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8화 (18/173)

〈 18화 〉 위드 소프트웨어 ­ 2

* * *

노장들이 나서서 쇠퇴해가는 나라를 겨우 유지시켰더니 천재지변으로 단번에 날아가 버리는 게 이런 기분일까.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위드 소프트웨어의 운영진을 대신해 게임을 지켜오던 고인물들의 업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즐기고 있던 게임이다.

그런데 평소처럼 들어가려 했더니 서비스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내 앞을 막아선다.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이쪽 세상에 관해선 잘 몰라 그저 내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레테라가 물었다.

심상치 내 반응을 보고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니…….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먼저 파악한 뒤에 얘기해줄게.”

잠시 아파오던 머리를 붙들고 있던 나는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일단 메시지에 나와 있는 대로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SoR의 홈페이지라니. 내가 여길 얼마 만에 들어와 본 거지.

게임계의 또라이라고 불리던 위드 소프트웨어답게 그 공식 홈페이지 또한 이게 정말 공식이냐는 생각이 들 만큼 이상했다.

“극한의 힙스터 기질도 아니고……. 홈페이지 정돈 좀 정성들여 만들면 어디 덧나냐?”

오랜만에 들어왔지만 단 한 치의 변화도 없는 홈페이지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멋들어진 캐릭터나 이미지로 떡하니 장식해 게임을 홍보하는 건 이들에겐 없다.

설치파일 다운로드나 고객센터 따위의 서비스조차 한쪽 구석에 처박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지경이다.

그저 어두운 바탕의 게임에 사양이나 설치 가이드 같은 가장 기본적인 글 몇 개가 전부인 사이트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온라인 게임 홈페이지가 아니라 개인 블로그라고 착각할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런 사이트 상단에 가장 최근에 올라온 공지가 떠올라 있었다.

공지 이름은 ‘서비스 종료’.

‘정말로 서비스 종료라고?’

몇 년이나 즐겨오던 게임이다.

그게 다짜고짜 서비스 종료가 되었다고 한들 쉽게 받아드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마음을 완전히 감출 수 없는 건지 희미하게 떨리는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공지를 클릭해보았다.

그것을 누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사진이었다.

어딘지 모를 새까만 방. 잔뜩 어질러져 있는 기계의 잔해들. 뿌연 연기.

처음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 어수선하고 난잡한 방이었다.

사진 바로 아래 있는 글을 읽은 뒤에야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서버가 터진 관계로 서비스 종료합니다.」

서버가 터졌단다.

보통 이 말은 많은 온라인 접속자를 견디지 못한 서버가 다운되는 상황에서 쓰이곤 한다.

그런데 위에 있던 사진은 문자 그대로 터져나간 서버관리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고인지 뭔지 몰라도 숯검댕이가 되고 잔해가 널브러진 서버실의 모습을 터졌다고 표현한 건가.

하하하. 그거 괜찮은 언어유희네……는 개뿔.

“뭔 X랄을 하는 거냐, 이 또라이들은…….”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마지막까지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는 운영진이었다.

***

별로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어렵기는 더럽게 어려웠다.

그렇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그런 게임이 사라져버렸다.

게임사 서버실이 문자 그대로 폭파되어 사라졌다는 웃기지도 않은 일 때문에.

위드 소프트웨어 이놈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기에 서버관리실이 뭐 이딴 꼬라지가 된 거냐. 삼겹살 구워먹다 가스레인지 터트린 것도 아닐 테고.

내가 컴퓨터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사진 속 서버 컴퓨터가 더 이상 가망 없다는 것 정돈 알겠다.

복구에 대한 희망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처참히 박살나지 않았는가.

정말 다 날아간 건가?

그 동안 이뤄온 업적들, 아이템, 캐릭터들의 데이터가 전부……. 아, 캐릭터들은 옆에 있지.

힐끔 그들을 살펴본 나는 곧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

레반과 레테라, 두 사람 모두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신기함을 느끼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건 모니터 정중앙에 있는 사진 하나. 처참히 박살난 서버관리실 사진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그것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무표정이라기 보단 굳어 있는 것에 가까운 그들의 표정에 나는 의문을 느꼈다.

“무슨 일이야?”

“형님, 이곳은 어디입니까?”

레반이 서버실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살짝 경직된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경계심’?

서버실 사진을 보며 경계하고 있다고? 왜?

레테라 쪽도 마찬가지인 듯 그녀는 내 쪽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이 녀석들은 분명 게임 속에서 나왔었지?

온라인 게임의 구조가 하나의 서버에 수많은 컴퓨터가 연결되는 것이란 걸 생각해 볼 때, 이 서버는 따지고 보면 그들이 있던 세계 자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서버 컴퓨터가 자신들의 고향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까?

그래서 부서진 잔해들을 보고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대충 설명해줄 순 없지. 막장이긴 했어도 그들의 고향이 아니던가.

유족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의사처럼 진중한 마음을 가지며 그들에게 이야기 해주기로 했다.

“크흠……. 내가 전에 너희 세계와 이쪽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고 얘기했었지?”

“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레반도 레테라도 자세를 정갈하게 고치며 내 얘기를 경청한다.

“이런 말을 하면 너희가 어떻게 받아드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너희들의 세계는 게임이다.”

““…….””

두 사람에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다음에 이어질 얘기를 기다릴 뿐이다.

설명이 부족했나?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나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아, 게임이란 건 오락인데……. 너희들도 본 적 있을 거야. 마법 도서관의 학자들이 보드 위에서 말을 옮기며 놀고 있는 거. 으음, 거기에서 좀 더 발전한 것이라고 할까? 이쪽세계에선 과학이라는 기술이 발전에서 이 컴퓨터라는 물건으로 오락을 즐기지.”

두 팔을 컴퓨터로 향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 안에서 튀어나왔어.”

“그렇군요.”

“레반은 모르겠지만 전 그 안에서 튀어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이번엔 좀 놀라지 않을까 하며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되레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는 듯 했던 내 쪽이 뻘쭘해졌다.

“안 놀라냐?”

“아! 놀라야하는 겁니까?”

“아니, 억지로 놀란 척 할 필요는 없는데, 보통은 놀라지 않아? 너희들의 세계가 게임이라니까? 그 동안 셰계도, 너희들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의 누군가가 만들어낸 보드판이나 소설과 마찬가지란 말이야. 이게 놀랍지 않은 거야?”

내 물음에 두 사람은 저마다 팔짱을 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 의문을 곱씹어보는 모양이다.

그러다 눈을 뜬 레반이 말하였다.

“별로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고?”

“저희가 겪었던 세계가 진짜이든 가짜이든, 누군가가 만들어냈든 말든, 그건 큰 상관이 없지요. 저희에게 중요한 건 눈앞에 적을 쓰러뜨리는 것과 형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뒤이어 눈을 뜬 레테라가 입을 열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오라버니의 말에는 한 가지 어폐가 있어요.”

“내 말에 어폐가?”

“네. 오라버니는 저희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보시다시피 저희는 이렇게 눈앞에 존재하잖아요?”

레테라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방긋 웃었다.

“저희의 근원이 뭔지는 크게 중요치 않아요. 저는 이곳에 있고, 자신이 자신임을 믿는 마음이 있어요. 오라버니께 받은 이름, 레테라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바로 저예요. 그렇다면 이 이상 무슨 필요가 있죠? 제가 믿고 있는 한 저는 변함없이 저인데요.”

“…….”

뭔가 엄청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자신이 자신임을 인지했을 때부터 이미 거기에 틀림없는 ‘자아(??)’가 있다는 건가.

응. 내가 생각해도 어렵네.

반쯤은 알거 같고, 반쯤은 전혀 모르겠어.

마냥 사고뭉치인 줄로만 알았던 두 사람의 내면이 상상 이상으로 넓고 견고하다는 사실에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컴퓨터 이용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언제까지고 멍 때릴 수도 없어서 본래 화제로 돌아왔다.

“으음.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지, 뭐. 아무튼 얘기를 계속해서……. 너희들이 있던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는 온라인 게임이야. 다수의 컴퓨터가 하나의 서버 컴퓨터와 연결돼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게임을 즐기는 구조지.”

“……?”

“그러니까 보스방에 진입했는데, 진짜 보스는 하나고 나머지는 다 보스가 조종하는 가짜라고.”

“……!”

이해를 못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하니 이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근데 이 가짜 보스가 드랍 아이템도 좋고, 경험치도 쏠쏠해. 그러니 사람들은 언제든 리젠되는 가짜 보스들을 잡으며 즐기고 있었다, 이거지.”

“그것 참 재미있겠네요!”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찰떡 같이 알아들은 두 사람이 눈을 빛내며 공감해 왔다.

이래서 맞춤형 교육이 중요한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 진짜 보스를 쓰러뜨린 상황이야. 중심이 되는 녀석이 골로 가서 나머지 가짜 보스들이 일제히 죽어버린 거지. 더 이상 게임은 할 수 없게 됐어.”

“아…….”

“음…….”

그제야 그들도 내 심정을 이해한 건지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나는 컴퓨터 화면에 있는 박살난 서버 사진을 가리켰다.

“그리고 서버가 날아갔다는 건……. 게임이었던 너희들의 세계도 아마…….”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충격 받았으리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잇고 있는데, 두 사람은 뒷집 사는 개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마냥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별로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사라질 세계였는데요.”

“늬들 꽤 하드보일드하구나?”

이럴 거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나 고민하던 난 뭐가 되는 거지?

허무함을 느끼고 있는 와중,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게임인 자신들의 세상이 사라지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 녀석들이 왜 서버실 사진을 보고 그렇게 경직된 반응을 보였던 걸까?

두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그들은 동시에 서버실 사진을 가리켰다.

“저거, 모르시겠습니까?”

“……?”

“여기 이 사진, 이 그을린 부분을 자세히 봐 주세요. 뭔가 떠오르는 게 없나요?”

레테라의 손가락이 사진의 한 지점을 정확히 찍었다.

부서진 서버 컴퓨터 잔해의 뒤편. 본래는 하얬을 터인 벽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 고개를 들이밀며 그것을 자세히 살핀다.

벽이 그을린 건 서버 컴퓨터가 폭발하면서 생긴 여파인 듯싶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응?”

그냥 평범하게 그을린 자국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모양새가 뭔가 이상하다.

나무의 뿌리가 뻗어가는 듯한 흔적.

단순히 불과 같은 열기에 그을린 거라면, 그 흔적도 불길처럼 번져가는 듯한 형태로 남는 게 기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진에 찍힌 그을음은 달랐다. 불길 보단 전류가 지나간 듯하다.

서버실이 날아간 게 설마 누전 사고 때문이었나?

그런데 평범한 누전의 흔적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뻗어나가는 전류의 모양이 이상했다.

마치 육각형의 선을 잘라 번개모양으로 이어붙인 듯한 일정한 규칙성. 결코 자연스러운 전기의 흐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것을 본 적 있다.

이러한 흔적을 남기는 전기…… 아니, 번개를.

“……기가스 라이트닝?”

그건 현실에 존재할 리 없는, SoR 속 전격마법의 흔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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