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32화 (32/142)

〈 32화 〉 신체검사

* * *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찾아왔다.

내일이 바로 주말이라고 하면은 놀러 갈 생각보다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갈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새벽 내내 섹스를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젠 그러지 않고 두 번만 사정한 다음 바로 잠들었으며, 해가 다 뜨지도 않은 이른 시간인 지금. 우린 자취방을 나왔다.

왜냐하면 오늘이 대망의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 받아야만 하는 군 복무를 위한 신체검사였다..

으... 가기 싫어. 너무 가기 싫다고오!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군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가고 싶지가 않았다.

군인들을 향한 배려나 존경까지는 바라지는 않아도 비하와 조롱은 너무하지 않을까. 2년간 강제로 끌려가서는 나라를 위해 2년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말이지.

그리고 내부 비리로 알려진 부실한 급식과 부조리한 군 문화, 양아치 간부들, 마지막으로 부를 땐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아들인데 다치면 바로 니네 아들이라는 말을 뻔뻔하게 시전하는 망할 국방부까지.

그냥 군인을 개만도 못한 취급하는 이 욕 나오는 나라를 위해 온갖 불편함과 조롱, 비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한 몸 희생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배가 아팠다.

그래도, 그래도 주 적이 무기를 들고 아래로 내려온다면 내 가족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지영이를 지킬 사람들이 나와 같이 강제징병된 사람들뿐이라 어쩔 수 없이 가긴 가야겠지. 어휴.

"다른 방법은 없어?“

일반 시내버스에 올라타서는 내 옆자리에 앉은 지영이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음을 던져왔다.

또 이런 질문.

계속 반복되는 물음에 슬슬 짜증이 날법한데도. 이 모든 게 내가 군에 끌려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질문이라 화를 내기는커녕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이라도 교회에 다닐까?“

아마 양심적 병역 거부? 그걸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과연 가능이야 할까.

지금까지 무신교로 살아왔던 내가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 찾아오지 갑자기 하나님을 절실히 믿는 신자가 되었다는 말에 국방부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줄련지.

"괜찮아.“

대책 없이 땅만을 파다가 돈이라도 될 만한 무언가를 찾는 희박한 확률과 맞먹을 정도로 지영이는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잘 가던 길을 따라 걷다가 무언가가 앞을 막아섰어도 냉정하게 그 무언가를 피해 돌아갈 생각을 하는 그녀였는데.

자기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손과 발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나는 정말 축복받은 놈이 확실하다.

이런 여자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나.

다른 여자들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군대로 끌려간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영이의 행동이 상당히 과하는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

"2년은 금방이야.“

인터넷에서 그랬어.

"......“

나는 몸을 틀어 지영이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리곤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지금 바로 가는 것도 아니잖아?“

단순히 신체검사만 하러 가는 건데.

까까머리를 하고 바로 군에 가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벌써 내가 곁에 없다는 것처럼 불안해하고 있으니 나를 이만큼이나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지만, 나도 마찬가지로 지영이가 없는 곳에 갇혀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도 일단 나도 모르는 몸의 문제가 발견되어 4급이나 면제를 받기 빌어야겠지.

"괜찮아. 지영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버스 승객들이 늘어가는데. 그중에 특히 남자들이 우리를, 아니 지영이의 옆에 앉아있는 남자친구인 나를 부러움이 1%. 질투가 99% 담긴 눈으로 째려보았다.

나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

"아......“

"미친......“

"개예쁘네. 와.“

"여친이 여기까지 따라온다고?“

병무청에 도착하고, 나를 따라 건물 안까지 들어온 지영이를 눈으로 본 나와 같은 희생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첫 번째는 너무 아름다운 외모에, 두 번째는 이른 이 시간에 고작 신체검사 하는 곳으로 따라온 마음씨 착한 여자친구로 인해, 마지막으로 남탕인 이곳에 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훈아... 이거 계단 크네. 저기서 넘어져 볼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꽤 컸는데. 지영이는 아직도 날 순순히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은지 저기서 넘어져 보지 않을래 하며 조심히 물어왔다.

으, 으응... 면제를 받을 정도로 다치려면 팔이나 다리 한 짝이 평생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장애가 생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얘는 날 장애인으로 만들 생각인가?

"그, 일단은 검사부터 받고 생각하자. 응?“

"......“

"응? 지영아.“

"하아... 알았어.“

어찌어찌 그녀를 타일러 놓고 보호자 대기석으로 그녀를 보낸 나는 염라대왕의 심판을 기다리듯 가슴을 쪼리고 있는 불쌍한 희생자들이 모인 곳으로......

"저 얼굴로 어떻게 저런 여자와 사귀는 거지?“

"돈이 많은 게 분명한데? 그리고 아무리 착한 여친이라도 고작 신체 검사장을 따라온다고?“

"협박...! 그래. 협박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아!“

"쓰레기 자식!“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든가.

왜 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 난 건지. 한심할 따름이다.

그래도 어딜 내놓아도 어깨가 하늘로 승천할 정도로 으쓱거리는 지영이를 애인으로 둔 내가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해 줘야겠지. 응. 응!

애써 질투 어린 날카로운 시선과 말을 무시한 채, 동기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신체검사를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초등학교 문제와 다를 바 없는 간단한 문제를 컴퓨터로 풀고, 피를 뽑고,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 검사, 간 수치 등.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걸 모조리 받은 뒤, 나는 자랑스럽게 현역 1급을 받았다.

시발.

"저... 저 가슴이 아픈데요. 이거 잘 못 나온 게 아닐까요?“

나랑 다르지 않게 1급을 받은 한 남자가 옆에서 당황한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아! 파, 팔도 아파요! 저 4급 주시면 안 돼요?“

"......“

저 사람처럼 4급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을. 그보다 심한 행패를 부린 사람을 많이 봐 왔는지. 군복을 입은 분들은 아무 말 없이 어떻게든 신체 등급을 낮추려고 안달이 난 사람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말이 끝났다 싶을 때.

"진단서를 떼오세요.“

"......“

단 한 마디. 병원가서 진단서를 떼 오면 고려해보겠다는 말에 아까까지만 해도 닫힐 기미를 보이지 않던 입이 굳게 닫혀버렸다.

"더 할 말이 없으시면 나와주시겠어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나한테 한 말처럼 들린 나머지 황급히 자리를 비켰다.

그리곤 보호자 대기석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지영이에게 다가가면서 현역이라는 단어가 찍혀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훈아! 어떻게 됐어?“

제발 못해도 4급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지영이가 나를 반겨왔다.

"1급이라네.....?“

"......“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종이에도 1급이 적혀 있는 것을 본 지영이는 말문이 막혀왔는지. 종이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내 손을 잡아끌며 2층으로 올라갔다.

"저기요!“

주위를 둘러보다가 신체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신체 등급을 매기는 군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큰 소리로 불렀다.

"네?“

"저... 지영아?“

내 말은 아예 듣지 않기로 한 건지 무시했으며, 그녀의 시선을 받은 군인분은 예쁜 여자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니 살짝 놀란 반응이었다.

"얘가 현역 1급이 나왔는데 공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니, 아이 몇 명을 낳으면 되는 거예요?!“

"뭐, 뭣?!“

"아, 아이?!“

나는 물론이고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아, 아이라니! 날 위해서 벌써 아이를 가진 생각을 하다니! 그럼 나 혼자만 결혼은커녕 무덤자리까지 생각해둔 거 아니지?! 이, 이런! 여기서 발기해 버릴 것만 같아! 아, 아앙! 서버려어어엇!

당연히 그런 편법이 먹힐 리가 없었던 나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군인은 금세 표정을 관리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서 해프닝은 여기서 마무리가 되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네가 군 가는 것처럼 뭐 그리 풀 죽어 있어.“

병무청을 나온 나는. 뾰로통한 표정인 지영이를 보며 웃었다.

당사자인 나도 이렇게 착잡한 마음인데. 나보다도 더 가슴 아파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역시 참담함은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나까지 이런 반응이면 안 되겠다 싶어 애써 마음을 숨기며 웃고 있었다.

"응? 지영아.“

지영이의 앞에 서서 그녀의 볼을 늘어뜨리며 장난을 쳐 보았음에도 지영이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 불안한 것 하나.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군에 있는 동안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음... 지영이라면 그럴 것 같지 않긴 한데.

"알았어...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그렇지.“

"거기서 나 말고 다른 사람 좋아하면 안 돼.“

"응. 당연히 그런... 어?“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군에서 여자가 없어서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말이 있던데.“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님에게 잘못된 상식을 주입한 거야?!

"아니... 그냥 내가 그런 생각 하지 못하게 해 줄게.“

지영이는 내 팔을 잡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모텔이었다.

대낮부터 모텔이라니... 정말 군에 가기도 전에 탈수증세가 심해 면제가 나올 것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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