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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3화 (13/173)

〈 13화 〉 탐구하라 ­ 2

* * *

“인벤토리가 뭔지 모르고 있었다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게임에 관심 없거나 담쌓은 인간도 아니고, 게임 자체에서 튀어나온 녀석이 인벤토리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마지막으로 대가리 박기를 실시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다시 같은 자세를 취하게 된 레반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이 대화하실 때 글자로만 보긴 했습니다만, 그게 아이템 주머니를 가리키는 건지는 몰랐습니다.”

“……?”

이건 또 뭔 소리야?

내가 대화를 할 때 글자로만 봤다고? 말이 되지 않잖아?

그 의문을 해소해주는 건 레테라였다.

큼지막한 돌덩이를 레반의 몸 위에 얹어 놓으며 그를 더 괴롭게 만들던 그녀가 뭔가 떠오른 듯 내게 말했다.

“그…… 저쪽세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허공에 문자가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오라버니가 상대방과 대화 하고 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죠.”

“아.”

그 말에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채팅’이었다.

타인과 대화할 때 오가는 글자의 나눔. 온라인상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

유저들끼리만 보는 줄 알았더니 캐릭터인 그들 또한 채팅을 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온갖 게임용어와 비속어 등이 난무해도 이상할 것 없는 온라인상의 대화를 태생이 이세계인 이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중 자주 사용하거나 자신들과 관련 있을 듯한 몇몇 단어의 뜻을 유추하며 낯선 대화를 이해해오고 있던 것이다.

이들이 사용하던 보스 몬스터나, 튜토리얼 등의 단어가 그거겠지.

‘혹시 내가 게임상에서 욕했던 것도 본 걸까…….’

가능한 채팅창은 깨끗하게 이용하자는 주의였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비매너 유저를 만나면 곧잘 쌍욕을 박긴 했었다.

패드립까지 난무하던 대화를 보고 이들이 제발 배우지 않았길 바라는 것도 부모의 마음인 걸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상했다.

인벤토리 같은 단어의 경우는 처음에 뜻을 모르더라도 보관 아이템을 다루는 것만 보면 쉽게 주머니와 연관 지을 수 있을 텐데?

왜 그건 몰랐던 걸까.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바라본다.

레반은 우직하게 머리 박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레테라는 그 위를 파묻듯 돌탑을 쌓는 중이었다.

이 정도는 해줘야 확실한 벌이 된다나 뭐라나. 저 많은 돌은 어디서 구해왔는지가 신경 쓰일 따름이다.

“레테라, 그쯤 해둬. 레반, 이제 일어나도 돼. 아무래도 알면서 감춘 건 아닌 모양이니까.”

레테라는 아쉽다는 듯 돌탑 끄트머리에 장식하려던 돌덩이를 내던졌고, 그 밑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쌓인 돌들을 날려버리며 레반이 몸을 일으켰다.

쇼생크 탈출마냥 비를 맞으며 해방감에 젖어있는 레반을 향해 물었다.

“그럼 스테이터스 같은 단어는 알아?”

“형님이 뉴비를 도와줄 때 스테이터스 좀 보여 달라고 하는 걸 봤긴 했습니다. 그 뒤에 근력 스탯에 좀 더 투자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셨지요.”

뉴비라는 단어도 알고 있구나.

그런데 레반의 대답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언급되어야 할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럼 레벨 업이라는 단어는?”

“보스 같은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나서 오라버니가 “앗싸, 레벨 업이다!”이라는 목소리는 종종 듣긴 했어요. 그 뒤에 신체가 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을 받았죠.”

이번엔 레테라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거기서 내가 받은 묘한 느낌은 더 강해졌다.

“……스탯을 투자하는 장면은 못 본 거야?”

“스탯을 투자하는 장면이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레테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이 녀석들, 채팅을 제외한 게임 인터페이스는 전혀 모르고 있어.’

게임을 할 때 당연하게 보았던 HP, 스태미나, 스테이터스 창, 인벤토리 창, 그 모든 것을 이들은 보지 못했다.

인벤토리와 아이템 주머니를 쉽게 연관 짓지 못했던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보는 게임 속 세상은 내가 보던 게임과 큰 차이가 있었다.

시점에 차이가 있으니 대화에서 자꾸 어긋남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거지?’

궁금증이 미쳤지만 뾰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론을 도출하기엔 이제까지 모인 단서가 너무 적었다. 이들이 현실에 나타난 이유도 모르겠는데 그것까지 알겠는가.

지금 발견한 게임 시스템이라도 좀 더 알아보고 난 뒤 생각하도록 하자.

그렇게 결정한 난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이템 주머니 좀 줘 볼래?”

그 말에 레반이 바로 허리춤의 매듭을 풀어 주머니를 떼어내었다.

그대로 내 손에 올려놓으려 하는데, 언제 움직인 것인지 레테라가 재빠른 움직임으로 먼저 자신의 주머니를 손 위에 올려놓았다.

결국 무안하게 주머니만 내민 상태로 굳은 레반이 레테라를 노려보았고, 레테라는 노려보면 어쩔 거냐는 듯 마주 노려보았다.

현실 남매 저리가라 할 정도로 틈만 나면 마찰을 빚는 녀석들이었다.

이젠 말릴 힘도 없었기에 당분간 저렇게 눈싸움 하도록 놔두고 받은 주머니나 살폈다.

주머니는 상자처럼 입구가 개폐(??)식이었다. 잠금쇠 형태의 장치가 입구를 잠그고 있었다.

그것을 풀고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게임에서의 인벤토리는 바둑판처럼 격자식으로 된 슬롯 정렬이었다. 흔히 표현되는 인벤토리 전개방식이기도 했다. 그편이 가시성이 뛰어나기도 하고.

그럼 현실에서의 인벤토리는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 걸까?

궁금증과 함께 활짝 열린 주머니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입구를 닫았다.

피곤한 나머지 헛걸 봤나 하며 손으로 눈가를 주무른다.

다시 용기를 얻고 주머니를 열었다.

거기에 있는 건 좁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게임처럼 격자식 슬롯으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어둠’.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이 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가끔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비현실적인 무언가를 상상하곤 한다.

다짜고짜 자기 예쁘냐고 묻고 다니는 민폐 마스크녀, 사람 성대모사가 특기인 흰털 짐승새끼, 층수 가지고 장난쳤다고 저승으로 안내하는 망할 엘리베이터 등의 괴담이 그러하다.

과학이 발전해 미신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에도 괴담은 여전히 사람들 사이를 나돈다. 적당한 공포는 그 자체로 오락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마시면 독이 되는 술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 않던가.

레반과 레테라의 출현이 적당한 술이었다면, 이건 명백히 독한 술이다. 바닥없는 어둠의 존재는 와 닿는 충격부터가 남달랐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실제로 접하니 뱃속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끓어오른다.

내 온몸의 세포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말라며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예상외의 코즈믹 호러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뒤로 뺐다.

“형님?”

“오라버니?”

내가 이마를 누른 채 고개를 털자 눈싸움을 하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주머니 속 어둠을 향하며 물었다.

“너희는 이런 주머니를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냐?”

두 사람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괴이하기 짝이 없는 주머니 속 어둠이 나에겐 좀 자극적이었다는 걸 이해한 모양이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답했다.

“뭐어, 저희야 그런 것들에 익숙해졌으니 말입죠.”

“애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저희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시점에서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요.”

그렇군.

이들에게 있어선 이미 플레이어의 존재 자체가 코즈믹 호러였던 건가.

게임 캐릭터로 산다는 것도 꽤 힘든 일인 것 같다.

“이 주머니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안쪽에 물건은 안 보이던데.”

“원하는 물건을 생각하시면 바로 손에 잡힙니다.”

이 기분 나쁜 어둠에 손을 넣어야 하는 건가? 별로 내키진 않지만 저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특별히 위험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최대한 안쪽이 보이지 않게 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원하는 물건을 생각한다라……. 물건을 떠올리는 순간 그 물건이 손에 딱 잡기 좋은 형태로 잡힌다.

내가 주머니 속에서 꺼낸 건 또 다른 포션병이었다.

보스전에서 전부 소진한 탓에 지금까지 쭉 비어있는 포션병. 틀림없는 레테라의 것이다.

“이거 의외로 괜찮은걸? 일일이 뒤져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한…… 응?”

위화감.

한 줄기의 위화감이 나를 잡아당겼다.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작은 단서도 허투루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했다. 한 번 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원하는 물건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엔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거…… 인벤토리가 아닌데?”

““네?””

이제까지 아이템 주머니가 인벤토리인 것에 중점을 둔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바꾸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틀림없었다.

이건 분명 게임 시스템인 건 틀림없지만, 인벤토리와는 다른 것이다.

아이템 숏컷.

아이템을 따로 두어서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인벤토리를 일일이 뒤질 필요가 없어지니 게임을 할 때, 특히 전투상황 때는 없어선 안 될 중요한 기능이다.

꺼낼 아이템을 먼저 상상한 뒤 주머니에서 꺼낸다.

아이템을 먼저 정한 뒤 주머니에서 꺼내 사용한다는 숏컷 방식과 유사하다.

그래서 방금 손을 넣었을 때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것이다.

숏컷에 등록해둔 아이템이 아닌, 인벤토리에만 있는 무기와 방어구를 떠올렸으니까.

‘뭐야? 그럼 인벤토리는 어디 있는 거야?’

결국 인벤토리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그냥 못 쓰는 거라면 아쉽기는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이쯤 되니 불길한 생각에 미쳤다.

아예 인벤토리 자체가 사라져버린 거라면?

지난 세월 꾸준히 모아온 전설급 장비들마저 함께 증발해버린 거라면?

“혀, 형님? 어째 얼굴빛이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만!?”

“아예 하얗게 질려가고 있잖아요?! 정신 차리세요, 오라버니!”

이 세상 것이 아닌 어둠을 보고도 견뎌낸 정신력이었건만, 게이머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상상 때문에 데미지를 입고 말았다.

정신이 흔들리니 애써 평정을 유지하던 몸 상태마저 흔들린다.

뒤로 넘어가려던 내 몸을 레반이 부축하고, 레테라가 한쪽에 놓아두었던 포션을 서둘러 가져왔다. 레반이 처음 꺼냈던 그 포션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며 간곡히 부탁하듯 말했다.

“오라버니. 저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건 기쁜 일이지만, 제발 자신의 몸을 우선시해주세요.”

“……미안.”

눈앞에 단서에만 신경 쓰느라 그들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슬슬 한계이기도 하고,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빨리 몸을 치료해야겠다.

“그런데 나에게도 포션이 효과가 있나?”

포션을 마시려 하는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마시기만 해도 상처가 치료되는 굉장한 물약 같은 건 현실에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오로지 게임상으로만 작용하는 거고, 현실의 인간이 내가 마셨다가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불안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었다.

그때 내 중얼거림을 들은 레반과 레테라가 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포션 자체의 치유력은 굉장합니다. 전에 내장이 흘러나올 정도의 상처를 입었는데도 순식간에 나았습니다.”

“부러진 갈비뼈 대여섯 개가 피부 밖으로 튀어나와 엄청난 형상이 된 적도 있지만 그것마저 눈 깜짝할 사이에 치료했죠.”

“……………………뭔가 진짜 미안하다.”

그들은 명예로운 상처를 자랑하듯 들뜬 목소리 말했지만, 오히려 그 행동이 더욱 죄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게임 밖에선 그저 HP가 줄어드는 것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았는데, 실제 캐릭터들은 그 정도의 상처를 입고 움직이고 있던 것인가.

모든 게임이 이들처럼 현실로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액션 게임엔 손도 못 댈 것 같다.

어찌됐든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포션의 치료능력은 확실한 모양이다.

게임이나 소설에서도 포션 마셨다고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꿀꺽!

병 입구에 입을 대고 포션을 들이킨다.

얼마나 마셔야 될지 몰라서 일단 한 모금만 삼키고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상 입은 부위는 고통스러운 그대로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효과가 없는…….”

내 말이 이어진 건 거기까지였다.

털그렁!

포션병이 내 손아귀를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포션을 잡고 있던 두 손은 어느새 내 온몸을 붙들고 있었다.

우의가 찢어질 만큼 꽉 잡아당기고 몸을 웅크리는 것으로도 부족해 신체가 바닥을 뒹군다.

갑작스런 내 변화에 레반과 레테라의 경악한 표정이 보인다. 그들의 입이 다급하게 움직이지만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 대신 다른 불길한 소리만이 귓가에 가득했다.

우득! 우드득! 우드드득!!

위험한 소리가 몸 내부에서 퍼져 나온다.

그것과 함께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통증이 몸을 불태웠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파.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파. 아, 파,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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