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84화 (84/142)

〈 84화 〉 군대

* * *

"하아......“

개같았던 시간이 다 끝났다.

그냥 차라리 내 좆대로 당당히 나갔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내 마음대로 탈영과 다음날 출근을 해 인식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어서 어디 바닷가에 가면 흔히 볼법한 멸치 같은 시비를 걸어도 묵묵하게 그저 욕을 처먹은 게 큰 죄였다.

그러니까 군부대를 잠잠하게 만들 정도의 집안을 가지고 있지만, 호구라사 너도나도 괴롭혀도 된다는 생각에 선임이라는 것들이 한둘씩 내게 꼽을 주기 시작했다.

덩치와 다르게 병신이라던지 하는 등 욕하면서.

"시발. 조지고 싶네.“

저런 것들이랑 약 2년 동안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역이 아니라 저녁에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그래도 시발. 참기 힘든 건 힘든 거라 거의 처음으로 지영이와 관련 없이 혼자 빡친 느낌이다.

"하아......“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내 여자친구님이 어떻게 날 상근으로 보내주었는데. 그래서 사고 안 치고 욕을 처먹더라도 얌전하고 꿋꿋이 다니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빵빵.

근심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앞에서 익숙한 색과 형태를 가진 차가 경적을 울렸다.

"어때? 할만해?“

"응. 괜찮았어.“

당연히 그 차 안에 있던 사람은 지영이였다.

그녀는 곧장 오늘 어땠냐고 해맑게 웃으며 물어오니 차마 하루만에 군 공식 왕따가 되었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여자친구님은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오늘 첫 출근 기념으로 맛있는 거 먹자고, 뭐 먹고 싶냐고 물어왔다.

"집에 가자. 너 먹고 싶어.“

"흐응... 그래?“

도저히 밖을 더 돌아다니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지영이가 나 대신에 뭐라 해 주었고, 그녀가 아니더라도 선생님이나 그냥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면 내게 꼽을 주는 것들을 마주치지 않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군부대에서는? 아무리 상근이라도 피할 곳이 거의 만무한 상황이었다.

"무슨 문제 있나 봐? 얼굴에 다 드러나. 그러니까 얘기해 봐.“

운전하던 지영이는 거울을 통해 그리 좋지 못한 내 표정을 엿보았나 보다.

"아니야.“

"아니긴 무슨. 빨리 얘기해.“

그녀는 곧장 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우며 추궁했다.

안 그래도 뒤에 따라오던 차들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비싸도 너무 비싼 나머지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옆으로 피해가거나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자 끝내 경적을 울렸다.

"빨리 가. 밀렸잖아.“

"말 안 하면 안 가.“

"하아... 알았어. 말 할 테니까 우선 가면 안 될까?“

끝내 그녀는 엑샐을 밟았다.

"무슨 일이야?“

"음... 지영아. 솔직히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야.“

"누가 꼽을 줘?“

"으응. 꼽을 주긴한데 내가 한 번 해결해 볼게. 언제까지 네 도움만 받을 순 없잖아?“

그녀와 처음 사귀었을 때, 그녀를 노리고 있던 양아치들과 그녀에게 차인 양아치들이 분풀이로 나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고 때렸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도와준 건 지영이었고.

이젠 힘도 있으니 맞고 다니질 않을 테지만 때릴 수도 없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기도 꽤 버거워 보였다.

그야 그럴 것이 내게 뭐라 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선임부터 별 관심 없어 보이는 간부들까지.

그래도, 그래도 늘 도움만 받았는데 이 정도는 나도 한 번 해결해 보려고 노력은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이번에는 차를 댈 수 있는 곳에 멈춰 세우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래... 알았어.“

긴 침묵 속에 그녀는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

스트레스를 풀 겸. 예린이 누나를 제외한 네 명의 여자를 가차 없이 범한 다음 날 너무도 가고 싶지 않은 출근길에 올랐다.

내 여자친구님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나를 위해 군부대까지 차로 태워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잠들어 있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나는 홀로 집을 나와 지하철에 올라탔다.

군부대가 서울에 있긴 해도 중심은 아닌지라 지하철 내부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하아.....“

얼마 없는 사람들 속에, 군복을 입은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기 싫네.“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내 몸을 보고 시비를 잘 털지 않는데 군대 안에서는 계급이 전부라서 별거 아닌 새끼들이 시비를 걸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창밖에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처럼 내 군 생활도 빠르게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까마득한 500일 더 되는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은 더욱 길게만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는 군부대에 도착해 온갖 구박과 꼽을 먹으며 훈련을 받았고, 점심이 찾아왔다.

"강민훈.“

"이병. 강. 민. 훈.“

조금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갈 준비를 하는데. 소대장이 나를 찾아왔다.

"나와라. 면회다.“

"......“

짧은 말을 남긴 채, 제 갈 길을 가자 옆과, 뒤, 심지어는 앞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눈초리에 식은땀을 흘렸다.

"면회? 와. 시발. 면회? 상근이? 그것도 이제 사흘, 아니, 이틀 된 새끼에게 면회가 와? 와, 와 나. 핰핰핰핰핰.“

"대박이네? 이새끼?“

선임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내 뒤통수를 때려댔다.

그나저나. 면회라니. 누가 온다는 거지? 훈련소에 입소할 때 오지 않았던 부모님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졌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

"네가 왜 여기 있어?“

군인들은 물론이고, 군인들을 보러 온 애인, 혹은 가족들까지 홀로 앉아 있는 지영이에게 차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왜 여기 있긴. 면회 왔으니까 여기 있지. 일단 앉아.“

그녀는 태연하게 말하며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두기 시작했다.

"군대 밥은 별로라고 하던데. 내가 신경 써서 싸 왔으니까 어서 먹어.“

그 말대로 밥은 정말 소름 돋게 맛이 없었다.

초중고 급식이 오히려 맛있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내가 알아서 해 본다니까.“

아마 면회 온 이유가 어제 그 일 때문이겠지.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니까 알아보고 나 대신에 해결해 줄 생각으로 말이다.

"무슨 소리야? 그냥 훈이가 군 생활 잘하는지 한 번 보려고 온 거지.“

진실일 수가 없는 말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안 그래도 상근, 공식 왕따가 여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면회까지 왔으니 아마 돌아가면 엄청 까일 게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욕이 나오는 상황. 그렇다고 내 여자친구님에게 왜 왔냐고, 생각이 있냐고 화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젓가락을 손에 쥐고 그녀가 싸 온 음식을 입에 물었다.

"음. 맛있네?“

"후후.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히 맛있지.“

"그러게. 누가 만들었길래 이렇게 맛있을까.“

가족보다도 더 사랑하는 지영이의 얼굴과 그녀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니 우울했던 기분이 확 풀리며 뒷일은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예린이 언니가 만들었는데 맛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 너가 싼 거 아니야? 말을 정정한다.

가족보다도 더 사랑하는 지영이의 얼굴과 예린이 누나가 싸준 음식을 먹으니 울했던 기분이 확 풀리며 뒷일은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참고로 지영이가 만들어준 음식도 맛있는데 예린이 누나는 넘사벽이다.

왠지. 상상 그 이상으로 맛있긴 맛있더라.

"잠깐만.“

"응?“

갑자기 그녀는 대뜸 도시락 하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벼, 병장. 신, 일, 한!“

작대기 네 개가 달린 채로,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던 한 남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거니. 이제 막 전입해 온 이등병처럼 관등성명을 대기 시작헀다.

"제가 너무 많이 싸 온 것 같은데 드실래요?“

"무, 물론입니다!“

오우야. 목소리가 상당히 크다.

뭐, 상근도 아니고 약 2년간 이곳에서 썩은 병장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내' 지영이가 말을 걸며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그리고 제 훈이를 잘 부탁드릴게요.“

"후, 훈이 말입니까?“

병장의 표정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누나나 여동생이라면 '제'라는 말은 쓰지 않을 테니 연인 사이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병장은 현역이라 나와 접점이 거의 없어 부탁해 봤자 의미가 없을 텐데.

부질없는 짓이다.

"소용없어.“

도시락을 건네준 지영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흐응? 그럴까?“

우우웅. 우우웅.

자리에 앉자마자 타이밍 좋게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미심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전화를 받았다.

"응. 왔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사람들도 착한 것 같고. 응? 정말?“

입꼬리가 더더욱 찢어지며 말을 이었다.

군인이 좋다니. 취향 특이하네.“

".....!“

".....!“

이곳에 있던 모든 군인들이 몸을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러니까 여기에 괜찮은 사람 없냐고? 군인이면 되니 외모는 크게 안 따지고? 응. 응. 잠시만."

지영이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기 시작하자 얼굴도, 아니, 실존해 있는 사람인지도 불투명한 여자의 호감을 사기 위해 군인들은 황급히 외모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그녀는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괜찮은 분들이 많아서 모르겠는데? 네가 한 번 와서 보는 게 나을 듯 싶은데. 응. 응. 정말 괜......“

잘 말하다가 말을 멈추고, 잠시 뒤에 다시 이어 말했다.

"또 헌팅 당했어? 대단하네.“

또 라는 말인즉슨, 자주 헌팅을 당한다는 것.

그만큼 예쁘다는 의미.

"알았어. 한 번 훈이한테 좋은 사람 찾아봐 달라고 말해볼게. 응. 끊어.“

뚝.

"자. 훈아. 어서 먹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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