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고향
* * *
이젠 정말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고 지영이의 집 앞까지 배웅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집에 오랜만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몰래 남친과 외박을 나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장인어른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디 갈래?“
"글쎄.“
결국, 지영이를 집에 돌려보내지 못하고 다시금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모텔에서 얼마 못 자서 피곤한데. 이래서는 우리 집에 데리고 가야 할 판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부모님이 있을 테니 이조차 부담이 되어 지영이를 데리고 가기엔 조금 그랬다.
꼽을 주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아들인 나보다 지영이에게 무한한 관심을 주는 게 부담이라고나 할까. 내 여자친구님도 그것 때문에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모든 건 적당해야하니까.
"학교나 갈래?“
"학교? 어디? 설마 고등학교?“
"왜. 추억 찾고 재밌잖아?“
"뭐, 그건 맞긴 한데. 고등학교는 아직 기말도 안 치뤘을 거라 애들 있을 텐데?"
"아... 맞다. 오늘 평일이지? 생각해 보니 그러네.“
대학은 시험을 상당히 빨리 치뤘다.
우리 학교가 6월 셋째 주에 시험이 모두 끝난 것에 비해 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7월이 지나고 그제서야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말인즉슨, 아직 방학하지 않아 학교 안에는 학생들로 붐빈다는 의미.
"깜박했어.“
나라도 그럴 것이다.
정확히 얼마나 큰 돈을 번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녀 혼자서 양가의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어 일을 때려치우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게 웬 말이냐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지영이 덕에 돈 걱정이 사라져 일할 필요도 없이 놀고먹기만 하느라 당연히 평일인 오늘인데도 집 안에 있었으니 착각할 만했다는 거다.
"그럼 다시 모텔이나 가서 할까?“
".....?!“
평일이라고 해도 거리에는 우리 둘 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서울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고향인 이곳은 꽤 큰 도시인지라 젊은 층과 노년층이 주위에 가득했다.
그리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초월적인 미모를 지닌 내 여자친구님을 힐끔 쳐다보고 있는 와중인데 지영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내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가 조물락 거렸다.
크게 당황하며 내 사타구니를 요염하게 훑으며 만져대고 있는 그녀의 손을 다급히 치웠다.
"딱딱해졌네?“
어젯밤에 충분히 물을 뺏고, 지금의 난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자지는 완전히 다른 신체부위라는 것처럼 딱딱해지고 있었다.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조금 딱딱해진 것에 비해 옷 위로 자기주장을 하고 있자 자연스럽게 다리가 모아지고 허리가 숙여졌다.
"버, 벌써? 그래도 오랜만에 내려왔는데... 하, 학교나 가 보자.“
"응? 애들 있을 거라며."
"그, 그래도 가면 되지 뭐, 쌤 보러 왔다고 가면 보내주지... 않을까?“
"그래? 좋아.“
이 말을 기다린 건지. 싱긋 웃으며 그녀는 거리를 벌렸다.
"꽃 사갈까? 아니면 먹을 거? 그조차도 아니면 금괴?“
"갑자기 금괴라고?“
"왜. 괜찮지 않아?“
나는 물론이고 그녀까지도 미성년자 시절에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기억 남는 선생님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서 만난 3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정확하게는 우리 생각에서는 그렇지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우린 그저 최악의 학생으로 기억하겠지만 말이다.
그야 그럴 것이 그 쌤한테 학교에서 섹스하는 걸 여러 차례 걸렸으니까.
그 쌤이 우리 미래를 생각해서 애써 꾸짖으면서 섹스하는 건 좋은데 해도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말만 할 뿐이지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간단하게 꽃이나 사가자.“
"그래? 알았어.“
우리가 찾아가면 좋아할지. 의문이다.
솔직히 나라도 학교에서 대놓고 섹스해대는 것으로 모자라 몇 차례 걸렸음에도 계속해서 해대다가 또 걸렸으니 좋게 볼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지영이가 금괴를 사가자고 한 건가? 음... 이렇게 생각하니 나쁘지 않은 생각일 수도.
"지금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
정확하다.
어찌 안 거지? 가끔 그녀는 내 생각을 표정으로 읽을 수 있다는데.
"내가 생각해도 금괴는 조금 많이 나간 것 같거든? 간단하게 귀고리나 사갈까?“
"그래. 그거면 될 것 같아.“
"알았어. 그럼... 택시를.“
대체 어디서 귀고리를 사갈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
바로 옆에 금은방이 있어서 저기서 귀고리 하나 사가면 될 텐데 그녀는 굳이 택시를 불렀다.
그렇게 우린 여기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무려 수천만 원에 가까운 어마무시한 가격을 자랑하는 귀고리를 일시불로 사서 다시 학교로 향했다.
이럴 거면 그냥 금괴로 하자 할 걸 그랬나?
"선생님 보러 왔니?“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래. 그래.“
학교 정문을 통과하니 경비아저씨는 손자, 손녀를 보는 것처럼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나 혼자였다면 미친놈 취급받으며 앞을 가로막았을 텐데, 1년 전만 하더라도 이 학교, 아니 이 근처에서 학생은 물론, 성인들에게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었는데 그게 경비아저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영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경비아저씨는 얼마 전에 졸업한 제자들이 선생님을 보러 왔다고 생각하며 보기 좋은 미소와 함께 순순히 보내주었다.
"교무실에 있으려나?“
그 선생님이 지금 수업 도중일 수도 있는데 무작정 1학년 교실부터 3학년 교실까지 다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교무실에 있다면 좋고, 없다면 어디 계시는지 물어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향한 곳은 바로 교무실이었다.
"어머? 지영이니? 어쩜 더 예뻐졌다!“
"오 지영아. 오랜만이야. 그리고 여전히 둘이 사귀고 있구나?“
"그래서. 결혼 날짜는 잡았니?“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몇 명의 시선이 모였다.
그중에 젊은 축에 속하는 여선생님은 과장되게 지영이를 보며 반가워했다.
노총각 30대 중후반 남자 선생님은 지영이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반가워하면서도 나를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결혼한 늙은 선생님들은 결혼은 한 건지, 결혼 날짜를 잡은 건지, 이미 결혼을 전제로 물음을 던져왔다.
"뭘요. 선생님도 나이를 거꾸로 먹고 계시는데요. 그리고 결혼은 조만간 할 생각이긴 한데. 나중에 초청장 드릴게요.“
남자 선생님만을 무시한 채,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는지 물어오는 질문을 단호히 끊고선 우리가 찾는 선생님의 행방을 일방적으로 물었다.
"역시 수업 중이신가 보네요.“
교무실에 없는 것을 보아 수업 중인가 했는데 역시나였다.
우리가 학생 때도 졸업한 제자들이 수업 중인 우리 교실을 찾아와 선생님과 재회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똑같이 하더라도 아무 문제는 없을 터.
"7반이라. 우리 1학년 때 반이네?“
"그러네. 아쉽네. 비어있었으면 하고 갈 텐데.“
1학년 7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기도 했다.
나는 내 말에 동조하는 지영이의 뒷말을 애써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31학년 7반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선생님은 밖에 나와 있었다.
"왠지 밖이 떠들썩하다더니. 너희들이구나.“
창문 너머로 복도를 걷고 있는 우리를. 아니, 지영이를 본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학생들이 시발점으로 뒤를 이어 평범하게 수업을 잘 듣던 학생들까지 조용해야 할 교실과 복도는 떠들썩하게 변했었다.
단순히 떠들썩한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의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에 나와 멍하니 지영이를 보고 있는 게 마치 연예인이 학교를 방문한 느낌이었다.
"건강해 보이시네요.“
왜 굳이 학교에, 수업 도중에 찾아와서 이 난리를 만든 거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으로 굴뚝 같은 선생님의 표정을 뒤로하고 지영이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도 변함없이 알콩달콩해 보이네.“
"그럼요. 쌤. 저흰 결혼까지 할 거라 당연히 그렇게 보여야 해요.“
"그래? 그래.“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이미 우리 둘이 결혼하는 미래를 보고 왔는 듯, 선생님의 대답은 시큰둥했는데, 남자 애들만은 다르게 한탄이 섞였다.
벌써 지영이를 노리고 있다니. 요즘 애들은 발육도 장난 아니던데 이쪽에서도 다르지 않나 보다.
"이제 가겠니?“
"벌써 가라고요? 이렇게 쌤을 보러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너무하네요.“
".......“
지영이라 부담스러운 것도 있고, 학생들 때문에 수업이 진행되지 않은 이유였겠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내 품에 안겨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는 반응을 보였다.
노골적으로 장난치는 게 보이니 주위는 선생님을 질타하지 않았다.
"선물도 드리려고 왔는데......“
지영이는 내 손에 들린 종이가방을 빼앗아서는 고급진 케이스를 꺼냈다.
"이건 뭐야?“
"귀고리요.“
지영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실실 웃으며 케이스를 열어 금색과 작은 보석이 박힌 귀고리 두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지, 진짜 금이야?“
"네.“
"그럼 이 보석은?“
"루비에요.“
"루, 루비?!“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고는 한다.
그래서 단순히 금귀걸이만 하면 수십만 원 안팎일 가격인데 그 중간에 루비가 박혀 있었어 스무 배 넘게 가격이 뛰었다.
"네. 선물이에요.“
"아, 아니... 모, 못 받아.“
"왜요?“
"이걸 어떻게 받아?!“
가족 사이에서도 천만 원에 가까운 귀금속을 받기란 힘든데 사이가 선생과 제자라면 더더욱이다.
"음. 최대한 싼 걸로 가져왔는데.“
"싸다고? 이게?“
믿기지 않는 듯, 지영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에는 경외심이 엿보였다.
씨익.
그런 선생님을 보며 지영이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래도 받아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치킨이랑 피자도 올 텐데.“
"뭐?“
"주문했어요. 전교생이 먹을 수 있도록.“
이젠 난 여자친구님이 얼마를 들고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만 해도 천만 원 넘는 엄청난 금액을 가볍게 긁었으니, 이보다 더 많을 게 분명할 텐데 지금 놀랐다가는 나중에 죽을지도 모르겠다.
"......“
선생님은 말을 잃고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지영이를 바라보았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세요. 그럼.“
그녀는 내 팔을 잡아끌고 걸음을 옮겨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교실로 향했다.
그 교실은 우리가 섹스할 때 자주 쓰던 교실이었다.
"하고 가자.“
"그래... 알았어.“
이 상태라면 반드시 하고 가야 할 터. 그래서 순순히 이끌린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하앙...! 앙...! 조, 좋아!“
이미 선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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