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회사
* * *
신입이라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이것저것 짬처리를 해대는 통에 회사 생활이 꽤 힘들었다.
그래도 집에 오면 사랑하는 아내들과 작은 천사들이 있으니 버틸 수가 있었다.
역시 아버지란 세상 그 무엇보다 대단한 것 같다.
"얘들아! 아빠 왔다!"
집 바로 앞에서 뭐 살 거 있다고 헤어진 누나들을 뒤로한 채 집에 돌아오고 가정부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곧장 아기방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수영 누나와 하나 누나가 배아파 낳은 두 아기 천사가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작은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빠 왔다~!"
마음속으로는 일어나서 꺄르르 웃으며 아빠를 반겨주면 좋을 텐데. 아이가 한 번 잠들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가장 좋다는 말도 있으니 굳이 깨울 생각은 없다.
그래서 목소리의 톤을 낮추며 아빠가 온 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아. 어찌나 귀여운지 저 볼을 손가락으로 마구 찌르고 싶고, 뽀뽀 세례를 끊임없이 해주고 싶다.
근데 잔다.
안 자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애초에 일어나 있어도 아빠인 내 품보다 엄마들의 품을 더 좋아하니까 여태까지 하지 못한 행위였다.
아니, 하긴 했는데 내가 만족할 만큼 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누가 본다면 미친놈 취급할 정도로 기기괴상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쯤.
복도에서 들려오는 앙증맞은 발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아빠아아!"
몸을 돌리자마자 배 쪽에서 묵직한 느낌이 들어왔다.
"오구오구! 하린이 왔어?!"
"헤헤! 하린이 왔어요! 다녀오셨어요?!"
"그럼! 그럼 다녀왔지!"
눈을 떼지 못하거나 옹알이를 하거나 자력으로처음 일어섰거나 말을 하거나 걸음마를 떼었거나 하는 둥. 하린이의 어린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속에 가득했거늘.
언제 이렇게 다 커서는 아빠의 품에 달려와 안길 정도가 되었는지 원.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른 느낌이다.
그래도 이것도 나쁘지 않지.
"왔어?"
"별문제 없었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품은 은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그녀의 배속에도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작은 생명이 들어 있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성별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이 어떻든간에 나와 은정이의 아이이니 다른 애들과 차별없이 똑같은 사랑을 줄 생각이지만 이왕이면 딸이 세 명인데 아들도 두 명 쯤 되면 좋을 것 같아 아들을 희망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런 희망 사항은 단 한 번도 입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다.
만약 아들을 원한다고 했다가 딸이 나오면 어떡할까.
딱히 문제는 없긴 한데 그래도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니 그조차도 처음부터 배제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 거다.
"딱히 없었지. 없는데 하루 누나가 답답해하는 것 같아."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스트리머로 활동했던 하루 누나다.
밖도 잘 나가지 않는 자발적 찐따가 되어버려 할 것이라곤 방송과 게임 말고 없는 그녀인데 곧 출산이 임박해오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누나의 게임과 방송 활동을 전면으로 중단해버렸다.
안 그래도 갑자기 결혼 소식을 내비쳐 욕도 많이 먹었고, 지금도 배신감에 휩싸인 쓰레기들이 하루 누나를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솔직히 누나가 연예인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누나의 방송은 여캠보다는 게임 실펵파 방송으로 시작했다가 뛰어난 외모 때문에 인식이 그렇게 변해간 것뿐인데 말이지.
거기다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애까지 가졌다는 말에 쓰레기들은 더더욱 미쳐날뛰었다.
이러니 내가 방송을 금지할 수밖에.
게임도 뭐 리그오브라전드라는 욕이 난무하는 악질 게임을 주로 하니 당연히 게임도 금지다.
"내가 추천해준 게임은 재미없데?"
"차라리 쇼핑하는 게 더 재밌다던데."
하린이를 품에 안아 들며 물으니 은정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 잘 나가지 않고 명품이나 이런 사치에도 관심이 별로 없는 하루 누나니 자연스럽게 쇼핑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남자처럼 필요한 것만 사면 그만이지 대체 왜 쇼핑에 시간을 그리 쓰냐고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함만을 느끼던 누나가 내가 소개해준 게임이 그보다 재미 없다는 발언까지 하다니. 왠지 상처를 받는다.
난 아이를 배속에 품은 엄마에게 좋은 게임 중에 그나마 재밌는 걸 소개해 주었는데 별로였나보네. 다른 거 찾아와뱌겠다.
"너는 괜찮지?"
"괜찮아."
하린이를 품에 안은 채 은정이에게 다가가 그녀도 똑같이 품에 안으려고 했다.
"안 돼! 내 거야!"
그러나 하린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은정이의 몸을 있는 힘껏 밀었고, 어쩔 수 없이 멀어진 은정이를 보며 이겼다는 승리의 미소와 함께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나중에 침대에서 안아줄게.'
'섹스해주는 거야?'
'이제 막 임신했는데 안정되면 그때하고 오늘은 안아만 줄게.'
'그냥 해주면 안 돼? 예전처럼 그냥 박아주면 안 될까?'
예전에 은정이는 저러지 않았는데. 임신함에 따라 섹스가 중단되었더니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자꾸만 날 유혹해왔다.
임신 초기가 가장 중요한데. 그리고 내게 워낙 대물이어야지 이 크기면 아기방까지 쿡쿡 찔러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쌍한 얼굴을 보이며 애원해도 난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
'안 돼.'
"쳇."
연기였는지 혀를 차는 은정이다.
그마저도 귀여워 미칠 노릇이다.
아. 그냥 아기고 뭐고 그냥 따먹고 싶을 충동에 휩싸인다.
품에 하린이가 안겨있는 것도 망각한 채 바지춤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이대로면 난... 나안.....!
"수이야! 민하야아아!"
"엄마왔어!"
마트에서 뭐 사고 온다던 두 여자가 들이닥쳤다.
아쉽기는 해도 다행인 걸까. 남편이 옆에 있는 것도 모른 채 굳이 자는 애들을 깨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성욕이 과대해진 은정이를 위해서든 곧 나올 우리의 아이를 위해서든 오늘은 섹스를 잠시 멈출... 려고 하는데 아기 침대에 팔을 걸치고 있는 두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살랑거리며 의도치 않게 날 유혹했다.
난 재빨리 하린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쳐 안아 들었다.
하린이는 단순히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고 꺄르륵. 거리며 좋아라했다.
*
다음날이 되었다.
어김없이 출근하였고, 신입사원인 난 일을 배우랴. 이 정도 알려줬으면 네가 다 할 수 있을 거라며 간단한 일거리들을 몰아받았다.
솔직히 못 할 정도는 아닌데 자기네들 거까지 넘겨주니 생각 외로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을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데 일개 사원들이 일거리를 몰아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윗대가리라는 것들부터가 일을 넘겨주고, 넘겨받은 사람이 자기 혼자서는 불가능하니까 또 밑에 넘겨주고 하다 보니 어느샌가 일거리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특히 저 과장이라는 이정욱이 젤 악질이다.
다른 놈들은 적당히 넘겨주는데 이정욱은 남기없이 다 넘겼다.
하필 그놈이 능력이 있었는지 할 것도 많은 데다가 어려움까지 존재하지 자잘한 것들은 전부 밑에 애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아... 시발."
몰래 휴게실로 도망쳐온 나는 문을 닫자마자 욕부터 입에 담았다.
회사 생활이 일보다는 인간관계에서 힘들다는 건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더더욱 그랬다.
벽에 등을 기대며 입사하기 전의 내가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대체 왜 이따위 일에 환상을 품었는지 원.
그리고 시스템이 이따위로 흘러가는데 회사는 멈출 줄 모르고 커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하다.
그만큼 내 여자친구... 아니, 내 아내가 대단하다는 거겠지.
"쯧."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으로 뜬금없이 운동이 마렵다.
남들은 담배 따위로 버틴다는데 지금의 나는 뭔갈 들고 싶다.
예를 들면 20kg 아령이나.
"훈아? 여기 있어?"
양쪽의 두 덩이의 고철과 그에 반해 얇은 손잡이의 아령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들겼다.
목소리의 주인은 끊임없이 과장에게 시달리던 하나 누나의 것이다.
"저 혼자 있어요."
"그래?"
혼자라는 말에 하나 누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문을 조심히 닫고는 문을 잠갔다.
"힘들지?"
"좀 그러네요."
"원래 그렇게까지 일을 몰아주지 않는데 그새끼가 널 싫어하는 것 같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하아......"
그새끼라고 하면 필히 과장이 분명하다.
그냥 일거리가 늘어나서 내 할당량이 늘어버린 건줄 알았는데 고의였다니.
슬슬 더 빡치네 이거?
"괜찮아요. 힘들긴 해도 할 만하거든요."
왜인지 모르게 자기 잘못인 것처럼 우울해 보이는 하나 누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나는 누나를 품에 안고선 머리와 허리를 쓰다듬었다.
누나의 몸 냄새가 코를 찌르며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지니 한계치를 넘을 듯한 스트레스가 운동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어느새 성욕으로 치환되었다.
바지춤이 부풀어 오르며 누나의 아랫배를 꾹꾹 찌르기 시작했다.
"후흐... 하고 싶어?"
"하고 싶긴 하네요."
"그럼 할까?"
"여기서요?"
"응. 어차피 곧 점심이라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걸 널 찾는다고 혼자 왔거든. 그러니까 여기 올 사람은 없고 애초에 1층에 카페가 잘 되어 있어서 다른 부서에서도 여길 잘 안 써. 그래서 고민할 건 왜 안 왔냐고 추궁하는 것만 잘 넘기면 돼. 단 한 사람. 그새끼만 좀 지랄하겠지만."
아무도 안 온다라. 아무도......
"읍?!"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데 참을 이유 따윈 없다.
누나의 턱을 올리고 바로 입을 맞추었다.
누나는 살짝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내 목덜미에 팔을 걸며 키스를 받아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