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늑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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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과 레테라에게 이쪽 세상의 역사는 제법 흥미로웠다.
절망의 신과 불굴의 신의 격전 속에서 세계가 태어났다는 창조신화가 전부인 자신들의 세상과 달리, 이쪽 세상에선 유인원이라는 짐승에서 진화해온 인간이 선사시대를 거쳐 문명을 이룩하는 과정을 자세히 적어놓고 있었다.
조물주라는 자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식에 창조신화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그것보단 짐승에서 진화해온 인간 쪽이 더 마음에 끌렸다.
어째서일까? 그들이라고 짐승을 낮잡아보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닌데, 인류의 뿌리가 짐승이라는 사실이 더 끌린다니.
그것은 초라한 존재에서 점차 레벨을 높여가며 신의 영역으로 다가가는 그들의 본질적인 이끌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들은 선사시대의 인류를 보고, 문명의 탄생을 보고, 인간의 정신이 성장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철학과 신학을 지켜보며, 전쟁, 멸망, 새로운 국가의 건국이라는 순환을 보았다.
처음 레반과 레테라는 요현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책에만 집중했다.
빠른 속독과 학습 능력은 그들의 주변에 쌓인 책이 요새를 이루어갈 정도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그들이 기이한 듯 바라보았다.
기이하긴 하지만 평화로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 평화가 무너진 건 세계 역사를 파악하고 난 뒤, 요현이 사는 나라의 역사를 파고들었을 때의 일이다.
“놀랍네.”
한손엔 단어사전, 한손엔 난중일기, 테이블 위에는 임진왜란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는 서적.
모르는 단어는 단어사전으로 해결하고, 난중일기와 실제 임진왜란의 흐름을 비교해서 읽어보던 레테라는 솔직함을 담은 감탄을 흘렸다.
“단 한 사람이 이 정도로 전장을 장악하는 건 처음 봐. 병사도 얼마 없고, 지원조차 없는 압도적인 열세인 상황에서조차 기어코 이겨버렸잖아. 카르마니아였다면 눈에 불을 켜고 영입하려 들었겠어.”
카르마니아는 항상 전란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국가였다. 사람이 대량으로 죽어가다 보니 항상 인재에 목말라 있었다.
이순신이라는 자가 그곳에 있었다면 전쟁 자체를 끝내버리지 않았을까라는 게 레테라의 생각이었다.
“그도 그렇지만, 척준경이라는 자도 만만치 않아. 이곳의 인간 중에선 수준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한 번 싸워보고 싶을 정돈데.”
레반이 읽고 있는 건 고려시대의 무인, 척준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곳의 인간들이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기록상의 척준경은 그런 인간들 중에서도 크게 동떨어져 있을 정도의 무위를 남긴 자였다.
낯선 세계의 강자라니, 전투에 살고 죽던 레반이 차이를 확인해보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였다.
“척준경이라……. 확실히 무력은 뛰어난 건 같지만 전쟁에서 가장 상대하기 버거운 건 이순신 쪽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개인의 무력이 강하다고 한들, 전쟁은 결국 집단이 이겨야하는 싸움이니까. 집단 자체의 힘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자가 무서운 법이지.”
책을 들여다보며 말하던 레테라였지만, 레반은 거기에 동의하지 못한 듯 책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술도 확실히 중요하지만, 뭐든지 전술대로만 움직여서 승리한다면 누가 고생을 할까. 전쟁은 크게 보면 집단의 싸움일지 몰라도 작게 보면 개인과 개인의 부딪침의 연속이야. 상정외의 사태는 끝없이 일어나고, 그런 상황에서 병사들을 휘어잡아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건 맹장의 존재지.”
레반의 말에 이번엔 레테라가 책에서 눈을 뗐다.
“이해를 못했나 보네. 그러니까 그런 맹장이 못하는 일을 해낸 게 이순신이라니까?”
“너야 말로 이해 못한 거냐? 그런 전술가조차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진 게 척준경이라고.”
“어엉?”
“아앙?”
쩌적.
그 시점에서 그들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 금이 가고, 근처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원인 모를 오한을 느꼈다.
“잘 들어, 근육돼지. 전쟁이 싸움만 잘해야 이기겠어? 보급, 사기, 정찰, 고려해야 될 게 얼마나 많아? 그 모든 걸 휘어잡고 승리로 이끄는 것이 지휘관의 역할이라지만, 다 허울 좋은 말일 뿐이지. 그것을 실제로 실현시키는 자가 얼마나 되겠어? 결국 어딘가가 하나씩 틀어지다 전체가 무너지게 되어있어. 그런데 이순신은 해냈다고. 그냥 해내기만 했을까? 변변찮은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자급자족으로 군대를 유지해가며 전승(??)을 이뤄냈지.”
“그거야 정상적인 전투였을 때의 얘기지. 일당백의 무서운 점은 전술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의외성에 있다. 성벽을 맨손으로 올라 홀로 적장의 목을 쳐버리는 상식 외의 무력 앞에 전술이 무슨 소용이지? 전쟁이 결국 대가리 자르기 게임인 이상, 먼저 목이 달아나는 쪽이 와해되고 지는 거다. 그 점에서 척준경이 가지는 강점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지.”
“이순신의 존재감은 전쟁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야.”
“척준경은 일점의 전투에선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다.”
“그 척준경 유배 가서 죽었잖아.”
“이순신은 총 맞고 안 죽었냐?”
쿠구구구……!!!
마치 어린애들이 만화 캐릭터 이름을 대며 누가 더 강하다고 싸우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여파가 어린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처에 있던 서재가 가늘게 떨리며 책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허겁지겁 도서관에서 도망쳤다.
“술이 땡기네. 네놈과는 좀 더 진중하게 얘기 좀 나눠봐야겠어.”
“바라던 바다. 괴물 같을 정도로 완벽한 전술이냐, 아니면 괴물 그 자체인 무력이냐,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 가려보자고.”
“저, 저기…….”
““뭐야?””
한참 토론의 열기가 오르려던 때에 끼어든 목소리에 레테라와 레반은 삐딱한 눈길로 돌아보았다.
사람이라기 보단 사람의 형태를 한 맹수에 가까운 그들의 눈빛에 받은 사서는 ‘히익’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무선 수화기가 꼬옥 쥐어져 있었다.
“이, 일행 분의, 전화인데요……!”
“우리 일행?”
“설마 형님?”
용기 내서 이야기를 꺼낸 사서의 말에 그제야 두 사람은 주변의 상태를 자각했다.
살기의 영향권 안에 놓였던 테이블엔 금이 가 있고, 책들은 떨어졌으며, 주변에서 평화롭게 독서를 즐기던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있는 현재의 모습을.
……이건 혼난다.
그동안 요현의 설교와 다양한 책들로 새롭게 정립한 상식들로 볼 때, 이건 반드시 혼난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근육돼지. 일시휴전하자.”
“그래. 우린 아무 일도 없이 책만 읽고 있던 거다.”
빠르게 합의를 마친 두 사람은 사서에게서 수화기를 받았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정말 아무 일도 없던 듯 요현을 불렀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신가요?”
“형님! 저희들은 얌전히 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 문 닫게 만들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들의 철판 깐 면모에 사서가 가증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에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레테라와 레반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요현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너, 너……!?
분명 요현의 목소리는 들려왔다.
무언가에 놀란 듯 떨리고 있는 목소리라는 게 문제였지만.
두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을 때, 요현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이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렇……얼굴……던가……망할 아버…….
“?”
“누구야, 이거?”
두 사람은 미간을 좁혔다.
요현의 휴대폰과 거리가 있는지 목소리가 희미했기에 상대방에 대해 특정하기 힘들었다.
자, 잠깐! 일단 대화로 해결하자! 레…… 켁?!!
요현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뚝!
비명소리.
동시에 통화가 끊긴다.
수화기에선 삐 삐 거리는 반복적인 종료음 외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
레반과 레테라가 침묵한다.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이미 끊겨버린 수화기만 지긋이 바라만 본 채 단 한 치의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임에도 근처에 있던 사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조금 전처럼 섬뜩한 기운이 뿜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고요했다.
폭풍이 몰아치기 전 모든 동물과 벌레들이 숨을 죽이는 것처럼, 숨 막힐 정도의 정적만이 그곳에 가득했다.
사서는 차마 그 정적을 깰 수 없어 필사적으로 소리를 참았다.
이 정적에 작은 균열이라도 갔다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후우…….”
그때, 드디어 지옥과 같았던 정적이 사라졌다.
크게 내쉰 레테라가 수화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고, 눈으로 사서를 바라본다.
“거기 당신.”
“네, 넵!?”
“혹시 지도 가진 거 있어?”
“지도……요?”
지자체에서 발행한 지도가 몇 개 구비되어 있긴 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찾는 걸까?
“오라버니가 성월 대학교라는 곳에 간다는 건 기억하는데, 우리가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거든. 지도가 있다면 가져와 줘. 60초 줄게.”
……뭘 줘?
사서가 황당하거나 말거나, 그들은 읽던 책을 한쪽에 던져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한쪽 벽에 세워두었던 자신들의 짐. 그들 천으로 감싸놓았던 기다란 물건을 집어 들었다.
“갑옷을 입을 시간은 없겠지?”
“안 입는 게 더 빨라. 그리고 어떤 놈인지 족치는데 갑옷까지 필요할까.”
대화를 주고받으며, 레반과 레테라가 물건을 감싼 천을 풀어헤쳤다.
들어나는 건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서양식 검.
모형일까? 모형일 수밖에 없다.
때가 어느 땐데 이런 데서 진검이 튀어나오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칼집에서 검을 뽑았을 때 들어난 서늘한 예기는 도무지 모형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서가 멍한 얼굴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레반이 그런 그녀를 발견하며 물었다.
“뭐하고 있어? 35초 남았다.”
사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지도를 찾으러 튀어갔다.
저들이 시간을 초과하면 무슨 짓을 할 것이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도무지 좋은 상상을 할 수가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
가을바람이 시원하다.
아직 절기상 가을 초입이라서 늦여름의 열기가 지면에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낌새도 없이 그저 시원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게 지금 내 위치가 지상에서 20층 가량 떨어진 위치였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고층 건물에 들어갔냐고? 반은 맞았다.
내 위치가 고층건물인 건 맞다.
아직 완성되지 않고 뼈대만 앙상한 미완공 건물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이지.
발판조차 안정되지 않은 철골 위.
시선을 아래로 내릴 때마다 아찔한 풍경이 펼쳐져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갓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근처 기둥에 매달려 몸을 떠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전부였다.
현재 공사 중인 인원은 없었다.
근처에 노동자 인권을 보장하라는 팻말이 있는 걸로 봐선 파업 중인 모양이다.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인데 잘 좀 챙겨줄 것이지…….’
결국 사람 없이 방치된 공사장에서 자본주의의 씁쓸함을 느끼며 옆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장본인이 서 있었다.
골목길에서 마주 치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붙잡고 미완공 건물 꼭대기까지 뛰어오른 온 내 게임 캐릭터가.
검은 스키니진에 회색 후드 자켓. 하지만 모습을 가리기 위해 목까지 올린 지퍼가 불편했던 건지, 지퍼를 내리고 머리를 덮었던 후드를 벗어 넘긴다.
그러자 들어나는 건 하얀 티 위로도 충분히 느껴질 만큼 매력적인 몸매.
짐승의 털처럼 거칠게 뻗어 있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황금빛 머리카락.
내 기억의 속에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것 없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레아.”
그게 그녀의 이름이다.
내가 SoR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었던 캐릭터.
레테라가 은색 여우, 레반이 황갈색 사자를 연상시켰다면,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모습은 황금빛 늑대를 연상시켰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은색 눈동자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레아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동시에 처음으로 만난 그녀가 잠시 나를 주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뭘 쳐 꼴아봐? 눈깔 뽑아줄까?”
“…….”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무척 까칠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