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스트리머 하루
* * *
"이이익! 이새끼는 대체 나한테 왜 이래!“
스트리머 하린.
그녀는 오늘도 방송을 켜고선 팀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리그오알레전드 게임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익숙한 닉네임을 가진 플레이어가 하린과 같은 팀이 되면 일부러 던지고, 상대편으로 만나면 그야 말로 학살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욕했냐고! 내가 시비를 걸었냐고오오!“
방송인인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것조차도 방송 콘텐츠로 삼기 위해 과한 반응을 보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아... 하아......“
잠시 화를 삭히며 힐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하린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격러를 찬양하고 있었다.
'나쁜 새끼들.‘
몇 명 정도는 저격러를 욕해줘야지 않을까.
그리고 이게 대체 왜 재밌는 걸까. 화만 날 뿐이지.
오늘도 그녀는 자신의 시청자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며 속으로 욕하기에 이르렀다.
"야! 너 뭔데!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하린은 저격러를 향한 채팅 러쉬를 시작했는데 저격러는 그런 하린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군을 몰살시키고 있었다.
"끄아아아!“
결국, 패배라는 문구가 화면을 지배했다.
"너 어디 사냐!“
반응이 매우 좋으니 더 가볼까 싶어 친구 추가를 보냈다.
당연히 저격 라답게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 추가를 받은 저격러에게 귓속말로 곧장 사는 곳을 물었다.
말만 이렇게 하지 귀찮게 진짜 만날 생각은 아니다.
상대방으로 이런 상황으로 자신과 만나고 싶지 않을 테니 말하지 않을 거고.
그저, 그저 방송이 더 흥행할 수 있도록 행동해주기만을 바랄 뿐.
그런데 이게 웬걸.
"어...? 말하네?“
저격러는 어느 특정 지역을 말했다.
저격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생방 중인 걸 알면서도 대체 뭘 믿고 사는 지역을 노출한 건지 의아할 따름이다.
[어...? 현피 ㄱㄱ]
[진짜 깠네? 현실 갱 ㄱㄱ]
[ㄱㄱ]
[ㄱㄱ]
진짜 사는 곳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시청자들은 바로 만나러 가자고 한다.
아마 실제로 만날 가능성은 없고 그냥 허탕 치는 스트리머의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겠지 뭐.
"어차피 안 나올 건데 무슨!“
계속 게임 방송만 하고 있어서 이런 것도 꽤 나쁘지 않았다.
너튜브에 2부작으로, 1화엔 만나러 가게 되는 계기와 집을 나서는 모습까지 올린 다음 2화에서 허탕 치고 투덜거리는 하린의 모습을 담으면 100만 조회수 각이었다.
그래도 바보처럼 시청자들의 말에 휩쓸려 무작정 만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한 번쯤을 튕겨줘야만 했다.
"에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네. 그냥 신고나 할게요. 딱 봐도 대리나 부계정인데.“
후자의 경우가 더 말이 되었다.
그러나 부계정이라도 고의로 던진 판이 여럿 있으니 게임사에서 생각을 조금만 할 수 있으면 분명히 정지를 먹일 것이다.
그런데 하린은 정지보다는 방송을 본 저격러가 더 화를 달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느긋하게 신고를 누르며 애타게 기다렸다.
"앗......!“
마침내. 저격러에게 귓말이 왔다.
훈이노예ㅡ 환영.
환영...? 환영이라는 말은 와달라는 건가?
어떻게 와도 이렇게 답하는지 도통 저격러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로 더 욕을 하거나 가짜 주소를 말하며 약 올릴 텐데. 이렇게 대놓고 환영이라는 말은 여태껏 보지 못했었다.
다른 스트리머들 방송에서도 말이다.
"화, 환영...? 환여어어엉?“
하지만 이걸 기회삼았다.
"그래 인마! 까. 만나자! 만나자고!“
하린은 급발진을 하며 소리쳤다.
"어디로 가면 돼? 만나. 지금 당장 만나자고!“
키보드를 누르는 손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라졌다.
잔뜩 흥분한 상태로 적는 족족 입으로도 말하니 정말 흥분한 것처럼 보여 시청자들은 재밌어했다.
훈이노예ㅡ 가려.
설마 진짜 주려는 건 아닐까?
하린은 순간적으로 순살을 찌푸리며 창을 켜 가렸다.
그러니 진짜로 주소가 나왔다.
그 주소의 끝에는 카페 이름이 나와 있어 아마 집을 공개하기 보다는 카페에서 만나자는 의미인 것 같았다.
"너 당장 나와라. 안 나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낸다!“
저격러가 심한 욕이랑 부모님까지 꺼낸 게 아닌지라 찾아내도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었다.
이러면 호구같은 시청자들이 돈을 쏴 주니까.
훈이노예ㅡ ㅇㅇ.
대답이 오고.
"여러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면 방송 키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진짜 가게?]
[만나면 ㄹㅇ ㄹㅈㄷ]
[개재밌겠네. 기다린다]
[빨리 와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진짜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보니 하린은 남몰래 웃음을 흘리며 방송을 껐다.
"한두 시간만 기다려 볼까?“
막상 아무도 안 올 곳에서 두 시간 동안 잠자코 있을 생각에 귀찮음이 찾아왔다.
아까 시청자가 한 말대로 찾아오지 않으면 사소한 헤프닝으로 끝날 것이고, 찾아온다면 실시간 순위에 들어갈 만한 영상을 만들어 대박 터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흥흥흥흥.“
저격러 때문에 방송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큰소리치던 하린은 어디에 갔는지 지금 여기엔 태연하고 느긋하게 화장을 고치는 아름다운 여인이 화장대 앞에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린은 화장을 고치고 밖에 나와 차에 올라탔다.
"OO구... OO동... 아, 여기 있다.“
진짜 있는 카페라 저격러는 아마 이 근처에 살고 있지 않을까.
"가 볼까?“
지금쯤. 충실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글을 올려 홍보하고 있을 터. 그런 글을 우연히 발견해 보니 저격러에게 현실 갱을 간다는 스트리머 하린의 소식을 듣고 다시 방송을 켰을 때 두 배 이상은 불어나 있을 시청자 수를 생각하니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역시 안 왔네.“
약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온 카페에는 저격러로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야 그럴 것이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친구나 애인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저기요.“
"네. 잠시만ㅇ... 아앗? 하, 하린!“
카페 알바생은 하린을 아는지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하린은 보기 좋은 미소를 보여주며 인사했다.
"와. 진짜 하린이다!“
팬이었는지 알바생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후흐. 열심히 방송한 보람이 있었다.
아주 유명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튜브 구독자 50만을 가지고 있었고, 생방송 또한, 평균 6천 명 대를 유지하는 스트리머였으니.
"여기서 방송 좀 켜도 될까요? 물론 다른 손님들 얼굴은 안 나오게 하겠습니다.“
"아... 현실 갱?“
"하하. 네.“
"잠깐만요.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알바생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걸었다.
카페 사장과 얘기하는지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네. 되세요. 그런데 다른 손님들이 나오지 않게 하시래요.“
"물론이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요즘 사람들이 무서워서 별일 아니더라도 물어뜯으려는 짐승과도 같으니 조심에 또 조심해야만 했다.
아마 지금도 고작 게임 가지고 실제로 만나러 가냐는 하린을 향한 욕이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한심하고 어떻게 보면 악질 그 이상인 개새끼들.
뭐, 이게 다 하린이 잘나서 그런게 아닌가. 이해해야겠지.
"약속 장소에 도착했어요~!“
예상대로 구석진 자리에 앉아 방송을 켜니 시청자 수는 끊임없이 올라가 끝내 1만은 손쉽게 돌파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만 가니 무심코 웃음을 흘릴 뻔했다.
[아직 안옴?]
"그러게요~ 분명 자기가 사는 곳 근처로 잡았을 텐데 안 나왔네요. 역시 구라였나?“
염두해 두었던 일.
그래도 하린은 화가 난다는 듯.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좀 더 기다려 보죠. 올 수도 있으니까요.“
약속 장소에 미리 나와 있지 않다고 바로 갈 수는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기로 하며 시청자들과 토크를 진행했다.
30분. 한 시간. 한 시간 반. 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다림이 계속되자 어느새 시청자 수는 절반 넘게 떨어져 1만을 겨우겨우 유지했다.
"에휴. 거짓말이었네.“
한숨을 깊게 내쉬며 하린은 말했다.
"여러분 죄송해요. 결국, 안 나오네요.“
[죄송할 것까지야. 상대방이 안 나온 건데.]
[고생하셨어요~]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조금 아쉬웠다.
만나기만 했으면 너튜브에 올릴 영상이 재미있어졌을 건데 말이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린은 어쩔 수 없이 방송을 끄려고 했다.
그런데.
"응?“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감탄들.
방송 끄려던 걸 멈추고 감탄이 난무하는 곳을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와.....“
키는 약 170 가까이 되는 걸까. 날씬하고 긴 기럭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뒤이어 허리 부근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은 다른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뭔가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커다란 엉덩이와 가슴의 존재는 현대 의학으로 키운 게 아니냐는 합리적이 의심이 들어올 정도로 커다랬다.
그것도 몸에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어올 정도로.
마지막으로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들의 가슴까지 뛰게 만드는 아름다운 얼굴은 하린의 눈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시익.
그녀가 하린을 보며 예쁘게 웃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스트리머를 하겠다고 방송과 편집 공부, 그리고 무작정 영상을 찍어 올리느라 바빠 남자친구는커녕 좋아하는 사람조차 없었던 그녀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남자도 아닌 여자에게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하린님?“
"네, 넷!“
마치, 천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유명한 스트리머를 만난 것처럼 하린은 반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훈이노예예요.“
"ㅇ ㅖ ?"
훈이 노예... 훈이 노예......
고운 말밖에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그녀의 입에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 들려오니 하린은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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