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부모 마음 2
* * *
사회 경험하라고 자취시켰더니 부모 모르게 애나 만들었다는 오해를 푸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모했다.
형사와 만난 이야기는 대충 둘러대며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두 분도 시골에서 할 일이 있으니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나도 이젠 어린애가 아니라는 말에 두 분은 수긍해주었다.
마침 면회시간도 끝나갔기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몸조리 잘할 것을 내게 당부하며 병실을 나섰다.
부모님을 배웅하고 나는 피곤에 절여진 몸을 다시 침대 위 내던졌다.
그러다 부러진 뼈가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생각 없이 움직인 걸 후회했다.
시간은 현재 밤 10시에 가까워진다. 10시 이후로는 소등시간이었다.
같은 병실을 공유하는 다른 환자들은 이미 병원 일과에 익숙해진 건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꽤 피곤했다.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이 특히.
병원에 오고 나서 하루 종일 잤다고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신체가 푹신한 침대와 이불의 온기를 원한다.
쏴아아아…….
‘또 비가 오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 침대가 창가에 있어서 창문에 물방울이 맺히는 모습까지 아주 잘 보였다.
어둠 속에서 고요히 울리는 빗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평안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자면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그러다 중요한 걸 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썅!!”
번뜩 떠오른 레반과 레테라에 존재에 반사적으로 쌍욕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느라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단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막 잠에 들려던 병실의 환자들이 난데없는 욕지거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뻘쭘해진 난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악몽을 꿔서 그만…….”
“쯧, 무슨 악몽이기에 이리 호들갑이여.”
“이해해주게. 듣자 하니 웬 미친놈에게 습격당하고 입원했다나벼.”
벌써 소문이 난 것인지 대부분 금세 이해해주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자리에 들었다.
큰 소란 없이 넘어간 것에 안도하고 병실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현재시간 10시 15분.
기억을 떠올려보자.
녀석들과 처음 만났던 시간. 벼락이 떨어진 직후.
그때가 분명 밤 10시 정각이었다. 정전이 될 때 휴대폰을 확인하였기에 확실히 기억한다.
이런저런 소동을 겪다 기절하고 병원에서 눈을 뜬 시간이 낮 1시 가량.
하루가 아니다. 데미지를 크게 입은 탓인지 하루 이상을 잠들어 있었다고 들었다.
실제로 전자시계에 새겨진 날짜도 내 기억보다 하루 더 앞서 있다.
그렇게 깨어난 뒤 의사나 보험사 직원, 형사를 만나느라 시간을 더 소모했고 현재에 이른다.
그렇다면 내가 기절한 뒤 못해도 48시간을 날려 먹었다는 소리가 된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머릿속이 쉴 새 없이 경종을 울려댔다.
나타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수많은 사고를 일으키던 녀석들이 이틀 동안 방치됐는데 불안감이 안 생길 수가 있겠는가.
하루만 기다리면 된다고 녀석들에게 말했건만 시간을 두 배 이상 초과해버리다니!
만약 돌아오지 않은 나를 걱정해서 찾아 나섰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다못해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 해 먹을거리를 찾으려 움직였다면?
게임상에선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초인들이지만, 그 설정이 현실에 반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엇이 원인이 됐든 옥상을 빠져나가는 순간 예상되는 건 대형 참사뿐이다.
현대 사회를 잘 모르면서 사람 두셋은 가볍게 보내버릴 무력을 가진 그들의 위험도는 동물원에서 도망친 사자 이상이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 모르겠다.
두 사람은 이미 옥상을 빠져나가고 도시 어딘가를 나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한 듯 무언가를 저지르겠지, 지금까지 패턴을 보자면.
여기에 연관되면 위험하다.
분명 내가 지금껏 사랑해왔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 내리리라.
“웃기고 있네. 평범한 일상 따윈 이미 한참 전에 무너졌어.”
그래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였다.
어찌 되었건 녀석들은 내가 책임져야 할 녀석들이다.
그들은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고, 그들에게 나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부모였으니까.
옷 갈아입을 시간조차 아까웠다.
지갑만 챙기고 빈 침대는 베개와 옷가지 등으로 사람이 있는 척 꾸며두었다.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간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병원 내부에 설비된 편의점이었다. 목적은 편의점에 구비된 우비를 얻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불투명한 색상의 우의를 얻을 수 있었다. 환자복을 감추기엔 제격이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간호사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움직이며 병원 뒷문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쏴아아아!
나오자마자 거센 빗발이 나를 반겼다.
장마철도 아니건만 왜 이리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우의로 머리까지 덮은 나는 그대로 비를 뚫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이다. 키워주든 뭐든 다 할 테니까 이 이상 사고만 치지 마!”
어두침침한 밤거리를 내달리며, 나는 레반과 레테라가 그 자리에 얌전히 있어 주길 간절히 빌었다.
***
원래 살던 월세방과 병원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입원해 있는 사이에 정전을 고친 것인지 현재 주택가는 빛을 되찾은 상태였다.
내가 살던 원룸으로 이어지는 길을 달려가던 나는 그 근처 교차로에서 문뜩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올리니 보이는 건 방범용으로 설치된 CCTV였다.
어젯밤 벼락으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작동할까?
예전에 길을 걷다가 전봇대 위에 걸린 CCTV가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 잠시 관찰한 적이 있었다.
주변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조작하는 건지, 정확한 작동 원리는 모르겠지만 카메라가 혼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그런 CCTV 카메라는 지금 움직임이 없었다.
실험 삼아 조약돌을 던져 카메라를 맞혀보았다. 여전히 변화가 없다.
아무래도 전력이 끊긴 정도가 아니라 벼락에 의해 아예 내부가 타버린 모양이다.
“좋았어.”
지금이라면 두 사람을 데리고 빠져나와도 보는 눈이 없을 것이다.
혹시 두 사람이 이미 건물을 벗어났다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제발 그 자리에 있으라고 중얼거리며 내가 살던 원룸 내부로 들어갔다.
그렇게 온 건 좋은데 옥상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힘들었다.
이 건물은 7층짜리인 주제에 엘리베이터가 없던 것이다. 그렇기에 상층 원룸이 싼 맛에 계약하긴 했지만.
여기까지 달려온 것도 모자라 계단까지 오르려니 우비 안이 금세 땀에 차서 찝찝해서 죽을 맛이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다 있던 5층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문짝이 날아 가버린 내 방이었다.
입구엔 경찰의 출입금지 선이 쳐져 있었고, 그 안쪽으로 보이는 방 안은 정말 형사가 보여준 사진대로 ‘죄송합니다’라는 글자가 수도 없이 도배되어 있었다.
이젠 흥분하기도 지쳤다.
“그 망할 녀석들”이라고 힘없이 중얼거리며 걸음을 서두른다.
지금 중요한 건 내 방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도달한 옥상 출입문의 앞.
예전에 두 사람에게 설명했던 대로 출입문엔 두꺼운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자물쇠 위에 남아 있는 먼지. 그밖에 건든 흔적조차 없으니 경찰도 여기까지 조사해보진 않았나 보다.
“후우…….”
크게 숨을 내쉬는 건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다스리기 위함만이 아닐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나는 눈앞에 철문을 두드렸다.
쿵. 쿵.
“……레반, 레테라. 거기 있어?”
………….
몇 초간 기다려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크게 증폭되었다.
역시 소식이 없는 날 기다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간 건가?
그렇다면 낭패다. 지금이라도 찾으러 나서야 하나?
이 광활한 도시에서 어떻게 찾으라고? 소동이 일어난 곳에 녀석들이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을 찾을 방법을 생각하며 출입문에서 물러날 때였다.
사악…….
그건 쇠와 쇠의 표면이 서로 맞닿아 스치는 듯한 울림이었다.
그 소리를 따라 다시 출입문을 돌아보았다.
출입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단단히 닫혀있고, 자물쇠도 그대로 채워져 있다. 특별히 변한 곳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응?”
그러다 이변을 눈치 챘다.
문의 가장자리, 문과 벽이 맞닿는 경계선.
그 선이 점차 넓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선이 넓어지는 게 아니었다.
문의 가장자리가 예리한 무언가에 잘려 나간 것이었다.
문이나 자물쇠를 고정하던 경첩 따윈 종잇장처럼 허무하게 끊어져 있었다.
쿠웅!
기우뚱하고 넘어간 문이 길을 내듯 반대편으로 쓰러졌다. 융단을 깔고 귀빈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생긴 짧은 길 끝에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주인의 귀환을 기다린 두 충정 어린 기사가 무릎을 꿇고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버님.”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반과 레테라였다.
이미 옥상을 떴을지 모른다는 내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줄곧 이 자리에 있었다.
그 사실이 묘하게 울컥하고 다가왔다.
저들에게 이곳은 낯선 세계일 텐데.
뭐가 뭔지도 모르고 숨은 좁은 장소에는 비까지 쏟아지고 있는데.
그들은 내가 한 말을 지키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쪽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추는 두 사람의 모습.
쏟아지는 비를 맨몸으로 맞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처량하기보단 숭고해 보였다.
빗물이 상처에 스며들고 바닥에 붉은 피가 번지고 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나의 귀환을 환영한다.
……잠깐만, 피?
“너희들 그 상처는 뭐야?”
기억에도 없던 상처가 두 사람에게 나 있었다.
얼굴과 팔 등, 피부 위로 새겨진 자잘한 상처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갑옷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훨씬 해져 있었다.
마치 조금 전까지 전투를 치른 듯한 모양새다.
내 지적에 레반과 레테라 사이에서 순간 곤란한 듯한 기색이 오간다.
내가 없는 사이 둘이 싸우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 설마 나에게 피해 입힌 죄책감으로 자해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엔 방 한가득 메운 사죄 문자들이 마음에 걸렸다.
대답을 채근하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둘 중 레반이 먼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 아버님을 기다리는 동안 묘하게 허기가 잔뜩 져서 말입니다.”
“……응?”
배고픈 거랑 상처가 무슨 상관인 거지?
그때 레테라가 뒤를 이어 말하였다.
“이곳에서 먹을거리를 구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아버님의 명을 어기고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기도 해서, 결국 저희끼리 살의 일부를 떼어먹자는 결론을 내렸죠.”
“……뭐, 임마?”
내가 잘못 들었나 귀를 후벼보았다.
방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결론이 튀어나온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레반과 레테라가 각자 말을 이어갔다.
“문제는 누구의 살점을 먹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평하게 싸우다가 먼저 살점이 잘려 나간 쪽 걸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나서 저희 존재를 들키는 멍청한 실수는 하지 않았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무기를 부딪치지 않는 방향으로 싸웠으니까요. 일격 일격이 직접 몸을 노리는 싸움이라서 상처를 좀 많이 입었긴 했지만, 보시다시피 큰 문제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아버님.”
“……………….”
나, 이 말 지겹도록 한 거 같아서 이젠 안 하려고 했는데, 역시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