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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토라세 여친님-18화 (18/142)

〈 18화 〉 OT

* * *

우리 학교 OT가 시작되는 숙소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지 재학생 한정적으로 떠들썩했던 버스 내부는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아마 밀려오는 수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잠에 빠진 게 아닐까.

이런 적막 속에서도 어젯밤에 격렬함 밤을 나와 함께 보내었던 지영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내릴래?“

"뭐?“

애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창밖을 보면 온통 풀과 나무밖에 없는 산 중턱인데.

"내려서 이 근처 모텔 가자. 나 하고 싶어 졌어.“

내일 대학 간다면서 오늘 하루 제대로 해보자며 정말 죽을 것처럼 사랑을 나누었던 게 바로 어젯밤, 오늘 늦은 새벽인데.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산 중턱이라니까. 모텔이 어디 있겠어. 내렸다가는 바로 노숙할 판인데.

"헙.....?!“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다혜는 자라는 잠은 자지 않고 우리의 대화 소리를 엿들었는지 동그랗고 크게 떠진 두 눈으로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그녀의 숨 막히는 소리를 듣고, 내 어깨너머로 지영이의 시선이 닿으니 곧장 눈을 감으며 코를 골았다.

뭐랄까. 여자보단 남자에 가까운 우렁찬 코골이를.

오히려 더 이상한데.

"갈래?“

시선을 떼어 다시 내게로 가져온 지영이는 긍정적인 대답을 재촉하듯 입을 열었다.

"지영아. 하루만 참자. 내일 아침에 돌아갈 텐데.“

"......"

"지금 하루도 채 남지 않았는데 꾹. 참자. 응?“

"......“

"그리고 지영이 너는 여자 방에서 안 나와도 돼. 선배들이 남자 방으로 가자 하면 굳이 못이기는 척 따라가지 말고 술이 약하다면서 먼저 자.“

어쩔 수 없다.

나한테 자랑스러운 여자친구님이 있어도 그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니까.

솔직히 4년 동안 여자친구만 있지 친구 없는 찐따로 살아가는 게 말이나 되는 거냐.

못해도 같은 과 선배나 동기들과 안면이 터서 인사라도 하는 사이가 되면서 두세 명의 절친을 만들어야 정상적인 대학 생활이 될 것만 같았다.

"하아... 알았어.“

"화난 거 아니지?“

"아니야. 그런 거로 화가 날 리가 없잖아. 그냥...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어서.“

아마도 임자 있는 지영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바라보는 남자 선배들이겠지.

참고로 신경 쓰인다는 말은 호감이 아니라 불쾌함으로 한 말이다.

"미안해.“

"아냐. 네 잘못도 아닌데 뭘.“

얼마나 가고 싶지 않으면 이렇게 말하는 건지 원.

미녀란 삶이 매일같이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지영이와 사귀고 난 후로 깨닫게 되었다.

"하아아.“

다시금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지영이가 내 품에 안겨 왔다.

"훈이 넌 괜찮아?“

"나는 뭐. 괜찮지 않을까?“

"화 안 나?“

그녀가 말하는 건 아마 자신이랑 어울리지 않는 남자라며 주위에서 온갖 비하된 말과 과장된 소문 때문에 괴롭거나 화가 나지 않냐고 묻는 것 같았다.

지영이가 적당히 예뻐야지. 너무 예쁜 나머지 지영이의 곁에는 정신이 나간 것들이 너무 많이 꼬여서 탈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지영이와 헤어지라면서 양아치들이 모여 나를 집단 구타를 한 적이 있었고, 술도 먹지 않은 맨정신을 가진 성인 남자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협박을 했을 정도이니.

"시비를 걸면 경찰 부르거나 나도 때리지 뭐.“

집단 구타를 당한 직후, 눈물을 글썽이며 걱정하는 지영이의 모습을 보고 두 번 다시 일방적으로 맞고 있지 않겠다며 도장을 다닌 지 어느덧 몇 년이었다.

누가 그랬지.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큰 동력원은 바로 사랑이라고.

이게 헛소리가 아닌지 나는 지영이의 눈물을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며 이 악물고 훈련한 덕분에 일반인은커녕 선수까지도 규칙이 없다면 이길 수가 있었다.

실제로는 선수와 싸워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자신감이 그만큼 커졌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말.

"얼굴은 때리면 안 돼. CCTV도 없는 곳에서 피가 잘 안 나는 부위를 때려.“

"알아. 알지.“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을 배운 사람이 일반인을 때린다면 처벌 수위는 오히려 내가 커지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닌데 주먹을 휘두른 원인을 먼저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밑도 끝도 없이 너 선수네? 하고 처벌 수위를 올리는 이 정신 나간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이래서는 날 폭행하는 것들을 피해 운동을 한 게 손해처럼 느껴졌다.

그냥 왜소한 샌드백이 듬직한 샌드백으로 탈바꿈한 거지 뭐. 슈발.

"너도 모르게 얼굴 때려서 감옥 가도 난 기다릴 거야.“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

나도 지영이가 범죄자가 되었어도, 십 년이 넘게 감옥살이를 하다 나온다고 해도 절대 이 사랑을 놓지 않을 거라 마찬가지로 확신했고, 그러기로 했다.

"나도 그래.“

"응? 난 괜찮은데? 진순미 여사님께서 보호해 주실 걸 뭐.“

"......“

"농담이야.“

별로 농담 같지가 않다.

현 세상에서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니까.

*

드디어 숙소에 도착하자 우리는 각자 묵을 방에 짐을 내려놓고 운동장이라고 해야 하나. 운동장이라 하기에는 작디작은 공간에 모여 재미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활동을 했다.

그렇게 해가 떨어지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곧장 OT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술을 퍼 먹기 시작했다.

"신입생 대표. 존나 예쁘더라.“

"인정. 미쳤더라. 잠깐 봤는데 무슨 여신인 줄.“

"와. 시발 빨통 장난이 아니던데. 혼혈인가?“

선배라는 작자들이 벌써 취했는지 신입생 대표의 남자친구 앞에서 음란 패설을 토해내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문제는 4학년인가. 아니면 학교 내에서 힘이 강한 것들인지 제재하는 선배들은 아무도 없었다.

"남친 있는데 그만해라.“

그들의 친구로 보이는 한 선배가 내 눈치를 살며시 보며 입을 열었다.

"시발. 남친 있었냐?“

다른 차에 타고 있었던가. 아니면 지영이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창밖만을 바라봐서 그런지 내가 남자친구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음. 오후 활동 때도 내 여자친구님은 자주 불려 나가서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잘생겼냐? 돈 많냐?“

둘 다 아닌데......

"존나 대줬겠지? 쿡쿡. 개부럽네 진짜.“

슬슬 화가 난다.

나도 참는 데에 한계가 있는데 내 목숨보다 소중한 지영이를 저렇게 말하니 주먹이 부르르 떨려오지만, 괜히 나섰다가 일이 커져서 불행만이 가득한 대학 생활이 될 것만 같아 차마 뭔갈 하기가 꺼려졌다.

나만 문제가 된다면 괜찮을 텐데. 지영이에게까지 피해가 가면 어떻게 될까. 니 남친이 사람을 때렸더라. OP에서 처음 본 선배한테 욕을 퍼부었더라 등. 좋지 못한 남자친구를 가졌다고 지영이를 힐난하지 않을까. 이래서 지금 내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였다.

"개 시발새끼들이.“

헙....?!

자, 잠깐...! 나 속이 아니라 입으로 내뱉은 거 같은데?

살며시 주위 눈치를 살피니 선배가 주는 술을 가만히 들이키고 있던 신입생들과 술을 주던 선배들, 지영이를 대상으로 음란 패설을 해대던 것들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속으로 말한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말을 했다는 의미.

아, 좆됐네?

"뭐?“

진짜 거짓말 하나 안 치고 싸운다면 개바를 자신이 있는 선배가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시발.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가 지영이 남자친구입니다. 그러니 제 여자친구에게 모욕이 될 만한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도 최대한 정중하게.

시작부터 욕을 퍼부으며 강압 작으로 나가면 평판이 떨어지지. 그래서 이미 떨어진 평판을 뒤늦게나마 처음 한 실수를 살살, 천천히 지우는 게 중요했다.

"니가?“

"네.“

"풉... 크하하하핫!“

"자랄하네! 하하하하.“

하나 둘 씩 웃기 시작했다.

지금 웃는 놈들은 내가 지영이와 함께 있는 걸 보지 못한 것들이다.

"잘생긴 건 아닌데. 돈 많냐?“

"아니요.“

"그럼 뭐 있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네가 남친이라고? 웃긴 새끼가 들어왔네.“

나라도 저것들 중 한 명이 아임유와 사귄다고 하면 폭소를 할 테지. 이해한다. 충분히.

"맞아. 쟤.“

근데 버스 안에서 지영이에게 대차게 까인 선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고.

"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맞다고. 쟤가 신입생 대표 남친이야.:

"지랄.“

여전히 믿지 못했다.

그럼 지영이를 데려와서 입학식 도중에 했던 키스를 저것들 앞에서 해야 하는 걸까. 재학생들은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아 모르지만 신입생들 대부분은 보아서 이미 기정사실화가 되어 있었다.

나와 지영이가 열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야. 이름 뭐야?“

"강민훈입니다.“

"나이는 스물?“

"네.“

학년과 나이까지 적으니 기고만장해진 그는 거들먹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진짜 네 여친이야?“

"네. 제 여자친구입니다.“

"어떻게 사귀는데? 뭐 약점이라도 쳐 잡았냐?“

낄낄.

네가 짓게 그런 미녀와 사귀는데 얼굴이나 돈도 없이 가능이야 하는 거냐며.

약점이라도 잡고 강제로 사귀는 거라면 이해한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살짝 화나네?

지금 술을 먹은 상태라서 감정이 너무 이입된 나머지 분노 게이지가 끊임없이 상승하였다.

잘못하다간 정말 불상사를 낳을 수도 있는 상황.

"훈아~!“

"......?“

활짝 열어져 있던 현관으로부터 잔뜩 취한 것처럼 보이는 지영이가 모습을 드러내서는 달콤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품에 안겼다.

"지영아?“

어라... 뭐지? 지영이는 술에 강해서 취하지 않는데?

"안녕~ 안녕~“

뒤를 이어 지영이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여자 선배들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남자친구인가 보네~ 달달해.“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새 종이컵에 술을 따르며 치킨을 뜯었다.

"네 여자친구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잠시 바람 좀 쐐고 와~“

"아, 네. 알겠습니다.“

얼떨결에 선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지영이를 데리고 방을 나와 길을 걸었고, 주위 시선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자 지영이는 이내, 곧 멀쩡히 걸었다.

"역시 안 취했네?“

"응. 그냥. 훈이 네 분위기가 이상해서.“

역시 그렇지. 내가 사람을 쥐어팰 것 같아서 취한 척 연기를 하며 나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근데 무슨 이유로 선배들과 함께 우리 방을 찾은 걸까. 찾아도 우리 쪽에서 가거나 방이 좁으니 선배들만 한정적으로 갔을 텐데.

"근데 무슨 일이야? 선배들이랑 함께.“

지영이는 같은 방. 여자 선배들과 함께 찾아왔다.

"네가 보고 싶다네.“

"날?“

"응. 임다혜였나?“

"이다혜.“

"아무튼, 걔가 우리 사이를 다 털어놓더라고. 그래서 널 한번 보고 싶다고 날 데리고선 우르르 몰려간 거야.“

아아. 나라도 지영이 같은 미녀가 남자친구가 있다면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 거다.

"귀찮아......“

어지간히도 선배들에게 질문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지영이는 길가다 발견한 벤치에 엉덩이를 내리곤 한숨을 픽 내쉬었다.

"택시 부를까?“

"아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내일까지 있지 뭐.“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이러고 있어줘.“

옆자리에 내가 앉자. 지영이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리곤 잠시 뒤, 규칙적인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확인해 보니 잠에 들어 있었다.

귀엽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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