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11화 (11/142)

〈 11화 〉 졸업식

* * *

시간이 흘러 졸업식의 날이 밝아왔다.

"오, 오래전부터 널 좋아했어. 나랑 사귀어줘!“

얌전히 반에 짜져있던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옆자리의 나의 여자친구님. 지영이를 데리고 나갔다.

뭔가 낌새가 심상치 않아 따라 나왔더니 역시나. 임자 있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저게 미쳤냐며 숨어서 몰래 지켜 보고 있다는 걸 망각한 채 달려들어 멱살을 부여잡겠는데.

"싫어.“

"아......“

내가 지영이한테 일편단심이듯 아마 지영이도 나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확실하다.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이상에야 확답을 내릴 수는 없는데 그래도 난 확실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이면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따라 나온 내가 갑작스럽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미 예상 했으면서, 결과도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서 믿질 못하다니. 남자친구로서 실격인 걸까.

아니지.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잘난 게 대체 뭐가 있을까.

지영이가 강제로 운동시켜서 얼굴은 어느 정도 각이 잡혀 평범함에서 조금 위에 위치해 있었고, 키는 170 후반, 그러나 몸은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태였다.

이것만으로는 지영이라는 천생의 여자를 잡기 어려울 터.

그럼 다른 건 뭐가 있을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거? 그건 머리 좋은 지영이가 자신이 노리는 대학에 함께 가자며 공부시킨 덕에 얻은 결과이지 내 스스로 얻은 게 아니었다.

집안은 평범하고 외모도 평범하고, 어느 특정 분야에 정점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지영이에게 고백한 남자는 어떤가.

소위 일진이라는 분류에 섞여 있긴 해도 잘생긴 외모, 쭉 뻗은 기럭지 덕에 180이 넘는 큰 키, 집에 돈도 많은지 자꾸만 반 애들한테 먹을 거 사주는 집안 내력까지.

내가 비비거나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니 불안할 수밖에.

"그 새끼가 뭐가 좋아서 계속 사귀는 건데? 내가 그 새끼보다 못한 게 뭐냐고?“

그는 내가 지영이와 사귀기 전부터 지영이에게 구애를 해왔었다.

처음에 고백했을 땐 어땠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이제 대놓고 나는 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티를 내는 것으로 모자라 좋아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누가 본다면 연인 사이로도 보이겠지.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조합은 말이지.

그래서 반 애들은 지영이와, 저 남자에 대한 사랑이란 감정을 숨기는데 급급하기에 바빴다.

왜냐고? 아까 내가 말했다시피 비교 되상이 되지 않으니까.

나라도 저 남자랑, 여자랑 사귀려고 마음 먹을 테니까.

발버둥을 쳐 봐야 뜻대로 되지 않을 걸 알아서 일지감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지영이와 사귀기 전까지.

"네가 뭔데 훈이한테 새끼거리는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하나 있긴 하네. 아니 두 개인가?"

"그게 뭐야?“

"섹스.“

"뭐?“

"섹스.“

"세, 섹스?“

"아아. 저 미친... 큼.“

나도 모르게 지영이를 향해 욕을 할 뻔했다.

아니, 어떤 여자가 자신한테 고백해오는 남자에게 현 남친보다 섹스를 더 못할 거 같아서 고백을 거절한단 말인가.

저 봐라.

섹스라는 말에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는데 이미 갈 때까지 간 사실을 깨닫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잘 못 걸리는 순간 나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좆 크기.“

"......“

왠지 나머지 하나가 저거일 거 같았는데 역시나.

"그게 다야. 별거 없지?“

씨익.

지영이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너무 화사한 미소였다.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섹스를 못 하는지. 내 좆이 작은 건지.“

"안 봐도 될 거 같은데.“

저 말처럼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그야 그럴 것이 나와 섹스를 한 여자들 대부분은 평범한 남자들로는 만족하지 못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되돌아와 몸을 섞었고,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면 내게 완전히 빠져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같은 반이자 지영이의 절친인 은정이가 있다.

은정의 외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섹스하고 있는 여자들이 서른 명 넘게 있다.

"시발 진짜.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게임, 둘은 성에 관련된 것.

그는 발끈하며 지영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팔방미인인 지영이는 무술까지도 연마를 해 와서.

"크헉!“

자신에게 뻗어진 손을 붙잡아 제압하면서 다를 걸어 넘어뜨렸다.

"내가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이런 걸 배웠어.“

내게도 해줬던 말.

뭣도 모르고 자신을 제압해서라도 어떻게 해 볼 남자들이 하도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무술을 배우기에 이르렀다고.

저거 때문에 나는 지영이가 밤 늦게 밖을 돌아다녀도 안심하고 있을 수가 있었다.

"꺼져. 추잡스럽게 굴지 말고.“

몇 년 전에 차였고,

이미 임자가 생긴 여자에게 계속 고백을 해오다니, 잘생기거나 집안이 좋다는 걸 떠나서 남자나 여자는 저런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 않을 거다.

그만큼 추잡스러울 따름이니.

"돌아갈까?“

지영이가 절대 그리 생각할 일은 없겠지만 그녀가 반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돌아가 있기로 했다.

"왔냐?“

"어.“

"무슨 일이래?“

"아무 일도 없었어.“

"자랄.“

반으로 돌아오니 내 친구가 곧장 질문을 던져왔다.

그럴 수밖에. 그놈은 모두가 다 모여있는 반에서 대담히 지영이를 데리고 나갔으니.

"정말이야.“

"구라도 정도껏 하고."

역시 무리인가.

그가 지영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학교에 널리 퍼진 사실이라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을 믿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고백하지 않았냐?“

낄낄거리며 친구가 말했다.

정곡을 찔리니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럴 거 같더라. 뭐만 하면 지영이가 너한테 협박을 당하더니 마느니, 내가 구해줘야겠다느니 마느니 하더만.“

뒤에서 그런 헛소리를 짓거리고 있을 줄은.

영화나 드라마, 웹툰으로 인해서 잘생기고 집에 돈도 많아 잘난 애들은 당당하게 행동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러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찌질하게 행동하는 놈들도 있다는 걸 이번에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아. 왔어?“

"응.“

친구랑 얘기하고 있던 사이. 지영이가 돌아왔다.

"어땠어?“

"어, 어? 뭐가?“

"다 봤을 거 아니야. 감동했어? 반했어?“

몰래 지켜보고 있던 걸 다 들킨 건가.

지영이는 해맑은 미소로 어떘는지 짓궂게 물어왔다.

당연한 거 아닐까. 사랑이 배신당하지 않았는데.

"둘 다.“

"에게? 둘 뿐이야?“

뭘 바라는 거지.

"더 있긴 한데. 여기선 조금.“

"음... 알았어.“

안 그래도 내 친구랑 비슷하게 궁금한 반응인 반 애들의 시선이 모여있는데 수치심 느끼게 이런저런 말을 토해내기란 껄끄러웠다.

"쯧. 나도 여친이나 만들어야지 원.“

눈꼴 시리다기 보다는 너무 부러워 미치겠는 친구는 주먹을 꽉 쥐며 뒤를 돌아보고 있던 몸을 바로 하여 어두컴컴한 스마트폰 화면에 불을 밝혔다.

그렇게 잠시 뒤. 졸업식이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우리들은 강당으로 향하였고, 무사히 졸업식은 끝이 났다.

*

"여, 여기서?“

어깨가 하늘로 승천할 정도로 자랑스러운 나의 여자친구님. 지영이의 부탁으로 부모님을 먼저 돌려보낸 뒤, 나는 지영이와 함께 반으로 돌아왔다.

다른 애들은 이미 눈시울을 붉히며 친한 친구들과 사진을 찍거나 부모님과 함께 학교를 나간 상황이라 아침까지만 해도 떠들썩했던 반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왜? 괜찮지 않아?“

"아니... 난 별로인데.“

"왜. 좋잖아? 평일 오전 학교에서 하는 거.“

여전히 밖에는 졸업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있기에 떠들썩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데 지영이는 누구가 볼지도 모른다는 겁도 없는지 나를 벽에 밀어 넣은 상태로 허벅지를 만지작거렸다.

"나 되게 흥분 돼.“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오르는지. 지영이의 몸에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들키면......!“

"뭐, 들키면 들키는 거겠지. 상관없잖아?“

"그게 왜 상관이 없어.“

"졸업식이기도 하니 훈계만 조금 하고 돌려보낼 게 뻔한데.“

"선생님이 아니라면.“

"보여주지 뭐.“

참. 겁도 없다.

누가 영상을 찍어 협박이라도 해 오면 어쩌려고 이런 건지.

지영이가 워낙 이쁜 나머지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크지 않을까.

나라면 지영이의 몸을 마구 탐할 수만 있다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될 의지가 있을 게 분명했다.

"겁나? 내가 협박당해서 범해질까봐?“

얘 뭐 독심술사야? 못하는 게 없다는 걸 알았어도 독심술까지 할 줄이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적인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퍼트리라면 퍼트리라지.“

그녀는 당당했다.

"그거로 협박해서 범할 건데. 순순히 따라주면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새끼랑 평생을 함께할 것도 아닌데 언젠가는 퍼질 거 아니야?“

그... 렇긴 하지.

평생 살 것도 아니니 계속 범해지다가 참다못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퍼뜨릴 거면 퍼트리라는 식으로 나오며 경찰에 신고하겠지.

"근데. 그러면 우리 대놓고 해도 되지 않을까? 후후.“

"......“

"어차피 퍼진 거. 공공장소에서 해도 사람들은 저 새끼들 또 저러네 하고 넘어갈 것 같아서 괜찮을지도.“

이건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어가 있다고 해야 하나.

꽃동산도 아닌 이건 대체.

"아무튼, 하자. 나 흥분했어. 네가 몰래 지켜보던 모습이 너무 귀엽더라고.“

지영이는 고백받는 장면을 몰래 지켜보던 날 보았는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요염하게 핥았다.

"사랑해. 훈아.“

내 뒤통수에 손을 얹혀 고개를 숙이게 만든 다음. 지영이는 입을 맞추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