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대학
* * *
어김없이 오늘도 아침이 밝아왔다.
"아... 죽겠네.“
어젯밤도 지영이와 화끈한 밤을 보낸 터라. 피곤할뿐더러 아랫배가 상당히 당겨왔다.
한 네 번은 쌌나... 이래서는 탈수를 느끼며 언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에 반해.
새근. 새근.
내 옆에서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여인, 지영이의 표정은 너무 밝다 못해 빛이 날 지경이었다.
완전히 극과 극인 상황. 섹스하면 할수록 한 명은 죽어가고, 한 명은 살아나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끄으응.
"으아아.“
다시 몸을 눕혀 푹신한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지만, 오늘이 바로 기다렸지만 막상 가기 싫은 대학 개강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아직 1교시가 시작되는 9시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있긴 해도 준비할 게 있어서 지금이라도 일어나야겠지.
"뭐, 먹을까.“
낮도 그렇고, 밤에는 더더욱 날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지영이의 행복한 잠을 조금이라도 늘려주기 위해, 난 혼자서 두 사람분의 아침밥을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뭘 먹어야 할지. 잘 모르겠네.
솔직히 나는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이 없을 테지만 지영이에겐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 내 마음으로서는 불편할 따름이었다.
그로 인해 화장실로 가서 얼굴과 머리를 씻고 나오면서도 여전히 뭐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씁... 라면은 조금 그런데.“
간단하게 라면도 괜찮을 거 같긴 한데. 조금 그런가? 지금 내 몸이 피곤해 죽는다며 아우성이라 조리가 비교적 너무 간단한 라면이 급격하게 당겨왔다.
아니야. 아니야. 아침 라면이라니. 내 소중한 지영이에게 치명적일 수가 있어!
"아, 몰라. 그냥 간단히 먹지 뭐.“
그래도 라면은 제외하고 말이다.
끝내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고민한 게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달걀을 두 개를 후라이팬 위에 올려 두었고, 캔 참치와 김치를 꺼내 상에 올려 두었으며, 어제 지어 놓고 다 먹지 못한 밥을 펐다.
"지영아~! 일어나.“
준비를 모두 끝마치고, 난 방으로 들어가 지영이의 몸을 살며시 흔들어 깨웠다.
"우으... 조금만.“
"안 돼. 오늘 학교가는 날이잖아?“
"아... 학교. 자퇴할까?“
"자퇴라니. 그게 무......“
이제 첫 등교인데 벌써부터 자퇴를 고민한다고?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지영이를 설득하려던 찰나. 지영이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한 생각에 말을 멈추었다.
그야 그럴 것이 지영이라면 외모도 예쁘고, 키도 큰 편이니 모델로 대성공을 할 수 있고, 연예계로도 나가거나 그 외에 다른 일을 찾아도 되는 뛰어난 인재인데 꼭 대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
"자퇴할래?“
"아니야... 농담이야.“
전혀 농담 같지 않았는데.
내 물음에 지영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내 뺨을 쓰다듬었다.
"키스해줘.“
"알았어.“
아이고 귀여워라.
키스를 해달라는데. 나는 곧장 입을 맞추었다.
아침이기도 하니 입만 맞추고 끝내려고 했는데 지영이의 양손이 내 목에 걸리고,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의 틈을 벌려 안으로 들어왔다.
"푸하... 밥 먹자.“
서로의 입술을 잇는 가는 침선이 길게 늘어지다 못해, 끊어졌다.
"응......“
오늘이 오기 전만 하더라도 매일 9시나 10시까지 늦잠을 잤으니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게 참으로 이질적이며 힘들다는 건 이해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몇 달 전. 고등학교 때는 대체 어떻게 그 시간에 일어난 건지. 참으로 기이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지영이는 부스스. 눈이 덜 떠진 상태로 상체를 세우고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씻고 나와. 다 준비했어.“
"알았어......“
이만하면 되었겠지. 나는 지영이를 두고 먼저 방을 나와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또 한 번, 간단히 밥과 반찬들이 차려진 밥상을 보니 이 정도면 괘찮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암.“
쓰러지듯 의자 위로 엉덩이를 내린 나는 편안한 느낌에 곧장 졸음이 몰려왔다.
"아. 피곤해.“
새벽까지 섹스를 매일마다 했더니 일어나는 시간이 변해버렸다.
과연 대학 생활에 적응이나 할 수야 있을지.
지영이는 워낙 예쁘니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남자든 여자든,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널려있지만 나는 달랐다.
지영이라는 예쁘고 자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있긴 해도 흔히들 말하는 친구라는 존재를 새로 사귀는 게 가능한 건지. 불안감이 찾아왔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지영이와 사귀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어서 별걱정은 없었는데.
사교성도 없고,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애들도 두세 명, 많으면 다섯 명 이하로밖에 사귀지 못하는 찐따인 내가... 그런 내가 친구를... 치,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아아. 왠지 미래가 그려졌다.
친구가 되고 싶다고 지영이를 귀찮게 구는 애들과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내 모습이.
훌쩍. 슬퍼라.
"아, 나왔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무렵. 지영이는 그 시간 동안 얼굴과 머리를 씻고 나왔는지 물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내 앞, 의자에 앉았다.
"다음에는 나도 깨워... 같이 차리자.“
"아니야.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건데 뭐.“
"그래도.“
"아냐아냐. 정말이니까. 자자. 어서 먹자.“
함께 동거를 시작하고 난 후, 아침 준비는 오로지 내 전담이 되었다.
지영이는 미안한지 아침에 자신도 깨우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지영이를 보는 것도 내 삶의 하나의 큰 행복이고, 그런 지영이가 내가 차린 밥을 맛있게 먹는 것도 행복이니까.
"마음대로 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내 고집에 지영이는 결국 포기한 듯, 수저를 집었다.
"맛있네.“
별거도 없고, 간단한 요리밖에 없는데 지영이는 맛있다며 굶주린 배를 채웠다.
*
미리 알아둔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시간이 되자. 모든 준비를 끝마친 우린 집을 나와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살기 시작하고 이른 시간, 그것도 등교와 출근 시간에 우리가, 아니, 지영이가 모습을 드러내니 저렇게 예쁜 사람이 이 근처에 살았나 하고,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에 반해 당사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와... 진짜 예쁘다.“
"성형이겠지......“
"아무리 성형이라도 저렇게는 안 되지 않아?“
"그러게. 그러게.“
아직 어린 티가 팍팍 나는 교복 입은 여자애들이 지영이를 보고 수군거렸다.
"엄마! 저 누나 엄청 예뻐!“
직장가는 도중에 미리 유치원에 애를 맡기려는 건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이는 지영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남자들은 그냥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나 남았데?“
"7분. 곧 오겠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버스정보시스템을 바라본 나는 지영이의 물음에 대답했다.
7분이라. 딱 적당하게 나온 듯싶었다.
"여자친구야?“
지영이는 아직도 피곤한지 빈자리에 앉아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내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 네. 맞아요.“
"예쁘게 생겼네.“
"그렇죠? 하하.“
아, 이 수컷으로서의 우월감. 지금 나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부러움과 질투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둘이 어떻게 만난 거야?“
아주머니의 물음에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내게 향했다.
뭐, 궁금하기야 하겠지. 평범한 남자가 이리도 예쁜 여자와 사귄다는 것이.
근데 또 설명해 줘야 하나? 귀찮은데.
"그냥 만났어요.“
"그래?“
아주머니는 뭔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 얼굴인데 그냥 만났다는 내 한 마디에 더 이상 물어도 답은 똑같다고 인지한 걸까. 입을 꾹 닫았다.
그렇게 버스가 도착하고.
"이런.“
자리가 없네. 지영이는 아직도 피곤한 듯싶은데.
"저... 앉으실래요?“
옆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 한 명이 비몽사몽하게 내 뒤를 졸졸졸 따라오던 지영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 네.“
지영이는 옳다구나 하고 덥석 물었고.
"감사합니다."
"저... 혹시 전화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 남자는 바로 지영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의 말도 돌려주지 않은 채, 내게 시선을 가져왔다.
"훈아... 딱딱해. 너 먼저 앉아.“
"어, 엉?“
"앉아......“
"아, 알았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앉히고 그 위에 지영이가 엉덩이를 내렸다.
부드러운 감촉이 아래에서부터 느껴지니 어젯밤 노력했을 똘똘이가 기력을 되찾고 슬그머니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씨. 괜히 비켜줬네.“
굳이 내 위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눈을 감은 지영이의 모습에 기껏 자리를 비켜주었던 남자는 똥이라도 밟은 듯, 썩어들어가는 표정으로 나를 날카롭게 째려봤다.
뭐, 뭐, 비켜준 건 너잖아? 그것도 남자친구인 내 앞에서!
난 아무 잘 못 없다.
호구 짓을 재빨리 한 저게 잘못한 거지.
"쿨......“
얼씨구야.
이 자세로 지영이는 벌써 잠에 들었다.
등을 기대어 자고 있어서 자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어도 뒤통수조차 예쁜 지영이라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최대한 지영이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몸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자세를 잡았고, 머리를 손으로 받쳐주었다.
그리고 수십 분 후, 대학 앞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미친 듯이 저려오는 손과 발을 뒤로 한 채 지영이를 깨워 버스에서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