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위드 소프트웨어 3
* * *
아니, 뭐야.
이게 왜 여기 있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내가 본 광경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인식되기 시작하니, 도저히 그것 이외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기가스 라이트닝.
거인이 무기를 휘둘러 지상에 메다꽂듯 거대한 번개를 때려 박는 상급 전격 마법이다.
마법사 캐릭터는 키워본 적이 없지만, PVP나 파티 플레이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걸 자주 경험했기에 잘 알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번개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것이 떨어진 자리에는 일반적인 벼락처럼 꼬부라지는 게 아니라, 직선적이고 일정한 방향으로 꺾이는 독특한 흔적이 남는다.
이 퍼져나가는 모양은 딱 기가스 라이트닝의 잔재였다.
아까 두 사람이 사진을 보고 경계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기가스 라이트닝의 흔적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똑똑히 보인다.
게임에서만 보았던 흔적이 현실에서 똑똑히 새겨져 있는 모습이.
“썩을! 진짜로 여기 이게 왜 있는 거냐고?!”
반사적으로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PC방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린다.
“실례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요즘 어이없는 일을 하도 많이 겪다 보니 급발진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문제다.
자리에 앉고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다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사고 현장인 줄 알았던 사진이다. 그런데 사고가 아니라고?
누군가 일부러 게임 속 마법을 시전 해 서버 컴퓨터를 날려버렸단 말이야?
그리고 게임 속 마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다는 뜻은…….
‘현실에 나타난 게 내 게임 캐릭터만이 아니라고?’
나는 마우스 휠을 올려 이 공지가 올라온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2020년 9월 26일 00:00」
26일 자정.
레반과 레테라가 나타났을 때가 25일 금요일 밤 10시였다.
불과 2시간 만에 SoR 홈페이지에 박살난 서버실 사진과 함께 서비스 종료 공지가 올라온 것이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사진 속에 남은 기가스 라이트닝의 흔적을 볼 때, 레반과 레테라처럼 게임 밖으로 나온 누군가가 서버실을 부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한 시간이 필요해.’
내가 두 사람을 만나고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알아야겠다.
인터넷 주소창에 내가 자주 다니던 SoR 커뮤니티의 주소를 입력했다.
이곳이라면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올린 반응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푸헉.”
카페에 접속하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뿜었다.
처음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카페의 대문부터가 초상집 이미지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올라오는 게시글은 그동안 즐거웠다며 서비스 종료된 SoR을 떠나보내는 내용, 아무런 사전 공지도 없이 갑자기 게임을 끝내는 게 어디 있냐며 화내는 내용, 공지에 올라온 서버실 사진은 조작된 거고 게임사의 대규모 낚시라며 현실도피 하는 내용, 그동안 애정으로 키웠던 캐릭터들과 작별할 시간을 달라며 하소연하는 내용 등 다양했다.
“이쪽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네.”
나도 레반과 레테라가 곁에 없었다면 저들 중 하나가 되어 슬픔에 잠겨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거꾸로 되짚어 올라가고 토요일 날짜에 올라온 그들을 살폈다.
문제를 인지한 첫 글이 올라온 시간은 25일 밤 10시 2분경.
갑자기 서버가 나가서 게임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같은 현상을 겪는 유저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서버가 다운된 건 레반과 레테라의 출현 시간과 같아.’
단순히 다운이 된 건지 그때부터 박살이 난 건지 모르겠지만, 연관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서버실에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정말로 내 캐릭터 외의 다른 이의 캐릭터도 세상으로 나온 건가?
이 모든 걸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채워야 하는 단추는 하나다.
“역시 이쪽을 먼저 털어봐야겠어.”
「위드 소프트웨어」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의 개발사이자 운영진.
게임 출시일부터 지금까지 별의별 기괴한 행보로 많은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게임계의 또라이.
대체 이 녀석들은 뭐하는 놈들일까. 그것을 알아보러 가야겠다.
놈들이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바로 카페를 나오고 이번엔 자주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요즘은 정보화 시대다.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위드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본사의 주소 정도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한 것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뜬 위치 정보에 적힌 주소를 읽어본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신월시(?月市) 무로구(???) 일영로(一??) 467번 길 6」
“신월시라면 그리 멀지도 않잖아?”
이곳 성월시와는 위성도시 하나를 사이에 둔 위치였다.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편도로 대략 한 시간 정도. 지금 출발해도 하루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게임사를 찾아가 보기로 결심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하니 망설여졌다.
그곳에 대체 뭐가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으니 당연했다.
이럴 때는 옛 성현의 가르침을 따라보자.
지피지기 백전백승.
사소한 단서라도 좋으니 일단 위드 소프트웨어의 단서를 모은 뒤에 찾아가도록 하자.
마침 남은 PC방 이용시간을 알뜰하게 소비하기에도 알맞았다.
“흠…….”
그동안 레반과 레테라를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니 먹을 거라도 주문해줄까. 점심때라서 나도 배고프기도 하고.
나는 컴퓨터 바탕화면 한쪽 구석에 있는 주문 버튼을 클릭했다.
라면부터 김밥, 음료수 등 PC방에서 제공되는 음식 목록들이 나열된다.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로 손쉽게 주문을 할 수 있다니, 역시 문명의 발전은 위대하다.
“뭐 좀 시켜 먹으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먹고 싶은 거 없어?”
사진에 남아 있는 게임 속 마법의 흔적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해보려는 듯 눈을 감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가 눈을 번뜩였다.
지난번에 한 번 맛보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음식이 있는 모양이다.
“저! 지난번에 먹었던 컵라면이라는 음식이 먹고 싶어요!”
“여긴 컵라면은 없고 직접 끓여서 그릇에 담아주는 모양인데……. 어차피 다 같은 라면이니까 이쪽을 시킬게.”
“전 초코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원합니다!”
“그걸로 한 끼 식사가 되겠어?”
“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는 왠지 모르게 공복 상태였을 뿐, 원래 저희는 한 끼만 먹어도 한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신선이냐, 늬들은?”
한 달 동안 한 끼만 먹어서 그 정도 괴력이라니, 이 녀석들의 에너지 보존 법칙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기가 찰 정도로 고효율적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원하는 것까지 주문을 마쳤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위드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해보며 정보를 모았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건, 이 자식들은 게임 외의 행보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위드 소프트웨어.
설립은 2000년대 초반. 설립자는 박일만.
처음엔 작은 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였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 없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건지 결국 회사는 2010년 부도로 문을 닫았다.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던 위드 소프트웨어는 2012년 이름 모를 사업자에게 통째로 인수되고 재설립 된다.
그 사업자에 대해선 밝혀진 게 없었다.
전 위드 소프트웨어 출신이라고 밝힌 사람의 목격담으로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고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다른 글에선 갓 군대 갔다 온 듯한 새파란 젊은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뭐가 진실인지도 모른 채 재설립 된 위드 소프트웨어는 이전 업무를 버리고 게임 회사로서 새 출발을 개시한다.
여기서도 이상한 게 있는데, 무너진 회사를 재설립한 이후 단 한 번의 직원 채용 공고가 없었다는 점이다.
“뭔 미친 짓이지, 이 회사는?”
주문으로 나온 김밥을 먹으며 오래전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위드 소프트웨어가 SoR로 한참 화제를 모으던 시절, 알려진 게 없는 게임사를 파헤쳐보다 이상한 점을 더러 발견한 기자가 남긴 글이었다.
살다 살다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 게임회사는 처음 본다.
일인 기업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게임회사가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비밀조직마냥 은밀하게 회사원을 모은 것도 아닐 테고.
더더욱 어이가 없는 건 회사가 다시 설립된 시기이다.
2012년.
이 날짜에 왜 문제가 있냐면,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가 나온 게 이듬해인 2013년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그것도 대규모의 인원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을 불과 1년 만에 완성시킨다고?
게임 제작엔 쥐뿔도 모르는 나지만 이게 정신 나간 소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직원 채용도 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회사에서 이를 성공시켰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1년 만에 나온 게임의 퀄리티가 결코 낮지 않다는 걸 내가 직접 경험까지 했다.
그 뒤부터는 이미 아는 대로다.
운영진이 일할 생각이 있는 건지, 사람 자체가 없는 건지. 게임은 오픈하고 쭉 방치되었고, 돌연 수상쩍은 공지와 함께 서비스를 종료해버렸다.
나는 의자를 뒤로 당기며 깊숙이 몸을 묻었다.
조사만 했을 뿐인데 피곤해진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조사해 봐도 의구심만 더 깊어지네……. 진짜 외계인을 납치해 와서 차린 회사인 거야, 뭐야?”
아무리 봐도 현실성 없는 회사였다.
이걸 소설로 읽었다면 현실성 1도 없다며 작가를 욕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니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정체 모를 곳을 찾아가야 하나?
“걱정되십니까?”
내 목소리의 섞인 우려를 읽은 것일까.
아이스크림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경의를 표하듯 빈 그릇 앞에 손을 모으고 있던 레반이 말을 걸어 왔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저희는 오라버니의 검이자 방패에요.”
마찬가지로 라면 국물까지 싹 비우고 입가를 닦고 있던 레테라가 말했다.
“형님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그게 신이건 드래곤이건 베어버리고 길을 만들겠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마음껏 향하시면 돼요. 저희가 그것을 전력으로 도울 테니까.”
확고한 자신감과 각오가 서린 목소리.
이들이 양옆에서 지지해주자, 불안해서 의자에 파묻혀 있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누구보다 강하면서 자신을 받쳐주는 멋진 두 녀석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래. 어디 한 번 가보자. 뱀굴인지 호랑이굴인지 모를 곳으로.”
때마침 PC방 이용시간이 끝났다.
출발할 시간이다.
***
한 여성이 어느 건물을 향해 걸어간다.
단정한 회사원의 옷차림. 검은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인 채 어깨에 걸쳐져 있다.
옅은 화장을 한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가 차가우면서도 도도한 인상을 풍겼다.
건물의 정문.
투명한 유리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는다.
여성은 가방에서 카드키를 꺼내 문 옆에 난 기기에 긁었다. 그리고 키 패널을 누르자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여성을 환영했다.
건물의 내부는 한산함을 넘어 황량했다.
문 근처엔 경비원, 안내 데스크엔 안내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 안을 가득 채우는 건 침묵뿐.
여성이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울리는 구두소리는 공허한 공간에서 더욱 크게 울리며 묘한 공포감마저 자아냈다.
그러나 여성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 듯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최상층까지 오르고, 복도를 지나 어느 고급스런 재질의 나무문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몸에 익은 움직임으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똑.
“……?”
대답이 없다.
여성은 기다리지 않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로비보다 더 황량한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 중앙의 것이라곤 의자 단 하나. 그리 고급도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 그나마 생활감이 보이는 사무용 책상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방 안에 감도는 공허함을 지울 수 없었다.
또 거길 간 것일까.
여성은 본래라면 이 방 안에 있었을 사람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을 나선 여성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아래로 향했다.
이번에 그녀가 향한 곳은 ‘서버관리실’이라고 적힌 문 앞이었다.
덜컥.
잘 사용하지도 않는지 녹슨 느낌의 손잡이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화재라도 난 듯이 그을린 방.
벽에는 이상한 전류 모양의 흔적이 남았고, 바닥에는 고열에 타거나 부서진 기계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잔해들이 쌓여 있는 방 한가운데.
누군가 잔해를 요람 삼듯 누워 있었다.
예상대로의 광경에 여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서 또 뭐하고 있는 겁니까?”
여성이 묻자 돌아오는 건 어른인지 아이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파괴의 끝에서 태어난 새로운 시작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지.”
“중2병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시구요. 안 그래도 댁의 4차원적인 사고방식은 따라가기 힘든데.”
투덜거리는 여성의 말은 무시하며, 남성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하는 듯.
“언제쯤 오려나? 빨리 놀고 싶은데.”
파지직…….
남성의 손가락에서 황금빛 전류가 번쩍였다.
그을린 벽에 남은 것과 똑같은 형태의 전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