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56화 (56/142)

〈 56화 〉 은정이

* * *

"집에 데려다주고 와.“

온몸이 뻐근함을 넘어 아프다고 아우성인 은정이와 함께 헬스장을 나온 내가 지영이에게 들은 말이었다.

"알았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럴 것이 은정이보다 예쁜 지영이도 늦은 밤 혼자 집에 돌아가기에는 많은 위험성이 존재하기는 하다만 실질적인 힘을 제외하고 나면 나보다도 지영이가 싸움을 더 잘하니 걱정은 크게 덜어졌다.

물론, 그래도 불안함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어 그냥 함께 은정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가자는 말을 뒤늦게 꺼내려던 찰나.

"아. 벌써 갔네?‘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지영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갈까?“

"응.“

내일이 주말이기도 하니 오늘 하루의 시작은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지금부터라는 것처럼 수많은 가게에는 젊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그런 떠들썩한 거리 속. 은정이가 조심스레 손을 잡아왔다.

갑자기 손에서 느껴진 따뜻한 감촉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에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녀에게 닿았는데 애써 모르는 척. 앞만을 보고 있는 모습에 말을 하거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말 없이 걸음만을 옮겼다.

"여기야.“

"......“

집에 도착했다.

그것도 아파트에.

우린 아담한 투룸에서 함께 사는 것에 비해 은정이는 돈이 많은 건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나 보다.

혹시나 이 아파트가 아니라 근처의 원룸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는데. 역시나 그녀는 거침없이 아파트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돈이 많은가.....?

"들어가 봐.“

아파트 통로를 앞에 두고 움직임을 멈춰 세우며 오랫동안 맞잡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데려다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터.

그러나 뭔가 부족한지 그녀의 표정은 딱히 좋아보이지 않았다.

"아직... 데이트 안 끝났어.“

하루가 지나지 않았기는 한데. 나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내 여자친구님의 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지.

이런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던 찰나.

우우웅.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힘차게 울어댔다.

누가 이 시간에 연락을 했을까.

대학에서는 아싸라서 개인적으로 연락할 사람이 없는 데다가 부모님은 지영이가 곁에 있다면 안심할 수 있다며 안부전화나 문자를 잘 넣지 않았다.

그럼 지영이일 가능성이 크겠지.

내가 보고 싶다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문자인가?

[지금쯤이면 은정이 집 앞이지?]

어찌 알았을까. 옆에서 보고 있는 걸까?

[내일 마침 주말이니까 자고 와도 돼.]

문자 내용은 이게 끝이었다.

헬스장에서 다툼도 없어서 악감정에 집에 오지 말라는 말은 아닐 텐데. 이러려고 혼자 간 거야?

이래서 그녀가 얻는 이점을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은 도출되지 않았다.

근데 무사히 집에 도착한 것 같아 다행이긴 하네.

"아니야. 첫날이라 많이 피곤할 텐데. 가서 자.“

모든 것에는 처음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공부든 일이든 운동이든 말이다.

그리고 지영이가 명령 어조로 자고 내일 집에 돌아오라는 말이 없었기에 여기서 헤어지자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하지만 내 말을 거부하듯, 아름다운 얼굴을 왈칵 일그러트리는 것도 잠시. 그녀는 내 팔을 잡고선 강제로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고 와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

"연락받았어?“

"응. 받았으니까 자고 가.“

저항한다면 충분히 가능하기야 한데 짧은 시간의 운동으로 인해 다 빠져버린 힘으로, 그리고 이렇게 떼를 쓰는 은정이는 거의 처음이기도 해서, 마지막으로 지영이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얼떨결에 끌려가서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8층을 누렀다.

"자, 잠시만요!“

닫히기 일보 직전에 한 남자가 숨을 심하게 헐떡거리며 뛰어와서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실었다.

"허억... 헉... 가, 감사합니다."

감사를 받을 짓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있었으며 은정이는 태우기 싫었는지 닫힘버튼을 연타했기에 오히려 사과해야할 판인데 말이지.

"아... 안녕하세요?“

그는 은정이와 안면이 튼 사이처럼 살며시 붉어진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자꾸만 나를 힐끔 쳐다보는 것이 뭔가가... 왜인지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기껏 인사를 건넨 그는 무안해질 정도로 은정이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지 내 팔을 끌어안은 채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저. 남자친구이신가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은정이를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이 떨어짐과 동시에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보였지만 여전히 시선이 내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적의.

띵.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대답하지 않아서 나 또한, 입을 꾹 닫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이 멈춰서며 문이 열렸다.

"......?“

그러고 보니 이 남자. 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내리니까 따라서 내리는 게 스토커인가 생각이 들어와서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면 옆집인지 아니면 일부러 따라 내려서 우리가 집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윗층이든 아래층이든 내려가는 위험한 인물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삑삑삑삑.

이런 내 생각이 과했던 걸까. 그는 은정이의 집으로 생각되는 바로 옆집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꾹꾹 눌러 잠금을 해제했다.

"......“

잠시 우리를. 아니 나를 째려본 뒤에야 모습을 감추었다.

"들어와.“

활짝 열린 대문 앞에서 얼쩡거리는 나를 다시 잡아 끌어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문이 쿵. 닫히자마자 그녀는 곧장 내게 입을 맞춰왔다.

저항하지 않으며 그녀의 키스를 받아주니까 더더욱 대담하게 마치 남자처럼 내 몸을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하였다.

"하아... 하아......“

잠시 거리를 조금 벌려서는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땀에 젖은 옷을 한 꺼풀씩 벗어던졌다.

"은정아.“

"응?“

"방금 그놈 누구야?“

"옆집...? 걔는 왜?“

"아는 사이야?“

뭘까. 이 답답함은. 그리고 기분 나쁨은.

카페 일을 하던 도중에 지겹도록 찾아오는 손님들이 은정이와 누나에게 대시할 때랑 비슷한 불쾌함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은정이의 집 앞에 사는 이웃이라는 것과 매일 계속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리고 밖에서 가끔씩 계속 만나 사적인 얘기를 나눴을 것만 같은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흐응...? 질투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뭐야?“

이런 내 반응이 보기 좋은지.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옷을 벗다 말고 다가왔다.

"그 말이 맞았네. 네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게. 처음에는 미친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흐응. 궁금하면 네 여자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

"......“

지영이는 내게 알려주기 싫은 게 있으면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히 남자친구로서 충분히 알아야 할 것들. 예를 들자면 어디에 잠시 놀러 갈 것인지, 누굴 만나겠다는지 등에 대해서는 숨김이 없지만 그 외에는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섹스 플레이 정도. 이것 외에도 많긴 한데 지금 생각나는 건 이것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영이가 내게 먼저 말하지 않았으면 알려줄 마음이 없다는 것.

"알려주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나도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녀 역시 말할 생각이 없다 보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말 돌리지 말고 그 남자랑은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니야.“

"정말이야?“

"응. 걔가 귀찮게 말을 계속 걸어올 뿐이야. 방금처럼 난 대답도 하지 않아.“

"그래?“

이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었다.

"아마 내 이름이랑 나이도 모를걸?“

은정이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 질투하는 거야?“

질투...? 질투를 내가? 은정이에게? 그럴 리가. 나한테는 이미 몇 년간 사귀고 있는 지영이라는 예쁜 여자친구가 있는데 왜 굳이 질투를 느낀다는 말인가?

나는 애써 부정했다.

분명히,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일편단심일 거라고 확신했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좋네... 기분은.“

은정이는 나를 데리고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명이 누워 잠을 자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침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차피 내 게 될 수도 없었고, 이미 물들어서 공유하는 건 상관없기는 한데 여기서 더 늘어나는 건 역시 안 되겠네.“

"무슨 말이야?“

"그냥 혼잣말이야.“

나를 침대 위로 밀어 눕힌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꾸 들으니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알려주지 않으려는 듯. 혼잣말이라 치부하며 옷을 마저 벗어 던졌다.

"민훈아... 너는 나 좋아해?“

상의를 걷어 올려 탄탄한 복근이 자리잡은 배 위에 엉덩이를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상의를 마저 올려 벗기려고 했으며 반대편 손은 등 뒤로 뻗어 바지 지퍼를 내려갔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라... 단순히 친구 사이에서 좋아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은정이가 내게 어떤 감정을 가진 것을 알고 있는 탓에 단순한 친구 사이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성으로서의 좋아한다는 걸 알아서 입을 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탓이라며, 가벼운 이상증세라며 넘겼는데 은정이의 옆집. 그 남자의 존재로 인해서 확실하게 이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정도면 됐어. 부정만 하지 않으면.“

은정이는 행복하게 웃으며 상체를 내려 입을 맞추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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