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헬스장
* * *
"하아암......“
집으로 돌아가는 학교 버스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하품을 내뱉었다.
어제 너무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잔 건가? 아닌데. 나보다 더 늦게까지 마시다가 잔 선배들도 많았는데. 이상하네. 왜 그 사람들은 나랑 다르게 숙취나 피곤하지도 않은지 머리 울리게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곤하면 좀 자. 깨워줄 테니까.“
만약 혼자였다면 집 근처에 버스가 도착하였을 때, 내릴 사람 더 없냐며 기사님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깨어있어야 했겠지만.
지금 내 옆엔 지영이가 있었다.
그것도 한 집에서 동거하는 사랑하는 여친님이.
"그럴까?“
나랑 달리 그녀는 어제 일찍 잠들었고, 술도 얼마 마시지 않아 멀쩡한 상태였다.
이러면 마음 편히 지영이를 믿고 자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다.
뒤에 누가 타고 있을지. 신입생이라도 눈치가 보이고, 선배라면 더더욱 눈치가 보이기에 차마 의자를 내리지 못해 불편하게 빳빳이 앉은 자세로 두 눈을 감았다.
역시. 자세가 자세인지라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적어도 어딘가 기대거나 등받이를 조금만 내렸어도 좋으련만.
"불편해?“
이런 내 마음을 깨달은 지영이는 자세를 조정하여 어깨를 내밀었다.
"아냐. 괜찮아.“
저 연약해 보이는 어깨에 내 무거운 머리를 올리다니. 잘못하다간 지영이의 어깨가 빠질 건 아닌지. 나는 다급히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냥 기대.“
지영이는 내 머리를 잡아 끌어서는 강제로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만들었다.
머리를 기대고 보니 생각보다 더한 편안함이 나를 반겨오며 지영이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러오니 눈꺼풀은 빠르게 무거워졌다.
그렇게 난 잠에 들었다.
*
시간이 흘러 집 근처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으아아아.“
푹신하고도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자 침대는 그런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다시금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좀 잔 거로는 아직 부족한 듯. 고개가 점점 떨어지며 숨소리가 일정해질 때쯤.
"바로 잘 거야?“
"으응......“
"운동은 오늘 못 갈 것 같아?“
운동이라... 가긴 가야할 텐데. 오늘은 영 갈 기분이 아니었다.
가더라도 한숨 푹 자고 저녁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나 혼자 갔다 올게 그럼.“
"......“
평일 오후에는 당연히 헬스장에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간도 남아돌겠거니 굳이 사람 많아질 저녁에 가서 귀찮은 일을 겪을 바에는 사람 없을 때인 지금 가서 오늘 하루 치 운동을 끝낼 생각인가 보다.
마음 같아서는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난 여기서 잠이나 잤을 텐데.
"아니... 같이 가.“
우리가 등록한 헬스장 트레이너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록하러 갔을 때, 지영이에게 시선을 사로잡혀 수컷의 눈을 하고 있던 그 새끼가.
그러니 만약, 지금 지영이 혼자 헬스장에 들렀다 가는 꿈적도 하지 않을 지영에게 끊임없이 달려들어 귀찮게 할 게 분명했다.
물론, 넘어가거나 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데 그저, 그녀의 몸에 벌레가 닿는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라 차마 집에서 얌전히 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피곤하면 자.“
"아니. 갑자기 운동하고 싶어 졌어.“
"정말?“
"응.“
"무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애초에 혼자갈 거란 선택지는 없었는지.
이렇게 될 거란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지영이는 살짝 웃음을 터뜨리며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래서는 더더욱 안 갈 수는 없을 텐데. 하아.
결국엔 계속해서 내려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그녀를 따라 집을 나서 헬스장으로 향하였다.
"아! 어서... 오세요!“
한적한 헬스장 안에서 운동하고 있던 트레이너는 지영이를 보자마자 밝은 표정으로 맞이했는데 도중에 나를 보고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렸고, 다시금 지영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훈아.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어. 갔다 와.“
나는 집에서 미리 운동복으로 쓰는 반 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나왔지만 지영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운동복은 살갗이 보이지는 않지만, 무척 얇은 데다가 타이트하기까지 하니 몸매를 부각하는 나머지 나처럼 집에서 입은 채로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뭐, 한다면 가능이야 하겠는데 남자들의 시선으로 지영이의 몸이 보이는 게 내가 너무 싫었다.
이런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아니며 지영이 또한, 남들에게 맨 살은 아니더라도 율곡을 보이기 싫은지 헬스장에서 갈아입었다.
아무튼,
"보기 좋으시네요. 잘 어울려요."
트레이너는 적의가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네에. 뭐.“
누가 보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인데. 비꼬는 듯한 말을 했지만 나는 당당히 무미건조하게 대답을 하니 트레이너의 얼굴은 더더욱 심각해졌다.
예전부터 더 심한 말을 들으면서 맞기까지 했는데 저 말은 귀여운 수준에 불과했다.
"훈아. 할 수 있겠어?“
"하기야 하지. 근데 오늘은 조금만 하게.“
"그러는 게 좋아. 피곤할 때는 안 하는 게 좋긴 하지만 네가 굳이 한다 하니까 적당히 해.“
저절로 침이 꼴깍 삼켜질 정도로 아름다운 육체의 굴곡이 보이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탈의실에서 나온 지영이는 곧장 나를 걱정했다.
솔직히 너무 피곤할 따름이긴 한데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트레이너를 견제할 겸. 운동을 조금 하기로 마음먹었다.
"훈아. 좀 잡아 줘.“
"아. 응. 알았어.“
먼저 몸을 풀기 위해 매트를 깔고 요가를 시작하는 지영이는 뭔가 잘 안 되는지 내게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원래 같으면 전문가이자 이럴 때 도움을 주라고 있는 헬스장 트레이너인 자신이 해야 하는데.
도와주는 척하면서 저렇게 예쁜 여자와 신체접촉을 하며 호감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남자친구와 함께 여길 다니고 있으니 한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응. 거기. 살짝 눌러... 흐응... 앗!“
"좀 쌨어?“
"아냐아냐. 괜찮아... 하읏!“
"......“
시발.
트레이너는 마음속으로 욕을 했다.
자신보다 못생긴 것 같고, 몸도 하찮기 그지없는데. 거기다가 돈이 많을 것 같지도 않은 저 남자에게 여태껏 보아왔던 여자들, 연예인들 모조리 포함해서 제일 예뻤던 윤지영이라는 여자가 애인이라는 사실에 너무 질투가 나며 왜 자신을 저런 여자친구가 없는 건지. 세상이 미워졌다.
"지영아. 비비지 마.“
"응? 무슨 소리야.“
"아니. 밑에......“
"운동에 집중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말고 보조나 제대로 해 줘.“
저, 저 두 새끼는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운동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냥 섹스를 하러 온 걸까.
커다랗고 부드러울 법한 엉덩이로 내 고간을 마구 비벼대니 트레이너의 자세는 꾸부정해졌으며, 도망치듯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됐어.“
역시. 내 도움 없어도 지영이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동작을 트레이너를 떨쳐내려고 일부러 그랬나 보다.
"훈이는 운동 안 해?“
트레이너와 같이 서버린 난.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지영이 외에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두 손을 중요부위에 올려놓았다.
이래도 커다란 물건은 다 가려지지 않아 자세히 본다면 헬스장에서 세운 변태로 낙인 찍힐 게 분명했다.
"혹시 흥분했어?“
이렇게 된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지영이는 소악마와도 같은 표정으로 요가를 잠시 중단하고는 내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변태네? 여기서 세우고 말이야.“
"지, 지영아?“
그녀는 여왕님처럼 다짜고짜 내 가랑이에 발을 가져왔다.
"누가 있었다면 어떡하려고 그래?“
지금은 트레이너 외에 헬스장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짓궂게 지영이가 물음을 던져왔다.
"으읏...! 읏.....!“
잔뜩 화가 난 듯, 발기해 있는 자지를 가리던 손을 피해 밟아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불규칙한 숨소리와 신음이 조금씩 터져 나왔다.
다, 다른 건물에서 창을 통해 보면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지영아... 그만......“
"왜? 세운 걸 보면 이걸 원한 거 아니었어?“
그건... 맞긴 하겠지. 난 지금 성욕보다는 수면욕이 더 강하긴 하다만 일단 세운 것만으로 성욕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지영이가 엉덩이를 비벼대지만 않았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인데!
일단 세우고 나면 성욕이 끌어 오르는 게 남자인데!
끼이이익.
어딘가로 사라졌던 트레이너가 녹이 슨 오래된 경첩 특유의 소리가 남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지영이는 내게서 멀어졌고.
"......“
트레이너는 운동을 하다 말고, 그리고 도와주다 말고 왜 남자가 바닥에 앉아 있는 건지. 또, 여자는 그의 앞에 서 있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든 나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이너님?“
"네. 회원님.“
"혹시 개인실을 쓸 수 있을까요?“
"개, 개인실이요? 두 분 이서요?“
"네.“
트레이너는 순간 말을 잊지 못하였다.
그야 그럴 것이 개인실은 정말 운동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커플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운동만 잘만 하면 문제는 없는데 사람들의 눈이 잘 닿지 않는 곳이라고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여럿 있어서 이들도 거기 들어가면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럴 리는 없겠지. 방음이 잘 안 되는데 거기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리가 없겠지 하고 트레이너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세요......“
개인실을 이용할 땐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하지만 이들에게는 그조차도 무료로 제공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윤지영이라는 여자 한 명에게.
실제로 그녀 덕분에 매출 50%가 급등했으니.
"훈아. 가자.“
지영이가 나를 억지로 세우려고 하니. 아직 진정되지 않은 물건으로 인해 꾸부정한 자세로 일어났다.
"......“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우리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트레이너.
"지영아... 개인 실은 뭐 하게?“
"뭐긴. 나 하고 싶어 졌어.“
하고 싶어졌다니. 여기서? 그것도 다른 회원도 없어서 우리가 들어간 개인실에 귀를 대어 엿들을 가능성이 큰 트레이너가 옆에 있는 여기서?
아. 정신 나가겠네. 진짜.
이 여자친구님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