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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7화 (7/173)

〈 7화 〉 부모 마음 ­ 1

* * *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묘하게 욱신거리고, 머리는 띵하게 울린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소독약과 약품의 냄새를 맡으며 의식을 차렸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보이는 건 너무나도 눈에 익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시골에 계실 터인 그들이 어느새 내 곁에 와 계셨다.

“요현아, 괜찮니!?”

“어떤 천벌 받을 놈들이 우리 아들을 이 꼴로 만들어놔!”

내가 눈을 뜬 걸 발견한 두 분이 바짝 고개를 들이밀며 몸 상태를 물어온다.

멍한 시선으로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대로 시선이 천천히 이동한다.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인지 편안한 색감을 사용한 벽과 커튼, 이불 등이 보인다. 이곳이 병원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선이 가슴에 감긴 붕대에서 멈춘다. 병원복 너머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붕대였다.

머리에도 이물감을 느낀다. 붕대는 이쪽에도 감겨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꼴이 된 거지?’

아직 반쯤 잠에 취해 잘 움직이지 않는 두뇌를 굴려가며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찾아낸다.

붕대에 감겨 있고, 병원인 걸 보면 교통사고라도 당한 듯싶은데…….

“……아.”

차라리 떠올리지 않는 게 나았을 비상식적인 소동의 향연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키운 게임 캐릭터가 현실로 나와서 내 방과 이웃집 사람들을 작살내는 광경,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는 기억이었다.

혹시 내가 꿈을 꾼 게 아닐까.

사실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고, 기절한 상태에서 꾼 꿈을 진짜로 착각한 것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뜩 손에 시선이 갔다.

반창고에 감겨 있는 손가락.

그것을 억지로 뜯어내자 그 밑에 있는 상처가 드러났다.

예리한 것에 베인 듯한 상처였다. 지금은 상처 부위에 갈색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무심코 레테라의 칼날에 손을 댔다가 베인 상처다. 기억 속에 있는 그 위치와 일치했다.

‘꿈은 아니란 건가…….’

복잡한 기분이다.

내가 만든 게임 캐릭터와 현실에서 만났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체험이 아닌가.

약간의 고양감마저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는 건, 그 두 사고뭉치가 벌여놓은 주거 공간 파괴와 민간인 상해 때문일 것이다.

뒷감당이 두렵다. 특히 내 월세방 보증금이라던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고 있을 때쯤 아직도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시선을 느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내가 마음의 정리할 시간을 주는 듯 두 사람은 묵묵히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당장 여러 가지 묻고 싶을 테지만 나를 위해서 잠시 침묵을 지켜주신 것이다.

그 사실이 묘하게 울컥하고 다가왔다.

“아버지, 어머니.”

“……?”

“제가 그동안 철없이 굴어서 두 분을 힘들게 했던 거, 정말로 죄송합니다.”

사고치는 레반과 레테라를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사고를 치고 다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에도 두 분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에 그런 말을 하였다.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가관이었다.

“여보!! 우리 요현이가 이상해요!!”

“취직 좀 해라, 여자친구 좀 사귀어라, 잔소리할 때는 쥐뿔도 안 듣고 게임만 하던 우리 애가 이럴 리 없어! 강도에게 머리를 잘못 맞은 게 분명해!!”

“…….”

젠장. 이 반응도 내 업보인 건가?

***

정신을 차리고 난 뒤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부모님의 얘기로는 하루를 넘어 이틀 가까이 기절해있었다고 한다. 머리에 맞은 충격 때문인지 생각보다 오래 의식을 잃고 있었다.

아무튼, 병원에서 지급되는 식사로 굶주림부터 해결하고 나니 의사가 찾아왔다.

내 상태에 대해선 보호자인 두 분께 이미 설명했지만. 나에게도 다시 한 번 설명해주었다.

우선 생명에 지장은 없다. 그 점은 다행이었다.

문제는 오른쪽 이마가 찢어져 출혈이 생겼고, 두개골에 균열이 갔으며 왼쪽 늑골 6, 7, 8번 부위가 부러졌다는 것 정도.

뼈가 다시 붙을 때까진 최소 4주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이게 과연 맨주먹에 맞고 생길 수 있는 상처일까.

최대 교통사고, 못해도 쇠파이프 같은 거로 있는 힘껏 얻어맞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부상이다.

실제로 경찰이나 보험회사도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다음날이 밝자 보험회사 직원이 먼저 다녀갔다.

전문적인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도 상해에 의한 보험료가 지급된다고 하여 부모님은 살짝 안도하였다.

하지만 나는 보험료의 유무보단 그 뒤에 찾아온 형사가 더 긴장되었다.

상황은 내 계획대로 강도에 의한 사건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수상한 행동을 보였다간 의심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잠시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타이밍에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형사가 찾아왔다.

이번 강도……인 척 꾸민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였다.

푸근한 인상을 하고 있지만, 큰 덩치와 왼쪽 뺨에 남은 칼자국이 형사라기보단 다른 업계에서 일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설백호라 이름을 밝힌 형사는 형식적인 안부를 묻고 나서 사건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래층 남자의 동거녀가 층간소음에 항의하러 올라간 애인이 돌아오지 않자 확인하러 올라왔고, 거기서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신고했습니다. 쓰러져 있던 건 당신과 이웃집 남자, 그리고 아래층 남자 이 셋이었죠. 범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레반과 레테라.

다행히 두 사람은 내 말에 따라 잘 움직여준 모양이다.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누구도 범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갑자기 넘어지는 문에 깔려 기절했고, 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실루엣만 확인한 게 다라고 하고요. 하지만 대략 두 명 내지는 세 명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그, 글쎄요? 저도 순식간에 당한 터라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정중한 말투로 말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를 날카로운 눈빛에 살짝 위축되면서 나는 최대한 시치미를 떼었다.

“확실하게 말해주셔야 합니다. 습격당하기 직전에 낙뢰가 떨어져서 주변 일대가 정전됐었죠? 그 탓에 CCTV까지 맛이 가서 용의자들의 추적이 어렵습니다.”

‘나이스!’

난감하다는 설 형사의 말과는 반대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 중요한 순간을 망쳐놓은 벼락이 여기선 도움이 되는구나.

주변 일대에 CCTV가 기능상실이 레반과 레테라의 존재를 감추는데 유리한 쪽으로 작용되었다.

누가 사건 현장에 접근했는지조차 모르니 존재하지 않는 강도를 만들어내기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설 형사의 반응을 보니 목격자 또한 없는 모양이다. 당시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폭우가 거세게 내렸으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내 증언에서도 단서를 찾지 못하면 범인을 수색할 방도가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니 그는 좀 더 집요하게 캐물었다.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까? 범인의 인상착의라던가, 작은 특징이라도.”

“죄송합니다. 하필 그때 정전이 돼서 세상이 온통 깜깜해진 통에 제대로 본 게 없어서요. 게다가 머리를 맞아서 그런지 기억까지 애매하네요.”

“흐음…….”

설 형사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게 있는지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묘하게 부담스럽다.

당장이라도 내 피부를 벗겨서 그 안에 내용물을 알아내고자 하는 듯한 눈빛에 등에서 식은땀이 절로 났다.

“뭐, 뭔가 문제라도?”

“아뇨. 강도를 당한 분께 이런 말씀 들이기엔 죄송합니다만, 이 사건은 여타 다른 강도 사건과는 많이 달라서요.”

“예를 들면 어떤……?”

“가장 눈에 띄는 건 금품 피해가 없었다는 점일까요. 옷장이나 선반 등은 부서져 있는데 정작 돈이 될 만한 건 가져가지 않았더군요. 통장도 그대로 있고.”

아차.

그 녀석들에게 뭐라도 좀 가지고 가라고 할 걸 그랬나.

두 사람을 숨기는 것에 급급해서 좀 더 그럴듯한 강도 현장으로 꾸미는 걸 소홀히 했다.

이걸 계기로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진짜 난감해지는데…….

긴장 때문에 축축해진 손바닥을 들키지 않으려 이불 위에 얹어 놓았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건가요?”

일단 의심을 사면 안 되기에 놀란 척하며 설 형사의 얘기에 녹아든다.

“네. 혹시 보험금을 노린 자작극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설 형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훑었을 땐 쭈뼛 하고 온몸의 솜털이 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그것도 아닌 듯하군요. 애초에 자작극이라고 하기엔 너무 눈에 띄게 일을 벌여놨습니다.”

“눈에 띄게요?”

뭐, 아무리 보험금이 목적이라고 해도 보통 사는 곳 벽과 바닥에 칼자국을 내놓진 않겠지. 형사들도 작살난 내 방 꼴을 보며 이게 뭔 일인가 싶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설 형사가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자신의 방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시죠? 여기, 현장사진입니다.”

나는 별 거부감 없이 그 사진을 받아들었고…….

‘야, 이 미친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쌍욕이 입안에서 튀어나오는 걸 겨우겨우 억눌렀다.

당장 이 자리에 없는 레반과 레테라 두 사람의 멱살을 잡고 니들 돌았냐고 따지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쳐서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얼굴이 심각하게 굳고 식은땀을 흘리는 내 모습을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여긴 설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셨나 보군요. 하긴, 저도 이 바닥에서 제법 구른 몸이지만 처음 현장을 봤을 땐 솔직히 공포감마저 느꼈습니다.”

설 형사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시선은 사진에 고정된 채 떨어질 줄 몰랐다.

사죄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

죄책감이란 곧 마음의 고통.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에게 용서를 비는 행위가 바로 사죄다.

레반과 레테라는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나 보다.

「죄송합니다.」라는 그 다섯 글자가 벽에 새겨져 있었다.

글씨체가 두 종류인 걸 보니 그 두 사람의 것이 확실했다. 검으로 직접 새긴 모양이다.

아마 나를 향한 사죄의 메시지겠지.

문제는 그 사죄의 말이 수백 개는 족히 넘어간다는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장까지, ‘죄송합니다’라는 글자가 사방을 가득 채우는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혹은 사이비종교의 집회, 강령술의 현장이었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왜 사죄 문자로 방을 한가득 메우고 X랄이야! 무섭잖아!!’

어째 건물주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소동이 진정된 뒤라도 더 이상 그 방에서 살긴 글렀다.

“어쩌면 이 사건은 강도 상해가 아니라 사이비종교와 관련된 범죄일지도 모르죠. 간혹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들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이곤 합니다. 혹시 짐작 가는 거 없습니까?”

“전혀…… 없는데요…….”

그 광신도들이 내가 잘 아는 녀석들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게 나라는 것도.

충격을 먹은 나머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설 형사는 정말 내가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럴 만했다. 나는 지금 정말 진심으로 놀라는 중이었으니까.

내가 기절한 사이 이따위 기행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솔직히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어쨌든 이것으로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둔 설 형사가 사진을 회수하고, 대신 자신의 명함을 넘겨주며 몸을 일으켰다.

“혹시 뭔가 기억나거나, 수상한 인물들이 주변에 얼쩡거린다면 여기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주세요.”

그 말을 마치고 설 형사는 병실을 나섰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피곤함이 몸을 짓누르는 게 느껴지는 건 분명 부상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향한 의심도 거두어진 것 같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머리맡에 베개를 끌어당겨 얼굴을 힘껏 덮어 누른다. 분노하는 내 표정과 목소리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이 썩을 녀석들……!! 한 시라도 사고 안 칠 수 없는 거냐……!!”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매를 드시던 아버지의 심정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회초리와 녀석들의 탐스러운 종아리다. 자진모리장단으로 마구 때려주고 싶었다.

“요현아. 방금 웬 덩치 큰 남자가 병실을 나오던데 누구냐?”

그리고 설 형사와 엇갈리듯 병실에 들어온 부모님을 보며 나는 안도했다. 두 분이 없는 자리에서 형사와 얘기를 나눠서 다행이었다.

아들 주변에 이딴 불길한 작자들이 나돌아 다닌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억지로 시골에 끌고 갈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이러니 저리니 해도 난 농촌보단 도시 삶이 더 끌리는 20대 청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음?”

“사고뭉치 자식들은 대체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걸까요?”

“너 이 새끼, 애 생겼냐?”

내 한탄을 위험한 쪽을 해석해버린 아버지가 내 멱살을 붙잡았고, 어머니는 말리기커녕 대답을 종용하듯 이쪽을 노려보았으며, 나는 그런 두 분을 진정시키느라 진땀 좀 빼야 했다.

어제부터 되는 일이 하나 없네, 젠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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