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뜻밖의 전투 1
* * *
세상은 정보화 사회.
어느 게임 회사의 위치 정보 따윈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정보화 사회는 이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쓰레기 정보가 섞인다거나, 오래되어서 바꿔야 하는데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소릴 하냐면…….
“……회사를 옮겼다고요?”
“그런가 봐요…….”
비싼 택시비까지 지불하며 신월시에 있는 위드 소프트웨어 본사까지 달려오길 1시간 20분.
주소에 적힌 장소를 찾아가던 우리가 발견한 것은 패잔병 무리처럼 힘없이 모여 앉아 있던 일단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SoR의 유저들.
서버실 자체가 날았다는 황당무계한 소식을 인정하지 못하고, SoR을 부활시켜달라며 시위하러 온 이들이었다.
그렇게 본사 앞에 모였더니 이게 웬걸.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길 건너편 음식점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대략 1년 전부터 건물이 폐쇄되어 있었다고 한다.
SoR가 마이너한 게임이고, 게임사인 위드 소프트웨어조차 워낙 알려진 게 없는 회사라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옮긴 것을 아무도 모르다니 의외였다.
인터넷의 정보는 한참이나 갱신되지 않았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수단이 모두 사라져버린 시위자들이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건물 앞에 앉아 있던 것이었다.
시위자 중 한 명에게 이 소식을 들은 나도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한 것도 아니고…….
“설마 여기까지 왔는데 헛고생한 건가…….”
회사가 도망간 것보다 택시비를 낭비했단 사실에 빡침이 올라왔다.
그래도 1년 전까진 위드 소프트웨어가 있던 건물이다. 혹시 뭔가가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밀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수고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여기엔 보는 눈이 많았다.
방법을 바꾸기로 한 나는 레반과 레테라가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문제가 생겼나 보네요.”
모자와 선글라스를 푹 눌러쓰고 있는 레테라가 눈치 빠르게 말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옆 골목을 가리켰다.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긴 아쉬워.”
“넵!”
두 사람과 함께 전(?) 위드 소프트웨어의 건물을 돌며 뒷문이나 잠겨있지 않는 창문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헛수고.
뒷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창문 또한 열리지 않는다.
‘창문을 깨고 들어가야 하나? 괜한 흔적을 남기긴 싫은데.’
건물 뒤편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내 시선이 한 파이프에서 멈췄다.
그것을 따라 고개를 쭉 위로 올리니 옥상까지 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상 문이라면 열려 있으려나?”
“제가 확인하고 올게요.”
“어? 야!”
의욕이 앞선 레테라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파이프를 밟으며 뛰어 올라갔다.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듯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근데 밤중도 아닌데 누가 보면 어쩌려고…….
서둘러 주변을 살폈지만 금세 안도할 수 있었다. 위치상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어쨌든 4층 정도 되는 의외로 낮은 건물 옥상에 들어선 레테라가 잠시 후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오라버니! 이쪽의 문은 열려 있어요!”
옥상 쪽이 정답이었던 건가.
나는 두 손을 모아 레테라를 향해 외쳤다.
“알았어! 그럼 밧줄로 쓸 만한 걸 찾아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형님. 더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 있습니다.”
“더 빠르고 간편한 방법?”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 있게 나서는 레반.
저 모습을 보니 어째 불안해졌지만 빠르고 간단하다고 하니 한 번 맡겨보기로 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레반은 내 뒤로 다가와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 올렸다.
집사의 손에 붙잡힌 고양이, 혹은 삼촌이 놀아주는 조카가 된 기분이다.
뭐지? 날 짊어지고 건물을 오르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두 사람 분의 무게를 파이프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레반이 생각해낸 방법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나를 들어 올린 레반이 옥상에 레테라를 바라보며 외쳤다.
“야, 절벽가슴! 제대로 안 받으면 뒈진다!”
“너나 잘해, 근육돼지! 제대로 안 던지기만 해봐!”
레반의 의도를 알아차린 레테라의 말에 내 불안감은 정점에 달했다.
던져? 받아?
레반의 우악스런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내가 외쳤다.
“야, 미친 새끼들아, 너희들 뭐하려는……?!!”
“갑니다, 형님!!”
“컥…!!”
그러나 그 외침은 갑작스런 중력의 변화에 끊겨버렸다.
세상이 선으로 돌변한다.
위액, 혈액, 뇌수, 신체의 모든 액체가 걸레를 쥐어짜듯 아래쪽에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아찔한 감각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공중에 둥실 떠오른 내 눈에 비치는 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이었다.
‘아, 가을이구나.’
현실도피성이 다분한 한마디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내 신체는 다시 중력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다시 선이 되어가는 세상.
점차 힘을 더해가는 중력을 느끼며 질끈 눈을 감았고, 곧 부드러운 무언가가 나를 감쌌다.
쿠웅!
나를 감싼 무언가는 내 몸에 가해지던 중력을 일제히 흘려보냈다.
부드러운 무언가와 좋은 향기를 느끼며 눈을 뜬다.
“제 품은 어떠신가요, 오라버니?”
내 몸을 감싸 안으며 받아낸 레테라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혼자서 외벽을 기어 올라온 레반이 자신의 솜씨가 어떠냐는 듯 웃어 보였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며 말했다.
“둘 다 대가리 박아.”
***
하마터면 바지에, 그것도 이 나이에 오줌지릴 뻔하게 만든 죄인과 그걸 말리기는커녕 동조한 죄인.
이 둘을 벌 세워놓고 한동안 긴 설교를 이어갔다.
어째 이 녀석들은 옥상 위에서 벌을 서는 것에 인연이 깊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을 정신 쏙 빠질 정도로 혼을 낸 뒤, 본격적으로 건물 내부로 들어가 탐색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옥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층 한 층 둘러보다 1층까지 내려온 나는 허탈함을 내비쳤다.
“정말 놀랄 만큼 아무것도 없네.”
정말 1년 전까지 회사가 있던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내부에 쌓인 먼지양은 보면 그보다 한참 전부터 손도 대지 않아 보였으니까.
애초에 여긴 정말로 위드 소프트웨어의 건물이긴 했던 걸까?
이 정도로 흔적이 없으니 유령회사가 아니었는지 의심될 정도다.
“형님! 이쪽에 뭔가 있습니다!”
그때 흩어져서 건물 내부를 살펴보던 레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가 보니 계단 밑이었다. 1층을 뒤지다가 지하까지 내려간 건가.
마찬가지로 1층을 뒤지고 있던 레테라가 곁으로 다가왔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함께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레반! 뭐라도 발견했어?”
지하는 꽤 어두웠다.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며 어두운 공간을 비췄다.
레반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지하 복도 한가운데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레테라와 함께 내려온 나를 발견한 그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직접 확인하시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레반의 표정에선 당혹스러운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낯선 세계의 문명을 접하면서도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그였기에 의외였다.
레반의 옆으로 다가간 나는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도 레반과 같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낯선 무언가를 본 게 아니었다.
도리어 너무 익숙한 무언가였기에 문제가 되었다.
“저게 왜 여기 있어?”
어두운 복도 끝에 있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상자였다.
흔하디흔한 종이 상자가 아니다.
아래는 직사각형이며 위로는 둥근 곡선을 그리고 있는 형태. 철제 틀에 낡은 널빤지를 겹치고, 자물쇠를 걸친 상자.
각종 매체에서 흔하게 표현되는 보물 상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SoR에서 나오던 보물 상자와 완전히 일치하는 형태였다. 우리가 놀란 건 그 탓이다.
이게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설마 위드 소프트웨어 직원이 떠나기 전에 선물용으로 남긴 건 아닐 테고.
“바닥에 무언가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눈에 익은 상자에 놀라고 있던 레테라가 뭔가를 발견하며 말했다.
상자의 바로 앞을 향해 휴대폰의 빛을 비춰보았다.
정말로 뭔가 있었다.
그건 붉은 글씨로 새겨진 글자였다.
「알고 싶다면 열어라. 야만스런 충동이란 좋은 즐길 거리다.」
「알고 싶지 않다면 열지 마라. 모르는 것 또한 행복일 테지.」
“……? 뭔 말이야, 저거.”
경고의 메시지? 장난으로 적은 낙서?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나빠졌다.
핏빛 같은 글자색 때문인지, 일부러 난잡하게 휘갈겨 쓴 듯한 글씨체 때문인지, 아니면 선택을 종용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때 레반과 레테라가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어떡하겠습니까, 형님?”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놓여 있는 게 수상하긴 한데요.”
“…….”
그들의 말을 들으며 잠시간 고민했다.
확실히 수상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저 상자 말고 위드 소프트웨어 대한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 상자가 악의적인 배치인지 호의적인 배치인지가 관건인데…….
고민이 길어지고 있을 때, 계단 위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 개 같은 게임사!
쨍그랑!
누군가의 고함과 유리 깨지는 소리에 레반과 레테라가 천으로 꽁꽁 감싸 짊어지고 있던 무기에 손을 대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 또한 생각을 멈추고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야, 야! 이 새끼 뭐야!
시끄러! 내가 그 게임에 쏟아 부은 시간이 얼만데, 고작 서버실 관리 못 해서 이렇게 끝내버리는 게 말이 돼!?
여긴 이제 빈 건물이라고! 되레 기물 파손으로 경찰에 잡혀가고 싶어?!
누구야, 이 골빈 놈 데려온 건!
들려오는 대화 소리로 대강 사정은 알 것 같다.
건물 밖에 있던 시위자들 중 자제력이 부족한 하나가 난동을 부리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여기에 오래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저 난동 때문에 경찰이라도 출동하면 곤란하니까.
“열어 보자.”
결국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다. 뭐가 됐건 상자 자체가 단서가 될 건 분명해 보였으니까.
시간이 없으니 결심한 즉시 행동한다.
나는 상자에 성큼 다가가 덮개의 틈에 손가락을 얹었다. 내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상자는 생김새대로 덮개의 무게는 꽤 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도움을 받을 만큼 무거운 건 아니었다.
그대로 팔에 힘을 주고 덮개를 약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섬뜩…!!!
그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난 것은 어째서지?
덮개가 들리며 상자의 안에서 묘한 악취가 풍겨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상자 덮개 안으로 넣은 손가락을 축축한 무언가가 핥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바닥에 새겨져 있던 문자를 떠올린다.
뭔가 놓쳐선 안 되는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이다.
내용이 뭐였지?
알고 싶지 않다면 열지 마라. 모르는 것 또한 행복일 테지.
알고 싶다면 열어라. 야만스런 충동이란 좋은 즐길 거리다.
열지 마라.
열어라.
모르는 것 또한 행복.
야만스러운 충동.
……충동?
호기심에 보물 상자를 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충동을 향한 것?
호기심조차 미끼로 삼는 무언가.
그 충동.
기억난다.
기억해내고 말았다.
SoR의 세계에서 접해본, 그 역겨운 ‘식탐’이라는 충동을.
“!?!?!!!!”
설마 싶었다. ‘그것’이 현실에 있을 리 없다.
그러면서도 뇌리를 끔찍한 이미지가 스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상자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내가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덮개는 닫히기는커녕 저절로 활짝 열렸다.
쩌억…!!!
그 순간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건 혐오스럽게 뒤틀린 수십 개의 이빨.
그 이빨 사이사이에서 어패류의 눈처럼 도사린 수많은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한다.
그리고 구역질을 일으키는 악취와 함께 새파란 혀. 그 너머에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까지.
난 이 녀석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평범한 상자인 척하면서, 호기심에 상자를 연 유저를 단번에 씹어 먹는 사냥꾼.
그 흉측한 외모와 무시무시한 살해 방법으로 많은 SoR 유저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몬스터.
바로 미믹(Mimic)이었다.
그것의 그림자가 내 얼굴을 덮는 그 찰나의 순간, 수만 가지의 욕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어떤 새끼가 이걸 여따가 배치해 놓은 거야아아아아아아!!!!’
설마 이놈일 줄 알았겠는가!
이놈이 현실에서 나타날 줄 꿈에서 상상이나 했겠는가!
안 돼! 이제 다 틀렸어!
이 거리에선 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게임 캐릭터에게조차 즉사급 데미지를 입히는 이 녀석의 손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전무하다!
죽음을 직감한 내가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빠르게, 미믹의 흉측한 이빨이 내 머리를 덮쳤고…….
퍼어어억!!!!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온 두 개의 일격에 미믹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괴물을 날려버린 것은 커다란 대검 하나와 손상된 한손검 하나.
극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 끼어든 레반과 레테라의 일격이었다.
“허억!”
털썩!
그들이 날린 일격의 여파에 밀려난 건지, 그저 다리의 힘이 풀린 건지, 나는 엉덩방아를 찍은 채 공포로 멈췄던 숨을 몰아쉬었다.
한 순간 만에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살아있음을 인지했다.
날 구해준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려는 그때, 나는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폭식에 영혼을 판 짐승 새끼가 감히 누구에게 더러운 이빨을 들이대?”
“네놈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서 형님의 장신구 목걸이로 만들어주지.”
뒷모습뿐이지만 묘하게 솟구쳐 있는 머리카락, 흉흉한 분위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단단히 빡쳤구나, 이 녀석들…….
그보다 그딴 목걸이 필요 없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