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입학식
* * *
과연 내가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잘 사귈 수야 있을까.
된다면 예쁜 여자친구나 잘생긴 남자친구를 사귈 수야 있을까.
성적을 잘 받아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까 등.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서도 난 계획대로 잘 될 거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또래의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신입생이세요? 저도 신입생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그중에 외모에 자신 있는 남자들은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지영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신입생이지? 안녕~! 우리 친하게 지내자.“
반면에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게 예쁜 여자인 지영이에게 빌붙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모조리 얻어보겠다는 나쁜 생각을 품고 다가오는 여자들도 있었고.
몇 명은 정말 지영이에게 홀려버린 남자와 여자도 존재했다.
"귀찮네.“
신입생부터 재학생. 심지어는 교수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들까지 지영이를 귀찮게 구니 그녀는 다시금 귀찮은 신입생 생활을 해야된다는 것에 한탄했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지금은 남자친구인 내가 있어서 조금 덜할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해 지영이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OT는 못 빼지?“
"되도록 다 참여하라고까지 말하는데 빼기엔 눈치가 보이지.“
지영이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힘없이 물었다.
인터넷에서 알아본 바로는 OT는 자유롭게 뺄 수는 있어도 몇몇 질 나쁜 선배가 있을 수도 있으니 편하게 대학 생활을 하려면 꼭 참가하는 게 좋다고 했다.
참가해서 선배들과 친해지면 특정 교수님의 시험 출제 방식이나 족보를 얻을 수도 있다며.
"하아... 귀찮아. 집 가고 싶어.“
어지간히 가기도 싫나 보다.
뭐, 내가 지영이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는데 지금도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를, 정확하게는 지영이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을 보면 이해할 만했다.
"킁킁.“
"뭐해.“
"훈이 냄새로 행복을 얻고 있어.“
어느새 그녀는 얼굴을 파묻은 것으로 모자라서 개처럼 냄새를 맡고 있었다.
뭐하냐고 물으니 내 냄새로 행복을 얻고 있다고......
나도 뭐. 지영이의 냄새로 행복을 얻음과 동시에 안정을 얻긴 하니 하지 말라고 하기가 조금 그런데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러니 조금 눈치가 보였다.
아니지. 아니야. 내 여자친구야. 지영이는 단순히 남자친구의 냄새를 맡는 것뿐이니 전혀 문제 될 건 없어! 그러니 어이 너! 날 죽일 것처럼 쳐다보지 마! 그리고 선배로 보이는 당신! 나랑 아는 사이야?! 왜 주먹 쥐고 있어! 불안하게.
나는 이미 선배들에게 찍힌 듯한 느낌이 드는데. 내 착각이길 빌었다.
개새끼들.
"신입생 여러분들 중에 안 오신 분은 한 명도 없으시죠?“
단상 위에 올라간 젊은 남자가 마이크에 대고 그렇게 물었다.
보아서는 학생회 사람 같은데 생각이 없는 건가. 고등학교라면 근처 중학교에서 올라오니 알면 식이 있는 애들이 다수 있을 텐데. 여긴 대학이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 전국에서 온 신입생들이 많으니 저렇게 물어보면 확실하지 않으니 우린 대답할 수 없다.
"뭐, 다 모인 것 같으니 입학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와아아~!“
환호성과 박수를 유도하지만 따라하는 신입생이 아무도 없어 뻘쭘하게 큼. 거리며 입학식을 이어갔다.
누군지 모를 아저씨가 올라와서 말을 하고, 또, 높으신 분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올라와서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
"신입생 대표. 윤지영.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갔다 올게.“
"응 잘 갔다 와.“
나, 나는 당당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영이에게 시선이 고정되자 나는 대담하게 지영이의 얼굴을 잡아끌어 입을 맞추었다.
후후. 이 정도면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추는 알콩달콩한 커플이라 끼어들 틈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는 놈들이 있겠지?!
"귀여워.“
내가 무슨 생각으로 입을 맞추었는지 깨달은 지영이는 아까까지 다 죽어가던 표정은 어디 가고 화사한 미소로 말하며 이번에는 지영이가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춰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갔다 올게.“
신입생 대표로... 뭐였지? 선서? 아무튼, 그런 의미 없어 보이는 걸 하러 단상에 올라간 지영이는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을 받아 안 그래도 아름다웠던 얼굴은 더더욱 빛이 나기 시작했다.
"선서.“
맑고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져 이 넓은 공간을 가득 메웠고. 고작 선서했을 뿐인데 내 자랑스러운 여자친구님에게 반해버린 남자들과 여자들이 수도 없이 생겨났다.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내 옆으로 돌아온 지영이에게 고생했다고 하니 그녀는 말 몇 마디 하는데, 고생을 느끼냐며 묻는 듯이 픽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말 의미 없는 것들.
지영이의 선서가 있고 난 후로 20분이 더 지나서야 입학식은 막을 내렸다.
*
"우린 저 버스인가 봐.“
입학한 과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은 한 버스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저 버스가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겠지.
"훈아. 여기 앉자.“
"아... 알았어.“
버스에 올라타고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지나 맨 뒷좌석을 향해 습관적으로 거침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내 팔을 잡아당기며 지영이가 중간 좌석에 앉자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이런 버스에 올라타면 자연스럽게 우린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물론, 난 지영이와 사귀고 나서부터 그랬는데 지영이는 언제나 맨 뒷좌석이 고정이었고, 사귀고 난 이후로는 덩달아 나 또한, 뒷좌석에 앉았다.
아무튼, 지금도 뒷좌석에 앉는다면 의도치도 않게 찍혀버린 선배들에게 더더욱 찍힐 우려가 존재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저새끼는 뭔데 저기에 앉는 거냐? 신입생 아니야? 대담하네 새끼. 등.
전부 내 주관적인 생각이긴 한데 지영이가 맨 뒤가 아닌 중간 쯤에 앉자고 한 것만으로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안녕~! 이름이... 지영이지?“
우리가 앉은 바로 옆자리에 한 여자가 앉았다.
그녀는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에 다가와 친하게 지내자고 지영이에게 인사를 건넸었던 신입생이다.
"응. 지영이 맞아."
"내가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네. 난 이다혜야. 스무 살이고. 아. 혹시 스물한 살 이상인가?“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에는 같은 1학년이더라도 나이가 천차만별 달랐다.
평균적으로 1~2살 차이지만 간혹가다가 인생의 4분의 1은 더 산 어르신이 1학년이라는 명찰을 달고 강의실에 앉아 있을 때가 있었고, 그걸 고려해서 이다혜는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져왔다.
그러나 이다혜의 외모는 평범하기 그지없었고, 그렇다고 몸매가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니 지영이를 향해 물어보았겠지만 그녀는 이러한 이유로 흥미가 아예 없는지 창가 쪽에 앉아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바빠서 내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도 스무 살이니까 말 편하게 해.“
"그, 그래?“
왜 대답은 옆에 앉은 남자가 계속 하는 거지 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둘은 무슨 사이야?“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우리가 대놓고 키스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야 그럴 것이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했는데 당연히 애인 사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었다.
"딱 보면 몰라?“
"......“
"......“
그렇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그걸 굳이 물어보냐는 것처럼 날카로운 어투로 지영이가 말했다.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하, 하하하. 그렇지? 너무 잘 어울린다.“
"쯧......“
같은 과의 여학생이며 같은 나이, 친근해 보이는 성격까지. 친구 하나 없는 지영이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괜히 성질을 부려서 괜히 다가오는 애를 밀어내고 있으니 남자친구 입장인 내겐 별로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난 미소가 그려졌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나라는 남자가 남자친구일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에 불쾌함을 들어낸 것 같았으니.
"기분... 나빴어?“
"......“
"미안해. 사과할게.“
"......“
지영이는 대답이 없었다.
어지간히도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였는데 이다혜의 말이 결정타가 되어 분노가 피어 올라 말조차 섞기 싫나보다.
보기에는 좋은 애 같아 보이는데 둘이 친해지게 내가 징검다리가 되어야겠지 하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으면서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너 돈 많아?“
신입생처럼 긴장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한 남자가 다가와 다짜고짜 돈 많냐고 물어왔다.
뭐야. 이 사람.
살짝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선배처럼 보이니 가뜩해야겠지.
"아니요.“
"집 잘살아?“
"못 사는 건 아닌데.“
"평범?“
"네.“
"잘하는 건 뭔데.“
"네? 그게 왜요?“
여자한테 듣는다면 얘가 나한테 호감이 있나 생각할 텐데. 남자한테 들으니 기분이 영 별로다.
"잘생긴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왜 사귀냐?“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지영이를 겨냥해서 물었다.
"......“
그제서야 지영이는 창가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그는 싱긋. 웃으며 손을 살며시 흔들었다.
스윽.
지영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흠.....?“
그는 어색하게 흔들었던 손을. 정확하게는 손목에 걸쳐진 명품 브랜드 시계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꿉친구야?“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아니요.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어요.“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정도로 나와 지영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겠지.
솔직히 내가 다른 사람 입장이었으면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런데... 그런데. 우릴 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냐?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하아... 귀찮게. 진짜.“
깊은 한숨이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제가 먼저 고백했어요. 첫눈에 반해서요. 왜요. 이상해요?“
"아니. 이상한 건 아닌데.“
직설적인 지영이의 말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말만 그렇지 속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요? 그거참 다행이네요. 제가 훈이랑 사귄다고 제가 훈이한테 협박을 받고 있다느니, 돈이 많냐느니 등 온갖 개소리로 지랄하는 새끼들이 많았는데 선배는 우릴 그렇게 안 보네요?“
"그, 그렇지.“
"헤에... 모두 그랬으면 좋겠네요.“
후후.
지영이는 너무나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끝냈다.
어머나. 너무 멋져.
"그, 그러게... 하, 하하.“
기가 확 눌린 그는 도망치듯 걸음을 옮겨 뒷자리로 향했고, 버스는 OT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모두 다 모였을 때.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