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마법의 가루 소동 4
* * *
“뭐야, 저놈은?”
신홍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줄곧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우정석을 죽이고 그가 일군 불곰파의 모든 것을 자신이 차지하는 결말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훼방꾼이 나타났다.
스턴트맨마냥 절벽 위에서 바이크와 함께 뛰어내린 두 남자.
한 명은 알고 있다.
불곰파에 있던 시절 자주 얼굴을 본 범균이라는 행동대장이었다.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틀림없이 그놈이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모르겠다.
고글을 벗고 얼핏 들어낸 얼굴을 봤을 땐 외국인처럼 보이는데, 뭔가 떠오른 듯 다시 고글과 헬멧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뭔가 얼굴을 알려선 안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별 이상한 새끼가 끼어들었어.”
더욱 기묘한 건,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절망스러운 상황에 악만 지르던 불곰파가 갑자기 살 희망이라도 찾은 것마냥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절뚝거리는 몸을 이끌고 그 남자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저곳이 유일한 구명정이라는 것처럼.
“최근에 새로 고용한 주먹이라도 되나?”
확실히 듬직한 덩치로 보니 싸움은 잘 해 보인다.
그래도 다굴엔 장사 없다고, 쪽수 두 배 이상 많은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고 신홍수는 확신했다.
유일한 변수라고 하면 기껏 몰아넣은 우정석이 저 바이크를 타고 도망칠 수 있다는 건데.
길이 없고 나무가 무성한 데다 절벽 위라는 험난한 지형을 뚫고 바이크를 몰고 온 저 남자라면 그게 가능해보였다.
저걸 어떡할까 싶을 때, 그의 옆에서 한 덩치 큰 건달이 나섰다.
“여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형님.”
“오! 박웅아! 그래. 너라면 믿을 만하지.”
박웅이라고 불린 남자는 신홍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우정석의 조직원들이 모인 곳을 향해 걸어갔다.
***
우정석은 그야말로 천군만마가 지원으로 달려와 준 기분이었다.
자신들의 조직을 작살내고 멋대로 부려먹고 있긴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신홍수 같은 개자식 손에 죽는 것보다 레반 쪽이 훨씬 나았다.
“오셨습니까, 형님!”
“누가 네 형님이야. 난 동생 만들 생각 없어.”
갑자기 살갑게 대하는 우정석과 그 일행들을 레반은 뭐 잘못 먹었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들과 같은 동생이나 부하들은 레반으로서도 사양하고 싶었다.
요현이 지금 자신과 레테라를 돌보는데 무척 고생하고 있는데, 거기서 입을 더 늘려서야 쓰겠는가.
한 번만 더 형님으로 부른다면 저쪽 바다에 빠뜨려버려야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정석을 비롯한 불곰파의 일원들은 신뢰감이 가득한 눈길을 던져왔다.
“그나저나 마법의 가루 건은 어떻게 됐지?”
마약을 조미료로 착각하고 있는 레반에겐 그것을 선물용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생각밖에 없었다.
우정석은 마침 그 얘기를 꺼내 잘 됐다는 듯 눈을 빛내며 신홍수와 브로커 일행들을 가리켰다.
“거래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저 개 같은 놈들이 훼방을 놓아서 말입니다.”
“그래? 그럼 난 한 바퀴만 더 주변을 돌고 올 테니까 끝나면 말해.”
“네, 알겠습…… 잠깐, 뭐라고요?”
신뢰감이 가득하던 이들의 시선은 이내 황망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레반이 도와주는 게 아니었던가? 그가 없으면 그들이 이곳에서 수장당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레반에게 도와줄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어보였다.
“딱히 난 마법의 가루만 얻으면 됐지, 너희들의 사정엔 관심 없어.”
“저희가 저 놈들에게 당하면 마법의 가루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럼 미리 예정한대로 네놈들 눈깔을 뽑고 떠나는 거지.”
“…….”
불곰파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살 희망인 줄 알았더니 그냥 망나니였다.
한쪽은 자신들을 바다에 수장시키려고 하고, 한쪽은 눈깔을 뽑으려고 벼르고 있다니, 자신들이 왜 이딴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럼 잘 해봐. 난 이 오토바이도 이제 익숙해졌으니 좀 더 달려보고 싶군.”
“히이이익!!! 사장님, 살려주십시오!!!”
좀 더 달린다는 말에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던 범균은 번뜩 정신 차리며 바이크에서 뛰어내렸다.
뒷세계의 미친개 범균이 지금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우정석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저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요!! 경찰차는 쫓아오지, 헬기는 따라붙지, 그걸 따돌리겠다고 어깨넓이밖에 안 되는 골목을 질주하지, 마주 달려오는 트레일러의 밑으로 바이크를 눕혀서 통과하지, 심지어 강 위를 떠다니는 조각배들을 밟아가며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미친 짓거리까지 저지른단 말입니다!! 폭주족은 애들 장난 수준이에요!!!”
“허, 허어…….”
얘기만 들어선 꿈이라도 꾸고 왔냐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 주체가 레반이니 만큼 불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마 오늘밤 뉴스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 레반이 문뜩 옆을 돌아보았다.
신홍수 측에서 꽤 덩치 있는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반도 꽤 장신이었지만, 그 사내는 레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그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이봐, 너. 그 오토바이에서 내려라.”
“응? 넌 또 뭐야.”
다시 신나는 질주를 시작하려던 차에 날아든 명령질인데 레반의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가 눈매를 좁히며 사내를 바라고 있을 때 불곰파 조직원 측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억?! 바, 박웅?!”
“저놈 아냐?”
“한때 유명한 천하장사 출신입니다! 씨름계에서 퇴출당해서 건달이 되었다는 소린 들었지만, 설마 살모사파에 들어갈 줄은……!!”
씨름에 대해 잘 모르는 레반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박웅을 돌아보았다.
“천하장사? 그거 대단한 거냐?”
“대단하냐고? 대단하고말고! 이 바닥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천하장사 중 정점에 군림했을 거다. 신인왕전 우승 뒤에 씨름 협회가 도핑 규정을 어겼다면서 날 추방하지만 않았어도!”
“규율 어겨서 이긴 거면 네가 잘못한 거 맞잖아.”
레반으로선 보기 드문 상식적인 발언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박웅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그가 주먹을 날렸다.
“아가리 닥쳐!!”
터업!!
그러나 그 주먹은 레반의 손에 의해 가볍게 막혔다.
레반은 혼자 떠들고 혼자 흥분한 박웅을 이상한 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박웅은 경악했다.
체격으로 보면 자신이 압도적인 힘으로 이겨야 정상인데, 아무리 체중 째 밀어붙여도 레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손아귀에서 전해지는 심상치 않은 힘을 느낀 박웅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뭐냐? 너 정도의 녀석이 고작 불곰파에 들어갈 것 같지 않은데, 어디 소속이야?”
“또 소속 얘기냐? 네놈들 참 할 것도 없다.”
지겹다는 듯 말하는 레반의 태도를 보며 박웅은 그가 어느 조직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걸 눈치 챘다.
뜻밖의 인재를 발견했다는 듯 박웅이 미소를 지었고, 우정석은 낭패라는 듯 표정을 굳혔다.
그가 레반은 회유하려 한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이봐. 이러지 말고 우리 조직에 들어오지 않겠어? 심심치 않게 대우해줄게. 우리 두목은 센 놈을 좋아하거든.”
“관심 없다. 내가 모시는 건 형님 하나면 족해.”
“형님? 그건 누구야? 지금 어디에 있지?”
“지금 쯤 대학에 다녀오고 여관에서 쉬고 있지 않을까?”
어서 돌아가서 형님이 보고 싶다는 듯이 말하는 태평한 모습에 박웅은 어이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형님이라는 자는 조직의 우두머리도 뭣도 아닌 그냥 집 없는 대학생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겨우 그딴 놈 따르겠다고 제안을 이리도 간단히 걷어차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뒷세계를 지배할 야욕을 품고 있는 자신들의 두목 쪽이 훨씬 대단해보인다.
“이봐. 그따위 찌끄레기 따위에 인생 바쳐봤자 네가 손해라고. 그보단 우리 큰형님 쪽이…….”
그렇기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위험한 기폭제인지조차 알지 못 한 채.
박웅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레반에게 붙잡혀 있는 주먹. 거기에서 가해지는 끔찍한 고통 때문이었다.
“……하여간 이쪽 세계의 인간들은 왜 이리 말을 함부로 휘두르는 건지.”
이미 한 번의 말실수로 크게 데인 적인 있는 불곰파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마치 우리 밖으로 풀려난 사자를 본 것 같은 반응이었다.
한편 박웅은 무릎을 꿇었다. 손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 비맞은 듯 흘러내리고, 떡 벌린 입에선 비명조차 새어나오지 못했다.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마치 압축 프레스기에 실수로 손이 끼이는 사고에 당한 것처럼, 주먹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으직으직’거리는 위험한 소리가 들려옴에도 도무지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이건만 무례한 소리는 잘도 한단 말이야. 아니, 평화로운 세상이기 때문에 더 그런 건가? 누군가를 무시하고 비하했다고 맞아 죽을 걱정은 없다는 소리겠지.”
으직!! 으직!! 콰직!!
레반의 손가락 사이에서 박웅의 살가죽을 뚫고 하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뼛조각이라는 사실을 아는 건 레반 뿐이었다.
쥐어짜는 주먹 밑으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 충격적인 비주얼에 불곰파도, 살모사파도, 심지어 브로커마저 함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 살려…….”
박웅의 의식은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그가 겨우 살려달라는 말을 내뱉으려 할 때 레반이 그 말을 끊으며 물었다.
“이봐. 방금 우리 형님을 찌끄레기라고 비하했던 그 입, 너희 형님은 책임질 수 있어?”
“……억.”
박웅은 결국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하고 말았다.
겨우 손 하나가 뭉개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다니. 어젯밤에 손가락을 부러뜨려가면서 레반과 가위 바위 보 승부를 벌이던 레테라가 본다면 콧방귀를 뀔 일이었다.
차마 표현하기에도 끔찍한 현상이 된 박웅의 주먹을 쓰레기 버리듯 던져버리며 레반은 살모사파 쪽을 돌아보았다.
자신들이 본 게 현실이 맞는지 혼란이 온 그들은 눈만 깜빡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레반은 뒤쪽에 있는 우정석을 불렀다.
“이봐.”
“네, 넵!”
“이 덩치, 저쪽 일행이지?”
“그, 그렇습죠!”
“그럼 책임은 누가 져야하냐?”
“……저쪽입니다.”
“그치?”
간단한 귀결이 마음에 든 레반이 어깨를 풀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죽이진 않을 거니까 어떻게 처리할지 잘 생각해놔.”
“…….”
차라리 죽이는 게 저들에겐 더 좋은 결말이라는 사실은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신홍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최고 전력이었던 박웅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쓰러져버렸다. 그것도 오른손이 손을 빙자한 핏덩어리로 변한 채로.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도 모를 남자가 자신들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기는 게 보인다.
헬멧과 고글을 쓴 머리에서 알 수 없는 오싹한 시선이 느껴졌다.
배신과 횡령으로 제 배를 불려오던 수완이 있는 만큼 신홍수의 눈치와 직감은 남들보다 뛰어났다.
그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라고.
“주, 죽여! 저 새끼 당장 죽여!!”
신홍수는 마찬가지로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부하들을 닦달했다.
정신을 차린 부하들이 그제야 무기를 거머쥐며 레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달려가던 도중 레반의 모습이 사라졌다.
비유가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퍼어어억!!!
그의 모습은 살이 터져나가는 듯한 울림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신홍수의 뒤편이었다.
공포스러운 광경 때문에 신홍수의 명령을 듣지 않고 슬금슬금 뒤로 몸을 빼던 건달 두 명의 얼굴에 레반의 주먹이 꽂힌 것이었다.
코뼈를 중심으로 얼굴 전체가 뭉개지고, 이빨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 광경은 신홍수의 뇌리에 오래토록 이미지가 남았다.
“뭐, 뭐하고 있어, 멍청이들아! 저 뒤에 있잖아!”
앞으로 달려가던 부하들은 어느새 뒤편에 나타난 레반의 모습에 놀라며 그곳으로 방향을 바꿔 달려갔다.
그러나 레반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 시점에서 그들에게 승산은 없었다.
언제 날렸는지 모를 발차기가 가장 앞에서 달려들던 건달의 몸통에 꽂힌다. 가슴이 음푹 파인 것으로 모자라 뒤로 날아간 건달의 몸이 동료들을 덮치며 엎어졌다.
그렇게 공간이 생긴 무리들 속으로 뛰어들며 마음껏 날뛰는 레반.
그 모습은 작은 미어캣 무리들 속을 마음껏 해집고 다니는 사자와 같았다.
신홍수는 승산이 없다는 걸 확신했다.
그의 건달 인생은 순전히 싸움이 아니라 도망칠 타이밍을 잘 잡는 데에 있었다.
이번에도 도망치려고 다리를 뒤로 빼는 그 순간.
덥썩!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레반이 신홍수의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그 무지막지한 완력의 신홍수의 몸이 번쩍 딸려가며 공중을 날았다.
거기에서 신홍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사라진 뒤 부하 두 명을 처리한 건, 레반이 자신의 스피드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누구도 이 자리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레반이 집어 던진 자신의 몸이, 막 달아나려고 하는 중국 브로커를 향해 날아가는 걸 보고 확신한 일이다.
퍼어어어억!!!
“끄아아악!!!”
느닷없이 날아온 신홍수와 부딪친 자신의 부하가 나가떨어지는 걸 본 브로커가 철제가방을 끌어안은 채 비명을 질렀다.
브로커가 시선을 돌리니 막 다른 건달들을 쥐어 패면서 리타이어 시키고 있는 레반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라.”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레반의 말에 브로커는 모든 걸 포기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
***
“하하! 이게 그 마법의 가루인가! 양이 아주 많군!”
레반은 철제가방 안에 가득한 하얀 가루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편 불곰파 일행은 쓰러진 살모사파의 반을 밧줄로 구속하고, 나머지 반은 응급처치를 실행하고 있었다.
사람으로서의 정 때문은 아니고, 치료하지 않고 놔뒀다간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정석은 두 손 공손히 모으며 레반에게 다가갔다.
목숨을 빚진 것도 있지만, 조금 전 살모사파가 당한 모습을 보니 레반에게 남아 있던 약간의 반항심마저 사라졌다.
사람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은 아주 가볍게 만져준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내가 뭘. 저놈들이 화를 자초한 거지.”
“이걸로 저희끼리의 은원은 없는 것이지요?”
“음. 나중에 날 찾아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렇겠지.”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 할 거야.”
레반의 목소리는 가벼우면서도 날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눈앞에 많은 양의 마법의 가루가 마음에 드는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그 가루들을 우정석이 탐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저만한 양이라면 서울 강남의 땅을 사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이 이상은 괜한 욕심이다.
지금 신홍수을 붙잡은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불곰파가 다시 일어날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괜히 저 괴물에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겪게 될 손해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어디 맛 좀 볼까?”
“응? 어…… 자, 잠깐……!!!”
우정석이 말리기도 전에 레반은 한 봉지를 뜯고 그 안에 가루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미친 짓이었다.
마약은 뇌에 데미지를 입히는 약물이다.
영화에서처럼 손가락에 찍어먹기만 해도 현실에선 의식을 잃기 십상인데, 한 주먹 크기의 양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니?
다른 조직원들도 그 미친 행보를 목격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때였다.
입안에 가루들을 모두 삼킨 레반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으음……. 별로 맛있진 않는데. 형님이 사온 것과는 다른 종류인가? 아니면 음식에 풀어놔야 맛이 생기는 건가?”
“저…… 괜찮으십니까?”
“뭐가?”
레반은 멀쩡한 모습으로 우정석을 돌아보았다.
이미 환각에 빠져있다거나,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레반의 눈동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깊고 뚜렷했다. 털어 넣은 마약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처럼.
‘이 브로커 새끼, 설마 가짜를!?’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묶여 있는 브로커를 돌아보았지만, 사실 이 자리에서 가장 경악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브로커였다.
그의 원래 계획은 불곰파를 담가버리고 신홍수와 거래를 하는 것이었다. 가짜 마약을 가져올 리가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저 정도를 한꺼번에 먹고 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마약이 효과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마약보다 더 지독한 환각 작용을 하는 독버섯 던전이 당연한 게 존재하는 게 SoR의 세계였다.
그곳의 주민인 레반 또한 거기에 맞춰 독내성 따윈 인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자신을 향한 경외어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반은 철제가방을 짊어지고 몸을 일으켰다.
“뭐, 선물도 챙겼겠다, 난 이만 간다.”
부르르릉!!
철제가방을 바이크 뒷좌석에 고정하고, 바이크에 시동을 킨 레반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버렸다.
정말 자신들에겐 쥐뿔만큼 흥미도 없다던 인물답게 너무나도 쿨한 이별이었다.
남겨진 건달들은 한바탕 자연재해를 겪은 것 같은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때,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범균이 문뜩 떠오른 듯 중얼거렸다.
“아. 내 바이크.”
* * *