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치한
* * *
"그래서?“
"어, 어? 뭐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를 우선시하는 이수영은 김하나를 따로 불러내었다.
그리곤 그녀에게 강민훈과 세, 섹스하는 것을 봤다고 말하며 뒤를 이어, 두 번 다시 그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김하나의 모습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 지영이랑 사귀고 있잖아!“
"알아.“
"너 그런 애 아니잖아!“
김하나는 예쁜 외모로 수많은 남자들을 꾀어 사귀기는 했어도 임자 있는 사람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가끔 건드리는 경우가 있는게 그건 남자들이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접근했을 경우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하나는 이번 처음으로 임자 있는 남자에게 접근한 것으로 모자라 벌써부터 몸을 섞은 상태였다.
"내가 어떤 년인데?“
"그, 그건.....!“
이수영은 처음으로 가족 외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깨워준 남자에겐 이미 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마음을 접으려고 하는데. 이 망할 년은 그런 것 없이 빼앗으려 했다.
뭐, 윤지영이 적당이가 아니라 워낙 예쁜 탓에 김하나의 행동은 무의미하겠지만,
그래도 이수영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섞었다는 것만으로 질투가 눈 앞을 가렸다.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떤 년이라고 묻는 김하나의 물음에 이성을 잃고 개걸레, 허벌 보지 등, 김하나의 뒷담아 하던 여자들이 내뱉을만한 말들을 털어놓을 뻔했다.
"보니까. 너도 훈이 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
그,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이수영의 눈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쉴 새 없이 흔들거렸다.
김하나는 그녀의 반응에 확신이 섰는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뻔하던데. 맨날 훈이를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훈이를 바라보던데 뭐.“
"그, 그런!“
"나 말고도 눈치챈 애들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만큼 노골적이었잖아.“
서, 설마. 자신이 그렇게나 강민훈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었다.
그리고 김하나 외에도 눈치챈 이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말에 얼굴색이 시퍼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괜찮아. 사람 마음이 원래 이런 거지.“
이해한다는 듯이 김하나는 말했다.
"나도 그렇고.“
"으, 으응? 너도?“
"어. 나도 훈이를 정말 좋아하거든. 아니 사랑해.“
"네, 네가?“
"왜.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닌데.“
남자를 재미로 만나는 느낌이 강했던 김하나가 그런 말을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근데 지영이가 있잖아......"
우으.
이수영은 입술을 내밀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녀와 대적할 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졌는데 순순히 포기하면 그게 말이나 될까. 그 누구에게나 착하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은 이수영도 한낱 여자인지라 이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에게 가장 좋은 무기가 되는 외모에서부터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데 과연 승부나 될까. 아니, 승부를 받아주지도 않을 터.
"그치. 걔가 있는데 훈이가 눈을 돌릴 일은 없지. 하지만 말이야.“
김하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둘의 사이를 이수영에게 곧이곧대로 털어놓았다.
둘이 몸을 섞기는 해도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윤지영이 강민훈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닌가 하는 지극히 개인적9인 생각까지도 말이다.
이수영은 당연히 믿기 어려웠지만, 평범한 외모에 가까운 강민훈과 너무나도 아름다워 미의 여신이라 해도 무방한 윤지영이 사귀는 건 너무 말이 안 되어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도 믿기는 어렵다는 건 변함없지만.
"낮에 이상한 점은 없었어?“
"낮에.....?“
낮이라니. 낮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무조건 기억해야 하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아니라 야동에서 보았던 남자의 물건보다 확실히 커 보이는 걸 가지고선 김하나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허리를 움직이던 강민훈의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린 이수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있잖아. 나랑 훈이가 섹스하기 전에. 그 자리에 윤지영도 있었다?“
"에......?“
"펠라할 때랑 훈이가 내 입에 사정했을 때도 있었다?“
"거, 거짓말......!“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는 아닌데. 난 진실을 얘기했어.“
싱긋.
그녀의 입에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이 뜬금없이 내뱉어졌다.
이수영은. 예쁜 미소를 지은 김하나의 표정을 바라보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짓말을... 아니, 진실이라면 윤지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어왔으며, 방금 그녀가 들은 말들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서서히. 얼굴이 밝아졌다.
*
오늘 강의는 무척 빨리 끝나서 빨리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와 지영이는 곧장 침대에서 몸을 섞어 질펀한 섹스를 밤이 깊어지도록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이 다 빠져 뻗어버렸고, 나는 도중에 미리 맞춰놓은 알람 덕에 9시에 몸을 일으켰다.
"하아암.
무척이나 피곤하지만, 나는 애써 몸을 이끌고 집을 나왔다.
계속해서 하품이 터져 나오는데. 몸과 마음은 그냥 방으로 돌아가서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다며 아우성치었지만, 꾹 참아내며 걸음을 옮겼다.
"뭘 사야 할까......“
내일이 바로. 나의 여자친구님의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날이었다.
"흐음.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지영이는 일반적인 여자들과는 다르게 반지나 목걸이에 예쁘게 박혀있는 귀금속을 딱히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 그녀에게 선물할 걸 사려고 300만 원을 힘들게 모아두었는데 말이지.
이때만은 정말. 다른 여자들과 비슷했으면 좋았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고 무슨 모양을, 어떤 색을, 어떤 귀금속을 살지, 어느 정도 한정된 범위에서 고민하면 될 거니까.
고개가 조금씩 떨어지고, 눈은 살며시 감겨오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이성을 유지한 채, 지영이에게 선물할 것들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에, 애타게 기다리던 지하철이 들어왔다.
문이 좌우로 활짝 열린 지하철 안으로 몸을 실었고, 곧장 앉을만한 자리가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노약자석을 제외하고는 빈자리가 아예 없었다.
노약자가 없으면 저 자리에 앉아도 되긴 하다만 뭔가 알 수 없는 눈치가 보이니 하는 수 없이 들어온 출입구의 바로 옆에 섰다.
그러기를 수십 분.
"꺄아아악!“
"?!?!“
내 앞에 앉아서 폰을 보고 있던 여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당연히 앞에 서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에 졸음이 확 달아났다.
"무, 무슨 일 있으......“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는 그녀를 향해 물음을 던지려던 찰나.
"치워어어! 치한!“
"에...? 치, 치한?“
분명 나를 보며, 내 손을 쳐대며 치한이라고 말을 하네.
무, 무슨 헛소리지? 나는 치한이라고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지하철의 움직임에 따라 덩달아 같이 힘없이 움직이는 피로에 찌든 몸뚱이가 넘어가지 않도록 양손은 봉을 꽉 잡고 있었는데 말이지.
"치한?“
"치한이라고?“
"멀쩡하게 생겨서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어느새 나는 여자를 추행하는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아, 억울한데 너무?
"거기 경찰서죠?! 네. 여기에 제 몸을 마음대로 만지는 남자가 있어서요! 네! 네!“
벌써 신고까지 하는 그녀.
하... 참. 황당해서 변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뉴스나 우연히 본 글에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성추행범이나 성폭행범으로 몰린 사람이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나는 오늘 그 억울함이 얼마나 큰 건지. 직접 경험해 보고서야 깨달았다.
굳이 경험해서 깨닫고 싶지 않은데.
"......“
얼떨결에 경찰서에 도착한 나는 멍하니. 날 치한으로 몬 여자를 바라보았다.
"당장 쳐넣어 줘요!“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감빵에 어서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건지.
"학생?“
"아, 네.“
"정말 안 했어?“
"네. 정말 안 했습니다. CCTV를 보시면 알겠지만, 손을 댈 생각은커녕 손이 저 여성분의 근처로 가지 않았습니다.“
현 대한민국은 여성의 편이라 정말로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말 한 번 잘못하면 바로 범죄자가 되기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래? 일단 CCTV 영상은 확보했는데 조금 걸릴 거야.“
"무슨 CCTV에요! 치한이라고요! 제 몸을 더듬었다고요.“
"......“
혹시 전생을 기억하는 건가?
그래서 전생에서 나한테 당한 원한을 지금 갚는 거고?
"학생... 그, 위치가 그래서 잘 확인이 안 되네?“
잠시 후, CCTV 영상을 보고 온 경찰관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일이 점점 꼬이네. 아니면 내 무죄를 증명할 증거가 확실함에도 일부러 실적을 올리려고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나로서는 뭘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영상을 보여 달라고 해도 뻔뻔하기 그지없이 내가 모르는 법 같은 걸 들먹이며 거절할 수도 있으니까.
"제가 한 번 봐도 되나요?“
"그건 무리야.“
역시. 이 짭새는 멀쩡한 사람을 매장시킬 쓰레기 중 한 명이었다.
저 여자도 솔직히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엇비슷해 보였다.
"하아......“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믿을 만하고 세상에 더 빨리 태어나 아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는 한 명에게 문자를 넣어 지금 상황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헤에? 훈이는 내가 아니라 저런 여자가 좋아서 추행하고 다니는 거야?“
부, 분명히 지영이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건만. 결국에는 지영이에게 말했는지. 그녀가 경찰서로 들어오면서 내게 물었다.
"미안해~!“
그녀의 뒤에서는 내가 문자를 넣었던 누나가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참. 너도 대단하다.“
그 뒤를 이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은정이도 보였다.
갑작스럽게 세 명의 미녀가 경찰서로 들어오는 경찰관들이나 나를 성추행범으로 몰던 여자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훈아. 불량식품이 먹고 싶었으면 말하지. 내가 구해다 줄 텐데. 저년처럼 악질인 여자가 아니라.“
여전히 미소가 걸린 얼굴로 지영이는 독설을 퍼부었다.
마치, 내 남친을 범죄자로 몰아 여기까지 끌고 온 보답으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