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52화 (52/142)

〈 52화 〉 은정이

* * *

푸른 하늘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지금은 오직 붉은 노을만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런 노을 밑에서 나와 은정이는 평범한 남사친, 여사친의 사이처럼 나란히 걸어가되 주위에 보이는 알콩달콩한 연인들처럼 너무 붙어 걷고 있지는 않았다.

"또 나갔어? 정말 갈구는 거 아니야?“

"굳이 왜 갈궈? 애초에 갈굴 필요도 없는데. 그리고 내가 사람을 갈구면서 재미를 느끼는 쓰레기도 아닌데.“

"그건 맞긴 하는데. 그래도 생각해 봐. 어떻게 공사장도 아니고 고작 카페 알바들이 몇 주를 못 버티고 나가.“

"......“

카페 알바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힘든 나머지 못 버티고 때려치울 정도로 비교적 힘든 일은 아니라는 것.

뭐, 가게 사장인 누나가 너무 예쁜 것도 있고, 유일무이한 정직원인 은정이도 너무 예쁜 탓에 다른 카페보다 비교되게 상당히 많은 남자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카페 인테리어나 맛 등도 만만치 않아 여자 손님들도 많이 찾고 있는 실정이라 일이 조금 고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일반 직장보다 시급을 높게 측정해 주다 보니 오히려 직장을 구하지 않고 이 카페에서 계속 알바만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아... 나도 몰라.“

"에구......“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깊게 내쉬는 은정이.

"이래서는 우리도 곧 뼈를 묻을 수도 있겠네. 원.“

모아둔 돈도 꽤 있겠다 나와 지영이는... 지영이는... 음. 지영이는 아니고 나는 오로지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내 여자친구님이 성욕이 강한 이유로 알바까지 하게 된다면 내 체력이 정말 버티지 못해 공부에는 전혀 눈길이 가지 않을 터.

그래서 이렇게 일손이 부족할 때. 정확히는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알바생이 다시 구해질 때까지 나와 지영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게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루고자 하는 꿈을 잊고 누나의 밑에서 카페나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러고 싶으면 하는 게 어때? 나도 이제 면접 보기도 귀찮고 갑자기 그만둔다고 말해서 혼자 힘들게 일을 도맡아 하고 싶지는 않아.“

은정이는 제발. 우리가 카페 일을 하기로 완전히 마음먹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말 면접이 싫은 건지. 아니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은 건지.

"생각은 해 볼게.“

지영이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누나와 은정이의 부탁이라도 이것만은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

그나저나.

"진짜 갈구는 건 아니지?“

"......“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금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이 싸늘함만이 가득했다.

갑작스레 걸음이 멈춘 은정이를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차가운 표정과 눈빛은 내 체온을 끊임없이 낮추고 있었다.

"이해는... 하는데. 이해는 한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얹혔다.

"그렇지만 진짜 그렇다니까?“

알바생들이 버티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 열등감이다.

아니, 열등감이라 해야 하나, 질투라 해야 하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누나와 은정이에게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남자들은 대체로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하러 오기보다는 둘을 어떻게 해 보려는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아 아예 작정하고 여자만 뽑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뽑은 여자 알바생들은 처음에는 카페 알바에게 주어지는 시급이 많이 높다는 사실에 좋아하는데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같은 여자로서 함께 일하는 사장인 누나와 직원인 은정이에게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고 결국엔 그만두고 말았다.

솔직히 내가 듣기에는 배가 부른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정이가 말하길. 가끔 찾아오는 질이 좋지 못한 남자 손님들이 왜 대놓고 비교되게 못생겼다거나 너 말고 예전에 왔을 때 봤던 한 알바생. 지영이는 어디 갔냐고 따지듯이 물으니 보기보다 마음의 상처가 심했을 수도 있다고는 한다.

그만큼 정말 못된 사람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래서 지금 당장 돈에 메말라 있지 않기 때문에 높은 시급과 시급에 비해 간단한 일에도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해 그만두는 것이라. 둘은 그렇게 말한다.

어떻게 사람을 뽑아도 그런 사람들만 뽑는 건지 원... 일부러 그러나?

"그래. 그래. 알았어.“

"안 믿지? 역시 내가 갈군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야.“

"......“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이 은정이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은정이가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잘 알고 있어서 믿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고작 그런 일 때문에 그 시급을 포기하고 때려친다는 게 내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을 뿐이다.

"정말이야?“

아까보다 낮아진 그녀의 목소리.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누나가 뭐 사 오라고 했더라? 기억나?“

"응. 다 기억나니까 대답해 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 왜 그래.“

내가 잘못한 게 맞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실실 웃으며 그녀의 옆에 다가가 팔짱을 꼈다.

그제서야 차가움이 잔뜩 내비치는 표정으로 단단하게 굳어 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럴 애가 아니란 건 아는데 솔직히 황당하잖아? 한 달 만에 세 명이나 나가는 게 말이야.“

때려도 한 달 만에 세 명이 동시에 나가게 만들기란 힘들지 않을까.

일단 주는 돈이 많으니까.

"하아... 알았으니까 떨어져.“

살며시 붉게 상기된 얼굴색은 지금 심정을 대비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모르는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알다 보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나. 기분 풀게 해 주는 방법이 조금 역겹기는 한데 내가 애교를 부리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며 내 여자친구 또한, 이러는 걸 막기보다는 오히려 좋다고 부추기는 상태이니.

어느새 나 또한, 물들어버려 이런 행동을 스스럼없이 생각하기도 전에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고마워.“

그 말과 함께 팔에 힘을 빼내 팔짱을 풀려 했다.

"그냥 가......“

고개를 돌린 채로 은정이가 말했다.

목덜미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알았어.“

섹스까지 했는데 팔짱은 뭔 대수일까.

심지어는 지영이도 우리 사이도 알고 있는데.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 상태로 마트로 향했다.

"이거랑... 이거.“

나는 카트를 끌고, 그녀는 살 것들을 고르고 있었다.

"응...? 그게 아니라 이거 아니었어?“

늘 쓰던 브랜드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를 집자 나는 곧장 물어보았다.

"언니가 이게 더 맛있다면서 바꾸기로 했어. 내가 먹어 봐도 이게 더 나아 보이니까.“

분명 같은 종류의 식재료이지만 회사마다 맛이 미세하게 다르다 보니 어느 회사의 제품을 사는 것까지도 신중해야 했다.

"그래?“

"응. 한 번 먹어 봐. 맛있어.“

"그래야겠네.“

평소에 쓰던 것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맛있었는데 더 맛있다니 기대되었다.

은정이와 마트 안을 돌아다니며 누나가 사 오라 했던 것들을 골라 담으며 우리가 먹을 것들까지 추가로 담았다.

그러던 도중.

"응.....?“

나는 어느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갑작스럽게 움직임이 멈추고 한 쌍의 커플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은정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기억하기로는 학기 초 때 지영이에게 엄청나게 들이댔었던 꽤 잘생긴 선배로 기억한다.

"아?“

그 선배 또한, 나를 발견하였는지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내 옆에 있는 은정이를 보며 더 크게 놀라면서 내 얼굴과 그녀의 얼굴을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오빠.....?"

분명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필 한 사람이 여자이며 자신보다도 엄청 예쁜 여자이기 때문에 선배의 연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표정은 우울해졌다.

"아니. 아는 후배라서.“

싱긋. 웃으며 선배는 다가왔다.

질투와 함께 동류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 능력 좋다 너?“

"네.....?“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우리 잠시 얘기할까?“

"갑자기요?“

"왜. 싫어? 너한테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는 은정이를 힐끔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선배가 얘기를 나누자고 하니 은정이를 내버려 두고 졸졸 따라갔다.

"지영이라는 여친을 두고 다른 여자랑 마트에 오네? 그것도 저리 예쁜 애를?“

완전 쓰레기를 보는 눈빛이 내 전신을 훑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애초에 저런 눈빛과 말은 내가 해야지 않나?

내가 알기론 선배는 같은 과 예쁘장한 선배와 사귀는 사이로 알고 있는데 틀린 걸까?

왜 다른 여자랑 빼도 박도 못 하게 연인 사이처럼 마트를 찾아온 건데 말이지.

적반하장도 참.

"너 사실 재벌 2세 아니야? S그룹 직계 자식 맞지?“

"아닌데요?“

"거짓말 말고. 솔직히 너 돈이 없으면 저런 여자들이랑 말도 못 섞을 지경인데 말이 되는 거야?“

아... 이제 알겠네. 이 망할 카사노바는 지금 내가 지영이를 두고 다른 여자랑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마치 자기처럼. 이런 개쓰레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여자친구의 허락이 떨어졌고, 은정이도 마찬가지로 내게는 지영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근본적으로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근데 다른 사람이 본다면 나와 선배의 쓰레기 정도의 차이가 있나 싶겠나만은.

"나도 한 명 소개해 주면 안 되냐?“

이거 구제 불가능한 쓰레기구만? 더 들을 것도 없네.

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은정이의 곁으로 돌아갔다.

뒤에서 선배의 부름이 계속되지만 무시하고선 마트를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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