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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7화 (17/173)

〈 17화 〉 위드 소프트웨어 ­ 1

* * *

부서진 옷가게에선 특별한 단서 같은 건 얻지 못했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녀석이 하나 있긴 하지만 심증뿐이었다.

결국 근처에서 커다란 배낭 두 개를 사는 것으로 볼일을 끝냈다. 그들의 장비를 담고 다니기 위한 것이다.

설 형사와 떠든 건 불과 몇 분가량이었지만, 내 몸은 마라톤을 뛰기라도 한 것처럼 피곤했다.

지친 걸음으로 레반과 레테라가 있는 옷가게로 귀환했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이 저절로 한 곳에 쏠렸다.

평범한 돌멩이들 사이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과 같이 자연스레 고개를 움직인 것이다.

“아, 오라버니!”

“형님, 오셨습니까!”

거울 앞에서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하고 있던 레테라와 레반이 나를 발견하곤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의 분위기가 갑옷을 입고 다녔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변했다.

레반은 검은 바지에 하얀 티, 그 위로 반팔 청자켓 차림을 하고 있었다. 멋을 위해 찢어진 청자켓에 레반의 우람한 근육이 어울리니 그의 야성미가 더 강조된 느낌이다.

레테라는 군청색 핫팬츠에 레반과 마찬가지로 하얀 티를 입었으며, 그 위로는 약간 치수가 큰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의 각선미에 눈길을 빼앗길 것 같으면서도 큰 점퍼에서 살짝 삐져나온 손가락이 작은 동물 같아 귀여운 느낌도 들었다.

“……엄청 잘 어울리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흔한 옷들이었다. 사람 많은 번화가에서 저것과 비슷한 옷들을 찾으라고 하면 금세 찾을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이율배반적이게도 그런 흔해빠진 옷들이 저들의 매력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레반과 레테라의 코디를 맡았던 여직원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어떠냐는 듯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옷이란 몸을 보호하거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죠. 그 사람의 매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도 사용된답니다.”

과연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건가.

안 그래도 매력치가 높았던 녀석들이 외모에 옷차림까지 더 해지니 시너지 효과가 상당했다. 내 외모로 잘 갖춰 입어봤자 저 정도까지 되진 않겠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으로 저 정도의 모습을 만들어낸 여성의 코디 솜씨의 감탄한 내가 말했다.

“모자도 주세요.”

“네? 저 코디라면 모자는 필요 없을…….”

“제발, 모자도 주세요.”

난 거의 울먹일 정도로 간절하게 부탁했다.

눈에 띄는 옷을 사양했더니 저 둘 본연의 존재감 쪽을 대폭 강화시켜서 어쩌자는 겁니까?

단언컨대 저 모습으로 거리를 나섰다간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다 못해 쏟아져 내릴 것이다.

그것을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지금 레반과 레테라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가뜩이나 방금 형사의 추궁에서 겨우 벗어난 참인데, 신분을 증명할 수도 없고 남의 시선까지 끌어 모으는 저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차라리 날 죽여.

불안하게 떨리는 내 눈동자를 보고 동정심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위험한 느낌 때문에 재빠르게 선을 긋기로 한 걸까.

여직원은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모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챙이 큰 모자면 될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잠시 뒤, 처음 봤을 때와 몰라보게 달라진 레반과 레테라를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낫네.”

옷과 배낭에 모자. 마지막엔 안경점에서 산 선글라스까지. 상당한 지출이었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있었다.

앞서 점원이 코디해 준 옷차림에 큰 모자, 선글라스까지 쓰니 그들의 인상 대부분이 가려졌다.

자세히 얼굴을 보려 하지 않는 한, 낯선 그들의 외모를 눈치 채지 못하리라.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레반의 우람한 팔근육이나 레테라의 늘씬한 다리 때문에 힐끔거리긴 하지만, 저 정도의 개성은 넘어가도 되겠지.

“새 옷은 어때? 불편하지 않아?”

그 말에 두 사람은 새 옷을 입은 채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저희 세계의 옷과는 많이 다르군요. 조금만 세게 움직이면 찢어질 것 같습니다.”

맨주먹으로 콘크리트 기둥 박살내던 힘으로 움직이면 강철 구속구를 입고 있어도 찢어진단다, 얘야.

아직 어색함을 느끼는 듯한 레반과 달리 레테라는 금세 익숙해진 듯 가벼운 움직임으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 제자리에서 뛰는 게 3m를 넘어간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사람이 없는 골목 쪽으로 들어온 게 다행이었다. 저건 나중에 주의를 주자.

“아주 가벼워요, 오라버니! 예전에 속옷 차림으로 싸우고 다녔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 그러냐…….”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변태적인 욕망 채우려고 자기 캐릭터를 속옷만 입고 싸우게 한 것은 아니니까.

SoR를 즐기는 플레이어 중에선 휘황찬란한 갑옷보단 속옷 바람으로 나돌아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게임에선 장비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회피 판정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방어구를 입지 않으면 적의 일격에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컨트롤 실력만 받쳐준다면 한 대도 맞지 않고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한 번도 회피를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들어가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아닌,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이 따위 짓을 할 거면 차라리 장비를 잘 갖춰서 적과 싸우는 게 더 쉽고, 정신 건강에도 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쓸데없는 짓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고인물이다.

장비의 수준이 높아지고 캐릭터가 강해지면 그만큼 전투의 긴장감은 반감되는 법이다.

게임에 고일대로 고인 그들은 새로운 즐거움을 얻기 위해 기꺼이 방어구를 벗어던졌다.

나 또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방어를 도외시한 극한승부는 참으로 스릴 넘치는 재미가 있었다.

살을 떨리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전투.

혹은 초라한 차림의 캐릭터에게 농락당하는 강대한 보스 몬스터를 볼 때의 쾌감.

그런 것들에 비한다면 아무리 아리따운 여캐의 속옷차림이라도 눈에 들어올 리가 없…….

……썩을. 생각해보니 이쪽이 더 변태 같잖아.

이러니 뉴비를 위한 가이드(비공식)에 『팬티만 입고 다니는 자를 보면 도망쳐라』라는 글귀가 들어가지.

““……?””

회의감이 가득해진 시선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내 모습을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뺨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정신을 차린 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 아무튼 옷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됐어. 슬슬 다른 곳으로 움직여볼까?”

다음 예정지는 이미 생각해뒀다.

내가 먼저 걸음을 옮기자 레반과 레타라는 자연스레 내 양옆에 서며 나를 따랐다.

“형님, 다음은 무엇을 합니까?”

“어젯밤에 하던 거 이어서 해야지. 난 아직 너희에 대해 다 파악하지 못했다고.”

포션의 충격이 꽤나 컸고, 밤도 늦어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잠시 중단했을 뿐이다.

난 아직 두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특히 그들이 현실로 넘어온 이 괴현상이 대체 뭔지에 대해.

“너희들이 있던 게임.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를 자세히 조사해봐야겠어.”

***

평일 낮 PC방은 제법 한가하다.

학생은 학교에, 직장인은 직장에, 백수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니 당연했다.

계단을 올라 어느 건물 2층에 자리한 PC방에 들어가니 예상대로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십 개의 컴퓨터 중에서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풍경.

이 시간대에 있는 손님이라면 시간 남아도는 아저씨나 학교 땡땡이친 학생 정도겠지.

사람이 가득 차 있을 때와 비교한다면 간간히 들려오는 게임 소리는 거의 도서관 수준이라 해도 될 만큼 조용하다.

그런 PC방에서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얼마나 시간을 소모할지 알 수 없으니 짧게 1시간만 이용시간을 구매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연장하면 된다.

레반과 레테라는 내 양옆 자리에 앉혔다.

사람이 없다지만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되는지 약간 눈치가 보였다.

힐끔 카운터 쪽을 보니 직원은 휴대폰만 만질 뿐 이쪽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별문제는 없다고 보고 컴퓨터에 집중했다.

‘엄청 마이너한 게임인데 있으려나…….’

내가 걱정하는 건 PC방 내에 SoR 설치 유무였다.

SoR은 온라인 게임 점유율이 70위 언저리를 달리는 마이너한 게임이다.

출시한 뒤 7년째라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PC방에 게임이 설치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이 게임이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게임성 하나 만큼은 정말이지 훌륭한 게임이다. 그것만은 여기에 쏟아 부었던 내 청춘을 걸고 맹세한다.

그럼 문제가 뭘까.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강이라도 흐르지 않으면 고이고 썩어갈 뿐이지.’

SoR 출시된 지 7년.

그 7년의 시간 동안 SoR은 단 한 번의 업데이트도 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게임 하나를 완결시켜서 출시하는 패키지 게임과는 다르다.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변화로 유저가 게임에 질리는 걸 방지하며, 동시에 항상 새로운 유저들을 끌어 모으려는 것이 온라인 게임이다.

컨텐츠 소모가 빠른 이 장르 특유의 생명 유지 활동인 셈이다.

업데이트가 없다는 건 스스로 생명 활동을 멈춘다는 뜻.

운영 측에서 완전히 손을 내려놓는, 사실상 서비스 종료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 게임은 업데이트가 없다는 개발자의 사전 공지에 ‘이 새끼들이 정신 나갔나?’라는 게 게이머들의 주된 여론이었다.

계속되는 유저들의 질타에 SoR의 개발사, ‘위드 소프트웨어’가 내놓은 공식적인 대답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업데이트 따윈 필요 없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냐는 말이 유저들 사이에 오갔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건 게임이 출시되고 얼마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게임 컨텐츠가 끊이지 않았다.

SoR의 세계는 방대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만큼 거대하고 숨겨진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NPC의 대화, 소문, 전설, 몬스터의 생태, 혹은 길가에 널브러진 시체 하나에도 단서가 있다. 그것을 조합하고 추리하다 보면, 새로운 지역이 열리고, 새로운 세력,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난다.

그렇게 숨겨져 있는 요소만 기본 게임 분량의 10배에 달했다.

새로운 요소를 해금하는 데 성공한 유저가 나타나면, 그 소식을 듣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게임에 접속했다.

반복되는 게임이 질려 떠나 있던 유저까지 돌아오는 것이다.

­이 게임 배경이 왜 이렇게 넓냐? 갈 수 있는 지역은 왜 이리 많아?

­숨겨진 지역도 만만치 않은데?

­히든 보스나 퀘스트, 아이템들이 사방에 숨겨져 있어! 찾아내고, 찾아내도 어딘가에 더 있다고!

­이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게임이 겨우 10GB라고? 제작사 이 자식들은 블랙홀을 써서 게임 용량을 압축했냐?

­흔한 버그조차 발견된 적도 없잖아. 사람이 만든 게 맞긴 해?

­미국 51구역에 잡혀 있던 외계인 데려와서 게임 만들라고 시킨 걸지도 모르지.

­헛소린 됐고, 이번에 새로 출현한 ‘타락한 늑대의 화신’ 어떻게 잡는지 누가 좀 가르쳐 줘! 패턴이 진짜 개 같아!

위드 소프트웨어가 말한 대로였다.

SoR은 업데이트 한 번 없이 몇 년 동안 열풍이 불었을 만큼 잘 나갔다.

퍼즐 같은 시스템이 노(No) 업데이트라는 정신 나간 요소를 보완하고 게임의 수명을 늘리고 있던 것이다.

유저들은 게임계에 엄청난 파란을 불러올 게임이 나왔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개발사이자 운영진인 위드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뿐만 아니라 게임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임은 업데이트만 잘한다고 돌아가는 게 아니다.

위드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 외에도 그 어떠한 이벤트나 홍보도 실시하지 않았다.

고객센터는 운영하지만 유저의 문의에 형식적인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고, 게임 내외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말이 좋아 자유로운 게임 플레이를 보장하는 거지 사실상 방치였다.

전혀 캐주얼하지 않은 난이도와 날림이나 다름없는 튜토리얼. 말 그대로 진입장벽이 높은 게임이었다.

그런 게임이 홍보나 이벤트 같이 사람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플레이어끼리의 입소문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새로운 유저의 유입이 없는 것과 함께 원래 있던 유저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간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더 이상 새로운 요소가 밝혀지는 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SoR가 다른 게임에 비해 게임을 더욱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도 유저들이 빠지는 원인 중 하나였다.

게임을 그만두려 할 때 걸림돌이 되는 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거라면 역시 ‘아쉬움’일 거다.

지금까지 게임에 들인 시간의 아쉬움, 캐릭터 레벨에 대한 아쉬움, 아직 공략 못한 보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 게임에 지른 돈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캐시템.

돈을 질러서 살 수 있는 게임 아이템이다.

캐릭터의 외형을 바꾼다거나, 치장한다거나, 전투에 도움이 된다거나 종류는 다양하다.

그런 것들에 돈을 투자했다면, 그것이 아까워 흥미가 떨어져도 붙잡고 마는 게 게임이다.

매몰비용이라고 하던가. 어떻게 보면 악랄한 함정이었다.

그런데 SoR에는 유저가 돈을 투자할만한 요소가 없다.

아니, 게임사가 수익을 얻는 구조 자체가 전혀 없었다.

믿어지는가?

온라인 게임도 결국은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한 수익창출의 수단이다. 그런데 정액제도 부분유료화도 아닌 완전 무료게임이, 그 흔한 캐시 아이템조차 팔지 않는다는 게.

하다못해 게임 구석에 조그만 PPL(간접광고)라도 있었다면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조차 없다.

­이 자식들 돈 벌 생각이 없는 거냐!?

­엄청난 부자가 취미로 게임을 만들기라도 한 거야, 뭐야!

­서버만 유지하는 것도 얼마나 돈이 드는데! 이 새끼들 제정신이 아니야!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의 유저들의 반응이다.

한 유저는 도무지 이 상황을 보다 못해 기부 형식으로 게임사에게 돈을 보냈지만 그대로 반송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아무런 수익도 없이 돈도 안 되는 게임을 몇 년이나 유지하는 위드 소프트웨어를 향해 유저고 다른 게임 회사고 마치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위드 소프트웨어라는 이름은 한동안 게임계의 또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돈을 투자한 적이 없으니 유저들은 오히려 게임을 내려놓기도 쉬웠다.

들어오는 숫자는 적고, 빠져나가는 숫자는 많으니 초반에 불었던 열풍은 어느덧 차갑게 식어 있었다.

SoR은 점점 마이너 게임이 되어갔고, PC방에서도 점차 그 자취를 감춰갔다.

당연히 이러한 행보를 지켜볼 수 없었던 유저들은 게임사이자 운영진에게 해결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

마치 쇄국 정책을 내세우는 것마냥 유저의 모든 목소리를 씹어버린 채 위드 소프트웨어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저 거목이 제자리에 서 있듯 언제나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파묻히기에는 게임이 너무 아까워!

SoR의 매력에 반해 계속 남아 있던 고인물 유저들은 이 사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저들만의 축제가 되면 뭐하겠는가?

고여 버린 강을 순환시킬 새로운 물결이 필요했다.

SoR의 유저들은 서로 정보를 모아 뉴비를 위한 가이드를 만들고, 직접 여러 커뮤니티를 다니며 게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새로 시작하는 뉴비에게 다양한 아이템을 지급해주고, 뉴비만 노리며 죽이는 악질적인 PK 유저를 대규모 척살까지 해가며 어떻게든 이 게임을 순환시키기 위해 애썼다.

게임사가 할 일을 직접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이 무렵 SoR 유저들의 홍보에 이끌려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뉴비 시절에도 고인물들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었지.’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걸까.

이 PC방 컴퓨터 한 구석에 ‘R’이라는 로고가 떡하니 박힌 아이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인물들의 노력을 알아주는 곳이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핫. 새로 설치하는 수고로움은 덜었네.”

나는 그것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딴 게 뭐라고 코끝이 찡해지는지.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기뻤다.

나 또한 SoR가 사람들에게 잊혀 지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랬으니까.

그러한 바람이 성화처럼 이어지며 한낱 게임이 어둠에 잠기지 않고 밝혀지는 광경을 지금껏 보아왔다. 이것 때문에 감성적이게 되면 이상한 건가?

잠시 SoR 실행 아이콘을 바라보던 나는 커서를 움직여 그것을 클릭했다.

이제 잠깐의 로딩 화면이 지나가고, 언제나처럼 화면이 까매지면서 타이틀이 뜰 터였다.

“…….”

침묵한다.

내가.

컴퓨터가.

그리고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껴 긴장한 레반과 레테라가.

검게 된 컴퓨터 화면에 떠오르는 것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메시지였다.

『현재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홈페이지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이런 씨ㅂ…….”

그 모든 고인물들의 노력이 덧없이 사라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걸 보고 욕을 참을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분명 성인군자이거나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서비스 종료라니!

서비스 종료라니이이이이이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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