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85화 (85/142)

〈 85화 〉 군대

* * *

"진짜 있어?“

나는 믿기지 않아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내 여자친구님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듯. 태연하게 절여진 메추리 알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

나는 단번에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나처럼 친구가 많이 없는 지영이이며, 친구가 진짜 있더라도 예쁜 애라면 유혹해 나보고 먼저 따먹으라고 했을 테니까.

예시로 은정이가 있었다.

그러니 헌팅도 자주 당할 정도로 이쁜 지영이 친구는 가상 속의 인물이라는 것.

그저 내 군생활을 위해 거짓말을 친 것.

"너 친구 없잖아?“

다혜랑도 그리 친해진 것도 아니라 은정이를 제외하면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흐응. 내가 훈이 인줄 알아?“

"나보다 심하지 않아?“

"......“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지영이 덕에 친구가 잘 안 만들어지는 스타일이라 애초부터 포기하고 있던 거지. 그녀가 없다면 평생갈 만한 친구를 충분히 만들고도 남았다.

아마도......

하지만 지영이는 과장 1도 보태지 않고 친구라는 존재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애라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잘 해결됐잖아?“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친구가 있다면 아마 지영이 정도는 안 되더라도 은정이, 혹은 그 아래 수준급의 미녀일 거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버렸다.

그 때문에 '한 번 훈이한테 좋은 사람 찾아봐 달라고 말해볼게.'라는 말 때문에 이곳에 있는 군인들은 지영이보다 오히려 내게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눈빛이 벌써 나와 오랜지기 친구인 것처럼, 생명의 은인인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나중에 어떡하려고?“

"왜? 내가 찾아보라고 했지. 반드시 찾아서 데려오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일단 질질 끌면 반년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뭐, 영 안 되면 은정이나 데려와서 또 그래 보지.“

"안 돼.“

"흐응. 은정이가 네 여자라서?“

"어.“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러면......“

그녀는 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훈이의 애인이 아닌 애를 이용하면 되지 뭐.“

가끔 다시 따먹는 걸 보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알아낸 다음, 먹버한 여자들의 전화번호들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일단 그녀의 폰에 저장된 사람은 가족과, 우리 가족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목록에는 50명 넘게 있었다.

예상대로 전부 기준 이하라 한 번 따먹고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은 여자들이었다.

얼굴이 아쉽다는 둥, 가슴이 작다는 둥, 엉덩이가 작다는 둥, 키가, 살이, 등등. 까다로운 그녀만의 기준을 넘지 못해 지금도 지영이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는 불쌍한 여자들의 전화번호들이 가득하다.

"아무튼, 방법은 많아. 그러니까 편하게 다녀. 이등별님?“

이 정도면 이등별로도 끝나지 않을 판인데 이거. 뭐, 이미 엎질러진 물.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나는 예린이 누나가 싸준 도시락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

"아닛! 훈아! 내가 대신할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병장이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열심히 삽질하고 있던 내게 다가와 삽을 빼앗아 들곤 자기가 삽질하기 시작했다.

"훈아. 고생했어. 좀 쉬는 게 어떨까?“

다른 병장 하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자상하게 말했다.

내 애인 중 한 명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까끌까끌한 머리를 한 남자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러니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치우라고, 필요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저 이제 5분 했는데요?“

고작 5분. 굳이 땅을 팔 이유조차 모르겠지만 일단 파라고 하니 땅을 판 지 고작 5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5분?! 5분이라고?! 그만큼이나 했어? 쉬어도 돼!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고!“

"......"

내 상근 선임들은 병장 외에 계급에 상관없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데 나에게만은 과한 반응을 보이며 어서 쉬게 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자자. 쉬어. 쉬어도 돼. 아, 혹시 누가 꼽을 줄까 봐?“

짬지 생활을 거쳐온 병장답게 나중에 내게 일어날 일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인마. 형이 다 막아 줄테니까.“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퉁퉁 치며 자신만 믿으라고 하긴 하는데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지라 믿음은 영 가지 않았다.

"그, 그 전에 군인... 진짜 군인이 좋다고 해?“

"네.....?“

"그, 네 여자친구분의 친구분께서.“

"아, 뭐... 그, 그렇지 않을까요?“

"흐, 흐흐.“

지금에 와서 거짓말이라 했다가는 내게 아예 관심 없던 병자들에게까지 찍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긍정해버렸다.

그러자 병장은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나 부사관 할 생각이거든?“

"부사관이요?“

"아, 물론 네 여자친구분의 친구분께서 군인을 좋아하신다는 말에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어릴 적 꿈이 멋진 군인이 돼서 나라를 지키는 거였거든.“

병장답지 않게 옷 세무 새를 바로 하며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그렇다고. 그리고 내가 여기 간부들이랑 친한 사이라서 걱정할 거 없어!“

등을 살며시 쳐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꽤 파장인 큰 것 같아 식음땀이 줄줄 흘렀다.

나 때문에 관심은커녕 오히려 어서 나가고 싶어 환장일 병장 하나의 인생을 군대에 처박아 두었다는 생각에 말이다.

"하, 하하하.“

*

"아이고.“

왜인지 모르게 왕따를 당하고 있을 때보다 더더욱 힘들어진 것만 같은 군생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미치겠네. 간부들까지 그러니.“

어느새 간부들 사이에서 내 여자친구님의 외모와 내 여자친구님의 친구가 군인을 좋아하고, 내게 이 군부대 안에서 괜찮은 남자를 찾아달라는 소식이 퍼져버려 더더욱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나한테 졸라서는 폰에 저장된 여자친구님의 사진을 보고 당연히 있지도 않은 가상 속 그녀의 미모는 지영이와 동급일 정도로 가히 여신과 다름없으며, 키는 170, 몸무게는 50도 안 나가는데 가슴은 D컵 이상이라는 둥. 애초에 없던 설정들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간부들이 내게 들러붙는 건 이상할 게 하나 없었다.

그 말인즉슨, 어떻게 보면 가상 속 인물과 이어져 보려는 씹덕이 되었다는 의미.

"하아......“

지하철 안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

그러던 그때.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나를 보며 탄식을 흘렸다.

"어... 박... 바악... 지은?“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이지만 귀엽기도 해서 아직 소녀처럼 보이는 지은이었다.

그 뭐냐. 지하철에서 지영이와 치한 플레이를 하던 도중에, 지영이를 구하러 왔다가 도리어 자신이 내게 처녀딱지를 따이는 수모를 껵었던 그 애 말이다.

"그... 잘 지냈어?“

"......“

지영이가 없으니 너무도 어색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시선을 내게서 떨어뜨릴 생각을 하지 않으니 어색하게나마 웃어주며 안부를 물었는데 대답은 없었다.

그러기를 수십 초.

"지영이는요......?“

"지영이? 아.“

"헤어졌어요?“

살짝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

"아니?“

"......“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실망했다.

"번호 좀 알려주세요.“

"갑자기 왜 번호를?“

"당신이 아니라 지, 지영이 번호를......“

내 여자친구님에게 빠져도 단단히 빠져버렸는지 그녀는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참 이럴 때마다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지영이 때문에 원치도 않은 내게 처녀 딱지를 내어주며 섹스까지 했었는데 아직도 그녀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네가 줘.“

아무리 그래도 내 여자친구님의 번호를 아무에게나 막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지은이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 밤까지 무슨 연락이 안 오면 신고할 거예요.“

"뭐?“

"요즘 세상이 여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서 허위로 신고하더라도 고생하는 건 남자인 당신일 테니까요."

무슨 협박을! 난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알았어. 알았으니까 불러.“

그냥 번호만 받고 무시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전화 한 번 걸어두고 차단 박으라고 부탁해야 할 판이었다.

"꼭 전화해주세요. 그리고 죄송해요.“

무례했던 건 아는지 뒤늦게 고개를 숙이고선 문이 열리자 바로 내려버렸다.

"하아 진짜.“

뭔가가 자꾸 계속 꼬이는 기분이네. 이거.

터덜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아갔다.

"왔어?“

"아... 누나. 빨리 왔네?“

"응. 은정이가 이제부터 일찍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 푸름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잘 생각했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날 반겨주는 예린이 누나와. 서서히 불러오기 시작하는 배를 보니 자동에 가깝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곧장 군화를 벗어 던진 후에 누나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푸름아 잘 지냈어?“

내 딸일 수도, 아들일 수도 있는 아이. 태명 푸름이.

직접 만질 수는 없어도 이렇게 누나의 배에 얼굴을 비비는 것만으로 푸름이와 이어진 느낌이다.

참고로 아들이라면 강예훈. 딸이라면 강하린으로 지을 것이다.

내 이름과 누나의 이름을 적절히 섞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훈아. 누나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은데. 할래?“

누나는 요염한 표정으로 치맛자락의 끝을 잡고 들어올렸다.

"안 돼.“

그러나 난 결단코 할 생각이 없어 바로 거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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