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회사
* * *
"우아아앙. 나 너무 힘들어어어."
회사가 끝나고 따로 떨어져 퇴근했지만 어느 한적한 술집에서 나와 하나 누나, 그리고 수영 누나는 다시 만났다.
술 몇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하나 누나는 벌써부터 취한 사람처럼 엉엉 울며 내 품에 안겨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아아. 우리 누나. 너무 고생한 것 같네. 왠지 내가 더 미안하네."
"흐윽... 흑."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고 쓰레기다.
고작 하루 동안 그가 하나 누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봤는데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성추행을 시도하다가 가로막히거나 싫은 티를 팍팍 내도 포기하지 않고 들이대거나 하는 게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하아... 그냥 지영이한테 말해서 조지면 안 돼?"
하나 누나의 반대편 옆에서, 그러니까 내 옆에 앉아서 안주를 집적거리며 술잔을 비우던 수영 누나가 말했다.
지영이한테 다 말하면 안 되냐고.
"......"
나는 물론이고 하나 누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입사한 회사는 다름아닌 지영이의 회사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20대 중반의 나이인데 대기업에 맞먹는 회사를 가지고 있는 게 나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회사가 세워진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그럼 늦어도 고등학교 입학 전에 세운 거라는 데 솔직히 누가 믿을 것인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나와 만나기 전부터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다시 한 번 더 내 여자친구님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치만... 지영이 바쁘잖아......"
말 그대로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다.
아니, 이미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할 일은 대게 많아져 자리를 비울 때가 상당한데 거기서도 자신이 꼽아준 가족들이 회사 내에서 괴롭힘 같은 걸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거라. 어떻게 반응할게.
지영이라면 그냥 욕을 입에 담으며 두 번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아무렇지도 않게 철저히 짓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하나 누나의 생각은 달랐다.
직원들을 잘 관리하지 못해 꼽아준 우리가 피해를 봤다고, 안 그래도 바쁜데 여기까지 신경쓰게 하기에는 미안하다고.
이런 황당하고 바보 같은 생각으로 하나 누나는 꿋꿋하게 반년 동안 버틴 이유였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지만 여자친구님에게 끊임없이 받아오기만 한 나라서 하나 누나의 입장이라면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 했을 게 분명했다.
남자인데. 남자라면 자고로 여자를 지켜줘야하는 입장인데 끊임없이 받아오며 지킴을 받으니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어쩌게?"
수영 누나는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어보았다.
하나 누나는 딱히 방법이랄 게 없어서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고개를 숙여버렸다.
할 수 있다면 남편이란 걸 밝히고 싶은데 수영 누나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처음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고 긍정하겠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도태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아라. 같은 남자의 아내인데 자기 말고 다른 여자만 공식적인 아내이며 관심을 받는다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로 호감이 있는 척. 수영 누나와 하나 누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쓰레기가 되는 방법도 있는데 누나들은 이미 애 딸린 유부녀라고 털어놔서 이것도 안 된다.
"하아......"
참. 돌아버리겠는 상황이다.
그냥 하나 누나가 일이 맞지 않는다고 퇴사하고는 예린이 누나의 카페에 가서 일하면 좋겠는데 하나 누나는 커피를 탈 줄을 모르는 데다가 꿈이 대기업 사무직이었다.
그래서 대학과도 경영학과 쪽이었으며, 그냥 일하지 말고 쉬라 해도 아이까지 있는데 놀고먹는 못돼먹은 엄마가 되기 싫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일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봐야지......"
반 년 간 진전이 없었는데 지금 더 생각해 봐도 답은 안 나올 게 뻔했다.
하나 누나는 암담한 얼굴로 술잔을 비웠다.
암울해 있는 두 아내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나도 지영이처럼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능력이 하나 있긴 하네.
"안 되겠다. 이모!"
"네예~!"
"포장가능하죠?"
"물론이죠!"
"그럼 이거 다 포장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모는 재빠르게 비닐봉지를 가져와 안주와 술을 담아주었다.
"포장?"
수영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모텔 가서 먹어요. 오늘은 둘 다 잠 못 잘 줄 알아요. 얼굴에서 미소가 나오기 전까지."
얼굴도 기쁨이 가득하고, 몸도 기쁨이 가득해야지만 난 두 사람을 재울 생각이다.
"꺄아~ 변태!"
하나 누나는 내 당당한 선언에 양 볼에 손을 얹고 소녀처럼 꺅꺅 거렸다.
난 두 사람을 데리고 모텔로 들어가 안주와 술은 손도 대지 않은 채 두 사람을 쉴새없이 마구 범했다.
*
"으으... 머리야아......"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깨어난 수영 누나는 숙취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머리도 아프고, 보지도 누구 때문에 아프고... 가슴은 어찌나 빨아댔으면 아려오잖아... 힝."
정액과 애액이 말라비틀어져서는 퉁퉁 부어있는 보지와 잇자국과 더불어 이곳저곳이 붉게 물든 가슴을 어루만지며 불만을 토로했다.
2차로 모텔에 와 술을 별로 마시지 않고 새벽까지 섹스를 했더니 몸에는 딱히 문제될 것 없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로에 찌들어 있는 나였다.
그나마 누나들은 번갈아 가면서 내게 박혀 조금이라도 잘 시간이 있는 데에 반해 난 지금이라도 도로 자고 싶은 마음으로 굴뚝같았다.
고작 상체를 세워서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시금 잠들려던 내게 수영 누나가 안겨들었다.
"가기 싫다아......"
안 그래도 지영이의 허락하에 누릴 걸 다 누리고 사랑하는 사람인 나와 아이까지 만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계속해서 그녀의 지원만 먹고 살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무엇보다 아이까지 있는데 빌붙어 사는 무능한 엄마가 되기 싫어서 일을 시작했구만 아침 일찍 일어나 죽도록 가기 싫은 회사에 가는 건 무엇보다 싫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나를 끌어안고 탄탄한 등 근육에 얼굴을 비벼대고 있는 수영 누나를 일으키며 나 또한 침대에서 내려왔다.
여전히 잠들어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하나 누나를 깨운 다음 먼저 몸을 씻었다.
그렇게 나 다음에 누나들이 차례차례로 들어가고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입은 채 모텔을 나와 국밥이나 먹으러 갔다.
"훈아. 훈아. 여기 수이 사진 찍어줬네. 헤헤헤."
테이블에 국밥이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 누나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누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둔 채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무척이나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아기의 사진이 있었다.
아기의 성별은 여자. 이름은 강수이. 나와 수영 누나의 딸이다.
참고로 하나 누나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도 딸이며 이름은 강민하다.
벌써 딸만 세 명이고,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하루 누나의 배속에는 그나마 다행이게도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명의 딸도 괜찮지만 그래도 한 명쯤은 아들이 있어야지 않겠는가.
그래야 같은 남자끼리 아들이랑 이것저것 하며 다니지. 응응.
"민하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지 그래?"
묘하게 수영 누나의 화면을 보며 부러워하던 하나 누나는 손에 휴대폰을 쥐고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발견한 수영 누나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자 하나 누나는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저었다.
"우리 민하는 누구랑 다르게 착하고 얌전해서 엄마 없어도 잘 있을 거야."
"읏...?! 그, 그럼 수이는 착하지 않고 얌전하지 않다는 거야?"
"뭐, 뭣...?! 그말이 아닌데? 아니 잠깐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너가 한 말이잖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서로 또 싸우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두 사람 다 민하랑 수이는 자기 딸처럼 여기는데 막상 둘만 있을 때는 저렇게 의미없는 걸 꼬투리로 잡고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불이 크게 번질까봐 중재하고 그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순히 장난으로 저러는 걸 깨닫고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그 증거로 당황하는 하나 누나를 수영 누나가 재밌다는 얼굴로 계속 시비를 걸지 않은가.
나는 내 여자들의 행복한 모습에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이 행복도 오로지 지영이 덕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과장과 관련된 일은 지영이의 귓가에 들어가게 하여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
바쁜 사람인데, 가장인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짐을 홀로 어깨에 들고 있는데. 남자가 돼서 이런 일이 있다며 고자질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 이런 일에 바쁜 사람을 붙잡은 게 미안하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그새끼를 대체 어떻게 조져야 할지. 모르겠네.
"하아......"
여전히 티격태격하고 있는 수영 누나와 하나 누나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내게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면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