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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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예쁘길래 다들 호들갑이야.“
흔히들 우리 학교의 여신이라 부르는 3학년. 김하나는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 중에 엄청 예쁜 애가 있다는 소식이 공공연하게 퍼지게 되었다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얼마나 예쁘길래, 자신에게 들러붙었던 남자들이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갔을 정도이란 말인가.
뭐, 잘생기지도 않고, 돈이나 집이 잘사는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거머리를 떼어줘서 고마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자신 이외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몰리니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신입생일 때만 갔고, 그 후로는 OT나 축재, 신입생 환영회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녀 스스로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가는 순간 질 나쁜 선배나 복학생들이 김하나에게 들러붙어 술을 끊임없이 먹여대며 자신을 어떻게 해 보려고 안달이 나 있는 모습을 또, 봐야 한다니. 그냥 돌아서고 싶은 마음으로 굴뚝같았다.
"얼굴만 보고 나오자......"
그렇게 예쁘다고 우리 과 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가 떠들썩한데. 한 번쯤은 보고 와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또, 그 여자에겐 대학에서 만난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럼 당연히 잘생겼겠지.
그야 그럴 것이 남자든 여자든 어릴 땐 제력이나 다른 부분에서가 아니라 오직 얼굴을 보고 호감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딸랑딸랑.
늘 그랬듯이. 2년이 지난 지금도 회식하는 장소가 변하질 않았다.
가게도 마찬가지로 인테리어조차 변하지 않았다.
참고로 신입생일 때, 뭣도 모르고 참가해 술만 퍼먹다가 친구들과 함께 모텔에서 잤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한 복학생이 그녀를 데리고 어딘가 가려고 했었다고 했는데.
"아. 하나야~ 어서 와.“
저 여자.
이수영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벗어날 수가 있었다.
뭐, 어차피 처녀 딱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고등학교 때, 뗐었고, 그날 이후로도 포기하지 않았는지 그새끼는 계속 들이댔었으니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 왔어?“
"아니, 아직 안 온 애들이 있어.“
"그래?“
김하나는 이수영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올 사람은 다 왔냐고 물었고, 역시나. 이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다 왔다고 했으면 실망할 뻔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예쁜 외모를 가졌다는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수영. 이년은 여전히 인기가 많나 보다.
학교 여신이라는 자신이 이곳에 왔음에도 그녀에게 빌붙은 남자들이 아직 여럿이 있다는 것만으로 평범한 외모의 이수영이 꽤 인기가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한다면, 자신 따위가 김하나에게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대상이 아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수영에게 다가갔다는 점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었다.
"하나야. 오늘은 왔네?“
"아, 네.“
"나 보려고 왔어?“
"어떨 것 같아요?“
"하하.“
쯧.
기분 나쁘네.
오자마자 들러붙는 거머리 같은 복학생을 보니 어서 빨리 여기를 뜨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수영. 저년은 대체 어떻게 참고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가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녀도 김하나 못지않게 높은 학번만 믿고 지랄하는 복학생들에게 시달렸을 텐데 말이지.
"자자. 하나야. 마시자.“
아직 신입생이 다 오지도 않았음에도 그새를 참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달리려는 건지.
아니면 김하나를 취하게 만들어 어서 빨리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아. 욕망에 일렁거리며 김하나의 맨 살갗을 훑는 눈빛을 보니 후자가 확실해 보여다.
너무 더럽네.
예쁘다는 신입생의 얼굴이 궁금해서 어쩔 수 없이 왔고,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평판을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받았다.
예쁜 얼굴을 주셨으면서 만만치 않은 주량까지 추가로 준 부모님을 오늘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김하나는 술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잘 마시네? 한 잔 더 마실......“
"수영아.“
복학생은 비워진 김하나의 잔에 또 술을 따르려던 찰나. 김하나는 복학생을 무시한 채, 옆자리에 앉아 남자들이나 여자애들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수영을 불렀다.
"응? 왜. 하나야."
"그... 신입생에 예쁜 애가 있다고 하던데. 넌 봤어?“
"아. 지영이?“
"지영이?“
"응. 윤지영이라고 엄청 예뻐.“
"흐응. 그래?“
이수영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너무 착하다 보니 못생긴 남자나 여자에게 현실적인 외모 지적을 하지 않고, 그저 예쁘다고, 잘생겼다는 말만 반복하는 바보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아서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보다도?“
"어... 하, 하나 보다?“
이수영은 크게 당황했다.
"모, 모르겠는데 나는? 둘 다 너무 예뻐서.“
머뭇거림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을 보아 이수영의 눈에는 김하나 보다 신입생. 윤지영이라는 여자가 더 이쁜 게 확실해 보였다.
솔직히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김하나보다 예쁜 여자는 반드시 존재하며, 그 수가 엄청 많을 수도 있다.
그녀도 인정하는 사실이긴 한데. 너무나 가까운 곳에 그런 존재가 있으며, 고민도 없이 확신을 내리는 다른 이의 모습에 불쾌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으응.“
사람마다 느끼는 시점이 다를 수도 있으니 저렇게 확신이 서는 어색한 반응을 보이는 게 너무나 이질적인데.
"아, 왔나 보다!“
김하나가 이 가게에 들어섰을 때와 똑같이.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떠들썩한 가게 내부에 희미하게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은 이수영의 고개가 돌아갔을 때,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변해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순수한 아이처럼.
"어......“
자리에서 벗어나 굳이 신입생을 맞이하러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달려간 이수영을 따라 시선을 가져가니. 김하나는 몸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진짜... 엄청 예쁘네?“
그것도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한 여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방금 자리를 비운 이수영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 학과에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며, 학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미모의 주인이 맞는 것 같았다.
"쟤야?“
"보면 모르냐?“
"와... 장난 아니네?“
OT에 나가지 않은 재학생들은 윤지영이라는 여자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원래 소문은 과장될 수밖에 없는데. 그녀가 들은 소문은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너무나 에뻤다.
그리고... 대한민국 평균 사이즈 사슴을 가진 김하나와 달리 가슴 팍에 달린 두 덩어리를 보니 자존심이 팍팍 떨어졌다.
"저 옆에가 남자친구야?“
"못생겼는데?“
"황당하네.“
"여자가 보는 눈이 없나 봐.“
"야. 내가 뺏어볼까? 저 새끼보단 내가 훨씬 나아 보이는데.“
윤지영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
들려오는 말처럼 잘생겼다기보단 못생겼다.
그런데 이것도 어폐가 있는 것이. 워낙 예쁜 여자의 옆에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척 못생겨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그만 본다면 꽤 괜찮은 남자로 보일 텐데 말이다.
"자자. 여기 앉자.“
이수영은 둘을 신입생들이 모여 앉아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녀는 둘을 앉혀두고, 왜인지 모르게 남자의 옆에 자신도 자리를 잡고 앉았고, 어느새 김하나의 곁에 있던 남자들, 복학생들까지 그 둘이, 아니, 정확하게는 윤지영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대거 이동해 신입생들의 자리까지 빼앗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지.“
남자의 입장에서는 모르겠는데. 여자의 입장에서는 예쁜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게 공부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조금 말이 안 되기는 해도 저렇게까지 예쁜 여자라면 나중에 결혼 상대가 대체로 평범한 남자들이 아니었다.
못해도 의사 집안. 잘하면 재벌 집안의 아내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일단 친해지기만 하면 나중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 그래서 김하나 그녀를 뒤에서 욕을 해대면서도 다가오는 멍청한 년들이 많이 있지 않았는가.
"네가 지영이구나?“
둥그렇게 둘러싼 남자들을 헤치고 다가간 그녀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
아무리 예뻐도 처음 본 사람에게는, 주위에 보는 눈이 많을 때는 예의를 지키는게 일반적일 텐데.
윤지영이란 여자는 그딴 건 개나 줘버렸는지. 힐끔. 김하나에게 시선을 가져오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뭐야. 애. 왜 웃는 거야? 기분 나쁘게.
"3학년 김하나 선배시죠?“
"그, 그런데?“
사람이 저렇게 생겼는데 목소리까지 예쁘다니. 정말 질투가 났다.
"헤에. 예쁘시네요. 선배.“
같은 여자인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와 혼란스러웠던 김하나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피는 말이 저 예쁘장한 분홍빛 입술에서 튀어나왔다.
완전히 비꼬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네 까지게 학교 여신이었어? 나랑 비교하면 영 아닌데? 하고 웃는 것처럼.
"너, 너도 엄청 예쁜데?“
"저도 알아요.“
착각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김하나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하니 이수영이 다급히 둘의 사이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김하나는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그녀의 남자친구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네 여자친구야?“
"네. 선배님.“
"하나 누나라고 불러.“
"아... 네. 하나 누나.“
자신처럼 예쁜 여자가 초면에 선배가 아니라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면 대부분 남자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그런데 이 애는 부담은커녕 여자에게 익숙한 인기 많은 잘생긴 남자처럼 태연하게 반응했다.
오히려 말을 걸고 있는 김하나에게 신경조차 쓰기 싫은지 대답은 또박또박 하고 있어도 몸과 고개는 자신의 여자친구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부들부들.
이번에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 무시당한 것으로 모자라 그녀의 남자친구에게도 이런 차가운 반응을 받아야 한다니. 김하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렇다고 여기서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씨익.
주먹을 꽉 쥔 채로 윤지영을 노려보았다.
그랬더니 윤지영은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시선을 맞춰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니 김하나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찼다.
"하나야! 어디가?“
"일이 생겨서. 어차피 얼굴만 보이고 갈 생각이었어.“
"그, 그래?“
뒤에서 이수영이 뭐라 하는데 진짜로 얼굴만 비추고 갈 생각이었던 김하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왔다.
"하! 누가 마지막에 웃는지 보자고.“
계속 그렇게 웃을 수 있나. 한 번 진흙탕 싸움을 벌여보기로 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새파랗게 젊은 년을 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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