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47화 (47/142)

〈 47화 〉 빼앗기

* * *

분명 조원은 네 명이나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70% 이상을 나 혼자 준비한 과제의 발표날이 다가왔다.

그래서 과제를 내주신 교수님께서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당연히 다 해 왔겠지 하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기에 이르렀다.

"감사합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첫 번째 조의 발표가 끝이 났다.

손과 발, 그리고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 자진해서 발표하겠다고 한 게 아닌, 운이 나쁘게 맡게 된 듯했던 나머지 우리한테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당사자에게는 긴 시간이었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다음 조가 발표했다.

그 조가 끝나면 또, 다른 조가 나와서 발표했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아니, 내 차례가 왔다.

조사한 자료 대부분이 날을 잡고 함께 움직여서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온전히 나 혼자서 PPT를 만든 탓에 누군가에게 발표를 맡기기가 모호했다.

그야 그럴 것이 이 부분에서는 글을 더 넣는 것보다는 추가적인 설명을 입으로 하면 되겠다 싶어 굳이 안 넣은 부분처럼. 오직 나만이, 내게 맞춰진 발표 자료이기 때문.

학점에 딱히 관심이 없다면 나를 제외한 세 명 중 누구 한 명에게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할 수야 있을 텐데 말이지.

왜인지 모르게 피곤하네.......

"같이 나가줄까?“

"아니. 여기 있어도 돼.“

자리에서 일어나자 뜻밖에서 내 옆자리에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지 않은 지영이가 같이 나가줄까 하고 물음을 던져왔다.

그러나 PPT를 언제 넘겨야 할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으니. 따라와봤자 별로 의미는 없을 터.

그냥 혼자 나가서 발표 끝내고 오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그래. 열심히 해.“

"잘해~!“

"그... 미안해.“

그럼 그렇게 해. 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지영이는 고개를 미세하세 끄덕였고, 하나 누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셋 중에 유일하게 정상인 수영 누나만이 과제에 도움 된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괜찮아요. 누나. 익숙한데요. 뭘.“

고등학교 때부터 늘 있던 일이다.

우리 조에 들어온 애들은 전부 지영이에게 눈이 팔려 도움은 되지 않는 짐 덩이일 뿐.

마찬가지로 지영이는 나를 강하게 키우려는 건지. 내가 벽에 가로막힐 때가 아니라면 이 정도쯤은 혼자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며 도움의 손길을 애초부터 내밀지 않았다.

그러니 익숙해지다 못해 당연하게 조별 과제는 혼자 하는 것이 맞다고, 이제는 이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까지 들어왔다.

아... 이게 세뇌인가?

"안녕하세요.“

고작 서른 명 앞에 선 것만으로 긴장에 벌벌 떨던 고등학생 강민훈은 여기 없었다.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숙이며 먼저 조의 이름, 과제 제목, 과제의 대상, 목적 내용 등. 모터가 작동한 듯이 나불거리며 준비한 과제를 발표를 끝마쳤다.

"감사합니다.“

발표 도중에 평가자. 즉 선생님의 표정을 보면 대충 발표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의 교수님의 표정으로는 짐작이 힘들었다.

처음 앞에 섰을 때 보았던 팔에 턱을 괴고 눈길만 가져온 그 모습이 발표가 끝났을 때도 그대로인지라 원래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교수님일 수도, 아니면 내 발표가 흥미를 끌어내지 못한 한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전자일 것이라 확신했다.

"고생했어.“

자리에 돌아가 앉자 내 여자친구님은 고생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야.“

물론 고생은 내가 했다.

하지만, 인간은 고생과 노력만이 있어서는 성공하기 힘든 법. 이것 외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신을 평가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대상이 있어야만 했다.

나한테는 그 이로운 존재가 다름 아닌 지영이었다.

학점 따위, 과제 따위 관심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내가 준비하고 있는 과제를 힐끔 바라보며 여긴 이렇게 바꾸는 게 어떠냐는 간단한 조언을 해 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네 덕분이야.“

아슬아슬한 1등급 내신으로도 벅찬 한국 제일의 대학교 입학에 도움이 된 내신.

그 내신을 만들어준 사람은 지영이.

나는 정말 지영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잡대에 들어가서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지내면서 세월을 낭비만 하고 있었겠지.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짜 전생에 나라를, 세계를 구했나 보다 나는.

"한 것도 없는데.“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앞으로 돌려 긴장한 모습으로 발표하고 있는 다른 조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손을 내려 내 허벅지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잠깐 쓰다듬는 것뿐이겠지 생각했는데.

"지, 지영아?“

점점 손이 올라오더니 이내, 사타구니에 도달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얘가 왜 이러지. 빈 강의실도 아닌데. 거기다가 우리가 앉아있는 곳은 창가 자리이긴 했어도 맨 뒤쪽도 아닌, 중간 자리인데.

"왜?“

"그, 손 좀.“

"응? 손을 왜? 상 주는 건데 싫어?“

이게 상이라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상이라기보다는 날 괴롭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이라고 하면은 내일 있을 발표 때문에 평소보다 적게 하긴 했어도 어쨌든 했던 섹스가 상이지 않을까.

"좋긴 한데... 그래도 여기는.“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장소가 장소이고 만약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다.

까득.

저 봐라. 바로 뒤에 앉아있던 하나 누나는 지영이가 지금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짐작이라도 되듯. 이를 갈고 있는걸.

그리고 누나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수영 누나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어뜨린 걸... 어?

잠시만. 수영 누나에게 들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하나 누나랑은 이미 갈 데까지 가서 괜찮다 싶은데 수영 누나는?

"왜?“

나는 다급히 지영이의 팔을 붙잡아 움직임을 막았다.

그러자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그제서야 내게 시선을 가져왔다.

"그만......“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되었기는 해도 수영 누나가 과연 우리가 강의 도중 대놓고 음란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소문내지는 않겠지만 불안한 건 매 한 가지.

"흐응. 훈이는 내가 싫어진 걸까?“

"그럴 리가.“

"그럼 왜.“

"들킬... 까봐.“

이미 두 사람에게 들켰지만.

"그래서?“

"어?“

"들키면 뭐가. 보라면 보라지.“

"윽?!“

정말 상관없는지 방금까지 쓰다듬는 것에서 그쳤던 그녀의 손은 눈 깜짝할 사이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려서 보인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 자지를 움켜쥐었다.

"문제 될 건 없잖아?“

얼굴을 가져와서는 굳이 귓가에 속삭였다.

아니... 충분히 문제 될 것 같은데.

차마 나는 또다시 그녀의 팔을 막지 못했다.

멀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니,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요염하게 입술을 혀로 핥는 모습에 원치는 않는데 본능적으로 자지가 발딱 서버려 섹스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

늘 하던 만큼 밤에 마저 하지 않았던 탓일까. 물을 빼고 싶다며 몸이 난리였다.

"착하네. 훈아.“

지영이는 내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 이건 들키겠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내 입안에다 넣으려던 찰나. 뒷자리에 앉은 하나 누나와 수영 누나. 그리고 이름 모를 학생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손을 떨어뜨렸다.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자. 알았지?“

끄덕... 끄덕.

"착하다. 정말.“

환한 미소와 함께. 흘러나온 쿠퍼액을 손에 묻혀 윤활제로 자지에 골고루 발라 찹찹찹. 손을 흔들었다.

*

학생들이 많은, 그것도 교수님까지 있는 강의 도중에 가, 강민훈의 사타구니에 손을 뻗은 지영이의 대담한 행동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들킬 거란 생각에 두렵지도 않은 걸까. 뭘 믿고 그러는 걸까 하고 그저 얼굴을 붉히며 자신도 모르게 살살 간지러워지는 음부로 인해 허벅지를 마구 비벼대고 있을 때쯤.

"그만......“

저, 정말이었던 거야?

겉모습과 차원이 다른 듯한 강민훈이의 연약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이수영은 황급히 고개를 쳐들고 앞을 바라보니 그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간 지영이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무슨 말을 전하는 걸까. 궁금하던 찰나. 얼굴이 도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윤지영의 표정을 볼 수가 있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웃는 것을.

"착하네. 훈아.“

굴복한 건지. 다시 윤지영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사타구니 쪽으로 향해있던 그녀의 손이 말이다.

이수영은 옆자리에 앉은 하나가 알려주었던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윤지영이란 여자는 알고 보면 위험한 여자라고, 그리고 남자친구라 하는 강민훈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라고.

"설... 마.“

둘의 사이가 무척 보기 좋아서 애인이 있는 상대에게 절대 느껴서는 안 될 감정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는데.

말 한마디에 싫어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던 그가 잠깐의 귓속말에 굴복하고 추행당하는 게 점점 하나의 추측이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하나야.......“

살며시 하나를 불렀다.

"하나야......!“

"아, 아응. 왜.“

앞만을 바라보며 이를 갈던 하나는 뒤늦게 대답했다.

아아. 불쌍한 민훈이. 어떡해. 어떡해.

"끝나고 시간 돼?“

"시간은... 있는데?“

늘 착하다는 평가가 따라오던 이수영이었는데.

포기해야만 했던 처음 느낀 사랑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이 돌아버려 지금만은 완전히 다른 이수영이 탄생했다.

"그래? 다행이네.“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외모는 압도적으로 뒤떨어지기는 해도 사랑에는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격.

성격이 좋지 못하면 예쁜 여자라도 질릴 수밖에 없다.

그 점을 파고들어 이수영은 나쁜 생각을 가졌다.

내가 구해줄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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