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늑대 3
* * *
레아.
내가 만든 첫 번째 게임 캐릭터.
그렇다 보니 그 의미는 남달랐다.
내가 SoR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생생한 뉴비 시절부터 함께 성장해온 캐릭터라는 뜻이니까.
플레이 시간도 세 캐릭터 중에서 가장 많았다.
이를 위해서 공부에 힘써야 할 고3 시기에 정신 나간 시간 배분으로 게임에 집중하는 미친 짓거리도 저질렀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정도로 노력과 애정을 쏟아가며 키워놓은 캐릭터가 눈앞에 있었다.
지상에서 수십m 위 철골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잔뜩 아니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으음……. 그 옷 잘 어울리네.”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화제를 꺼내본다.
내 시선이 레아의 옷으로 향했다. 아마 예상했던 대로 최근에 본 그 옷가게를 습격하고 얻은 것이겠지.
레아가 내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무거나 주워 입은 거야. 속옷 바람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 그렇구나.”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레아로 SoR를 플레이할 적에 마지막으로 한 게 방어구 없이 보스 때려잡기였지.
심심하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했던 챌린지였다. 그것으로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 그대로 게임을 접었었지만.
“내가 마지막에 어떤 복장이었는지조차 까먹었나 보지?”
“…….”
잔뜩 날이 서린 반응에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레반과 레테라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그 둘은 노골적인 호의는 비춰왔지, 이렇게 노골적인 언짢음을 내비치진 않았으니까.
그녀의 기분이 팍 상해있는 이유라면 알고 있다.
“저기…… 미안해. 그동안 내버려둬서.”
“…….”
레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기 불편한 맹수처럼 머리카락을 삐죽 세우고 있는 그녀의 반응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여전히 기둥을 붙잡은 채 고층이라는 공포를 견디고 있었다.
그때였다. 레아가 입을 연 건.
“네가 오지 않는 동안 나와 같은 녀석들이 그 세계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내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동안 자신과 같은 캐릭터가 뭘 하는지 아냐는 그녀의 질문.
솔직히 생각해본 적 없었다.
살아날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없는 동안 뭘 하고 있는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레반과 레테라가 특별히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하지 않은 이야기가 레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안 해.”
“……?”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접속도 하지 않았는데 캐릭터가 마음대로 움직였다면 버그나 해킹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내 거기에 담긴 뜻이 뭔지 알아차린 내가 표정을 굳혔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없으면 우린 그 세상에 존재할 수 없어. 그래서 네가 없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 있게 돼. ……아니. 갇혀 있게 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퉁명스럽게 내뱉는 레아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고독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보며 느꼈던 고독감.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만큼의 진한 고독의 흔적을 느껴졌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시간이 흘러가는 지조차 몰라. 팔다리를 움직여봤자 걸리는 건 없고, 있는 힘껏 소리쳐봤자 울리지도 않아. 난 거기에 계속 갇혀 있었다고. 네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2년.
그녀를 내버려둔 시간이다.
SoR를 플레이하지 않았던 공백기가 반년. 레반과 레테라로 새 게임을 시작한 시간이 1년 반이다.
자유를 제한당하는 군대에서조차 2년은 미칠 지경이라는데, 아무런 자극도, 변화도 없는 공간에 2년이나 갇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였다면 정말 돌아버릴지 모른다.
“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
“…….”
“알고 있었다고. 너와 나의 감정은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떠났을 때, 네 감정은 그 세계에 모든 것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지. 그래도 계속 기다렸어! 언젠가,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서 한 번 쯤은 오지 않을까, 그 지독한 어둠 속에서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레아…….”
격정을 쏟아내는 고개를 숙여 말하는 그녀의 어깨는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기둥에 둘렀던 팔을 내렸다.
높이가 무섭긴 하지만 최대한 아래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를 버린 채 내버려둔 게 난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순 없을까 하며 레아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던 때였다.
“그래서 이쪽 세계로 건너오면서 겨우 만났다고 생각했더니…….”
문뜩, 그녀에게 전해지던 열기가 냉기로 바뀌었다.
“……모르는 두 녀석이랑 잘도 놀고 있더라, 너?”
……뭐지? 바람핀 남친과 그 현장을 목격한 여친 같은 이 구도는.
혹은 상처 입은 늑대를 도와주러 다가갔다가 물어뜯길 위기에 처한 사육사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된다.
확실히 레아는 레반과 레테라의 존재를 모른다.
그들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데 레아라고 오죽할까.
아무리 그래도 복장을 보면 같은 게임 캐릭터라는 걸 알 텐데 왜…… 아니.
이 반응은 오히려 같은 게임 캐릭터이기 때문인가?
덥썩!!
레아가 내 멱살을 잡아채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따졌다.
“그 두 녀석은 뭐야! 이제까지 날 내버려둔 이유가 그 녀석들이랑 놀아나서 그런 거였어!?”
“야! 단어 선택은 신중히 해! 내가 난봉꾼이라도 된 거 같잖아!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남자라고!!”
레아가 사람이 없는 미완공 건물 꼭대기로 날 끌고 온 게 다행이었다.
이런 대화를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보았다면 난 그대로 방에 틀어박혀 평생 한 발자국도 밖을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이제까지 널 찾지 않은 건 정말 미안해! 이제까지 다시 너로 플레이해 볼까 몇 번이나 생각 했어! 정말이야!”
“생각만 한 거잖아! 결국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으면서!”
정곡.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아무 말 못하자 레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라서 그녀의 주위로 심상치 않은 기세가 퍼져나간다.
“내가 사라졌는데 찾을 생각도 안 하고!”
“그, 그건 여러 가지 바쁜 일이 있다 보니까…….”
“나보단 그 두 녀석들이랑 노는 게 더 즐겁다 그거지!? 아앙?”
쿠구구구……!!!
철골이 떨려온다. 그 위에 있는 내 몸도 위태롭다.
살기와는 다른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지근거리에서 견디는 내가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강렬한 기세 때문에 도무지 진정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그냥 아까 기둥이나 계속 붙잡고 있을 걸 하고 후회한다.
그런데 어째 듣다보니 그녀의 분노가 이상한 곳에 맞춰져 있는 거 같은데?
자신을 어둠 속에 방치한 것보단, 그 동안 다른 두 녀석이랑 여행하고 다닌 게 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레아? 너 혹시 질투 하는…….”
“질투 안 했어!!”
질투 맞구만!
정면에서 따지고 싶었지만 레아가 이 이상으로 흥분하면 나를 멱살 째로 집어던질 것 같았기에 그녀를 진정시키는 쪽으로 힘을 쏟았다.
“정말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해야만 기분이 풀리겠어? 응? 뭐든지 할게!”
“…….”
내가 최대한 저자세로 나가자 레아의 기분도 조금 풀린 모양이다.
멱살을 놓아준 그녀는 팔짱을 끼며 나를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정말로 뭐든지 할 거야?”
“으, 응.”
너무 섣불리 말을 내뱉었나 후회했다.
그래도 내가 그녀를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니 어떻게든 감내해내야겠지.
어려운 부탁만 아니길 바란다. 발등에 키스하는 정도라면야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
“그럼 ‘그 녀석’과 화해해.”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말이 나왔다.
그리고 난 거기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표정이 너무 굳은 나머지 입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그 녀석.
레아가 지칭한 말한 인물이라면 단 한 사람 말곤 없었다.
“……왜 그 녀석 얘기를 꺼내는 거야?”
“그 사건은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거야. 그럴 녀석이 아니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나로선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었다.
또 다시 그 문제로 복잡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견디다 못해 한 번은 그렇게 죽고 못 살던 SoR을 완전히 접을 뻔했지 않던가.
레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 녀석의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녀석과 얘기해보자! 한 번만 더 얘기해보면 분명……!”
그녀의 말은 어느새 호소하듯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게임으로만 알게 된 녀석이야. SoR가 서비스 종료한 지금 찾아낼 방법도 없어.”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되잖아! 방법이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해결했던 게 우리 방식이었잖아!”
그녀와 함께 했던 SoR에서의 모험이 머릿속을 스친다.
확실히 그땐 무모한 짓도 많이 했고, 그것 자체를 즐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게임이라 가능했던 일이지. 어마어마한 자유도를 가진 SoR과 여기를 똑같이 생각하지 마. 제약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그래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만큼이나 나도 어느새 열이 올라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만! 더 이상 그 얘긴 꺼내지마!! 녀석과 내 사이는 이미 끝났어! 네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고!”
“뭐라고?”
레아가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지만, 그것은 더욱 그녀의 심기를 자극하는 일이었다.
“내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고? 무슨 낯짝으로 그딴 개소릴 지껄이는데?”
“레아…….”
아름다운 얼굴이 아까울 만큼 그녀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저 감정의 분출에 불과했던 그녀의 기세의 심상치 않은 게 섞인다.
그건 분명 살기의 가까운 거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숨이 콱 막혀왔다.
“2년 전 그날!! 너희들이 다투고 틀어지는 모습을 내가 어떤 기분으로 지켜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주제에 뭐가 내가 상관할 게 아니라는 거야?!!”
“레아!!”
2년 동안 방치된 게 문제가 아니었다.
레아의 마음에 응어리진 무언가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생겨나 있었다.
기세에 눌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부릅떠진 두 눈엔 핏발마저 돋아난다.
그럼에도 입을 열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그만둬!!!”
그것은 레아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레아의 뒤편으로 솟구친 그림자.
햇빛에 반짝이는 은색의 머릿결과 손상된 한손검.
역광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서늘하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 안에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해 한계까지 억누른 살기가 날뛰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닿기도 전, 햇빛에 반짝이던 한손검이 먼저 레아의 뒷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
파쿠르(Parkour).
혹은 프리런닝.
누군가는 예술, 누군가는 스포츠라고 말하지만, 기본적인 이미지는 건물이나 장애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달리는 운동이다.
레반과 레테라의 질주는 파쿠르처럼 보이되 파쿠르는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이나 스포츠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거칠었다.
벽을 타고 오를 때 폭 2cm 이상의 균열을 남기며 수직으로 내렸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을 때 생기는 돌풍이 그 주변의 부속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빨래가 돌풍에 날아가는 건 가벼운 정도고, 심한 경우는 안테나가 꺾여 나뒹굴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요현을 찾는 것뿐.
자신들이 있던 도서관과 요현이 있던 대학교를 잇는 일직선 경로를 이 잡듯이 뒤지며 나아가고 있었다.
저릿…!
그때,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감각을 느끼며 레반도 레테라도 동작을 멈춘다.
익숙한 기운.
폭력과 멸망이 감도는 세상의 주민인 그들에게 있어선 반가울 정도인 살기를 포착했다.
근원지는 막 쌓아 올라가던 채로 멈춘 미완공 건물.
레반과 레테라는 너 나 할 없이 동시에 그곳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 중 튀어나온 철골을 밟고 솟구친 그들 중 먼저 도달한 건 레테라였다. 레반에겐 분한 일이었지만 스피드로는 그녀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미완공 건물 옥상에서 레테라가 본 건 자신의 아버지이자, 주인이자, 의형제인 요현.
그리고 살기로 그를 압박하는 누군가.
이걸 적으로 규정하는데 무슨 여지가 있을까.
레테라를 발견한 요현이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 레테라는 이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섬광처럼 번쩍인 검날이 적의 뒷목을 향해 떨어졌고.
빠악!!
어느새 등 뒤로 몸을 휘돌린 레아가 그녀의 검날을 올려치고 있었다.
패리(Parry).
무기에 실린 힘이 극에 달하기 직전, 측면에서 끼어들어 공격의 방향을 뒤틀어버리는 SoR의 고등 기술.
그것도 면적이 검이나 방패보다 좁아 가장 힘들다는 맨손 패리였다.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져 날아가는 검을 레테라는 제어할 수 없었다.
자세가 무너지고, 생각지 못한 반격에 그녀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저 망할 놈이 날 내버려두고 만든 게 너희들이냐?”
자세가 무너진 레테라의 품으로 파고든 레아가 말하였다.
놀란 레테라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붙들어 잡는다.
두개골을 깨부술 것 같은 악력에 레테라가 놀랄 겨를도 없이 그녀의 몸이 붕 떴다.
마치 프로레슬링 기술에 걸린 듯, 레아의 손에 붙잡혀 날아간 레테라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매다 꽂힌다.
동시에 레아가 흘린 한마디가 레테라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이딴 허접한 녀석들을 잘도 키우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레테라의 머리를 짓뭉개는 충격이 공사 건물 전체로 퍼져나간다.
철골이 끊기고, 철근이 뒤틀린다.
철판으로 만든 바닥이 꺼지고, 그 밑으로 떨어진 레테라의 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닿는다. 그러나 거기에 가서도 레아의 힘은 멈추지 않았다.
그 바닥을 부수고, 그 밑의 바닥을 부수고, 아예 지하까지 처박아놓으려는 듯 계속해서 떨어지는 레아는 절대 레테라의 머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미완공이라곤 하지만 20층이 넘는 건물을 수직으로 꿰뚫는 여파는 결코 적지 않았다.
충격에 발판이 날아가면서 꼭대기의 있던 요현이 건물 밖으로 밀려나갈 정도였다.
“허억?!”
“형님!!”
하마터면 20층 아래로 추락할 뻔한 요현의 몸을 뒤늦게 올라온 레반이 잡아챘다.
둘이 함께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레반이 있는 한 죽지는 않으리라.
레반의 팔에 붙잡힌 채 떨어지는 요현은 레아와 레테라가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런 미친…….”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레아가 내지른 일격 하나로 20층이나 되는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