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치한
* * *
"부, 불량식품?!“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나를 치한으로 몰고 간 망할 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화를 내었다.
"불량식품이 아니면 뭘까?“
"어린 년이! 미쳤네?!“
"헤에. 나보다 족히 두 배는 먹었을 분이 이러는 건 미치지 않은 걸까?“
"두, 두배에에?!"
지영이는 태연하게 받아치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 위로 엉덩이를 내렸다.
"......?“
옆에 의자도 많은데 왜 여기서 이러는 걸까?
물론 나야 좋긴 한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은 이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킁킁. 아, 내 여자친구님 몸에서 나는 냄새 좋당.
"야! 야! 너 뭐하냐고 이년아!"
나조차 황당할 따름인데. 그녀는 더한 건지 지영이를 바라보며 목소리의 톤이 점점 높아졌지만 내 여자친구님은 가볍게 무시했다.
"CCTV는요?“
"그, 그게. 위치가 애매해서 영상으로는 확인하기 힘듭니다.“
내게 반말을 찍찍 내뱉던 짭새는 지영이에겐 존대를 하고 있었다.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건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요?“
하필 지하철 CCTV인지라. 개인이 확인할 수 없어서 경찰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데 그 경찰이 우리 편이 아니니. 상황은 최악으로 돌아가고 있는......
"그래요? 재밌네.“
지영이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범죄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르는데 재밌다며 웃었다.
그래서인지 살짝 울컥했다.
나의 심각한 불행을 가지고 재밌다고 표현한 그녀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은정아.“
"왜?“
지영이는 자신이 데려온 누나와 은정이를 불렀다.
"우리 SNS 한번 해 보지 않을래?"
"SNS? 그건 왜?“
은정이의 물음에. 그녀는 괜찮다고, 자기한테 맡겨두면 된다고 말하듯이 내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궁금해서 말이야.“
"뭐가 궁금해서?“
"우리 얼굴 올려놓은 다음에 사람들에게 이런 여자들이 곁에 있는데 들끓는 아스팔트에 면상을 갈아엎은 년을 추행할 정도로 우리 훈이가 발정 난 변태새끼인지. 아니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말이야."
".....!“
지영이는 규격 외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누나와 은정이는 연예계에 진출하면 분명 외모로 뜰 여지가 충분히 있는 미녀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SNS를 한다고? 그럼 그녀들은 짧은 시간 안에 미녀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져서 여자에, 예쁜 여자에 미친 남자들이 대거 팔로워를 신청할 터.
그 상태에서 지영이가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사진과 함께 내 사연을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지영이 한 명과 평범한 여자 수십 명으로도 비교가 안 될 것만 같은데. 지영이의 곁에 두 명의 미녀가 더 붙어 있고, 상대는 평범한 여자 한 명이면 경쟁 자체가 안 될 게 분명했다.
"재밌겠네. 그거?“
증거로 채택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거짓말 없이 진짜로 여자친구가 지영이인데, 그녀 옆에 두 명의 미녀가 더 있는데. 과연 평범한 여자를 추행하면서까지 눈에 들어올지 만무하다며 자연스럽게 내게 힘이 실릴 가능성은 높으니.
경찰도 적인 이상.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증거보다는 징징거리며 박박 우기는 것이 결정적인 증거보다도 더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근데 경찰서 위치를 밝혀도 되려나?“
누나는 겉과는 다르게 내가 치한으로 몰린 것으로 모자라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경찰까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조금 화가 났는지.
폰을 꺼내들며 그윽하게 경찰서 내부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누나는 지영이를 품에 안고 앉아있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이내,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훈이는 알아?“
"으으......“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대며 내게 물었다.
아마, 누나도 나랑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걸 경찰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
"저, 저기......!“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경찰은 다급히 우리를 불렀다.
그야 그럴 것이 자신들이 생각해도 주위에 환상적인 여자들이 있는데 굳이 그녀들보다 못한 외모의 여자를 위험성을 부담하면서까지 치한을 저지른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CCTV 영상을 숨겨 날 범죄자로 몰 수는 있어도 그녀들이 반발하고 SNS나 언론에 얼굴을 비추며 제보하게 되면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간단하게 종결되어 실적이 생길 이 사건은 어느새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게 분명했다.
"저, 저희가 다시 영상을 꼼꼼이 확인해 보겠습니다!“
후다닥.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모습을 감추었다.
"아쉽네. 지영이를 이용할 절호의 찬스였는데.......“
이미 SNS로 카페 홍보하던 누나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인터넷에서 흔히들 보이는 미녀들은 하나같이 보정이나 화장발로 누나와 비슷할 정도로 예쁜 여자들이 널려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홍보를 해도 원래 오는 사람만 오고 있는데.
보정이나 화장으로 커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예쁜 지영이가 이번 기회에 SNS를 한다면 바로 자기네 알바생이라며 손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릴 계획을 빠르게 도출해냈는데 바로 폐기시켜버렸다.
"집에... 가셔도 됩니다.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저기요! 제 몸을 만졌다고요!“
"그런 행동을 보이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니라고요! 분명 제 몸을! 이렇게! 이렇게 만졌다고요!“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직접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내가 저렇게 했다며 소리쳤다.
그래도 경찰은 그녀의 편이 되어 줄 수 없는지.
"계속 그러시면 그쪽이 수갑을 찰 수도 있습니다.“
"하...? 내, 내가 찬다고?!“
"네.“
"시발. 별꼴이야!“
결국, 우기기를 포기했는지 나와 지영이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며 발을 박차고 경찰서를 나갔다.
아니, 억울하네. 해도 내가 저 반응을 보여야 되는 거 아니냐? 지가 뭔데 화를 내고 지랄이야.
"우리도 갈까?“
"그래. 그러자......“
내 위에서 내려온 지영이는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출구 쪽으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죄송했습니다.“
황급히 사과하러 오는 경찰이건만.
"나중에 또 봬요.“
지영이는 여기서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조만간 얼굴을 맞댈 거라는 예언을 하며 경찰서를 나왔다.
"굳이 살 필요는 없는데. 훈아.“
"으, 으응? 뭐가?“
"뭐긴. 내 선물 사주려고 혼자 나온 거 아니었어?“
"......“
다 들켜버렸네.
"귀엽긴.“
그녀는 내 볼을 꼬집으며 마구 흔들었다.
"사줄 필요 없어. 그냥 모아둬. 나중에 크게 쓸 일이 있으니까.“
"알았어.“
남자친구에게 생일선물을 바라지 않는 여자친구라... 완전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러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잠깐 입술을 떨어뜨리며 사랑을 속삭이니. 지영이의 얼굴색이 살며시 달아올랐다.
"나도 훈아.“
쪼옥.
이번엔 그녀의 입술이 다가와 내 입술을 덮쳤다.
"하이고. 앞에서 염장질은.“
은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너도 하고 싶어?“
"무, 무슨.....!“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키스는 은정이 덕에 끝이 났다.
지영이는 입술을 떨어뜨리자마자 은정이를 향해 그렇게 물었고, 분위기 좋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의 남자친구를 빌려줄 것만 같은 물음을 하니 당황해했다.
"해도 돼.“
뭐지... 지금만큼은 아무리 그래도 내 남자친구는 못 빌려주겠어라고 말하기를 기도했는데.
도리어 지영이는 내 등을 떠밀어 은정이의 앞으로 보냈다.
"아... 그, 그으.“
은정이는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내 입술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애는 나랑 키스는 물론이고 섹스까지 한지 몇 년이 다되가는데 아직도 여전히 첫 사랑에 빠진 순수한 소녀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한테는 오직 지영이뿐인데. 그녀가 먼저 내 등을 떠밀어도 내 마음은 일편단심이어야만 하는데.
은정이의 귀여운 모습에 가슴이 심각하게 쿵쾅거리며 나도 모르게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우으...! 읏...!“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고 입을 맞추니 처음에는 미동도 없었다가 잠시 뒤, 그녀의 혀는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온 내 혀를 마중 나와 몸을 섞었다.
"하아... 하아... 하으. 지, 집에 갈래!“
체감상 길었던 키스가 끝이 나고 서로의 얼굴이 멀어지자.
나는 지금 당장 그녀를 눕혀 범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정도로 음란한 은정이의 얼굴을 보았다.
은정이는 거친 숨을 토해내다가 자신의 배를 콕콕 찌르는 내 자지의 느낌을 느끼곤 기겁하며 돌아섰다.
"집에서 안 할 거야?“
"야, 약속 있어서 오늘은 안 돼!“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은정이니 저 말은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여기 더 있다가는 정말 나와 몸을 섞다가 약속시간을 어길 것만 같아 도망치고 있었다.
"훈아. 나도 오늘 밤은 할 일이 있어서 키스만 받아 갈게.“
마찬가지로 누나도 할 일이 있는지 내게 입을 맞춘 다음 곧장 떨어졌다.
"남자 생긴 거 아니죠. 언니?"
"아니야. 쿡쿡. 친구가 올라왔다고 해서 만나러 가는 거야. 참고로 은정이는 부모님이 올라오셨다고 하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 지영아.“
"그럼 됐어요.“
뭐야. 해도 남자인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 하고. 누나 또한, 나한테 해야 할 말이 아닌가.
물론... 누나와 은정이가 남자를 만난다는 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긴 한데... 그런데... 말이지.
"조심히 들어가요."
"그래. 너희도 내일 학교가니까 적당히 해.“
"알았어요."
설마. 낮에 그리해놓고 또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겠나.
"훈아. 사랑해.“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로 날 밀어 넘어뜨리면서 한 손으로는 내 몸을, 다른 손으로는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던지며 위에 올라탔다.
나, 나 죽어!
*
다음 날.
우리는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에 올라탔고, 역시나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북적이는 지하철 내부라. 사람이 무척 많았다.
나는 애써 공간을 확보해 지영이를 벽에 밀어넣고 다른 사람의 몸이 닿지 않도록 하는데.
"후후. 하자?“
"지, 지영아......“
굳이 지하철을 탈 필요 없는 우리가 지하철을 탄 이유는 이러했다.
바로 어제 그 일이 있고 난 후, 치한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지영이의 요청 때문에.
그, 그런데 말이지. 치한플레이에서 당하는 역할이 지영이가 아니라 나였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