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회사
* * *
이정욱은 그때 이후로도 계속 김하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을 가했다.
그러다가 결국, 참다 못한 김하나는 터진 듯이 울컥하고 소리쳤다.
"과장님! 저 결혼했어요. 애도 있는 유부녀라고요. 자꾸 그러시면 곤란해요!"
늘 참으며 좋게좋게 끝내려고 했던 김하나였는데 오늘이 한계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욱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로 향하려고 하니 그 손길을 내치며 소리쳤다.
그 소리침에 사무실의 직원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정욱과 동급이거나 그 위의 상사들은 익숙한지 또 저러네 하고 손에 팝콘이라도 있으면 구경하며 씹을 것처럼 여유로웠다.
그러나 그 밑에 사람들은 김하나를 동조하는 듯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데 여자가 봐도 이정욱이 김하나에게 하는 짓거리가 눈꼴사나웠는지 무언으로 이정욱을 욕하고 있다.
아무리 젊고 예쁘더라도 남편이 있고, 애도 있는 여자에게 할 짓은 아니었으니까.
근데 좀 억울했다.
다 거짓말인데. 거짓말인 걸 알고 호소해주어도 믿지 않는 건 너희들인데 말이지.
"왜 그래? 하나 씨."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 그것도 모르는 머릿속이 꽃밭으로 가득 찬 여자도 아닐 텐데.
고등학교는 몰라도 대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넘겼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김하나는 사과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나오는 과장의 모습에 눈가를 촉촉하게 물들인 상태로 분한 듯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고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 마냥 입을 열려던 찰나.
"응? 여기 서서 뭐하고 있어?"
부장님이 들어오시며 적막이 흐르는 넓은 사무실 내부를 부장님의 목소리로 가득 채웠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그런데......"
이정욱은 자신이 하는 짓을 잘 터치하지는 않지만 너무 기이하게 뒤틀리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이정욱이 건드는 여직원들이 싫어한다고 하소연을 하면 그를 불러 약하게 타박할 뿐이다.
이정욱도 저 늙은 부장의 설교를 듣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넘겨버리며 부장의 뒤를 따라 들어온 한 남자를 힐끔 살폈다.
"뒤에 누구인지?"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면 상관없다만은. 너무 나가지는 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소개하지."
부장은 미심쩍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면서 함께 들어온 남자의 등을 툭툭 쳤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사원이니 잘 가르쳐 주고, 잘 대해주게."
신입... 사원? 이미 사원은 저번에 몇 명 뽑지 않았던가? 회사가 워낙 성장을 빨리하다보니 그에 따른 일거리가 늘어나긴 했다.
그래서인지 회사는 또 신입을 뽑은 듯하다.
좀 아쉽네. 이번에도 예쁜 여직원이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아무튼, 이정욱에게는 별 상관없긴 한데 직급이 낮은 일반 사원들은 짬처리를 할 수 있는 막내가 들어와 기분 좋아 보였다.
"이름은?"
목에 걸린 사원증에 이름이 보이지만 이정욱은 굳이 그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아. 민훈 씨군요? 반가워요. 전 과장인 이정욱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윽.....?"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니, 눈빛이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있다.
거기다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는 듯 잡고 있는 손이 아파져 왔다.
"아. 죄송합니다.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이라 너무 흥분한 탓에 좀 세개 잡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첫 직장이라 흥분한 탓이라고? 그러기에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굳이 따지자면 한 사람을. 자신을 죽이려는 듯이 째려보며 힘을 준 게 떡 하니 보였으니까. 그것도 모르는 부장은 허허. 웃으며 강민훈의 등을 두들겼다.
"여기 남자들은 다 약골이야. 민훈 씨처럼 운동도 하지 않아서 세개 잡으면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정욱아. 고의는 아니니까 화내지 말고."
"네......"
뭐야. 대체 뭔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보복을 한 거냐고? 억울해 미칠 노릇이다.
혹시 그가 건드린 년들 중의 지인 아니면 가족일까?
하지만 그년들도 자신이 가진 위치에 홀려 오히려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며 안겼을 뿐이다.
그것 말곤 없다.
그년들에게서 사기 쳐서 돈을 뜯거나 보험같이 악질인 짓을 한 것도 아니며 섹스하는 몰카나 사진을 찍고 배포한 적도 없다.
그저 원나잇에 불과한 관계였지 이렇게까지 화낼 건 아니다.
"하나누... 하나 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안내를 조금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내요? 네. 그럼요."
"저도 갈래요!"
뜬금없이 강민훈은 묘하게 밝아진 얼굴로 눈물을 훔치는 하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무리 직위가 높고 입김이 강하더라도 철벽을 치던 김하나는 굳건한 성벽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내치는데 한몫하던 이수영까지 동참하여 한다.
"오... 내가 신입일 적에는 저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대담하구만."
부장은 과거를 생각하며 마치 자기 자신의 아이를 보는 것처럼 흐뭇했다.
그에 반해 김하나를 노리고 있는 이상. 이수영의 앞에서만 보이던 미소를 보여주니 불안에 떨었다.
얼굴이 특출나게 잘생긴 건 아니었고, 돈도 많아 보이지 않다.
자랑하며 내세울 만한 거라곤 확실하게 키가 180cm 이상으로 보이는 멀대같이 큰 키와 나쁘지 않은 비율. 마지막으로 옷을 입고 있어도 눈에 띄는 우락부락한 근육밖에.
이 정도면 과장이라는 직급 하나로 커버가 가능했다.
그런데 대체 왜 대체 왜 김하나 저년은 왜 저리 좋아하는 거야?
"안내 제가 해드릴게요. 민훈 씨."
"아뇨. 어떻게 제가 과장님한테 부탁드려요?"
"괜찮대도 그러네."
무려 과장이 회사 안내를 해주겠다는데. 그냥 고맙다고 받지 왜 이리 거절하는지 원.
나 때는 그렇다고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절까지 했는데 말이지. 쯧. 이래서 요즘 애들은 문제다.
발랑 까져서는 여태껏 만나온 스무 살 여자조차 처녀인 여자가 없을 정도로 문란하고 예절을 몰랐다.
"과장님.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뇨. 오랜만에 온 신입사... 아니. 오랜만은 아니지. 그냥 운동을 해 보려고 하는데 민훈 씨가 운동하시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물어보려고요."
"그런... 가요?"
"그럼요. 그러니까 제가 빌려 갈게요."
단순히 빌려 가는 게 아니다.
수영은 줄 수 있어도 하나는 절대 못 주는 내 여자라는 걸 알려줄 생각이다.
그래도 기어오르고 싶으면 자진해서 나가지 않고서야 못 배기게 해 줘야지.
첫 회사 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잘 배우고 나가게 해주리라. 다짐했다.
*
하... 시발놈이 생각보다 더했다.
나는 이정욱이라는 과장 새끼의 뒤를 따라가며 몇 번이나 탈모가 시작되어 보기 싫은 머리를 한 놈의 뚝배기를 깨버릴 뻔했다.
예쁜 딸아이를 낳은 하나 누나가 반년 전에 들어간 새로운 회사에서 자꾸 들이대는 과장 새끼가 있다고 하소연을 하던데. 그보다 더한 듯하다.
그러니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잘 울지 않던 하나 누나가 울었는지 눈가가 촉촉했으니.
"민훈 씨라고 했죠?"
"네. 과장님."
"민훈 씨. 참고로 하나 씨는 제가 노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집적대지 말아요. 첫 직장이고 힘들게 들어온 회사잖아요? 편하게 다녀야죠. 안 그래요?"
분명 애도 있는 유부녀라고 입사 첫날에 수영 누나와 함께 털어놨다고 하던데.
그래도 들이대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내가 들어간 사진만 쏙 빼고 애기 사진과 애기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여주니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지만 유독 한 명만 끝까지 버텼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 누나가 예쁘고 섹시하고 순수하며 귀여운 매력까지 갖고 있는 이상적인 여자라도 애까지 딸린 유부년데 들이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저딴 말을 애 아빠이자 남편에게 저러니 더 빡이 친다.
정말 주위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주먹으로 면상을 후려갈길 뻔했다.
"과장님."
"궁금한게 있어요?"
키도 작은 데다가 운동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듯 왜소한 개 멸치이며 면상까지 못생긴 남자가 내가 부르니 이쯤이면 알아들었겠지 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나 씨 애 있는 유부녀인 것 같던데요?"
"응? 그걸 어떻게 알아요?"
"책상에 하나 씨와 아기랑 함께 있는 사진이 보이던데요. 조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더라고요."
"그게 거기서 보이나? 애초에 거리가 꽤 될 텐데? 음."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본인은 그렇다고 하는데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요?"
아닌데. 진짠데. 어제도 내 정액을 받아서 둘째 임신할 수도 있는데?
"그럼요. 여기서 하나 씨 남편 얼굴을 본 사람 아무도 없어요.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주더라고요. 그럼 뭐에요. 없다는 거지. 그냥 귀찮게 들이대는 사람들을 쳐내려고 방편으로 애 딸린 유부녀라는 설정을 고사하고 있는 거죠."
"......"
와 씹. 그걸 그리 받아들이니 할 말은 없다.
애초에 내 사진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하나 누나만 내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한다면 함께 일하는 수영 누나는 하나 누나와 똑같이 내 아내인데 남편 자랑을 못 하게 되는 불합리함에 빠진다.
그래서 숨긴 건데. 이렇게 상황이 꼬일 줄은 몰랐다.
"믿든 안 믿는 상관 없는데 회사 생활 편하게 하고 싶으면 들이댈 생각 마요."
하하.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과장... 아니, 개새끼의 뒤통수가 불이날 정도로 노려보며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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