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93화 (93/142)

〈 93화 〉 스트리머 하루

* * *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훈이 노예... 훈이 노예... 라는 그 단어 하나가 말이다.

[얘 왜 이럼?]

[갑자기 얼타는데?]

[연예인이라도 왔나? 근데 내가 모르는 목소리인 것 같은데?]

[니가 모른다고 연예인이 아니란 보장은 있냐? 븅신아]

하루의 기이한 반응에 채팅창은 빠르게 새로 갱신되었다.

"하루님?“

수많은 스트리머 중에 하루의 외모가 단연컨대 1등이라고 주장하는 광신도가 있을 정도로 하루는 얼굴이 예뻤다.

그래서 게임 실력이나 방송 진해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해도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지 않았나.

거의 그녀의 얼굴이 열심히 일해서 호구들을 덥석 물어 돈도 많이 벌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자신을 훈이 노예라 소개한 여자를 보니 자신은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님?“

"아, 아아. 넷?!“

걱정은커녕 오히려 굶주린 육식 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을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런 얼굴조차 어찌나 예쁘고 매력적인 건지. 하루는 잠시 멍을 때리다가 뒤늦게 대답을 했다.

"어디 아프세요?“

조심히 손을 뻗어 이마를 짚으니 얼굴색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뭘까. 이 감정은. 이 두근거림은.

심장이 마치 그녀의 것이 아닌 듯이 쿵쾅대었다.

"괘, 괜찮아요!“

계속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가는 얼굴이 바짝 타서 살아질 것만 같아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치를 살폈다.

"괜찮다면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하루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요염하게 다리를 꼬며.

"그래서. 뭐 할 건가요?“

"예?“

물음에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래 인마! 까. 만나자! 만나자고!'.'너 당장 나와라. 안 나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낸다!'라고... 하셨잖아요?“

"......“

그, 그렇지. 방송을 보고 있을 저격러에게. 훈이 노예에게 당당히 소리쳤었다.

근데 그걸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해주니 참으로 머쓱했다.

[아. 그래서 얼굴 좀 보여줘!]

[목소리 개 달달한데 얼굴 궁금하다!]

[아까 하루 반응봐서는 개이쁜 것 같은데?]

[아니지. 존나 못생겨서 그런 거 아님?]

채팅창은 답답함에 저격러의 얼굴을 보여달라며 아웅성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루는 이제 막 방송에 입문한 초보 스트리머처럼 시청자들의 채팅을 아예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녀의 두 눈은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앞의 초월적인 미녀에게 향해있을 뿐.

"혹시 제가 안 나올 줄 알고 무작정 불러내신 건가요?“

정확했다.

99% 확률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나와서 얼굴을 대면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애초에 훈이 노예라는 닉네임으로 방구석 여포들이나 할법한 저격을 왜 이리도 아름다운 여자가 한 것인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다.

뭘 노리고? 무엇 때문에? 혹은 하루의 방 시청자들처럼 하루가 화를 버럭 내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변태일 수도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녀는 하루가 마시던 커피를 집었다.

아까까지 하루가 입을 대었던 빨대를 입술로 가져가 덥석 물어 쪽쪽 빨자. 어느 정도 붉기가 사그라들었던 하루의 얼굴색은 다시금 붉어졌다.

'이, 이 여자 뭐야! 그리고 난 왜 이러는 거야!‘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같은 여자인데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며, 소심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방송을 통해 이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그녀는 소심했던 옛날로 퇴행을 한 것처럼 행동했다.

"난리 났네요? 뭐라고 해야 하지 않아요?“

스마트폰을 보며 싱긋 웃자 그제서야 여전히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아앗! 죄, 죄송합니다. 제가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도무지 현실 갱을 하려던 상대방이 너무 예쁜 여자라 그녀의 얼굴을 잠시 넋 놓고 봤다는 말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어 급한 대로 아무 변명을 해 보았는데 눈치는 좋은 시청자들은 계속해서 얼굴을 보여달라며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반인이라 보여주기는 좀....."

힐끔거리며 앞에 앉아 있는 훈이 노예를 바라보자. 역시나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저었다.

근데 그게 되려나?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하루를 보러 찾아온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사정없이 눌러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애타게 기다리던 훈이 노예라는 닉네임을 가진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찬가지로 셔터를 눌러댔었다.

아마 지금쯤 커뮤니티나 이런 곳에 불법으로 도촬한 사진이 올라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카메라에 나오는 걸 거부하니 딱히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하루 그녀도 방송에 내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고.

"그, 그렇게 쏘셔도 안 돼요!“

호구들은 이 돈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며 더더욱 돈을 쏟아붓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원래 스트리머들은 안 되는 거라도 이 정도의 돈을 먹으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시청자들이 바라는 걸 해주고는 했다.

그게 방송 정지 사유가 되지 않는 한 되도록 하려 한다.

그래야 먹고 도망갔다는 시청자들의 야유를 받지 않게 되니까.

근데 이건 정말 무리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다가는 법적으로 처벌받아 강제로 방송 정지까지 될 수도 있는 마당인데!

"그냥 꺼요.“

"네?“

"꺼요. 그냥.“

말이 쉽지. 그게 뜻대로 되겠나!

그 말에 시청자들은 네가 뭔데 끄라고 하냐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만난다면 하루가 처음 그랬던 반응보다 더 심한 모습으로 주눅들 게 분명한 키보드 워리어들이.

"알고는 있었는데 역시 질이 영 안 좋네요.“

대놓고 그런 말을 하며 송출중이던 스마트폰을 가져다 들었다.

"자, 잠깐.....!“

소중한 방송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다급히 손을 뻗는데.

"끌게요. 그럼.“

그녀는 아주 잠깐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방송을 꺼버렸다.

"그... 괜찮아요?“

싫어하던 거 아니었나? 아니면 실수로 얼굴을 보여줘버린 걸까? 그러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던 것 같던데?

"나중에 할 플레이를 생각하면 한 번 정도는 보여줘도 돼요.“

"나, 나중에 할 플레이?“

"네. 어차피 얼굴은 나올 테니까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나중에 나온다고? 그리고 할 플레이가 있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일단 갈까요?“

드르륵. 의자를 질질 끌며 일어나니 하루도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 걸었다.

"스물네 살이었죠?“

앞에서 걸으며 물음을 던져왔다.

"네, 네.“

"저는 스물두 살이라 편하게 불러도 돼요. 아, 이름은 윤지영. 지영이라 하셔도 돼요.“

"스 스물두 살?“

고작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얼핏 보아도 20대 중반, 혹은 후반만이 가지고 있는 농후한 색기와 매력을 지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물두 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네. 언니.“

언니... 언니... 이렇게 예쁜 여자한테 언니라 불리니 뭔가 색달랐다.

"언니.“

"으, 으응.“

"지영이라 해 보세요.“

발걸음을 멈춘 다음 뒤를 돌며서 말했다.

하루는 주저하다가 이내, 다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 지영... 지영아.“

"잘하시네요.“

"헤, 헤헤.“

고작 칭찬인데. 오늘 처음 만난 그녀에게 칭찬을 받으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언니. 궁금한 게 있는데 방송은 어떻게 하시게 됐어요?“

"방송?“

"네. 갑자기 궁금해서요.“

"별 뜻은... 없는데?“

"그래도 계기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음... 계기라... 솔직히 말하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했다고 해야 하나?“

학창 시절의 하루는 친구 없이 혼자 다니는 자발적 왕따였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모처럼의 예쁜 얼굴을 안경과 머리카락으로 가린 채, 공부만 해댔었다.

그런데 막상 친구를 사귀지도 않고 공부만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 다 떨어지니 눈물이 앞을 가렸었다.

이제 뭐 하며 살아야 하나. 대학까지 다 떨어졌는데 하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방송을 켰다.

무작정 꾸미지도 않고 방송을 켜니 당연히 잘 안 될 수밖에.

그런데 처음 방송을 보러 온 시청자 한 사람이 외모를 꾸미게 조언을 해주며 지금 이렇게 예쁜 얼굴로 떡상한 스트리머가 되어 있었다.

"대충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 누구에게도 해주지 않은 과거사를 얘기해주니 지영이는 헤에. 하며 감탄했다.

"고생하셨네요?“

"그렇지... 많이 힘들었어.“

"많이 힘든 만큼 지금은 잘 나가니까 보상은 확실히 받으셨네요.“

"그건 또 그래.“

솔직히 스트리머라는 게 한 번 뜨는 그 순간 인생은 화사한 꽃밭으로 뒤덮였다.

그야 그럴 것이 처음만 어렵지 고정 시청자들이 모이고 하면 큰 사고만 치지 않은 이상에야 노력 대비 고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뭐, 어떤 스트리머들은 스트리머들이 보기보다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그러는데. 사실이 아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처음이 엄청 힘들며 운이 따라주기를 간절히 빌어야지.

근데 처음이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그저 노력 대비 운이 따라주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한 방송이 가능한데 그 많은 수입을 얻으면서도 스트리머들은 자기네들이 힘들다며 하루종일 앉아서 방송하는 게 힘들다 찡찡댄다.

막상 공장일을 하면 세 시간도 못 버틸 것들이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그녀의 말대로 보상은 더할 나위 없이 받았다.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의 큰 보상을.

"근데요. 언니.“

"응?“

"궁금한 게 하나 더 생겼어요.“

"어떤거?“

"저번에 방송에서 말하신거요.“

"방송?“

방송에서 무슨 말을 했었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해도 방송이란 특성상 많은 말을 했을 테니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터.

"언니가 남자 경험이 없는 처녀라는 거요.“

"ㅇ ㅖ ?

그녀는 데자뷔를 느꼈다.

냥줍했습니다! 집오는 길에 검은색 작은 물체가 움직이던데. 당연히 차 그림자이겠구나 했는데 보니까 새끼 고양이었습니다! 주위에 어미도 없고, 차 도로라서 일단 주워왔습니다. 참고로 어떻게 잡았냐면 졸졸졸 따라가다보니 풀에 얼굴을 박고 멈춰서더라고요. 뒤통수는 그대로 나오는데 ㅋㅋㅋ 너무 귀엽던데 사진 찍는걸 깜빡했습니다. 아무튼, 저흰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 입양보냈습니다. 거기서 잘 크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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