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회사
* * *
이정욱. 그는 별 볼일 없는 남자였다.
아니, 오히려 사람을 피라미드 형식으로 나눈다면 하위에 위치한 중간도 못 가는 남자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달라졌다.
평균보다 못한 외모, 평균보다 못한 키, 평균보다 못한 지능과 손가락보다 작은 좆까지.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하나 같이 자존심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몇 년 전. 아무리 망한 인생이라도 부모한테 빌붙어 살 수는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했다.
거기서 그는 학생 때도 이렇게 한 적이 없는 공부를 미친 듯이 하며 회사에 이바지를 했다.
그러자 평범한 회사가, 이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는지 회사는 어느덧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을 넘보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되던 이정욱은 어느샌가 그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학교, 같은 동네, 어디선가 마주친 적 있다고 친한 척 다가오는 놈들이 줄을 이루었다.
뭐, 당연하겠지. 거의 초창기 맴버와 다름없는 핵심 인물인데다가 이 나이에 벌써 과장을 달고 연봉은 6천에 육박하는 거물이 되어 있으니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받아 먹으려는 바퀴벌레들이 꼬이긴 마련이다.
"쯧......"
이정욱은 회사 내, 자신의 자리에 거만하게 앉아서는 폰을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내세울 거라곤 오직 다니는 직장과 그 직장에서의 직위밖에 없는데 그거 하나만 말해도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던 여자들은 꼬리를 사랑거리며 다가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연애든가 원나잇이라던가 많이 해보았는데.
"날 병신으로 아나?"
외모도 병신이고, 좆 크기도 병신인지라 이 정도면 호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내가 첫 상대도 아니고, 나랑 만나기 전만 해도 몸을 걸레처럼 굴리던 년들이."
클럽에서 만나고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는데 바로 모텔까지 갈 정도로 발랑까진 여자들은 안 봐도 뻔했다.
오히려 클럽에서 진짜 예쁜 여자들이 정말 놀려고 가는 거지. 원나잇을 즐기는 경우는 얼마 없다.
그녀들도 아니까. 거기서 여자를 꼬시는 남자나 꼬셔지는 여자나 질 나쁜 건 다 아니까.
그리고 이처럼. 클럽에서 꼬신 여자들과 몸을 섞었던 이정욱을 잘만 다루면 퐁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원나잇으로 끝내지 않고 끊임없이 대쉬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성욕이 느껴질 때마다 한 번씩 따먹는 불량식품에 불과한데 말이지.
이정욱은 자꾸만 울리는 알람을 끈 채로 밝은 빛을 내비치던 화면을 어둡게 물들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수준에서는 손도 대지 못할 위치에 서 있는 여자들이긴 했다.
비록 몸을 싸게 굴리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몸이 실제로 닳거나 그러지 않으니 원래라면 이조차도 좋다고 빌빌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높아져도 상당히 높아진 그의 눈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장님. 여기 오늘까지 말씀하셨던 결재서류입니다."
"아. 고마워요. 하나 씨."
반년 전에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인 김하나 때문이었다.
여태껏 보아왔던 여자들이 전부 오징어나 남자로 보일 정도로 엄청난 외모를 지니고 있는 그녀는 이정욱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시선은 깨끗한 얼굴과 백옥 같은 피부에 자꾸만 눈이 갔다.
거의 다 납작하여 유두가 아니면 만져지는 감이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 여자들의 가슴과 달리 굴곡 있는 그녀의 가슴은 어서 그 가슴의 부드러움을 이 손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만 한 큰 벽이 있었다.
"저 하나 씨. 오늘 점심때 저랑 같......"
"수영이랑 먹기로 해서요. 죄송해요."
"그럼 수영 씨랑 같이 먹어도......"
"저 할 일이 있어서 가봐도 될까요?"
"아... 네. 가보세요."
아무리 젊은 나이에 과장직을 달고 있지만 그녀 또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엘리트 코스를 밟고 이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젊다고 해도 그녀와 달리 자신은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하나의 얼굴 정도면 그보다 더 잘난 남자를 만나봤을 터이고, 지금도 계속 그런 남자들이 구애를 해 오거나 애인으로 두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는 김하나가 지금 솔로라고 확신하고 있다.
생각해 보아라 과거도 아니고 스물 중반, 이제 막 후반을 바라보는 저 젊은 나이인데 입사하자마자 찝쩍대는 남자들에게 당당히 자신은 유부녀라고 밝힐까.
거기에 더해 진짜인 것처럼 아이 사진을 보여주어도 남편의 사진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정욱에게만 그런 것이 아닌 다른 남자들과 같은 여사원들에게도 그랬다.
이 말인즉슨, 아이 사진은 조카일 뿐. 더 이상 남자들이 들이대지 못하게 차단하는 역할이고 실제로는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다는 것이다.
이정욱은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유부녀라는 말만 듣고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다른 남자들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끄으으응!"
이정욱은 양 팔을 하늘 높이 들어 기지개를 폈다.
뻐근했던 몸이 펴지는 느낌이 나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꼬셔야 하나."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함께 들어온 신입사원. 그리고 회사에 입사하기 전부터 친했던 사이로 보이는 이수영과 대화를 나누는 김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역시 예쁘다.
이수영도 그리 나쁘지 않은 얼굴인데 옆에 김하나가 있으니 그조차도 평범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래도 뭐, 이수영도 꽤 맛있을 것 같은데 말인데 선뜻 다가와서 몸을 바친다면 몰라도 하나의 눈에 밟혀 그녀까지도 잃을 정도로 들이댈 가치는 없다.
참고로 그녀도 마찬가지로 김하나와 똑같은 설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도 유부녀라 뭐라나. 아이 사진은 많은데 당연하게도 남편 사진은 없다.
그럴 수밖에. 남편이라는 건 애초에 가상 속의 인물이니까.
스륵.
이정욱은 김하나가 주고 간 서류를 펼쳤다.
얼굴도 예쁜 게 뇌의 주름까지도 예쁜 것인지 이정욱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정욱은 이 정도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보더라도 고칠 게 하나 없긴 하다만 초창기 맴버라 할 수 있는 자신이 그렇다는데 대체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더라도 그냥 맞다고 맞장구를 쳐줘야지.
"저. 하나 씨."
"네. 과장님."
김하나에게 다가간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서류를 펼치며 어느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곤 여기가 문제가 있다는 둥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른 여자들이라면 노골적으로 싫아하는 눈치를 주지만 그녀만큼은 그런 이기적인 여자들과는 다르게 집중적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이러니 좋아할 수밖에.
이정욱은 자연스럽게 옆의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았다.
"이해 됐어요?"
"아... 네. 이해됐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다행스러운 얼굴로 가슴을 쓸면서 그녀의 가냘픈 어깨로 손을 가져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스킨십.
요즘 세상에 내부 고발을 하더라도 묻히는 건 내부고발자. 비교적 들어가기 쉬운 일반적인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만큼이나 성장한 회사에서 퇴출당하고 싶지는 않을 노릇.
그래서 이정욱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여직원들은 찡그려지기 일보직전인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몸을 만져질 것이다.
"......"
손이 어깨에 닿기도 전에 김하나가 어깨를 살짝 빼며 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정욱의 미간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리고 피어나는 생각.
네가 뭔데 내 손길을 피해?
일개 중소기업이라면 몰라도 대채로 과장 정도 되면 일의 효율은 그보다 밑인 대리와 비슷하지 늘어나는 경우는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을 잘라야만 하는 경우가 찾아오면 대부분 과장이나 차장 등. 어중간한 직위를 자른다.
그러나 이정욱 어떻게 보면 핵심 직원이기도 하고 그가 빠져나간다면 그 자리를 메우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터. 그래서 부장도 선을 너무 넘거나 하지 않으면 잘 터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애가 싫어하는 티를 내도 대놓고 싫어하니 살짝 기분 나쁘다.
뭐, 자신이 기분 나쁠만한 짓을 하긴 했어도 과장이고, 일개 사원이고 차이는 큰데 말이지.
"뭐, 대충 이렇게 알아두시면 돼요."
"네. 과장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니 더 꼴받는다.
그렇다고 여기서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없을지도 모르는 점수가 뭉텅이로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하나 씨. 곧 점심인데 나머지는 밥 먹으면서 하죠."
"네......"
개인적으로 밥 먹자고도 아니고 일에 관해서 할 얘기가 있으니 함께 밥 먹자는 말은 차마 거부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나는 이정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금 있다가 같이 나가죠."
어렵다 어려워.
그가 지금껏 만나온 여자들은 정말 예쁜 여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얼굴과 과장이라는 직책이 찍혀있는 사원증만 보여줘도 술술 넘어왔는데 그렇지 않으니 막막했다.
그래도 뭐,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