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아버님이라 부르지 마 2
* * *
“그럼, 연기 연습 열심히 하세요.”
별 다른 변명을 안 했는데 알아서 착각해 준 알바생이 바닥청소를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테이블에는 다시 나와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이 남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말은 전부 나에게 전했다.
이젠 내 대답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흐음…….”
머리를 긁적이던 난 어질러진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들의 식사도 끝난 듯하니 어질러진 테이블 위를 치웠다.
레반과 레테라가 기겁하며 자신들이 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했다.
이들은 편의시설을 이용할 줄 모르니 내가 치우는 게 나았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하면 머리가 평소보다 잘 돌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으로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난 인간관계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좋게 말하면 신중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이 의심이 많아 타인을 잘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신뢰를 하게 되더라도 시간 들여 그 사람을 지켜보고 판단한 뒤에 하게 된다.
이런 귀찮은 성격 때문에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간간히 사귀었던 친구도 대학교에 와서부턴 한 번도 못 사귀게 되었지 않던가.
레반과 레테라.
아무리 내가 만든 캐릭터라지만 겨우 이틀 전에 처음 만난 것에 불과한 녀석들이다. 제대로 마주한 시간을 합쳐봐야 1시간을 겨우 넘길 것이다.
그런 그들이 내게 노골적인 호의를 보내왔다.
그런데 그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일까?
언제부터였는지 타인을 신뢰하기보단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인데…….
정말 단순히 내 게임 캐릭터라는 사실이 다일까?
내가 부모 마음이 된 탓이라는 게 이유의 전부일까?
덜컹.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를 구분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면서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틀이 아니었다.
1년하고도 반.
내가 레반과 레테라를 플레이 온 시간이다.
저들과 함께 SoR 세상을 여행해온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취생활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철없던 청년이 부모의 곁을 떠나 자유와 해방감 즐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천생 아싸라고 한들 고독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니까.
대학 수업이나 알바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우울한 일이었다.
다른 이라면 친구와 술 한 잔 꺾으며 고독을 잊겠지만 난 그럴 사람조차 없었다.
자취를 시작한 것도 대학을 편하게 다니기 위함이다.
그저 졸업장만 따자는 생각뿐이었고, 꿈이나 목표는 없었다.
목표가 없으니 그를 위한 노력조차 없는 건 당연했다.
자신이 텅 빈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자각했다.
거기에 충격 먹고 한동안 방바닥에서 아무 말 없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데로 살다가 끝내 사라진다면 저 전등 밑을 떠다니는 먼지 한 톨과 다를 게 뭔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좀 먹혀갈 때 즈음, 자신이 열정을 보였던 유일한 것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게임이었다.
떠올린 것만으로 무심코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었다.
수업 시간에 칠판에 적힌 글씨 대신 보스 패턴 공략법을 공책에 빼곡히 적어내리기도 했다. 그 뒤 선생님에게 들켜 그 수업 내내 대가리를 박았다.
밤중에 몰래 게임하다 기어코 솔플 레이드를 성공했을 땐 환호성도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부모님에게 들켜서 죽도록 맞기도 했다.
정말 바보 같은 일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바보 같은 일에 목숨 걸고 도전했다.
그 정도로 게임 빠지게 된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던 내가 그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라는 게임의 광고를 발견한 게 전부였다. 그 이전까지 온라인 게임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심심풀이로 해보았다.
처음엔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때려치울 뻔했다.
캐릭터를 만들고 시작지점인 수수께끼의 석실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로를 배회하는 보스에게 순삭당한 것이다.
뭐 이딴 게임이 다 있냐 욕이 나왔다.
당장이라도 게임을 삭제하고 싶었지만, 진 채로 끝내려니 묘하게 오기가 생겼다.
그렇기에 도전했다. 몇 번이나 쓰러져도 멈추지 않고 계속.
미로 안을 도망 다니면서 장비를 모으고, 그렇게 모은 장비로 보스를 쓰러뜨리고, 보스에게서 얻은 열쇠로 미로를 탈출하여 나간 바깥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햇살.
그 햇살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겨우 게임인데도, 겨우 디지털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태양에 불과한데도, 두려울 정도로 어두운 공간을 빠져나와서 마주한 태양 하나가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어쩌면 그것이 나와 게임 캐릭터가 감정을 공유한 첫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내 첫 번째 캐릭터도 분명 그 태양을 바라보며 감동을 먹고 있었으리라.
그 감동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죽어갈 날만 기다리는 환자처럼 자취방에 널브러져 있던 내 몸에 다시 활기가 감돌았다.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다시는 안 하기로 결심했는데, SoR 속 세계에 대한 향수는 그 결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리움에 이끌린 나는 오랜만에 SoR에 접속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캐릭터를 사용하기엔 마음이 걸려서 새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레반과 레테라였다.
처음엔 레반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튜토리얼 보스를 정면 승부로 깨부수고 나니, 한 번 다른 식으로 잡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때문에 곧바로 레테라까지 만들었고, 그렇게 두 사람을 번갈아 플레이하게 되었다.
잠깐의 그리움에 이끌려 시작한 게임이었건만, 어느새 학창시절처럼 별의별 열정을 쏟아 부으며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전혀 고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당시엔 그냥 게임에 정신을 쏟아 부은 탓에 고독을 느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저들이 나의 감정과 존재를 느껴왔던 만큼, 나 또한 이미 저들의 존재를 느껴오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나마 확실하게.
이 녀석들에게 나는 자신들을 만들고 이끌어준 부모였다면, 나에게 그들은 고독을 잊게 하고 낯선 세상에 함께 도전하던 파트너였던 것이다.
“……?”
“아버님……?”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레반과 레테라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들의 눈에 섞인 작은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게임 속에선 신이라 불리는 존재조차 격퇴시킨 녀석들이 지금은 나와의 끈이 끊어지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심코 실소가 나왔다.
“어울리지도 않게 뭘 그리 움츠리고 있어?”
그런 그들의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최고로 키워온 녀석들이다. 좀 더 당당해질 바랬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고뭉치이긴 하지만 언제나 당당하던 저들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말로 하는 건 쉽다만, 좀 더 확실하게 저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좋을 텐데.
“…….”
긴 고심 끝에 결심을 마쳤다.
앞으로에 대한 결심.
그리고 비상용으로 남겨둔 지갑 속 만원을 사용하기 위한 결심이었다.
“기다리고 있어봐.”
““……?””
잠시 두 사람을 내버려두고 나는 맥주 코너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수입 맥주는 4묶음에 만원으로 싸게 살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보통 4캔에 만원이 주류다.
맥주 맛은 잘 모르기에 적당히 잘 나가 보이는 걸로 4개 집고 계산을 마쳤다.
조금 전 그들의 연기(?)에 반했는지 싸인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알바생을 정중히 거절하고 레반과 레테라가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품 안에 맥주를 가득 안은 채 나는 엄지로 문 밖을 가리켰다.
***
쏴아아…….
한동안 쏟아지던 빗발은 어느새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완전히 그친 건 아니었지만 편의점에 있다가 알바생의 주목을 끄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하여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향한 곳은 별 거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가로수. 그 아래에는 쉬어가라는 용도로, 나무를 빙 둘러싼 모양의 벤치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에 안고 온 맥주들을 올려놓았다.
그 뒤, 내 의도를 모른 채 묵묵히 따라오던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거, 그 마음 아직도 변함없냐?”
자리에 앉은 난 바로 4개의 맥주 중 하나를 집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잠시 입을 다물던 그들 중 레반이 먼저 운을 뗐다.
“……아버님이 고민하시는 동안 저희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버님을 향한 저희의 마음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아버님을 곤란하게 만든다면 최대한 고치려고 노력해보려 해요.”
웬일로 제법 어른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통제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어른의 증거 아니겠는가.
아쉬워하는 마음을 표정에서 숨기지 못하는 걸 보면 아직 덜 자란 어른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맥주의 뚜껑을 땄다.
치익.
“너희는 발상력이 부족해.”
“……?”
상큼한 탄산 소리를 내뿜은 맥주캔을 레테라의 손에 쥐어주었다.
양손으로 물건을 받은 레테라가 눈을 깜빡이며 맥주캔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그것을 살펴보던 그녀는 냄새를 맡고 이것이 술 종류임을 눈치 챈 것 같다.
“굳이 부모 자식의 관계를 고집할 필요 있어? 이쪽 세상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 형동생으로 불리는 건 흔해. 아버님보단 훨씬 눈에 덜 띄면서, 필요하다면 예를 차리기에도 좋은 호칭이지.”
치익.
이번엔 레반의 손에 뚜껑 딴 맥주를 쥐어주었다.
내 말에 의도를 눈치 챈 건지 레반이 눈을 크게 뜬다.
“삼국지연의라고 하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유명한 소설이 있어. 소설은 주역인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만나는 것에서 시작해.”
치익.
이번에 딴 맥주는 아무도 없는 벤치 빈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 아래에서 의형제를 맹세하며 술잔을 나눠. 태어난 시간도, 장소도 다르지만 죽을 때는 한날한시 한 장소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레반과 레테라를 힐끔 보니 두 사람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세상, 다른 시대, 그것도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대사에 불과하지만, 거기에서 완성되는 인간의 관계에 깊은 감동이라도 느낀 것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것처럼.
치익.
마지막으로 내가 마실 맥주캔을 땄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히죽 웃어 보인다.
“우리라고 뭐 그런 관계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안 그래?”
호칭은 바꾸지만 굳이 애써 마음을 억눌러가며 진심 어린 태도까지 바꿀 필요는 없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안 되겠지만 다른 건 문제없지.
특히 난 외동이라서 한 번 쯤 형, 오빠라고 불리고 싶기도 했다.
“네! 그렇습니다, 형님!”
“저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감동이에요, 오라버니!”
기대와는 조금 다른 호칭이 돌아왔다.
형님, 오라버니라니……. 사극도 아니고, 묘하게 오글거려서 싫은데…….
그래도 아버님이라 불리는 것보단 나으니 감내해야 하나?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아버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희대의 막장 드라마를 대입 당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깡!
맥주캔끼리 부딪치며 건배를 나누었다.
한 모금만 마시는 나와 달리 그들은 기쁨을 주체 못 했는지 머리를 들며 한 캔을 원샷하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아무도 없는 벤치, 그 위에 주인 없이 방치된 맥주캔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산 맥주는 네 개.
그러나 지금 건배를 나누는 인원은 셋.
아쉽게도 마지막 하나를 마실 녀석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사실은 너랑도 같이 건배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낯선 세계에 도전하며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내 첫 번째 파트너는.
녀석의 모습을 찾아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아직 추적추적하게 내리는 빗줄기만이 얼굴을 때릴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