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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4화 (4/173)

〈 4화 〉 아주 간단히 행해지는 지독한 행위 ­ 1

* * *

쏴아아아…….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 소리가 어색한 침묵을 두드린다.

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

게임 좀 하면서 느긋하게 휴일 좀 보내야겠다 싶더니 정전이 일어났고, 양초 찾으러 움직인 사이 어느새 누군가 방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으며, 나를 깔아뭉갠 괴한은 어째 내 게임 캐릭터와 놀랍도록 닮은 여성이었고, 그녀가 휘두른 칼은 내 목 가까이에서 멈춰 있다…….

마치 정전된 이후부터 다른 세계에 흘러들어온 듯한 비현실감이다.

이거 정말 현실이긴 한 걸까? 사실 다 꿈이라거나 그런 거 아냐?

바닥에 떨어졌을 때 충격과 아픔을 느꼈지만, 사실은 단순히 잠결에 침대에서 떨어진 것일 수 있다.

내 방에 침대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꿈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얻은 나는 목에 가까이 다가온 칼날에 손을 대었다.

“저기, 일단 이것 좀 치워 줄…….”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성은 기겁하듯 바닥을 반쯤 파고들어 갔던 칼을 뽑아내며 내게서 떨어뜨렸다.

요란한 그 반응이 마치 더러운 것이 자신의 칼에 닿지 않게 하려는 모습처럼 보여서 살짝 상처받을 뻔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뚝.

“어?”

손끝에서 알 수 없는 액체가 방울져 내 얼굴로 떨어졌다.

피였다.

칼을 치워달라며 칼날에 아주 가볍게 손을 댔을 뿐인데 그 흔적이 상처의 형태로 선명히 남았다.

이가 나가 있는 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예리함이었다.

언제 이런 상처가 났냐는 듯 손끝의 신경들이 놀라 욱신거린다.

‘……아니, 근데 이거 진짜 피잖아!’

젠장! 꿈이라는 생각이 부정당했어!

전부 현실이다!

느닷없이 목덜미를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도! 여성이 휘두른 칼에 내 목이 달아날 뻔한 것도!

내가 경악하고 있으려니 내 손가락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여성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괘, 괜찮으……!”

말을 이어가던 여성은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한쪽 팔에 장비된 방패를 옆으로 휘둘렀다.

콰아아앙!!

내 몸 위에 있던 여성의 신형이 꺾이며 날아간다. 마치 옆에서 달려든 과속 차량에 치인 것처럼 빠르게.

하지만 뜬금없이 과속 차량이 좁은 단칸방에 나타날 리 없었다.

그녀를 후려친 것은 어둠 속에서도 섬뜩하게 빛나는 날 서린 대검이었다.

‘이건 또 뭐야!’

여성과 나만이 있는 줄 알았던 공간에서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

이번엔 묵직한 갑옷으로 몸을 감싼 남성이었다.

왜 혼자 살기도 좁은 방에 자꾸 사람이 나타나는 거야! 이놈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고!?

남성의 모습을 따라간 내 시선에 부서진 화장실의 문이 잡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어둠 속에서 화장실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었다. 이놈은 거기에 있던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남성이 시선을 내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마치 조금 전 나와 마찬가지로 ‘이건 또 뭐냐?’는 시선이었다.

“응?”

“어?”

허공에서 시선이 교차하고, 곧 나나 남성 할 것이 동시의 눈이 부릅떠졌다.

남성의 외모도, 복장도 어째 낯설지가 않다. 조금 전의 여성처럼 말이다.

마치 내 게임 플레이를 훔쳐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캐릭터와 쏙 빼닮은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굵은 턱선과 강철 심줄이 엮인 것 같은 육체. 전장을 누비기엔 딱 좋아 보이는 갑옷. 사자의 갈기처럼 야성적인 황갈색 머리카락까지.

딱 내 두 번째 게임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심각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 코스프레를 한 남성은 나를 보고 뭔가를 느낀 듯 마찬가지로 놀란 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아……!”

무언가를 말을 내뱉기도 전, 남성은 표정을 굳히더니 대검을 머리 위로 휘둘렀다.

투 핸드 소드 정도의 대검이 머리 위로 떨어지던 이 나간 검과 부딪치며 귀를 찢는 울림을 내었다.

채애애앵!!!

“크윽!!”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고막만 겨우 지켜냈을 뿐이었다.

공기를 울리는 진동이 신체에 퍼지며 아까 먹었던 음식물이 올라오는 기분이다.

역한 기분을 견뎌내는 한편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쫓았다.

처음 대검에 맞고 날아갔던 여성은 순식간에 벽과 천장을 박차며 남성의 머리 위로 떨어져 장검을 휘두른 상태였다.

인간의 움직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민첩함과 반사 신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이 체중째로 휘두른 일격을 별 무리 없이 막아내는 남성도 정상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금속과 가죽이 섞인 갑옷 아래로 드러난 남성의 거목 같은 팔에 뱀이 기어가듯 힘줄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대로 대검을 세차게 휘두르며 떨어지던 여성을 몸째로 허공에 내던져 버렸다.

인간의 몸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의심될 정도로 아찔한 기세다.

쿵!

하지만 여성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자세를 잡았다.

그대로 격돌할 뻔했던 벽에 두 발을 대며 깔끔하게 충격을 줄인다.

남은 충격을 분산시키듯 한껏 몸을 수그리던 여성은 이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벽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날아갔을 때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였다.

그대로 벽과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린 여성은 이가 나간 검으로 남성의 허리를 쓸어갔다.

남성은 허리를 뒤로 빼 검날을 피해간 한편,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대검을 여성에게로 내리쳤다.

여성은 공중제비를 돌 듯 몸을 날려 대검을 피했다.

여성의 머리를 노렸던 대검이 그녀의 등과 허리를 지나 그녀의 발밑으로 이동하며 위치가 역전되었다.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린 여성이 두 발로 대검을 내려찍었다.

목표를 잃은 채 떨어지던 대검이 바닥에 깊숙이 박힌다.

콰아앙!!

대검이 땅에 박힘과 동시에 여성의 검이 빛을 뿜었다.

또다시 창밖에서 친 번갯빛을 반사한 검이 호선을 그리며 남자의 목을 노렸다.

남자는 그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면으로 덤벼들었다.

검의 궤적이 완성되기도 전에 여성의 품으로 파고들어 어깨로 그녀의 몸통을 들이박는다.

남성의 견갑과 여성의 흉갑이 맞부딪치며 큰 쇳소리를 내었다.

캉!!

충격에 여성의 몸이 밀려난다.

남성의 목을 노렸던 검의 궤도가 틀어지며 머리카락 몇 가닥만 가르고 지나갔다.

남성은 여성이 물러나면서 해방된 대검을 뽑아 들었다.

부서진 파편 등을 흩뿌리며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대검이 여성을 노렸고, 그녀는 몸을 좌측으로 빼내며 대검의 공격을 피했다.

대신 그녀의 뒤편에 있던 냉장고 문이 작살났다.

콰가각!!

“내 냉장고!!”

비명 같은 외침을 지르는 내 눈에는 우그러진 채 공중으로 날아가는 냉장고의 문과 그 안의 내용물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바로 어제 시장 보고 봤는데!

심지어 기껏 큰맘 먹고 샀던 소고기도 있었다.

냉장고가 부서지는 충격으로 허공으로 튀어 오른 비닐에 싸인 고기.

그것은 곧 남성과 여성 둘 중 누군가가 휘두른 검격에 의해 처참히 부서져 나갔다.

“내일 먹으려 했던 소고기가!!”

자취생에게 고기 하나가 얼마나 천금같이 귀한 건데! 그것도 비싼 소고기를!

내가 절규를 부르짖는 사이 남성과 여성의 사이에서 검격이 수없이 오갔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살기 어린 공방전 속에서 그 상처는 고스란히 벽과 바닥, 그리고 사방에 있는 사물들로 이어졌다.

옷장이 부서지며 찢어진 옷들이 비산하고, 싱크대가 부서져 깨진 그릇들이 굴러다녔으며, 심지어 컴퓨터까지 처참히 박살나는 모습마저 보였다.

그런데도 두 인간은 멈추지 않고 싸움을 이어간다.

내 집도 아닌 월세방에서 말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끄아아악!!! 그만해!! 그만하라고, 빌어먹을 새끼들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만하라고 외쳤다. 외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인간인지도 의심될 만큼의 신체 능력으로,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의 수많은 검격이 오간다.

저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어봤자 남는 건 육체가 고기처럼 다져지는 일뿐이다.

그렇기에 말릴 수 없는 싸움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력하게 외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다고 저 정체불명의 녀석들에게 씨알도 먹힐 리 없을 테지만.

우뚝.

근데 이게 웬걸.

먹혔다.

계속되는 격돌로 결국 부러져 버린 검날을 한 손으로 잡아채 남성의 하복부를 찔러가던 여성의 움직임이 직전에 멈춘다.

자신의 하복부를 노리고 파고드는 여성의 어깨를 작살내려는 듯 두 손으로 대검을 내리치던 남자 또한 직전에 검에 브레이크를 걸며 멈췄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 살기가 넘쳐나던 싸움이 거짓말처럼 얼어붙었다.

아직 싸움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 번들거리는 두 쌍의 눈이 동시에 한쪽 향했다.

시선의 끝에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왜 싸움을 말리느냐?’라고 묻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황당해진 건 도리어 내 쪽이었다.

그럼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며 내 방 박살나는 꼴을 팝콘 먹으러 구경하리?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우선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었다.

“너희들 누구야!”

남의 집에 불법 침입한 것도 모자라 진검으로 다짜고짜 생사결전을 벌이는 미친놈들에게 물었다.

뭐하는 놈들이기에 내 게임 캐릭터와 놀랍도록 똑같은 외모와 복장을 하고 이 짓거리를 벌인단 말인가.

그러자 두 남녀는 오히려 자신들이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누구냐니……. 저 모르시겠습니까? 저 ‘레반’입니다.”

남성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레반.

확실히 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다.

내 게임 캐릭터 중 두 번째에게 내가 붙여준 이름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여성도 스스로를 가리키며 이름을 밝혔다.

“저예요. ‘레테라’.”

“…….”

레테라.

역시나 세 번째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이놈들, 복장이나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이름마저 내 게임 캐릭터와 같았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하나였다.

‘……미친놈들이다.’

모니터에서 쑥 튀어나오는 모습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어느새 집 안에 침입한 괴한들이 내가 만든 게임 캐릭터라고 주장하면 퍽이나 믿겠다.

난 이들이 단단히 미쳤다고 확신했다.

지금 당장 인터넷 뉴스를 살펴보면 정신병원을 탈출한 남녀에 대한 기사가 1면에 뜰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이 모든 상황이 광기 어릴 정도로 공을 들인 몰카라는 편이 신빙성이 그나마 높았다.

내 게임 캐릭터의 모습과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게임 내에서 만난 적 있는 녀석들이라면 설명이 된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내 집 주소를 찾아내서 이따위 몰카를 꾸미는 거라면 보통 미친 녀석들이 아니었다.

몰카가 아닌 경우는 더더욱 상황이 심각해진다.

자기가 게임 캐릭터라고 믿는 위험인물이 두 명이나 있는 셈이니까.

그럼 지금 필요한 건 뭐지?

‘경찰! 공권력! 민중의 지팡이!’

나는 지긋이 이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경계하며 슬쩍 뒷주머니에 꽂아둔 휴대폰을 만졌다.

화면은 보이지 않지만 몇 번이나 사용하면서 익숙해진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112를 누르려던 때였다.

뜻밖의 난입자가 나타났다.

쾅! 쾅! 쾅!

“야, 옆집! 집에서 공사하는 것도 아니고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정전된 것도 짜증나는데 내 손에 한 번 죽어 볼래?!”

옆집 사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정전 때문에 승리를 놓쳐버려 내가 난리를 치자 벽을 두드리며 성을 낸 양반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레반과 레테라라고 밝힌 두 사람의 싸움이 오죽 시끄러웠던지 아예 집을 뛰쳐나와 이쪽 현관문을 부술 듯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하기도 전, 그 둘의 신형이 사라진다.

콰아아아앙!!

사라졌던 두 사람의 신형이 현관문 앞에 나타나며 동시에 발을 내질렀다.

철로 된 문이 우그러지고 잠금장치도 벽과 연결된 경첩도 그들의 괴력에 통째로 뜯겨져 나갔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문 바로 너머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던 옆집 남자는.

“꾸엑!!”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남자의 신형이 문에 밀려 넘어갔다.

문과 함께 남자를 깔아뭉갠 레반과 레테라는 그 위로 올라탔다.

그들이 쥐고 있던 대검과 한손검이 당장이라도 문을 꿰뚫고 남자의 숨통을 끊을 듯 번뜩였다.

“동작 그마아아아아안!!!!”

아슬아슬하게 터져 나온 내 외침이 남자의 목숨을 구했다.

두 사람은 아까와 똑같이 왜 말리냐는 듯 나를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안 죽이실 건가요?”

“죽이긴 뭘 죽여, 미친 새끼들아?!”

나는 서둘러 두 사람과 떨어진 문짝을 치워냈다. 그들에 대한 두려움은 눈앞에 벌어진 엄청난 사태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쓰러진 옆집 남자는 쌍코피를 화려하게 뿜은 상태로 기절한 상태였다.

이 양반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지금 상황이 소음을 항의하러 온 그를 내가 무참히 폭행한 듯한 모양새가 되지 않았는가!

황급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복도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기절한 남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단 방 안으로 옮기자! 좀 도와줘!”

“네!”

“알겠습니다!”

이쪽은 심각해 죽겠는데 저쪽은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두 사람은 처음으로 부모에게 심부름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씩씩하게 외쳤다.

그렇게 남자를 부축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씨팔! 502호! 집에서 광란의 파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뭐가 이렇게 시끄……!!”

아래층에 사는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며 내뱉는 소리에 내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건 이쪽을 발견한 아래층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피를 철철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옆집 남자와 그런 그를 시체 옮기듯 옮기고 있던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잠시 침묵하는가 싶던 아래층 남자는 이내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하던 일 마저 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아래층 남자를 가리키며 내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저놈 붙잡아아아아앗!!”

““넵!!””

“죽이진 말고!!!”

막 검을 휘두르려던 두 사람이 아쉬운 기색으로 검을 거두었고, 이내 비명을 지르기 직전인 남자의 입을 틀어막으며 제압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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