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6화 (6/173)

〈 6화 〉 아주 간단히 행해지는 지독한 행위 ­ 3

* * *

보이지 않는 첫 번째 캐릭터에 관한 일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먼저다.

바로 두 이웃집 남자!

처참하게 부서진 방과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날아가 버린 보증금 문제도 있지만, 우선 재수 없게 여기에 엮여버린 이 두 사람부터 어떻게든 해야 했다.

‘까딱하면 기물파손뿐만 아니라 폭행죄까지 더 해서 잡혀가겠어.’

물론 아래층 남자를 붙잡으라고 지시한 건 나지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다 옆에 있는 골칫덩이들이 저지른 일이다.

게임 속에서 나온 그들에게 이곳의 신분이 있을 리 없었고, 경찰이 엮이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레반과 레테라를 숨기자니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내가 다 뒤집어쓰게 생겼고.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레반이 말을 걸어왔다.

“아버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뭐, 별로…….”

굳이 문제라면 너희들의 출현 자체라고 할까.

게임 속 캐릭터가 현실로 나온다는 꿈같은 전개가 실제로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하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 둘이 나오자마자 친 사고에 뒷골이 아파 왔다. 느닷없이 대형견 크기의 비글 두 마리를 키우게 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손을 포근히 덮는 감촉이 있었다.

레테라의 손이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성큼 다가온 그녀의 두 손이 내 손을 감쌌다.

그녀를 만들 때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던 금색 눈동자가 지금 나를 향해 생동감 있게 반짝인다.

“아버님.”

“뭐, 뭐야?”

레테라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그만둬. 여자 경험 없는 모쏠에겐 자극이 너무 세다고. 그런 내 긴장을 레테라는 경계 받는 것이라 판단했는지 한순간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다 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혼란스러우신 거 이해합니다. 저희도 아직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이쪽 세계에선 저희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항상 아버님의 존재를 느껴왔습니다. 아버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나아가고, 아버님이 바라시는 데로 싸워왔죠. 그것이 무아지경에 빠져들 만큼 강렬한 싸움이면 어느덧 아버님과 하나가 된 기분마저 느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레반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치 아버님이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듯한 느낌이었지.”

“야 임마. 언어 표현.”

어딘가 부적절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그의 말에 태클을 날렸을 때였다.

레테라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무척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아버님과 하나가 되어 점차 열기로 뜨거워지는 그 느낌은 정말 중독될 것만 같았어.”

“그러니까 그 묘한 언어 표현 집어치워!!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이들의 말을 풀이해보자면, 아무래도 게임에 깊이 집중했을 때 일어나던 신기한 현상을 이들도 함께 느꼈던 모양이다.

내가 마치 게임 속에 들어가 직접 싸우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이질적인 감각.

누군가는 무아지경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게임 중독증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게임 캐릭터가 현실로 나온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 레테라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희의 역할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쪽 세계에서든 저쪽 세계에서든, 저희는 여전히 아버님을 지키는 방패고, 아버님의 적을 베는 검입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저희를 대해주세요. 곤란한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저희를 의지해주세요.”

레테라는 아무래도 내가 곤란해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그 원인이 자신들 때문이라는 것도.

레반을 돌아보니 그 또한 레테라와 같은 마음이라는 듯 정중히 무릎을 꿇고 나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주인의 명을 기다리는 기사 같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아직 당혹스러움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 편이라는 사실 하나는 다행임을 느꼈다.

그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던데, 이들과 상담하며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혼자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고, 의외로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줄지 모를 일이다.

하여 레반과 레테라에게 현재의 대략적인 상황과 문제점을 설명해주었다.

이쪽 세계엔 함부로 이러한 법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면 불이익으로 돌아온다거나, 신분이 없는 그들의 존재가 문제가 된다는 것 등등.

최대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서 이야기하였다.

내가 말을 마치자 레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근육이 비대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린다.

“즉, 저희를 감추려고 하는데 이 두 인간이 문제가 된단 말씀이시죠? 저에게 맡겨두십시오.”

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긴 한 걸까?

레반은 이쪽이 불안해질 만큼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몸을 일으켰다.

“뭘 할 생각인데?”

스릉!

내 물음에 레반이 검집에 넣어둔 대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러며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대검의 서늘한 날을 향한다.

“자고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미친 새끼 아냐?!!”

빠악!!

기겁한 나는 반사적으로 굴러다니는 슬리퍼를 집어 휘둘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레반은 맞은 사실보다 자신이 혼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듯이 나를 돌아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내가 여긴 너희의 세계가 아니라고 가장 먼저 설명했을 텐데?! 무턱대고 죽이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버럭 소리를 높이며 그를 혼내고 있을 때, 레테라는 피식하고 한심하다는 시선을 레반에게 던졌다.

“나참, 뇌까지 근육에 물들여 가지곤.”

“뭐 임마?”

그 소릴 들은 건지 레반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레테라는 시치미를 떼듯 고개를 나에게로 향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섰다.

“걱정 마세요, 아버님. 제가 이들을 죽이지 않고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우리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눈과 혀를 뽑아버린다는 둥의 수단이라면 그냥 다시 자리에 앉아.”

“…….”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건데 스트라이크로 맞은 모양이다.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레테라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엔 반대로 레반이 비웃었고, 레테라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어째 서로 티격태격 대는 현실 남매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날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고, 내가 만들어낸 녀석들이니 남매 맞나?

“하아…….”

아무튼, 이들에게 상담해 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걸로 결론이 났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긴 개뿔. 백지장이 무겁다면서 불태워버리려는 녀석들을 데리고 뭘 어쩌겠단 말인가.

이들의 사고는 모두 SoR 기준이었다.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갔던 자들. 기본 상식이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왔다. 내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레반과 레테라. 이 두 사람의 존재를 감추면서 나도 폭행죄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수를 떠올렸다.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가장 유효해 보인다.

“……너희들 내가 하는 말에 뭐든지 따를 수 있냐?”

슬쩍 그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입니다, 아버님! 원하신다면 뜨겁게 녹아내리는 쇳물을 단숨에 원샷 할 수도 있습니다!”

“전 이 자리에서 심장을 꺼내 바치겠습니다!”

“그만둬, 또라이 새끼들아.”

나는 과잉 충성심을 선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미 내 방이 작살난 것만으로도 난감해 죽겠는데, 여기서 더해 아즈텍 인신공양 현장으로 만들지 말라고.

더욱 무서운 점은 소름 돋을 만큼 선명히 빛나는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정말로 내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금 전 했던 말을 진짜 행동으로 옮길 것 같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나는 뭐인 걸까.

플레이어? 부모? 창조주?

한평생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처음이라 낯설기만 하다. 차라리 일자리 구하다가 만나는 악덕사장의 갑질이 현대인에게 더 익숙하지.

뭐, 조금 도가 지나쳐 보이긴 해도 내 말에 순종적으로 따라주는 점은 다행이긴 하지만.

나는 가까이 오라는 뜻으로 방바닥을 두드렸다. 눈치 빠른 두 사람이 앉은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여러모로 생각해봤지만, 역시 지금 상황은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온 강도짓으로 하는 게 좋겠어. 옆집 남자는 현관문에 깔려 기절해서 우리 얼굴을 못 봤고, 아래층 남자도 너희 둘이라면 모를까 멀리 있던 내 얼굴은 어두워서 보지 못했을 거야. 여기서 나까지 피해자인 척하며 끼는 거지.”

말을 이어가며 나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 위의 옥상이었다.

“이곳은 총 7층짜리 건물이야. 옥상에 있는 건 건물주가 잡동사니를 모아 두는 창고 하나뿐이지. 지금은 잠겨 있어서 아무도 출입하지 않아. 거기에 숨어 있으면 적당할 거야.”

예전에 옥상 출입문은 항상 열려 있었지만, 육 개월 전에 옆 동네 원룸에 사는 청년이 옥상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건물주가 무서워졌는지 그 이후부터 항상 출입문을 잠가놓았다.

원룸 입주민들의 목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땅값 떨어질까 걱정되어서였다. 정말이지 훌륭한 물질만능주의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출입할 수 없게 된 공간이기에 설마 그곳에 누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계단 쪽 출입문은 이용할 수 없으니 건물 외벽을 통해서 올라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내 말을 들은 레반과 레테라는 저마다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며 답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세계수 등반까지 성공했는데 이 정도쯤이야!”

세계수라. 옛날 생각나네.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상까지 올라야 했지만, 정말 드럽게도 험하고 높은 나무였다.

실수로 발을 헛디디면 얄 짤 없이 추락사. 그러곤 부활한 뒤에 처음부터 다시 올라야 했다.

하늘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거목을 처음 봤을 때는 그 웅장함에 압도당했지만, 죽다 살아나고 다시 나무를 올려다볼 때마다 어찌나 불살라버리고 싶던지…….

회상해봤자 빡치기만 하니까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아무튼 게임 그대로의 신체 능력을 가져왔다면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라도 건물 외벽을 오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너희들은 옥상에 숨어 있어.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역시나 의욕 가득한 모습으로 대답하는 두 사람을 향해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

“자, 그럼……. 누가 날 때릴래?”

““……네?””

당장이라도 창문 너머로 몸을 날려 파쿠르를 시작할 듯했던 두 사람이 경직된 채 나를 돌아보았다. 믿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는 듯 두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면서.

나도 좋아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얻어맞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특이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폭행당한 꼴로 기절해있는 이웃집 사람들 옆에 내가 멀쩡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심받을 것이다.

새가슴이라서 강도 때문에 놀라 기절했다는 변명이 먹힐 가능성도 희박하고.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나 또한 습격을 받은 듯한 상처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상처를 내는 데에 자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우선 둘 중 아무나 날 기절할 때까지 쥐어 패. 피까지 흘린다면 더 좋고. 그 뒤 여기 찢어진 옷가지를 끈처럼 이용해서 여기 두 양반처럼 나를 묶는 거야. 그 뒤 내가 말한 대로 옥상에 몸을 숨기면 돼. 할 수 있겠지?”

이번에도 씩씩한 긍정의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건만, 의외로 돌아온 것은 사력을 다한 거절이었다.

“아뇨!”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기겁하다 못해 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 몸에 손을 대는 게 어마어마하게 큰일 날 짓인 것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고무공 같은 녀석들이지만 충정만큼은 진심인 모양이다.

나에 대해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여기선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

“그러지 말고 눈 딱 감고 한 대만 쳐줘. 내 스스로 상처를 냈다가 꾸며낸 티가 남으면 오히려 의심받을 수 있단 말이야. 아파도 원망 안 할게. 믿을 건 너희밖에 없다고.”

내가 재차 부탁하자 그들도 마냥 거절하진 못했다.

심지어 믿을 건 너희밖에 없다는 부분에서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송구스럽지만 딱 한 대만…….”

머뭇거리면서 주먹을 움켜쥐는 레반.

그때 레테라가 그를 막아섰다.

“잠깐 기다려! 그런 우악스러운 주먹에 맞으면 아버님이 멀쩡할 것 같아? 차라리 내가 하겠어!”

“뭐? 네 그런 비실비실한 주먹으로 깔끔하게 끝낼 수 있겠냐!”

“무식하게 힘만 센 게 자랑이냐! 이런 건 의외로 손기술이 필요한 법이라고!”

“아버님은 눈에 잘 띄지 않은 상처보단 누가 봐도 한눈에 폭행당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상처를 원하신다고! 싸우는 건지 춤추는 건지 모를 녀석은 빠져 있어!”

“야, 잠깐…….”

어째 둘 사이의 열기가 가열되는 것 같기에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다.

“지금 기량캐를 무시했냐?”

레테라.

화려한 태크닉으로 적을 농락하며 제압하는 기량을 중심으로 키운 캐릭터.

그렇기 때문에 기량 전투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위험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너야말로 근력캐를 물로 보는구나.”

레반.

강력한 한 방 한 방으로 적을 찍어 누르는 근력을 중심으로 키운 캐릭터.

마찬가지로 근력 전투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망했다.

이건 현실 남매의 싸움이 아니다.

기량캐와 근력캐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뭐하는 거야, 이 바보들은!’

너희들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비글이냐!

내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이웃집 사람들(한 명은 내가 지시했지만)을 폭행하고,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할 판국에 자기들끼리 시비가 붙었다.

마음만 같아선 둘 다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얌전히 만들고 싶었다.

‘……아냐, 잠깐.’

이 상황, 어쩌면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뒷감당이 무섭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방 안의 온도가 올라간다고 느낄 정도로 사나운 기세를 휘감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대만 주고받고 끝내.”

그건 싸워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단 일격만 허용되었지만, 둘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자신의 감정을 분출할 기회였기 때문인지, 단 일격으로 상대를 골로 보낼 자신감의 반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반과 레테라는 한 걸음을 성큼 내딛으며 서로의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단 한 치의 지체도 없이 그들은 동시에 노골적인 살의가 담긴 주먹을 뻗었고…….

……그 타이밍만을 기다리고 있던 내가 교차하려는 주먹 사이로 몸을 던졌다.

레반과 레테라의 싸움을 말린다 한들 또다시 누가 나를 때리느냐를 두고 시간을 허비할 게 뻔했다. 반면 기절한 이웃집 남자들은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강행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헉……?!”

“아버……!”

시야 안으로 파고들어 온 나를 발견한 두 사람의 눈이 놀란 듯 커진다.

서둘러 내지르는 주먹을 멈추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한 번 궤도에 오른 관성을 억누르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방향을 뒤틀기에도 거리가 너무 좁다.

이미 그들의 주먹은 나의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머리에 맞닿았고…….

퍼억!!!

……그 위력은 예상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강렬했다.

고통이 뇌리에 닿기보다 먼저 시야가 뒤틀린다.

레테라의 주먹이 틀어박힌 오른쪽 갈비뼈와 레반의 주먹이 닿은 왼쪽 두개골에서 ‘으직으직’ 하는 불길한 소리가 전해진다.

인간의 주먹이 아니었다.

마치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철구를 사람의 몸에 있는 힘껏 내던진 듯한 충격이었다.

그들이 나를 때리는 걸 극구 사양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마 아래층 남자를 붙잡았을 때 그들도 느꼈으리라. 이곳 사람들의 육체가 자신들의 비해 한없이 연약하다는 것을.

마지막에 힘을 뺀 주먹만으로 이 정도라니, 진심을 담은 일격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버니이이이이이이임!!!!!!””

울려 퍼지는 레반과 레테라의 비명 속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현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감탄사였다.

‘과, 과연 내가 키운 캐릭터들이다……!’

스켈레톤 한 무리를 이길 힘이 되지 않아 도망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강해졌구나……!

털썩!

장렬하게 쓰러진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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