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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토라세 여친님-54화 (54/142)

〈 54화 〉 은정이

* * *

시간이 시간인지라 속도 꺼져 배가 고플 저녁이라 그런지 은정이는 우선 밥부터 먹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먼저 향한 곳은 바로 고깃집이었다.

"내가 구울게.“

앞에 앞은 그녀는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집게와 가위를 먼저 채가면서 말했다.

"알았어.“

내 주위의 여자들은 하나 같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통된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고집. 고집이 어찌나 강한지. 고기를 굽겠다고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는 은정이에게서 굳이 집게와 가위를 빼앗아 분위기만 망치고 싶지 않은 나는 순순히 고기를 구울 기회를 넘겨줬다.

치이이익.

삼겹살이 나오고 곧장 뜨거운 불판에 고기를 올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는 듯했다.

"지영이는 이런 거 안 해 주지?“

"어... 그렇지?“

귀찮음의 대명사 내 여자친구님은 고기 굽는 일을 잘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생일은 잘 챙기면서도 자기 생일이나 심지어는 부모님의 생일조차 거의 챙기지 않을 정도로 귀찮아하고 있어서 당연히 고기를 굽는 자잘한 일 따위는 내가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럴 것 같더라.“

은정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기를 구웠다.

"다 익었네.“

그녀는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내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고마워.“

손바닥에 상추를 올리고 고기와 함께 이것저것 올려둔 뒤, 내 입이 아닌 고길 굽고 있는 은정이의 앞으로 가져갔다.

"아.“

"......“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도 잠시 붉어진 얼굴로 입을 벌려 쌈을 먹었다.

"이제 내가 구울게.“

"아니야... 괜찮아.“

"너도 먹어야 하잖아?“

"알아서 먹고 있어.“

물론 맛있게 굽기는 한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원하는 맛은 아니었다.

그리고 고기를 먹으로 오면 무조건적으로 내가 구웠기 때문인지 고기를 굽고 싶어 손과 발이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아니, 애초에 고길 굽느라 바빠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부담스럽다고나 할까.

"그... 뭐냐. 쌈이나... 계속 싸 줘.“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할 말은 다 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긍정했다.

"자. 아.“

*

배를 가득 채운 뒤에 향한 곳은 영화관이었다.

지영이와의 데이트는 거의 절대다수가 정상적인 데이트가 아니었다.

나도 다른 연인들처럼 알콩달콩하게 이곳저곳을 들리며 추억을 쌓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영이는 전혀 그런 거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예쁜 여자, 이왕이면 몸매도 좋아 박힐 때마다 가슴과 엉덩이 살결이 예쁘게 흔들리는 그런 여자를 찾아 꼬셔서 모텔로 데려가기에 바빴다.

그래도 영화관 같은 곳은 한 번도 와본적이 없는 건 아닌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근데... 근데 있잖아.

"은정아... 영화 안 봐?“

"뭐가... 보고 있어. 조용히 해.“

고개를 돌리니 아까 전부터 내 옆얼굴만 부담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은정이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거대한 스크린에 눈길을 옮겼다.

그러면서 영화 보는데 방해된다고 뻔뻔하게 조용히 하라 한다.

나는 더 추궁하는 것 없이 눈을 도로 앞으로 가져갔다.

"......“

그러자마자 느껴지는 시선. 눈동자를 살며시 옮겨 옆을 보니 역시나 은정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집중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로 영화가 끝이 났다.

"재밌었다. 그치?“

거짓말 치지 마. 너 영화 아예 안 봤잖아?

아무리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라도 두 시간 가까이 옆 얼굴만 바라볼 수 있는 걸까? 정말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러네.“

그냥 모르는 척... 괜히 말했다가 분위기만 나빠지겠다는 생각에 은정이의 말에 대답할 뿐이었다.

"다음은... 어... 당구장 가 볼래?“

"칠 줄 알아?“

"아니. 가르쳐 줘.“

"나도 잘 안 해서 모르는 게 많은데 괜찮아?“

"응...? 안해? 당구 안 좋아해?“

"거의 안 하지.“

왜냐하면 내게 친구가 없을뿐더러 지영이는 당구장 같은 곳보다는 모텔을 더 좋아하니까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럼 뭐 할래?“

지영이에게 물든 탓에 지금 당장 생각나는 곳은 바로 모텔이었다.

지영이랑 데이트 하러 온 것도 아닌데 모텔 가자할 수도 없는 노릇.

"운동이나 할까?“

모텔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헬스장. 나는 그녀에게 운동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아차. 하고 눈치를 살폈다.

물론 여자가 운동을 좋아할 수도 있는데 은정이는 운동과 거리가 먼 듯해 보였고, 데이트 코스를 헬스장으로 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연애 기간은 만만치 않은데 사실상 연애 초보인 나는 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그러나.

"헬스장? 그래. 가자.“

은정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그녀를 데리고 우리가 다니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응? 회원님. 오늘은 혼자이신... 아......“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마지했던 트레이너는 잘리고 새로 트레이너가 들어왔었다.

그 트레이너는 지영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가 임자 있는 몸이란 걸 알아서 노골적으로 아쉬움 마음을 가진 것도 잠시 완전히 잊은 채로 운동에 집중해서 나의 호감도를 왕창 가져간 근육질 남자였다.

아무튼, 그런 그가 평소에 오던 시간과는 영 다른 시간에 헬스장을 찾은 나를 보고, 그리고 혼자 모습을 보인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다가 이내, 신발을 마저 벗고 헬스장으로 들어온 은정이를 보며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사람 많네?“

"저녁이라 그래.“

헬스장은 대체로 6시 이후에 사람이 점차 모이기 시작하다가 6시 30분에서 7시에 과부하 현상이 왔다.

그만큼 이 시간에 헬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부담스럽네.“

그리고 그만큼 남자들의 수도 많으며 그 남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다 잠시 쉬는 타이밍에 우연히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은정이를 보고 넋을 놓았다.

익숙한 모습이기에 은정이는 불쾌하다거나 싫다는 표정보다는 귀찮을 일이 생길 것만 같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옷은 갈아입을래?“

"아니야. 간단한 운동만 할래.“

"그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줘.“

나는 탈의실로 들어가 내 캐비닛을 찾아 옷을 재빨리 갈아입었다.

"음... 오늘 가져가서 빨아야겠네.“

입자마자 술술 풍기는 찌든 땀 냄새. 오늘 가져가서 한 번 빨아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탈의실을 나왔다.

"혹시 남자친구가 있으신가요?“

"헬스장은 처음이신가요?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있는데......“

"다이어트인가요? 아니면 근력운동?“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은정이를 둘러싼 세 명의 근육질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은정이의 얼굴과 몸매에 자꾸만 시선을 가져가며 노골적으로 들이대고 있었다.

"늦었어. 가자.“

은정이는 대답할 가치도 못 느꼈는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팔짱을 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저새끼 여친 있지 않아?“

"바람 아니야? 시발놈. 다음에 여친이랑 오면 보자.“

은정이가 떠나가자마자 곧장 욕부터 박기 시작했다.

난 분명 저들에게 피해를 준 게 없는데 왜 저렇게 나한테 악감정을 가진 걸까. 뭔가 억울한데 이거?

"간단한 것부터 한다고 했지? 그럼 일단 뛰자.“

함께 런닝머신에 올라가 뛰었다.

마음 같아서는 근력운동 하고 싶은데 은정이를 여기에 혼자 두었다가는 또 어떤 남자들이 끈질기게 들이댈지 모르는 상황이라 은정이를 여기 두고 내 운동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우린 약 20분 정도 뛰었다.

"가볍게 2kg로 들자.“

내게는 너무 가볍다 못해 어쩌면 새끼 손가락으로도 들 수 있을 정도의 귀여운 무게인 2kg짜리 아령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나도 적당하게 3배 정도인 7kg짜리는 양손에 쥐었다.

"거울 봐봐.“

내 말에 따라 은정이는 거울 앞으로 몸과 고갤 돌렸다.

그러자 거울에는 그녀와 내 전신이 그대로 비춰졌다.

아주 작게 하라는 운동을 안하고 우리를... 정확히는 은정이를 보는 남자들의 모습도 덩달아 보였지만 애써 신경을 접으며.

"먼저 어깨를 고정시켜.“

지금 우리가 할 것은 어깨로 드는 운동이 아니기에 어깨를 쓰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올려봐.“

팔을 들면서 말을 이어가자 은정이는 내가 하는 행동을 따라서 팔을 들었다.

"끝까지 다 올렸다 싶으면 팔꿈치를 미세하게 밀어.“

"이 정도면 됐어?“

"잘했네. 이제 내리면 돼.“

처음하는 것 치고는 꽤 괜찮게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으읏... 읏!“

내게는 고작 2kg밖에 되지 않으면서 은정이에게도 고작 2kg짜리일 뿐이지만 처음에는 쉽지 이걸 반복하다보면 아무리 가볍더라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운동을 전혀 해보지 않은 은정이는 서른 개가 넘어가자 이제는 버거워 보였다.

"자. 그만.“

원래라면 팔이 안 올라갈 정도로 한계까지 해야 근육이 늘어나는데 은정이는 근육을 키우러 온 게 아니라 데이트라는 명목상 헬스장으로 향하는 날 따라온 거니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할만해?“

"괜... 찮네.“

그런가. 표정은 연 시원찮은데.

"그럼 다음 운동으로 넘어갈 볼......“

"여기 있었네?“

다른 거로 넘어가려던 찰나.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영아?“

아직 카페 마감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는 지영이가 서 있었다.

"카페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그냥 나왔어.“

이런. 내 여자친구님도 은정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무대포다.

"운동해 보게? 내가 하자 할 때는 싫다면서.“

"그냥... 뭐.“

"보니까 너 배가 조금 나온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운동하자.“

".......“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은정이랑 섹스했을 때 살이 조금 잡힌 듯한 느낌이 났었다.

지영이라면 몰라도 평범한 여자들은 살에 민감해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데. 지영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는 이와 듣는 귀가 많은 여기서 너 살쪘으니 운동하자는 말을 도렬 말했다.

"하는김에 근육도 조금 키우자.“

지영이는 은정이의 등을 떠밀며 탈의실로 향했다.

"훈아. 옷 좀.“

"알았어.“

굳이 사이즈를 말하지 않아도 나는 자연스럽게 카운터로 가 여성 운동복 하나를 주문했다.

당연히 은정이같은 미녀라면 헬스장 이용권도 무료, 옷도 무료였다.

"고생하겠네. 은정이.“

처음 내가 지영이에게 등 떠밀려서 헬스장을 찾았을 때가 생각났다.

그떄 참 고생 했었는데. 여러 의미로 말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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