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토라세 여친님-98화 (98/142)

〈 98화 〉 윤지아

* * *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뒤덮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어깨는 어찌나 가녀린 건지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올 지경인데 그 외의 것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마른 체형의 여자들에게서 정말 보기 힘들다던 커다란 굴곡이 가슴 부근에서 존재를 표출하고 있었고 가는 허리나 골반은 도저히 동양인으로 보기 힘들 지경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얼굴은 또 어떤가.

여태껏 보아온 어느 여자들이나, 혹은 연예인들과 비슷할 수준으로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조밀하게 다 들어가 있었다.

작고 갸름한 턱과 날카로운 눈매로 인해서 기가 세 보이는 미인처럼 보이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반년간 멀리서 지켜본 결과 잘 웃고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겉모습과는 다른 점이 엿보여서 점점 더 빠져들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도 예쁘지, 몸매도 끝내주지, 성격도 시원시원하지. 남자는 물론이고 같은 여자라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지아야~ 여기여기!“

1학기와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찾아온 그 날. 과 술자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선배들이 미리 잡아놓은 술집에 가서 주는 술을 얻어먹고 있을 무렵에,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 무리 중 한 명이 손을 뻔쩍 들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같은 과 사람들은. 아니, 지아라는 이름 하나에 반응하며 시선이 옮겨졌다.

"여기 앉으면 돼.“

꿈틀거리며 옆으로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 주니 지아라 불린 그녀가 애써 만들어 낸 빈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도 나는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쪽 테이블 한쪽은 의자이지만 내가 앉아 있는 의자는 일체형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나란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과 여신, 학교여신으로도 불리오는 지아의 옆에 별 볼 일 없는 내가 앉아 있는 모습에 날 보는 시선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못생기거나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등. 무수히 많은 차이점들을 상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유일무이한 그녀였으니까.

그래서 우리 과에서. 아니, 학교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 비율은 못 해도 반수가 넘어갈 게 분명했다.

그중 한 명이 나 자신이고.

쿵쾅쿵쾅.

고작 옆자리에 조금 떨어져서 앉았을 뿐인데 이 한심한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고, 눈은 노골적으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만 가는 그녀를 힐끔거렸다.

"왔어?“

집에 돈도 있고 잘생기기도 한 2학년 선배가 싱긋 웃으며 태연하게 내 옆. 빈자리에 억지로 엉덩이를 밀어 넣자 하는 수 없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옆으로 당길 수밖에 없었다.

"네. 선배님.“

"너무 딱딱하다. 그냥 오빠라고 불러.“

예쁜 여자라면 일단 들이대고 보는 성격이라 남자 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얼마 없다시피 했다.

무엇보다 모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아에게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적으로 간주하긴 충분했다.

"오빠라 부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들이대는 탓에 지아는 불편한 것인지 저 선배에게만은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뜻은 싫어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왜에. 왜 나만 오빠라고 안 불러주는 거야?“

너 빼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을 물어보고 있었다.

대놓고 당신이 싫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그녀는 어색하게 웃음만 흘렸다.

그러던 그때.

"아, 그러고 보니 지아야. 네 언니 이번에 복학한다고 하지 않았어?“

지아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애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응? 지영이 이제 복학한 데?“

그런 그녀의 언니를 아는 듯.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툭 던졌다.

"네. 복학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근데 어제 못 본 것 같은데?“

"할 일이 있다고 수강 변경 기간이 끝나면 그때 온다고 하던데요?“

아무리 그 강의를 듣고 싶었더라도 교수님과 강의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드는지 일일이 따져보기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지 등록금이 아깝지가 않지.

"여전하네.“

"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자 지아는 의문을 표했다.

"근데 지영이는 아직도 그 강민훈이라는 남자랑 사귀고 있어?“

"훈이 오빠요?“

"어. 걔. 나는 도대체 그딴 놈이랑 왜 사귀는 건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잠깐 가지고 놀다 버리지 않았어?“

"훈이 오빠랑 언니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자 지아는 고운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늘 미소를 달고 다니던 그녀의 차가운 표정을 처음 보았다.

이게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선배나 지아의 친구들까지도 당황한 기색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사귀고 있을걸요? 대학 졸업하면 결혼 준비도 하고 있던데.“

여전히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그래.“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아차려서 선배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아야. 지아야. 어떤 사람이야?“

"응?“

"훈이 오빠 말이야."

나도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언니 남자친구의 모욕을 듣고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인지.

"어떤 사람이냐면......"

물음에 대답하려던 그때.

"찾았다."

가게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지아와 얼핏 닮은 구석이 있지만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그 사람을 보며 남녀노소 상관없이 감탄을 금치 못할 때.

"어, 언니!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지. 근데 여기 남자들 대부분이 질이 별로 안 좋거든?“

지아의 곁에 있던 남자들 전부가 들으라는 듯 말하니 왜인지 모르게 나까지도 눈치가 보였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 맞아. 이제 막 스무 살 됐잖아?"

"그렇게 치면 언니도 나랑 별로 차이 안 나는데?"

"그래? 그럼 섹스해 봤어?"

"......"

"푸흡!"

"쿨럭쿨럭!"

자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음료를 마시던 두 명이 갑작스러운 섹스라는 말에 뿜어버렸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미쳤어! 미쳤어! 왜 그래?!"

따지듯이 물으며 자신의 언니를 밀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반응을 보니까 아직인가 보네?"

".....!"

정말인지 지아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붉어졌다.

아직... 처녀... 처녀. 처녀라니.

예쁜 여자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잘생긴 남자에게 처녀 딱지를 뗀다고 하던데 설마 지아가 저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선 섹스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원래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지도 혹은 섹스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놓고 있다.

그걸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 수많은 남자들의 짝사랑의 대상인 여자가 처음이라니. 다시금 포기했던 사랑에 도전하고 싶어지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없어?"

"그, 그만! 그만하라고! 벌써 한 잔 하고 와서 취했어?!"

"흐응. 남자친구도 없나 보네? 다행이네."

싱긋. 미소짓자. 멍하니 지아의 언니를 바라보았다.

저게 정녕 사람이 맞는 걸까.

사실 미의 여신이 내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올 정도.

근데 이미 임자 있는 몸이기도 하고 너무 예쁜 나머지 부담스럽기도 해서 내 마음은 지금도 지아에게 향해 있다.

"가자."

"뭐?"

"집에 가자고."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니까?"

"내가 요즘 바빠서 계획했던 게 진행이 아예 안 되었거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빨리해야 해."

"설명! 설명을 좀 해 주고 진짜! 아니 언니!"

지아의 짐을 챙겨 들고 지아를 끌고 갔다.

당연히 반항을 해 보는데 힘의 차이가 극심한 걸까. 힘없이 끌려가고만 있었다.

"얘들아. 먼저 갈게."

"네, 네... 언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여자애들은 홀린 듯이 대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간 가게 내부는 정적만이 흘렀다.

*

"지아야. 어디 아파?"

다음 날이 되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강의실로 들어오니 책상 위에 엎어져서 배를... 아랫배 부근을 움켜쥔 지아를 걱정하는 여자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으으. 아니야. 그냥 속이 별로 안 좋아서......"

"어제 언니랑 달렸나 봐?"

"......"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냥 속이... 속이 조금 안 좋은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도."

"정말 괜찮으니까...! 아... 아무튼, 괜찮아."

순간적으로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가 이내, 곧바로 낮추었다.

왜인지 혼자 있고 싶어하는 듯한 반응. 그걸 아는 여자애들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미인의 삶은 보기보다 순탄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듯 남자들이 혼자 있는 그녀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몸이 안 좋으니 가달라고 하니 그래도 곁을 떠나지 않고 같이 보건실에 갈까 묻고, 오늘은 그냥 쉬고 집에 데려다주겠다느니, 모두 흑심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저기 저 남자들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너희. 자리로 돌아가."

그런 그녀를 도와주려는 듯. 3학년 여자 선배. 이다혜가 다가왔다.

"귀찮게 하지 말고."

학과 대표가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하고, 시간도 곧 교수님이 올 시간이니 순순히 자리를 떠났다.

"왠지 지영이랑 닮았다고 했더니 동생이었구나?"

남자들을 내쫓은 이유가 자신이 들러붙기 위해서였던가?

이다혜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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