 그래서.“
"그래? 그럼 안 해도 돼.“
다행히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 나는 꽤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하지 않으면 헤어질거라는 협박은 하지 않았다.
"아, 아니야. 할게. 나, 나 괜찮아.“
그러나 그녀의 친구는 달랐다.
동성애를 하는 것으로 모자라 좋아하는 것까지 들켰는데 이미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일 게 확실할 터. 조금이라도 점수를 타고자 옷을 벗는 속도를 높였다.
"안 해도 되는데. 정말 괜찮아?“
"으, 응. 헤, 헤헤. 네가 좋다면 괘,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지. 몸과 말투는 오돌오돌 떨려오고 있었다.
"괜찮다네?“
여친님은 불쌍한 자신의 친구의 모습을 보아도 지금 생긴 의문을 해결하는 게 먼저인지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진짜 괜찮아?“
"괜찮으니까. 해... 하라고!“
마지막으로 확인 차. 물어보는데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 상태로 오히려 어서 범하라고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수업을 땡떙이 치고, 부모님보다도 사랑하는 여친님의 앞에서 오늘 처음 말을 섞은 여자를 범했다.
그리고 여친님은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레토라레의 성향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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