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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토라세 여친님-15화 (15/142)

〈 15화 〉 자취방

* * *

언제까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며 효녀인 지영이는 나를 꼬드겨 알바를 했었다.

그래서 누나의 카페에서 일하며 높은 시급을 받고 이제 갓 스무 살이 들고 있기엔 꽤 많은 돈이 통장에 꽂혀있었다.

그래도 두 집안에서는 기특하다며, 또, 학생이면 알바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며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만.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야?“

되도록 부모님 돈은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백화점에 도착한 지영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카드로 긁어대고 있었다.

만약 신용카드였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아니지. 체크라도 이렇게 써대는데 지금도 난리였다.

"왜? 다 필요한 거잖아.“

"그렇긴 한데......“

꼼꼼한 지영이는 나중을 대비해서 필요한 건 전부 사 놓았다.

굳이 따지자면 반드시 쓸 것들이긴 한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것들을.

귀찮더라도 그때 필요하면 뒤늦게 사러 와도 전혀 늦지 않을 텐데 말이지.

"그냥 사 놓지. 뭐.“

돈이 필요하다면 모델이나 다른 분야에서 손쉽게 큰돈을 한 번에 벌 수 있는 그녀로서는 뼈아픈 지출이 아닌가 보다.

어우. 지영이와 평생 살 거라면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

"커플이신가요?“

"아뇨. 신혼이예요.“

"넷.....?!“

가전제품 판매장에 TV를 보러 가자.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지영이는 장난을 치고 싶어졌는지 커플이냐는 물음에 내 팔을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니 이제 막 앳된 티를 벗기 시작하는 남녀가 신혼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못해도 20대 초반인데.

"와... 빠, 빨리 결혼하셨네요."

저렇게 예쁜 여자가 뭐가 못났다고 평범하게 생긴 남자와 이리도 빨리 결혼을 한 걸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생각없이 혼인을 맺을 리가 없을 텐데... 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직원이었다.

"농담이에요.“

"네?“

"농담이라고요. 신혼이 아니라 예정이에요.“

"예, 예정?“

지영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듣고 놀란 사람은 이번엔 나였다.

그 말인즉슨 나랑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오르면 처음 사귀기로 한 날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져 현실이 아닌 꿈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그러시군요.“

제발. 제발 지영이가 이 주제에 대한 말을 이어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내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 걸까.

"거실과 방에 둘만한 TV를 볼 수 있을까요?“

"이, 네. 따라오세요.“

남녀 둘이서 신혼집을 차리는 것처럼 TV를 보러 왔다고? 직원은 정말 신혼이 아닌 건가.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장사는 해야 하니 지영이의 요구대로 우릴 이끌고 적당한 TV를 소개해 주었고, 우린 그중에서 두 대를 구입해 배송시켰다.

"빠진 건 없겠지?“

다리가 저리도록 백화점을 돌아다녀 가전제품과 옷 등을 모두 산 뒤에 마땅히 사야할 게 생각나지 않는 지영이는 옆에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내게 질문을 툭 던졌다.

"나는 딱히.“

"그래?“

"뭐 있어?“

"생각해 봐.“

"음......“

뭐지. 빠진 게 있다는 듯한 저 반응은.

나는 유심히 고민에 빠졌다.

반찬거리는 짐을 자취방에 두고 다시 나와 마트에서 사기로 했는데.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

나한테 물어보는 것을 보니 나한테 필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그럼 따라와.“

"응.“

순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도달한 곳은.

"아, 아아아.....!“

가전제품 층. 그것도 컴퓨터 상가였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영이를 쳐다보지만, 그녀는 너무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집에서 같이 해야지 않을까?“

그녀는 원래 컴퓨터 게임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는데 내가 게임 하는 걸 보고 따라 시작했다.

모든 게임은 재미를 서서히 붙이기 시작해야 오래 하는데 초심자가 막 입문하면 당연히 뭐가 뭔지 잘 몰라 재미를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 짧고도 긴 시간을 버티지 않는다면.

그런데 지영이는 내가 게임을 좋아한다고 재미를 붙이려고 노력했으며 결국에는 나와 자주 게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 자취방에 컴퓨터를 두 대를 놓고 함께 게임을 하자는 말을 한다.

진짜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남자들의 이상형이 예쁜 여자라 하는데 솔직히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여자라면 굳이... 음. 그래도 못생긴 수준은 아닌 평범함 이상의 외모를 지녔다면 환상의 여자라고 생각할 터.

물론 게임하는 남자의 입장에선.

"훈이 네가 골라줘.“

"저, 정말 그래도 돼?“

"응. 거실 구석에 놓을 자리를 생각해 두었으니까 편하게 골라.“

"지영아! 사랑해!“

"아. 왜 이래.“

정말. 정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영이와 사귀게 된 그때가 흑역사가 아닌 인생의 전환점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 부럽다.“

얼굴도 예쁘지, 게임도 같이 해주는 것으로 모자라 두 대를 놓고 하자고 여자가 직접 그런 말을 꺼내니 주위에 남자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나를 향해 질투하는 것 같은데.

후헤엥. 부럽지? 부럽지?

나는 지금 마둥석이 다가와 질투하며 주먹을 들어도 가뿐히 맞아줄 의향이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100만 원 초반대로 컴퓨터 두 대를 구입해 배송시켰다.

*

우린 짐을 자취방에 두고 나왔다.

방금 백화점에서 배송시킨 것 전부는 저녁이 다가오는 늦은 오후에 배송한다고 했으니 2시 반인 지금으로서는 딱히 자취방에서 물건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마트는 마지막에 들리자.“

아직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제일 먼저 마트를 들러 식자재를 산다면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 들고 있어야 할뿐더러 식자재가 물러질 수 있다며 마지막에 들리기로 하고는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았던 헬스장으로 향했다.

"나쁘지 않네.“

신발장은 깔끔했고, 바로 옆, 헬스장 안을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역시나 깨끗해 보였다.

"안녕하......“

근육 빵빵한 헬스장 트레이너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얼굴로 이제 막 안에 들어선 우리를 향해 인사를 건네다말고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운동에 중독된 사람 치고는 남자이긴 남자인 모양. 지영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차마 떼지 못했다.

"잠시 둘러봐도 되나요?“

"......“

"저기요?“

"핫...! 네, 네! 뭐, 뭐라고 하셨죠?“

"둘러봐도 되나요?“

"물론이죠. 얼마든지 둘러보세요. 하, 하하.“

옆에 난 보이지 않는지 트레이너는 붉어진 얼굴로 지영이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엄마야!“

지영이가 트레이너의 옆을 지나쳐가고, 그 뒤를 따라 내가 지나쳐가려던 찰나. 그제서야 나를 발견한 트레이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몸집과 달리 귀엽게 놀라니 갭모에가 상당했다.

나를 질투하는 눈빛으로 보지만 않는다면 좋게 볼 텐데.

"흐음. 청소도 어느 정도는 돼 있네.“

너무 구석진 곳까지는 청소하지 않아 먼지가 수북했는데 아무 문제는 없었다.

눈과 손이 닿는 곳만 깨끗하면 일단 청소는 하는 편으로 볼 수 있으니.

"사람 많아요?“

"사람이요? 음... 저녁 때 운동하시는 분들이 꽤 있긴 하지만 많다고는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요?“

지영이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지금이야 평일 오후라서 트레이너 외에 헬스장에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경우라서 알 수 없지만, 일단은 헬스장을 다니는 사람들 절대다수가 남자고, 몸과 얼굴이 너무나 착한 지영이에겐 탐탁지 않은 요소이기 때문이다.

"저희 헬스장이 이 근처에선 가장 크고 시설도 최근 거입니다. 그리고 만약 등록하신다면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무료요?“

쫑긋.

지영이의 귀가 열렸다.

방금까지 백화점에서 몇백을 아무 걱정도 없이 긁었던 그녀가 고작 몇만 원, 몇십만 원 때문에 솔깃해하는 게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저만요? 제 남편은요.“

또 날 설레게 신혼처럼 남편이라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남편.....?!“

얼굴이나 몸매를 보아서는 내게서 충분히 지영이를 빼어올 수 있다고 판단해 노리려고 했는지 트레이너는 남편이라는 말 한마디에 과할 정도로 놀랐다.

"네. 제 남편이요.“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유부녀라고 소문을 내서 다가오는 남자들을 미리 차단하려는 속셈이겠지.

"남편분도...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헬스장에서는 되도록 예쁜 외모의 회원을 구비해 두고 있어야만 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헬스장의 주 이용 고객이 남자라서 그런 남자들을 자신의 헬스장에 오게 만들려면 예쁜 여자가 한몫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레이너는 나까지 무료로 등록해 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 좋아요. 그럼 등록할래요. 훈아. 등록하고 와.“

"알았어.“

나는 트레이너를 따라가 등록을 했다.

참고로 지영이의 정보는 철저히 배제했다.

최소한의 정보만. 이름이나 성별같이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만.

전화번호 같은 건 남편인 나한테 전화하면 된다고 내 번호만 기재하고 헬스장을 나왔다.

"훈아. 학교나 한번 들릴래?“

"학교?“

"응.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학교 지리나 알아두자고.“

대학교는 고등학교를 아직 졸업하기 전에 입학 면접을 보려 한 번 왔었는데.

그땐 지영이는 무조건 붙되 나는 떨어질 가능성이 커서 긴장한 탓에 학교 내부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럴까?“

고등학교와는 달리 지정된 반은 없고 자꾸만 이동해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강의실을 구경해 보기로 학교를 향했고, 약 한 시간가량 둘러본 뒤에야 학교를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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